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1: [기사 스크랩] ‘택도 없는’ 상식의 지배를 깨뜨려라, 한겨레, 2010-10-22
지은이: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등학교 교사
(...) <녹색평론>에서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의 글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가 구사하는 언어와 거기 담긴 논리가 하도 정확해서,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또한 너무나 곡진해서 감탄을 하며 읽었다. 그의 글들이 묶여 나온 조그만 문고판 책자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나는 내가 아는 누구에게나 권했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는바 핵심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이 전쟁과 파괴, 지독한 경쟁과 강제노동, 그러면서도 변화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극심한 무기력감은 하나로 엮여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는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 상식, ‘개발은 진보’라는 상식, ‘대의제 민주주의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체제’라는 상식, ‘국가는 인민을 보호해준다’는 상식, ‘경쟁하는 삶은 불가피하다’는 상식이 이 모든 고통의 배후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러미스는 이러한 상식으로 무장한 오늘날 우리의 삶을 ‘빙산을 향해 다가가는 타이타닉호’에 비유했고, 그러면서도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회피하는 우리들 자신이 거기에 정확히 투영되었다.
누구나 진보를 말하지만, 경제성장 그 자체를 문제삼지 않는 그 어떤 진보의 논리도 하나 마나 한 소리라고 나는 믿는다. 문제는 풍요의 분배가 아니라 풍요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제로성장을 환영하고, 닥쳐올 마이너스 성장 시대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는 것, 경제성장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밥을 먹여준다는 신념을 갖지 않고서는 세상의 평화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러미스는 ‘상식의 전환’을 역설한다. ‘발전’을 뜻하는 단어(development)는 1949년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연설 이후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발명되었다는 사실, 20세기 동안에 국가에 의해 살해된 2억명 중에서 1억3천만명이 자국의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과연 ‘발전’이란 인간사회에서 면면히 내려온 불변의 속성인가, 과연 국가는 인민을 보호해준다고 할 수 있는가. ‘택도 없는’ 이런 허위의 상식부터 뒤집혀져야 한다.
- 사전적으로 정상상태는 어떠한 물리적 체계를 결정하는 변수가 시간과 더불어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수학적으로 설명하면 어떠한 변수(속도, 힘, 농도 등 어느 것도 될 수 있다)에 대하여 시간에 대해 미분을 취한다면 제로가 나오는 것이다.
- 여기서 등장하는 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다. 어떠한 시스템이 안정을 유지하면서 일정한 물리적 힘을 발휘하는 상태이다. 예를 들자면 실외 온도 33도의 여름 날에 너무 더워서 실내에서 에어컨을 켰다면 실내온도는 서서히 감소한다. 시스템이 변하는 상태, 과도 상태이다. 에어컨이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충분한 차가운 공기를 실내에 불어 넣어주면 실내는 적정온도인 25도를 유지할 것이다. 이 25도가 계속 유지되는 상태가 새로운 정상상태, 시스템이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상태이다.
- 이러한 정상상태는 죽어있거나 정체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어쩌면 안정되고 편안할 수 있다. 목표 상태(우리가 원하는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의 출입이 존재하고 시스템이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는 상황이다.
- 우선, ‘줄이는 발전’ 즉 에너지 소비, 경제활동의 시간 등 가격이 붙은 것을 줄여야 하고,
- 둘째, 경제이외의 것, 즉 경제활동 이외의 인간활동, 시장이외의 행동,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컨대 ‘대항발전’은 경제용어를[로] 바꿔 말하면 교환가치가 높은 것을 줄이고 사용가치를 높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 이밖에 이 책에는 대항발전을 가로막는 여러 요인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발전 이데올로기의 탄생과정, 제로성장을 가로막는 제로성장론, 민주주의의 한계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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