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발췌 읽기: 고병권, 다이너마이트 니체] 5장 인간 양육술


출처: 고병권 지음. 다이너마이트 니체: 고병권과 함께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읽다. 천년의상상 펴냄. 2016.

※ 발췌: p.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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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_ 도덕을 읽는다는 것 - 도덕 감각과 도덕학

니체는 도덕 감각과 도덕학 사이의 기묘한 대조로 5장의 논의를 시작한다. "오늘날의 유럽에서의 도덕적 감각은 섬세하고, 말기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다양하고, 민감하고, 세련되었는데", 도덕을 연구하는 학문(도덕학, Wissenschaft der Moral)은 여전히 "미숙하고 서툴고 조야"하다. ( ... ... )

'도덕을 정초하려던' 철학자들의 시도는 너무 어설펐다. 우선 심리학적으로 순진했다. 이를테면 비이기적인 행위에 입각해 도덕을 수립하려 했다. 도덕적 행동이 무엇인지를 미리 규정하고, 다만 이런 행동을 가능케 하는 인가의 동기나 본래적 소질을 찾으려 했을 뿐이다. 도덕적 행동으로 간주하는 것, 그것 자체에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는 이 철학자들을 "학문 정신이 아니라 박애 정신에 이끌리는 구경꾼들"이라고 불렀다. 도덕에 어떤 의심도 없이 그저 이타적 행동만을 외치는 박애주의자라고.

둘째, ( ... ) 이들은 한 시대, 한 민족이 선이라 불렀던 것을 다른 시대, 다른 민족은 악이라 불렀음을 알지 못했다. 도덕적 감각이 역사적 형성물임을 알지 못했다.

따라서 도덕을 다루려는 사람은 자기 시대의 편견(선판단)에 갇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용감해야 한다. ( ... ... )

도덕의 본래적 문제를 드러내려면 여러 도덕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감각, 가치의 감정들은 "살아 있고 성장하고 낳고 몰락해 가는" 생명체와 같다. "이러한 살아 있는 결정체가 반복되며 더욱 빈번하게 나타나는 형태들"을 파악해야 한다. ( ... ) 니체가 말하는 '도덕의 유형학'.

( ... ... )

도덕은 '정동을 나타내는 기호 언어'이다. 도덕을 일종의 기호로서, 징후로서 읽어내야 한다. ( ... ... )


02_ 자연의 도덕적 명령 - "복종하라, 그러지 않으면 파멸할 것이다."

( ... ... ) 도덕은 자연적(본성적)인 것도 아니고 이성적인 것도 아니다. "모든 도덕은 방임과는 반대의 것이며 '자연'에 대학 폭압이고 '이성'에 대해서도 폭압이다. ... ... 모든 도덕에서 본질적이고 귀중한 것은 그것이 오랫동안 가해진 강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에는 어떤 필연적 이유가 없다. [자의적인 것이다].

( ... ... ) 어떻든 도덕은 결코 도덕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다. 도덕의 기원에는 강제와 폭력, 자의, 어리석음 등이 자리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생존 조건이다. 우리의 생존, 우리의 문호, 우리의 문명은 이런 어리석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점에서 니체는 도덕이란 칸트가 말한 것과는 아주 다른 의미에서 자연이 우리에게 내린 정언명령이라고 밝힌다.[주] "그대는 복종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그렇지 않으면 파멸할 것이며 그대 자신에 대한 최후의 존경도 잃게 될 것이다." ( ... ... )


03_ 우리는 거짓말에 익숙하다 ( ... ... )


04_ 두려움으로서의 도덕

도덕은 하나의 강제이고 훈련이며 억압이고 우둔함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삶의 생존 조건'이기도 하고, 나아가 '높은 정신 세계'를 창출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도덕이 비도덕적 수단을 사용했다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해당 도덕이 그런 강제와 훈련, 억압, 우둔함을 통해 어떤 인간형을 육성했느냐이다. 우리는 도덕이 육성하는 인간형을 통해 그 도덕을 지배하는 충동을 읽을 수 있다.

현대 유럽의 도덕은 '두려움으로서의 도덕'이다. 정동을 강력하게 표출하는 '열대적 인간형', 이른바 '맹수 인간들'을 온순한 '온대적 인간들'로 바꾸는 것이다. 동물로 말하자면, 초원과 정글의 야수를 잡아 동물원에 가두거나 가축으로 사육하는 일종의 사육 프로그램인 셈이다. 이 도덕 아래서는 '덜 위험해졌다'는 말과 '개선되었다'는 말이 같은 뜻이다. ( ... ... )


도덕의 모체는 사랑이 아니라 공포다

니체는 도덕적 가치 판단의 기준을 무리의 이익과 안전에 두는 사회에서 도덕의 모체는 사랑이 아니라 공포라고 말한다. 고대의 경우도 그렇다. 사랑이나 공정, 상호 부조 등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한다 해도 ( ... ) 더 중요한 것은 외부의 위험, 즉 이웃 공동체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었[다]. 니체는 사회 전체가 안정화되었을 때에도 '이웃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도덕의 모체로 기능한다고 밝힌다. 한때 공동체가 외부 위험, 즉 적에 맞서기 위해 육성해야 했던 덕복들은 공동체가 안전을 확보하기 시작하면 점차 악덕으로 몰린다. 적을 물리치거나 속이는 데 필요했던 "모험심, 만용, 복수욕, 교활함, 약탈욕, 지배욕 같은 강력하고 위험한 충동들"은 한때 미덕이었지만, 공동체가 외적 위험에서 안전해지자마자 악덕으로 배척된다. ( ... )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런 충동과는 대립적인 충동들, 이를테면 온유하고 상호부조적이며 동정적 색깔을 띤 정동이 미덕으로 불린다. ( ... )

이웃 사랑이나 동정이 도덕적 가치를 부여받은 것은 이런 조건에서다. 즉 이웃 사랑은 이웃에 대한 공포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식물이다.{??}[주] ( ... ... ) 이런 공동체가 바라는 인간형은 '잘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복종하는 사람'이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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