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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 이 책에 담긴 미제스의 독창적 기여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그 첫째는
미시적 기초(micro-foundation)위에 세운 화폐이론을 선 보였다는 것이다. 이
것이 경제학 발전에 어떤 의미를 갖는 공헌인지는 1970년대 이래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주류 경제학에서의 거시경제학의 미시기초를 찾으려는 노력을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두 번째는 빅셀(Knut Wicksell)의 이자율이론과 영국
통화학파 이론에 오스트리아학파의 자본이론을 접목시킨, 즉 자본재 시장과
소비재 시장 간의 자원배분의 왜곡이라는 불황채널을 포함하는 새로운 오스
트리안 경기순환이론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 ...) 고전파,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공히 화폐는 실물경제의 분석과는 별도로 취급
되어 왔다. 한계효용이나 가격이론의 틀이 아니라 피셔(Fisher)의 교환방정식
이 통화이론의 기초가 되어왔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화폐와 금융의 문제를 통
화 공급, 화폐의 유통속도, 국민총생산, 가격수준 등 거시경제변수들로 얘기한
다. 그리고 달러, 유로, 파운드, 프랑 등 각국 통화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해
놓은 회계단위로 취급되고 있다. 화폐는 국가의 창조물이고, 그래서 거시경제
의 대상이다. 이 같은 주류경제학의 분석틀에서 소비자와 기업 같은 경제주체
들의 화폐에 대한 수요가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미제스의 화폐이론의 미시
적 기초 세우기는 로빈스교수(Lionel Robbins)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치의
순수이론의 일반적 범주들에 화폐이론을 통합시킨” 것이다. 쉽게 풀어서 말하
자면, 일반 재화의 수요와 시장가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한계혁명의 주역들이
세워놓은 한계효용이론을 그대로 화폐에 대한 수요와 화폐의 가치를 설명하
는 데에 사용한 것이다.
미제스는 본격적으로 그의 이론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화폐의 개념과 본질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의 논의의 출발점은 화폐가 본래 상품화
폐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일반 상품들 중 특별한 기능, “교환의 공통매
개물로 작용함으로써 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는”(46쪽)
기능을 가진 상품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화폐의 본질은 교환의 매개라는 기능
에서부터 오는 것이고, 화폐의 다른 기능들 - 가치저장, 지불수단 등 - 은 교
환의 매개 기능으로부터 도출되는 이차적 기능들이다.
이어서 주관적 사용가치는 어떤 종류의 측정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화폐가
가치의 척도라는 생각이 오류임을 지적한다. “오늘날 모든 상품은 화폐로 표
시될 수 있는 하나의 가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화폐는 가격지수가 된다.”
는 의미에서 가치척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용어의 남용이라는 말이다.
화폐의 개념을 명확히 하기 위해 화폐와 화폐 대용물을 구분하고, 화폐는 상
품화폐, 법정화폐, 신용화폐로 분류한다. 역사적으로 화폐분야에 대한 국가 간
섭의 목표와 의도는 단지 개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받는 금의 중량과 순도를
테스트하는 일이 필요 없도록 해 주는 데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화폐시스
템에 대한 국가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법의 권위, 그 상업적 지위, 무엇
보다도 화폐주조의 통제자이기 때문에 국가가 교환의 상업적 매개물 선택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국민들이 국가가
선택한 화폐시스템이 아닌 다른 수단들을 선택한 역사의 사례들은 ‘화폐가 법
과 국가의 창조물이 아니고’(106쪽), “상업세계에서의 사용만이 어떤 상품을 교환의 공통된 매
개물로 만들 수 있음”(120쪽)을 보여준다.
(...) “화폐의 경제적 문제에서 핵심적 요소는 화폐의
객관적 교환가치, 소위 화폐의 구매력이다. … 다만 이것이 화폐이론에서 다
른 분야에서보다 주관적 가치가 덜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주관적 추정치들은 여타 재화들의 가치평가에서와 마찬가지로 화폐의
경제적 가치평가의 기초이다” (...) 그리고는 화폐의 가치분석에 한
계효용이론을 적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어떻게 한계효용이론 위에 화폐
이론을 세웠는가를 살펴보기 전에, 무엇이 한계주의 혁명을 이끈 신고전파 주
류 경제학자들이 일찍이 그 같은 이론을 만드는 것을 가로막았는지 그 이유
를 밝혀야 한다.
이는 후일 ‘오스트리아학파 순환논법(Austrian circle)'으로 불리게 된 문제
때문이었다. 헬페리히(Helfferich)는 “한계효용이론을 화폐의 문제에 적용하는
데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185쪽). 소비재의 가치
는 그 재화의 직접사용으로부터 나오고, 소비재들의 가치의 상대평가는 시장
가격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가격결정이전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화폐
를 직접 소비를 위해 수요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직접 소비할 다른 재화
들과 언젠가 교환하기 위한 현금잔고를 유지하기 위해 수요 한다. 그리고 “화
폐는 주관적으로 그 것을 주고 획득할 수 있는 소비 가능한 재화들의 수량에
따라, 혹은 지불을 하기 위해 필요한 화폐를 획득하기 위해 주어져야 할 여타
경제재들의 수량에 따라 그 가치가 부여된다. 어떤 개인에게 화폐의 한계효용
… 은 어떤 화폐의 교환가치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후자는 전자로부
터 도출될 수 없다.”(185-6쪽) 이 같은 순환논리의 함정이 한계주의 경제학
자들을 가로막았던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미제스가 내놓은 해결책이 회귀정리(regression theorem)이
다. 그도 “화폐의 주관적 가치평가가 이미 존재하는 객관적 교환가치를 전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가 해야 할일은 “전제되어야
할 그 가치는 설명되어야 할 가치와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정리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어제의 교환가치”이지 오늘의 교환가치가 아
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는 당당히 “오늘의 교환가치의 설명에 어제의 교환
가치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고 말한다(187쪽). 이제 그의 논리를 따
라가 보자. 오늘의 화폐 구매력은 오늘의 화폐공급과 오늘의 개인들의 화폐의
한계효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화폐수요와의 상호작용으로 결정된다. 오늘 한
개인의 화폐에 대한 수요(혹은 현금 잔고)는 어제 화폐가 구매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그 사실로부터 그는 화폐가 오늘도 또 내일도 다른 재화와 서비스로 교환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늘의 개인들
의 화폐의 한계효용은 화폐의 어제의 구매력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
면 어제의 화폐의 구매력은 무엇이 결정했느냐? 물론 어제의 화폐공급과 어
제의 개인들의 화폐의 한계효용에 의해서 결정되는 화폐수요와의 상호작용으
로 결정된 것이다. 다시 한번 어제의 개인들의 화폐의 한계효용은 그 전날의
화폐구매력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 회귀가 끝없이 이어진다면, 이는
순환논리의 해결책이 아닌 또 다른 함정일 뿐이겠지만, 끝이 있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계속 과거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마침내 화폐의 객관적
교환가치 속에서 교환의 공통된 매개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 근거한 가치평가로부터
발생하는 구성요소를 더 이상 발견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 시
점에서는 화폐의 가치는 화폐로서보다는 다른 어떤 용도로 유용한 어떤 대상의 가치
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점은 이론의 수단적 개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간접교환이 시작될 순간에 실제로 등장했던 경제사의 한 현상이다.”(187-8쪽)
미제스가 마침내 이 회귀의 끝에 도착한 시점은 상품화폐, 예를 들어 금이 공
통의 교환의 매개물로 사용된 첫날이다. 그 날의 금에 대한 수요도 그 전날의
금의 구매력에 기초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전날의 금의 구매력은
더 이상 화폐로서의 기능을 평가한 부분이 들어있지 않은 오로지 상품으로서
의 금이 직접교환(barter)에서 갖은 구매력이다. 이 구매력의 결정에서 더 이
상 어제의 금의 구매력이 필요치 않다.
이제 미제스는 왜 화폐이론이 미시적 기초를 필요로 하는지를 화폐수량설에
대한 비판을 통해 보여준다. (...) “만약 우리가 화폐수량설에 대한 공정한 평가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현대적 가치이론의 조명 아래 그것을 고려해야 한
다. 현대 가치이론의 핵심은 화폐의 공급과 그에 대한 수요 양자 모두가 그
가치에 영향을 준다는 명제에 있다. 이 명제는 아마도 가격들에 있어서의 커
다란 변화들을 설명하는 충분히 훌륭한 가설이라고 할 수 있다.”(201쪽) 그래
서 그는 “화폐에 대한 수요와 그것의 화폐 스톡과의 관계가 화폐의 객관적
교환가치의 변동에 대한 설명의 출발점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런데 “만약 개
인의 관점이 아니라 공동체의 관점으로부터 화폐의 수요를 설명하려고 시도
하는 공식으로부터 출발한다면, 우리는 화폐의 스톡과 모든 경제활동의 기초
인 개인의 주관적 가치평가들의 관계를 발견하는데 실패할 것이다.”(208쪽)
(...)
2012년 10월 10일 수요일
서평: 『화폐와 신용의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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