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5일 토요일

[발췌] 딜링룸의 세 계급과 음모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1)

지은이: 크리스티앙 샤바뇌·Christian Chavagneux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편집 부국장

※발췌:

( ... ... ) 실제 트레이딩룸에서 일하는 직업군은 훨씬 다양하다. 

트레이딩룸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 먼저 금융공학자가 있다. 새로운 금융상품을 만들어내는 뛰어난 두뇌 집단들이다. 모든 경제가 그렇듯, 금융 부문에서도 주식이나 외환 같은 기초상품을 거래하는 것만으로는 큰 수익을 올릴 수 없다. 돈을 벌려면 변형(가공) 상품을 팔아야 한다. 그렇게 은행이 투자자에게 팔 만한 고가 상품을 개발하는 사람이 금융공학자다. 흔히 금융계 종사자들끼리는 상품 개발을 상품의 ‘구조화’라고 말한다. 금융공학자를 ‘구조화금융전문가’(Structurer)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구조화금융전문가는 어떻게 하면 다양한 종류의 신용상품(주택담보대출, 자동차할부금융, 소비자 신용대출 등)을 결합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낼까 고심한다.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복합금융상품은 해롭기 그지없다. 지난 서브프라임 사태 때는 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받기도 했다. ( ... )

일단 금융공학자가 상품을 개발하고 나면 이번에는 고객과의 접촉을 위해 금융컨설턴트가 나설 차례다. 다른 부문의 영업사원도 그렇지만 금융시장의 컨설턴트도 가가호호 고객을 찾아다니며, 회사가 개발한 상품을 소개하거나 고객의 필요에 맞는 투자나 대출 방법을 조언하는 일을 한다. 금융컨설턴트는 무엇보다 고객 관리에 철저하다. ( ... )

일단 금융컨설턴트가 구조화금융전문가가 개발한 투자상품과 투기상품, 혹은 리스크 관리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하고 나면, 은행은 해당 상품에 대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바로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트레이더다. 트레이더의 역할은 회사가 복잡한 금융상품 판매와 관련해 손실을 입지 않도록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이 자사 상품 판매에 따른 리스크 관리 수단으로 또 다른 파생상품을 돈을 주고 매입하면 은행의 비용 부담은 더욱 높아진다. 

금융기관은 이처럼 예기치 않은 손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트레이더가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 수준을 규제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트레이더의 포지션(외환이나 증권의 매도·매수한 상태) 한도를 제한하는 것이다. 이때 트레이더는 상품별로 위험을 관리하는 대신, 자신이 담당하는 분야(통화·증권·원자재 등) 전체를 놓고 리스크를 관리한다. 제롬 케르비엘(소시에테제네랄사 직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 금융사기 사건의 주인공)의 경우도 비슷했다. 그는 유럽 주가 변동과 연계된 상품 부문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케르비엘은 회사가 정한 포지션 한도를 넘어섰고, 마치 규제 한도 내에서 투자를 하는 것처럼 거래 내역을 꾸며 위험천만한 거래를 실행했다.  ( ... )

금융기관은 복잡한 금융상품 거래와 관련한 위험관리 외에 순수한 거래를 위한 트레이더를 고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자기자본거래(Proprietary Trading), 즉 ‘프랍 트레이딩’(Prop Trading)이 바로 그것이다. 은행이나 투자기금이 자기자본이나 차입금을 가지고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자본 손실 위험이 크지만 상대적으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개 프랍 거래를 하는 트레이더는 두 부류로 나뉜다. 

먼저 기존의 일반적인 트레이더가 있다. ‘시장을 감지하는’ 노련한 베테랑 금융인이다. 이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자산(증권·통화 등)이나 국제 정세, 경제 등에 훤하다. 그리고 시장을 읽기 위해 여러 기술적 도구나 도표, 통계 분석 등을 이용한다. 월요일이나 목요일엔 절대 매수하지 않는 등 나름의 징크스나 노하우도 있다. 하지만 ‘거시 글로벌’ 트레이더로 불리는 이들은 최근 수십 년간 입지가 상당히 좁아졌다. 점차 자기자본거래가 통계차익거래(Quantitative Trading), 다시 말해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거래 형태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은 이를 위해 금융학이나 통계학을 함께 전공한 금융공학자를 채용하고 있다. 이들 트레이더는 금융공학자를 도와 다양한 시장을 대상으로 실시간 자동으로 차익거래를 할 수 있는 복잡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한다. 이런 극초단타 자동매매 프로그램(1억5천만분의 1초당 주문을 넣는다)은 규제 당국에 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대체 이런 거래를 어찌 통제한단 말인가? 물론 금융공학자와 함께 자동 주문 프로그램을 만든 트레이더들은 항상 수익·손실 곡선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언제든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지만 완벽한 통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5월6일 미국에서 발생한 주가 폭락 사태다. 당시 원인도 모른 채 미국 증시는 한순간에 10%가량 폭락했다. ( ... )

금융 규제 당국도 자동거래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장 피에르 주이에 프랑스 금융시장청(AMF) 청장은 지난해 11월 말 <AFP통신>을 통해 자동거래 기술 때문에 주가 조작을 적발하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투자자가 시장을 읽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제아무리 뛰어난 금융인도 인프라가 받쳐주지 않으면 온전한 실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그래서 트레이딩룸의 세계는 흡사 중세시대의 신분제도와 유사한 계급조직을 이루고 있다. 우선 귀족에 해당하는 계급이 트레이더다. ‘프론트 오피스’(Front Office), 다시 말해 온종일 시장 상황만 주시하는 ‘전방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귀족을 보좌하는 역할은 ‘미들 오피스’(Middle Office)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맡는다. 귀족의 자리를 갈망하는 일종의 부르주아지라고 볼 수 있다(케르비엘이 꿈꿨던 것도 이것이다). 이들은 트레이더 곁에서 일하면서 혹시 트레이더가 신분상의 위치를 이용해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거래를 은폐하는지 관찰한다. 그래서 전직 트레이더라면 누구나 미들 오피스와 안 좋은 추억이 한두 가지 있기 마련이다. ‘올림푸스의 신’ 옆에서 일하는 미들 오피스의 직원들은 ‘프론트’가 실행한 잠재적인 금융거래를 금융기관의 정보 시스템을 통해 인식 가능한 구체적인 거래로 변환한다.

가장 하부에는 쥐꼬리만 한 월급에 ‘백 오피스’(Back Office), 즉 후방부서에서 일하는 말단 직원이 있다. 이른바 ‘제3 신분’이라 할 수 있다. 주로 회계처리나 자금결제와 같은 후선 업무를 맡는다. 이들의 꿈은 부르주아지, 바로 ‘미들맨’이 되는 것이다. 조직이나 업무 상품의 종류에 따라 배치 인원이 달라지지만 대개는 트레이더 1명당 미들 오피스 직원은 0.5~1명, 백 오피스 직원은 2명이 배속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윤리적 차원에서 ‘성직자’ 역할을 담당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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