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3일 월요일

자료: [배움터] 삼성의 사회·정치적 지배와 그 의미

자료: 한국노동사회연구소,〈노동사회〉2006년 10월
지은이: 송태수 (한국노동교육원)
자료 제목: [배움터] 삼성의 사회·정치적 지배와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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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기업권력이 비대해지는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선진국에서도 지나친 기업권력이 사회문제로 제기돼왔다. 2000년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국에서 기업들이 너무 많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을 워싱턴에서 매일 느낀다”고 하여 기업권력의 심각성을 확인시켜준 바 있다. 기업, 특히 거대기업(집단)의 영향력 확산에 따른 책임의 문제는 사회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기업의 지배구조 차원에서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전자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른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의가 진행 중이고, 후자와 관련하여서는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본격화한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 논의를 꼽을 수 있다. 그만큼 기업의 지배력 비대화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삼성의 지배력 확장은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목적에 기인하겠으나, 그것이 우리사회와의 관계에서 갖는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기업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단위 조직체이며, 사회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고, 기업활동은 경제적 차원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전반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동시에 이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다.

II. 삼성 신화와 삼성공화국

1. 삼성 신화

어느 기자는 ‘삼성공화국’ 현상을 “삼성이 추구하고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우리사회에서 관철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즉 삼성의 주장이 그 어느 것보다 우선시되고, 삼성의 논리가 우리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어, “삼성의 이익이 마치 사회 전체의 이익인 것처럼 여겨지고, 삼성이 하는 것이 곧 우리사회의 ‘표준’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곽정수, 2005). ‘삼성공화국’은 한국사회에서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자본권력의 형태이다. 삼성공화국은 여러 요인에 의해서 작동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삼성은 국제적 활약상을 통해서 우리 국민들로 하여금 1997~98년 외환위기 당시 잃어버린 ‘국가적 자존심’을 되찾게 해주는 유일한 기업으로, 다른 기업에 비해서 매우 특별한 인정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5월16일 청와대 기업인 간담회에서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발언한 직후, 발 빠른 정부 부처, 특히 경제부처는 삼성 벤치마킹에 나섰다. 그 후 많은 기관들의 유사한 행동이 뒤따랐다.

이런 상황적 요인들은 우리사회를 떠도는 ‘삼성 신화’ 창조의 배경요인이다. “삼성이 개입하면 성공 한다”, “삼성과 싸우면 진다”, 혹은 “삼성이 하면 최고” 등등. 이러한 신화는 우리의 행동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화는 끝없는 신화를 낳고, 신념으로 작용하며, 현실적 힘을 얻어 권력화 한다. 삼성 신화는 실제 작동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집단과 신뢰도가 가장 높은 집단은 정부도 아니고, 정치인은 더더욱 아니며, 바로 삼성이다. 그리고 대학생들에게 선호도가 가장 높은,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순위 역시 삼성이다.

신화적인 기업 삼성에 취업하고 싶은 욕구는 비단 대학졸업 취업자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금융감독원 안에 ‘진학반-취업반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한다. 즉, “내부 직원들에게는 진학반과 취업반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진학반’은 윗선과 삼성에 잘 보여 승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고, ‘취업반’은 평소 삼성에 잘 보였다가 기관을 그만 두면 삼성에 취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핵심적인 경제부처 공무원들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취업반이나 입시반 중 어디든 편입을 준비한다는 것이다(곽정수, 2005). 삼성 신화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힘을 실감케 하는 사례다.

2. 삼성공화국

삼성공화국의 가장 커다란 위험성은 역설적으로 경제적 측면에 있다. 첫째, 삼성공화국 내에서 삼성은 기업환경을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환경변화에 적응할 필요성을 자각하지 못하는 위험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기업에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을 하기 위한 긴장관계가 부재하다는 것은, 이건희의 표현을 빌면, “마누라 빼고 다 바꿔야” 하는 ‘위기경영론’과는 정반대로 자기혁신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기업의 경쟁력은 끊임없이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혁신(innovation)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인데, 삼성공화국의 조건은 스스로 혁신의 동력을 제거하는 꼴이다.

둘째, 삼성공화국은 우리 국민경제 전반의 발전 동력을 잠식한다. 삼성이 게임의 규칙(rule of game)을 지키는 플레이어(player)여야 함에도 ‘경기규칙’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다수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저해하는 ‘절대적 진입장벽’으로 작용하여(김상조, 2005) 결과적으로 한국경제의 동력을 제거하고 발전을 정체시킨다.

셋째, 삼성공화국은 삼성을 위시한 재벌기업의 특수성을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재편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중소기업의 이해보다는 대기업 중심 경제체제로의 변경을 의미한다. 즉 기업양극화를 촉진하여 결국 일자리 창출의 주역이라는 중소기업의 상대적 약체화를 결과할 것이다.

넷째, 삼성공화국이란 우리 국민경제의 궁극적 목적을 전도시킨다. 경제행위의 궁극적 목표는 국민이 잘살기 위한 것이지, 기업창궐이 아니다. 기업창궐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의 목적 실현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삼성공화국이란 국리민복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삼성기업을 위한 국민경제체제의 형성을 의미할 뿐이다.

III. 삼성의 정치적 지배

1. 삼성 로비학

우리는 2004년 말부터 1년간의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1997년 1월 제정, 이하 금산법) 개정을 둘러싸고 진행된 로비방식을 통해서 ‘삼성 로비학(lobbyism)’을 확인할 수 있다.

금산법과 관련해서 삼성의 가장 우선적인 로비 대상은 해당 정부부처 관료였다. 당사자인 삼성, 일제조사를 했던 금융감독위원회, 그리고 개정안을 만든 재정경제부 이외에는 그 누구도 삼성생명의 금산법 위반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2004년 12월, 재경부는 삼성을 위한 부칙조항을 은근슬쩍 끼워 넣었다. 그런가하면 금감위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금산법 위반 사실을 적발하고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아 기관 고유의 직무를 유기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재경부와 금감위의 삼성만을 위한 입법이나 직무유기 등의 편법행위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삼성 신화에 기반한 삼성공화국’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삼성 로비학의 일단은 이미 현실에서 완결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재경부의 삼성만을 위한 법조항 끼워 넣기는 삼성 ‘취업반’의 적극적 노력의 결과이다. 이들 취업반은 삼성을 위한 정책이나 제도 등을 도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국 삼성에 ‘취업’한다. 그러나 이러한 ‘취업반’ 로비방식이 불가하거나 이에 반발하는 인물은 현 직위에서 배제ㆍ거세된다. 대표적 인물이 앞에서 지적한 이동걸 전 금감위 부위원장이다. 그의 퇴임 후 금감위가 삼성에 대해 우호적으로 변하였다고 하는 데서 확인하듯이, 경제부처ㆍ기관에서 삼성에 반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처신원칙’이 관료조직에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관료조직 내에서 입신(立身)하기 위한 확실한 처신법이 학습되는 것이다.

삼성 로비의 다음 대상은 국회의원이다. 2005년 9월 정기국회 금산법 개정안 논의를 앞두고 국회 주변에는 ‘삼성로비 경계령’이 내려졌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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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의원회관을 떠돌고 있다. 삼성이라는 유령이 …… 17대 국회 들어 금산법 논의뿐 아니라 부당노동행위 등 삼성그룹에 대한 문제 제기가 빈번해지면서 ‘삼성맨’들의 로비가 갈수록 은밀ㆍ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일보』, 2005년 7월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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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법 개정 과정에는 청와대도 의미 있는 역할자로 등장했다. 정부안에 “삼성만을 위한 조항이 삽입된 것”과 관련하여 로비의혹을 조사하도록 한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조사를 맡은 문재인 청와대 정무수석2005년 10월4일, “금산법의 개정 경위를 파악한 결과 개정안 마련에 절차상 문제는 있으나, 정실 개입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다음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금융계열사의 주식 소유와 관련, “삼성생명이 소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계속 소유 가능하며,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은 매각 명령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분리대응론’ 입장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의 분리대응 입장 천명 후 ‘국회와 당정 논의’는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참여연대의 논평대로,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러한 입장 천명은 명백한 월권이며, 입법기관인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이고, 기관의 위상이나 역할과도 어울리지 않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민정수석실은 대통령 친인척 관리와 공직 기강을 담당하는 대통령 참모조직이다.

2. 삼성의 로비학과 구조조정본부

2006년 2월7일 삼성 구조조정본부는 소위 ‘X-파일 사건’ 이후 국외에 머물던 이건희 회장이 귀국함과 동시에 발표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의 후속조치 차원에서 3월 초 전격 ‘삼성전략기획실’로 바뀌었다. 재계에서 삼성공화국의 청와대로 불리던 구조본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 전문경영인의 능력과 함께 삼성의 뛰어난 경영실적의 3대 원동력으로 꼽힐 정도로 그 순기능을 인정받기도 한다. 구조본의 자평에 따르면, “계열사별로 따로 경영을 할 경우 훨씬 비효율적이고, 투자계획, 광고, 어떤 사건에 대한 법률적 대응 등 모든 면에서 구조본이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고, “전문경영인들이 자기 개인의 실적을 올리기 위한 유혹에 빠지기 쉬워” 발생할 수 있는 “계열사의 불법적인 경영을 감시”함으로써,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에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구조본은 대주주의 입장에서 전문경영인(agent)을 통제하기 위한 중간집단으로서, 철저한 가신집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한국 재벌집단에 고유한 조직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구조본은 삼성과 관련된 불법행위의 배후에 항상 등장하는 데서 보듯이, 두 얼굴의 야누스에 비유될 수 있다. 비자금 조성을 통한 불법 정치자금 제공,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총수 3세로의 납세 없는 대물림, 강압적 노조 결성 방해 등은 대표적 사례이다. 구조본을 거친 한 임원에 따르면, “비자금을 조성해서 정계ㆍ관계ㆍ언론계 등을 관리하는 것은 구조본의 주요 업무로, 대외협력사업”이라고 불린다. “구조본은 계열사에 지시를 하더라도 흔적이 남는 문서가 아닌 구두로만 하는데, 구조본이 계열사 감사 때 주로 보는 게 지시 흔적을 남겼는지 여부”라고 한다.

비교적 현대적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삼성에서 이러한 전근대적 가신집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한국 최고의 부자의 산실로 불릴 정도로 그 임원들에 대해 최고의 보상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의 경우 오너 외에 계열사 CEO들까지 준재벌 수준의 주식재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구조조정본부를 거친 핵심인물이다. 10대 구조본 실장을 지낸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의 보유주식총액은 1,600억원 정도이고, 이학수 구조본 부회장의 주식보유총액은 1,200억원 이상이다.

3. 탈발전국가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경제관료와 삼성 로비학의 조응

발전국가론자들은 동아시아의 발전국가들이 위기와 쇠퇴에 따라 탈발전국가로 재편되는 데 작동하는 원인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고 있다.
  • 첫째, ‘전투적 노동계급’,
  • 둘째, 국가의 보호와 지도하에 성장한 민간자본,
  • 셋째, 발전국가 내부로부터의 위협요인, 즉 발전국가 노선에 반대하여 국가개입의 축소와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경제관료의 등장이다(Evans, 1995: pp.227-233).
이 중에서 후자의 두 가지가 주목된다. 즉 ‘발전국가’를 거부하는 거대자본의 배반국가기구 내 신자유주의적 관료의 동맹이 발전국가의 위기와 해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전세력의 등장과 더불어 발전국가의 핵심적인 제도적 보루였던 국가 관료조직의 위상이 점차 하락한다는 것이다. 특히 공무원사회의 열악한 보수는 부패가능성과 초과이윤추구(rent-seeking) 세력에 의해 포획될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이는 다시 발전국가의 국가능력을 더 저하시키고 발전국가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된다. 그 결과 국가의 자율성이 상실되면서, 국가 관료기구는 부패와 압력집단에 포획된 다원주의로 전락하게 된다(Weiss & Hobson, 1995: p.173; Weiss, 1998: pp. 64-5).

한국사회에서 고위공직 진출은 매우 안정적인 경력관리 경로다. 고위공직자들은 주류집단에 편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직에 진출하였고, 이들은 주류집단에 편입되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고위공직자 집단은 사회적으로 항상 상대적 우월집단으로 인정되어왔다. 이러한 배경과 환경 등으로 고위공직자 집단은 주류적 가치에 저항해온 적이 거의 없다. 우리사회 공직자 집단은 업무의 관행상 정책적 입장이나 전문적 정책능력에 근거한 경력관리보다는 오히려 주류적 행태와 가치관에 동조하고 이를 모방함으로써 주류사회에 편입되는 방식에 익숙하다.

한국에서 발전국가의 위기와 해체에는 ‘전투적 노동계급’보다는 성장한 민간자본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관료의 동맹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Evans, 1995).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성장한 민간자본과 신자유주의적 경제관료의 동맹은 더 이상 국가의 개입적 정부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상태로 변화해 왔다(윤상우, 2002).
  • 특히 1997~98년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국가는 더 이상 개입·규제자가 아니라, ‘친시장적 → 친기업적’ 후원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도그마가 지배하는 상태다.
  • 그 속에서 경제관료들에게는 국가와 기업 사이 긴장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적 경제관료들에게 “사업 잘하는 삼성이 더 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정책”이란 결국 국가경제정책의 목적과 동일한 것이다.
탈발전국가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관료 집단의 국가와 기업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점의 변화는, 치밀하게 계획된 삼성의 로비방식과 결합하여 ‘삼성의 로비학’을 구성한다. 삼성의 로비학은 인적네트워크를 기본적인 방식으로 하며,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데, 최종적인 수단으로 ‘삼성인(Samsung's man)’으로 만드는 것을 활용하고 있다.


IV. 삼성의 사회적 지배

1. 식민화된 기업사회

삼성은 스스로가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방향이나 우리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이건희의 기업경영의 큰 목표는 삼성의 이익창출을 훨씬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된다. 이건희의 ‘사회 경영론’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사회 경영론의 핵심은 “기업이 나서서 사회를 바꾸자는 것”이다. 즉 내(삼성인 개개인)가 변하면 삼성이 변하고, 그러면 재계를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국민의식 변화에 큰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사회 경영론의 핵심이다. 즉 기업경영의 목적도 기업 차원의 관점과 동시에 사회적 관점에서도 의미부여가 분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6년 이건희 회장은 삼성경제연구소의 운영 행태에 불만을 토로할 정도였다. 불만의 핵심인즉, “연구소가 너무 삼성의 이해관계에 얽힌 문제나 경영·경제 분야에만 관심을 보인다”면서, 연구소가 거시적 시각에서 국가와 사회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이의철, 1996: p.55; 강준만, 2005: p.256 재인용).

첫째, 이러한 사회 경영론은 무엇보다도 그 실제에 있어 삼성 중심적이어서 반사회적이라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이건희의 사회 경영론은 사회의 중심에 삼성이 있으며, 그 삼성의 중심에 있는 이건희 중심적인, 그래서 독단적인 사회관이다. 우리는 “삼성에게 좋은 것은 나라에도 좋다”는 ‘신앙’에서(강준만, 2005: p.256) 이러한 점을 확인하게 된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사회적으로 많은 욕을 먹으면서도 자동차 분야 진출을 밀어붙이면서,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은 스스로 가시밭길을 선택한 것”이라며 사회 경영론적 관점에서 자신의 주관을 정당화하고 나선 바 있다.

둘째, 삼성의 사회 경영론은 기업주의적 사회관에 다름 아니다. 즉 ‘삼성인 개인의 변화 → 삼성의 변화 → 재계의 변화 → 사회의 변화’란 결국 ‘기업사회’로의 변경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삼성식 변화의 핵심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수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체제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단일의 수직적인 가치체계에 의해서 통일되고 일사분란하게 조직화되고 통제된 기업사회다. 이러한 기업사회에서 우리는 다원적 가치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며, 개인적 가치나 사회공동체적 가치들은 보존될 수 없다(Schneider, 1968). 개인은 기업, 투자자본과 기업자산이라는 수레바퀴의 하나의 톱니로 축소되고 마는 것이다.

셋째, 삼성의 사회 경영론은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부정하는 시장맹신적 신자유주의 이념의 지향에 다름 아니다. 이는 삼성의 정부-기업관계에 대한 입장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1998년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발행한 『한국기업의 이해와 과제』(신기업이론연구회 편)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의 경제운영체계는 가속화되는 세계화 현상 속에서 국가주도 자유화가 아닌, 시장주도 자유화에 맞게 변하여야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 관·민협조형 경제운영체계로부터 기업주도 경제운영체계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2. 삼성경제연구소와 삼성의 언론관리

사회적 담론구조에서의 삼성의 막강한 영향력은 삼성경제연구소(SERI)를 통한 사회적 정책의제 선점 및 담론지형의 주도와 삼성만의 독특한 언론관리 방식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대해 총괄적으로 평가하기는 매우 어렵다. 양산되는 내용의 방대성이나 다방향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 담론지배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SERI의 기획력은 정부 관료의 능력을 완전히 압도한다. SERI가 국가적 수준에서 정책의제를 선점하는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제의 독점적 선점은 우리사회의 삼성 신화를 더 공고히 하며, 담론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SERI에 의한 지식담론의 독점적 지배는 정치권력을 통하여 힘을 발휘하게 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론’은 이러한 권력화를 통하여 우리사회 다양한 층위의 현실을 폭력적으로 획일화시킨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2만 달러 담론 뒤에는 다양한 소득계층의 현실과 그 사회적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전사회적으로 획일화된 당위적 목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SERI의 권력화는 삼성의 권력화로 연결된다.

셋째, SERI의 다양한 연구주제들 속에 두드러지는 하나가 아시아적 가치와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기업지배구조 관련 연구 프로젝트이다. 1997~98년의 경제위기를 지나면서 아시아적 가치와 경제체제와의 관계에 대한 재평가 필요성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프로젝트에는 아시아적 시장경제체제에 독특한 아시아적 기업지배구조라는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즉 재벌소유구조와 관련되는 것이다.

삼성식 언론 관리는 너무나도 효과적이어서 언론은 삼성과 관련해서 이미 비판의 기능을 잃었고, 선전부대가 되어 삼성 나팔수라 호칭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요즘 기자들 가운데 “정치권력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지만, 재벌은 경우가 다르다”고 한다. “재벌 비판 기사를 쓰면서 마음 편한 기자는 적고, 특히 삼성의 압력은 집요하다”고 한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74.5%는 “삼성에 관한 기사가 축소되거나 삭제되는 것을 경험하거나 본 적이 있다”고 한다.

삼성그룹의 언론지배는 1차적으로는 광고비를 통한 것이다. 2004년도의 통계를 보면, 삼성의 TV광고비 1,665억원은 KBS, MBC, SBS 3대 방송사의 광고비 수입총액 1조 8,366억 원의 9.07%에 이르고, 삼성의 신문광고비 1,226억원은 13개 일간지(경제지 3개 포함)의 매출총액 1조 8,192억원의 6.48%를 차지하고 있다.

V. 글을 맺으며

삼성공화국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아도 우리사회의 현실적 요구와는 괴리되거나 배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조건에서 삼성공화국은 오히려 사회적 양극화를 확대시킬 뿐 아니라, 한반도에 절실한 남북 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시대적 요청에도 기여하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가장 근본적으로 삼성공화국은 우리사회에서 경제행위의 목적 실현보다는 수단을 절대시키고, 그에 따라 가치체계의 전도 현상을 초래하며 공동체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처럼 삼성의 정치적 지배의 확대는 우리사회 민주화의 심화ㆍ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삼성의 경제적 이익창출 과정에서 그 주요 수단은 자본과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한 로비이다. 삼성의 로비학은 매우 독특하며, 다른 기업들과 달리 삼성은 룰의 수용자가 아니라, 스스로 룰 메이커(rule maker)가 되려고 한다. 삼성의 로비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를 조정함으로써 사회통합을 달성하는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국가 관료집단을 심각하게 부패ㆍ오염시키는데, 이는 정치적으로 다원주의와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하는 요인이다. 삼성 로비학의 결과는 우리사회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라고 할 수 있는 기존 법과 제도의 무력화이다.

다원주의에 대한 위협과 공동체적 가치 추구에의 위협요인으로서 삼성의 절대 권력화 문제는 이른바 삼성 중심의 사회 경영론에서 확인하는 대로이다. 국가에 대한 강한 불신과 사회에의 직접적인 영향력 확대를 통한 사회 경영 의지는 결국 우리사회의 ‘식민화된 기업사회화’를 의미할 뿐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기업활동은 효율성만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1997~98년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회의 공동체적 가치와 개인 삶의 본래성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상실한 채 앞만 보고 질주하는 상황에서, 삼성 절대 권력화의 문제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본원적 가치의 회복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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