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9.22.
※ 검토 기간: 9.11(토), 9/19(토)~9/22(화) 중 실투입일수 3일
- 지은이: 다릴 콜린스(Daryl Collins) 외 공저자 3인.
- 서명: “빈자들의 포트폴리오: 세계의 빈자들은 하루 2달러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Portfolios of the Poor: How the World's Poor Live on $2 a Day)
※ 비고: 책의 주 독자층이 누구인지, 어떤 걸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인지, 그러한 독자들의 어떤 필요를 해결하려고 쓴 것인지(즉, 독자가 얻을 가치가 무엇인지)를 명시적으로 솔직하게 밝히지 않은 책이며, 묵시적으로도 전달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책입니다. ‘솔직한’ 책은 서문과 1장(혹은 그에 더하여 몇몇 장의 서두와 결론)만 보면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책의 목적과 성격이 어렵지 않게 파악되지만, 그렇지 못한 책입니다.
가. 책의 마케팅(독자에게 말 걸기) 개념, 그리고 제목의 선택
1. 세계 10억 명 이상의 빈자들이 하루 2달러(혹은 그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간다. 선진국 사람들은 이토록 낮은 생계비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어떻게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막연한 생각에 저발전국 국민들에게 원조와 기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2. 그러나 이 빈자들은 그토록 낮은 소득을 가지고도 매우 활발한 자금 운용을 한다. 발버둥 치면서 저축도 하고, 융자도 받고, 위험 관리도 한다. 우리 저자들(혹은 프로젝트팀들)이 인도·방글라데시·남아프리카공화국 3개국에서 1년씩 체류하면서 250개 빈곤 가정의 살림살이를 탐문하여 파악한 ‘재무 일기(financial diary: 쉽게 말해, 자금 출납의 가계부)’를 통해 알아낸 결과다.
3. 세계의 빈자들이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기 위해 실제로 어떻게 소득을 마련하고 빚을 지고 (또 빚을 갚거나 갚지 못하고) 생애주기의 대소사에 대응하는지 그 실상을 이해해야만 그들을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
※ 바로 이러한 취지하에─책의 본질적 성격을 책 속으로 숨긴 채─아주 포괄적 의미를 부여한 ‘발전의 틈새’를 마케팅 개념으로 잡아 전면에 내세운 제목이 ‘빈자들의 포트폴리오’임. 그 발전의 틈새란 빈자들의 ‘지갑’ 혹은 ‘살림살이’를 그들 본인들의 자금 운용(money management)의 실상을 통해 들여다보자(‘여태까지 이런 시도는 없었다!’)는 것이고, 거기서 교훈을 얻자는 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음.
나. 책의 본질적 성격
1. 그러나 책의 본질적 성격은 ‘저발전국 빈곤층을 겨냥한 금융상품 개발론’이다. 여기서 금융상품이란 1983년 방글라데시 그라민(Grameen) 은행이 개척한 미소 금융(microfinance: 극빈층 대상 소액 융자·저축·보험)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일본도서 풍으로 딱딱하게 표현하자면, 제목은 ‘저발전국 금융상품 개발론’, 부제는 ‘미소 금융의 발전을 중심으로’라고 할 수 있다.
2. 따라서 책이 거론하는 화제의 범주를 규정하면, 크게는 저발전국의 발전, 좁게는 그중에서도 특정 금융상품군인 미소 금융임. 즉, 발전과 금융의 교집합이 책이 자리하는 화제의 위치임.
3. 저발전국의 빈곤에 대하여─자금 운용 면에서의─실상만을 주목하는 반면, 빈곤의 원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거론하지 않음. 달리 말해, 빈곤의 ‘증상’(좋게 말해, ‘실상’)만을 보고 금융상품 활용 면에서의 개선 방안을 제안함. 빈곤과 관련된 노동·산업·복지·조세·환경 등의 문제와 해결 정책은 논의 대상에서 배제됨.
다. 주제의 배치와 책의 차례 (쪽번호는 PDF 원고가 아니라, 구글도서의 출판본 기준)
※ 책의 본질인 미소 금융의 발전 제안은 6장과 7장의 30쪽(p. 154~184)에 해당하고, 그 앞의 2~5장은 전부 다 그를 위한 배경과 분석임.
- 1장. 빈자들의 포트폴리오 (p. 1): 서문에 해당하며, 책의 주제와 논지에 대한 개괄적 소개.
- 2장. 고단한 일상 (p. 28): 빈곤 가정의 ‘재무 일기’에서 드러나는 하루하루의 현금 흐름.
- 3장. 위험 관리 (p. 65): 실업·질병·상해·사망(장례) 등 불운과 위험에 동반하는 자금 운용의 실태.
- 4장. 목돈 만들기 (p. 95): 생애주기의 대소사 해결 및 빈곤 탈출을 위한 저축 활동의 실태.
- 5장. 금리 (p. 132): 월 30%, 연 100%~2000%에 달하는 극빈층 융자 금리에 대한 고찰.
- 6장. 그라민 은행 제2기 사업(p. 154): 아주 성공적이었던 그라민 은행의 미소 금융이 1990년대 위기에 봉착하여 2001년부터 시작한 제2기 사업(Grameen II)의 내용과 성과를 조명. 그것이 빈곤 가정의 재무 일기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분석.
- 7장. 포트폴리오의 개선(p. 174): 어떠한 원칙을 중심으로 어떠한 특징을 갖춘 미소 금융 상품을 마련할 것인가를 제시함. 책의 본질이며, 본론이자 결론임(6장은 본론이라기보다 본론의 서론에 해당하는 성격).
- 부록 I(p. 185), ... 감사의 글(p. 243), ... 색인(p. 273).
라. 서술의 특징과 설명의 방식
1. 주로 2~5장에 걸쳐 빈곤 가정들의 에피소드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딱한 처지가 꽤 적나라하게 드러남. 동정적인 일반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음.
2. 한편, 그러한 실상을 ‘금융상품 개발론’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대차대조표(balance sheet)’, ‘현금 흐름(cash flow)’, ‘자금 순환(flow of funds)’, ‘순현재가치(net present value) 등 전문적인─즉, 기술적인 묘사가 꽤 동반하는─금융 개념을 논지를 펼치는 주된 개념으로 활용함.
이는 이 책의 모태를 이루는 연구 프로젝트의 목적이 선진국 ‘발전 커뮤니티’의 발전 관료/전문가 및 저발전국에서 금융 사업을 펼치(고자 하)는 기업가(후보들)에게 전문적인 결과물을 제시하는 것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됨.
마. 책의 발생 배경과 영어권 독자층 추정
1. 왜 이런 책이 나왔는가를 이해하려면, 세계 ‘발전 커뮤니티(development community)’를 이해할 필요가 있음. ‘발전 커뮤니티’란 세계은행을 비롯한 부국들의 원조 기관, 게이츠재단 등 국제적 민간 자선단체, 관련 연구소 등 두뇌집단, 이들의 언저리에서 활동하는 정책 전문가 및 컨설턴트 등을 말함.
이 중 게이츠재단 등 민간 자선단체가 지출하는 예산만 해도 어마어마하여, 이 돈을 따내려는 전문가들이 상당히 많을 것임. 저자들의 연구와 현장 조사 프로젝트도 포드재단과 게이츠재단(그 밖에 영국 국제발전부 등)의 자금 지원을 받아 성사되었음.
저자들은 이 돈으로 커다란 프로젝트를 추진해 그 1차적 산출물을 생산했을 것이고, 그 산출물의 내용을 추려서 2차적으로 일반 독자들을 겨냥해 출간한 것이 바로 이 도서로 추정됨.
2. 영어권의 (좁은) 1차적 독자층: 위 ‘나’ 항과 ‘라(2)’ 항에서 드러나는 ‘전문성’을 고려할 때, 세계 ‘발전 커뮤니티’와 상당 정도 관련되는 전문가, 활동가, 교수 및 학생들일 것으로 추정됨. 영어권에서는 이 숫자만 해도 출판 후 1~2년 사이 1~2천 부 이상이 팔리지 않을까 추정됨.
3. 영어권의 (넓은) 2차적 독자층: 위 ‘가’ 항과 ‘라(1)’ 항에서 드러나는 ‘호소력’을 고려할 때, 저발전국의 빈곤 문제에 공감하는 모호한 대중들일 것으로 추정됨.
그러나 이 광의의 일반 독자층이 2~5장에서 설명되는 금융 개념을 얼마나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약간 비관적임.
또한 일반 독자층이 6장과 7장의 본격적인 미소 금융에 대한 논의를 접할 때, ‘이런 것이 그들에게 필요하겠구나’ 하고 정서적으로는 공감할지언정, 기술적으로 그러한 금융상품들에 대한 지식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구나’ 하고 느끼기는 어려울 것임. 왜냐하면 일단 금융의 메커니즘과 역할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형성되어 있어야만 구체적인 내용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임.
바. 번역서의 한국 독자층 추정
1. 위 영어권 1, 2차 독자층을 한국의 독자 대중에게 투영해 보면, 누가 또 얼마나 이 책을 찾을지 어느 정도 답이 나오지 않을까 짐작됨.
2. 위와 같은 의미에서 한국의 1차적 독자층은 100명을 넘지 못할 것임. 광의의 2차적 독자층은 유니세프, 월드비전 등에 기부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저발전국 빈곤에 관심이 있으면서 금융에도 관심이 있는 독자들일 터인데, 이 숫자가 얼마나 될지 다소 비관적임.
3.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내지는 못하더라도 위 ‘가’ 항과 ‘라(1)’ 항에서 드러나는 ‘호소력’에 이끌려 책을 집을 독자들을 고려하면 2천부 정도는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 짐작되지만, 절대 그 이상은 못 될 것이라고 추정함.
사. 기타: 저자들의 주특기를 반영하는 경력 (http://www.portfoliosofthepoor.com/authors.asp 참조)
- Daryl Collins: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신흥 금융시장(즉, 저발전국 금융시장)을 강의. Bankable Frontier Associates의 시니어 어소시에이트.
- Jonathan Morduch: 뉴욕 대학 공공정책/경제학 교수. <미소 금융의 경제학>의 공저자.
- Stuart Rutherford: 방글라데시 미소 금융 기관인 SafeSave을 설립한 미소 금융의 장본인. <빈자들과 그들의 돈>의 저자.
- Orlanda Ruthven: 영국 국제발전청에서 미소 금융 연구 및 컨설팅.
아. 군더더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북클럽 선정
1. 저커버그가 왜 이 책을 자신의 북클럽 도서로 선정했는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빌 게이츠라든가 저커버크 같은 갑부들 주변에는 세계 ‘발전 커뮤니티’의 인사들이 수시로 출몰할 것 같음. 그중 이 책과 관련된 어떤 사람의 부탁이 북클럽 도서로 선정된 연유가 아닐까 짐작함.
2. 북클럽 선정 도서라면 상당히 폭넓은 일반 독자층을 염두에 두는 것일 텐데, 해당 게시물 www.facebook.com/ayearofbooks/posts/935492176496712에는 선정 배경에 대한 언급이 없음(다른 선정 도서들의 경우에도 배경 설명이 없기는 마찬가지임).
3. 위 게시물의 댓글들을 보시면 영어권 독자들의 반응을 일부 볼 수 있을 듯함. 그중 첫 댓글:
“While the book's methodology and conclusions are fascinating, it is a complex and technical analysis best suited for those fluent in economics and public policy.”(from amazon) Why then, have the economically challenged (for lack of a better word) read it?
“책의 방법론과 결론은 매우 훌륭하지만, 경제학과 공공정책을 잘 아는(fluent) 사람들에게나 적합한 복잡하고 기술적인 분석이다.”(아마존 독자평에서 발췌)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달리 적합한 표현을 떠오르지 않는 탓에)이 왜 이 책을 읽어야 하죠?이 댓글을 쓴 청년은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아마존 댓글을 인용한 것이지만, 마지막 질문은 이 책이 겨냥하는 독자층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여, 막연하게 ‘빈곤과 발전을 다룬 책일 터이니 빈곤층 그 본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겠지’라고 착각하고 물은 질문일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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