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1. ‘제3의 길’은 허구다 (정성배, 한겨레21, 1999년 8월)
자료 2. 영국 블레어 총리의 ‘제3의 길’의 종말 (추정 원작자: 정성배, 파리 사회과학대학원 명예교수), 자료 속 원출처 미상.
- 2000.6월초 독일 슈뢰더 총리 주최로 모인 이른바 개혁자 정상회의(유럽연합내 사회민주당 정부 수반 및 클린턴 미 대통령 등이 참석함)에서 제3의 길은 옹호자 부재로 결국 자연쇠퇴의 운명에 처했다. 주창자인 블레어는 상징적으로 결석했으며, 클린턴은 형식적으로 제3의 길을 지지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의 피렌체 정상회의 때만 해도 제3의 길은 주요 의제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 베를린에서는 공식성명서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번 정상회의의 주제가 제3의 길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국가복권론이었기 때문이다. (...) 제3의 길에 대한 비판에서 우선 문제된 것은 그의 주요 산파역을 한 블레어와 앤서니 기든스의 지성적, 정치적 성실성의 부족 문제였다. 제3의 길은 분명히 우파사상인데도 굳이 중도좌파인 사회민주주의의 탈을 쓰는 것은 선거민 기만행위라는 것이었다. (...)
- (...) 기든스는 전통적 사민주의적 복지방식인 부의 재분배보다는 일자리 창출을 포함하는 적극적 노동정책이 국민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고기를 나눠주는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복지정책을 사후관리에서 사전예방의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현재 복지정책에서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 후에 실업수당을 받고, 병이 나면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받는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자들이 직업능력 훈련을 통해서 시장에서 더 잘 고용될 수 있도록 하고 병이 나기 전 질병을 예방하는 것 아닌가. 빈곤한 이들을 돕기 이전에 노동자들이 일을 해서 소득을 올려 빈곤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 블레어는 1994년 이후 4년에 걸친 끈질긴 시도를 통해 노동당 당헌 4조인 국유화 항목을 삭제했다. 또한 노동당의 의사결정에서 노동조합의 의견이 무조건 3분의 1을 차지하도록 설계된 ‘블록 투표제’를 폐기했다.
인구학적으로, 그리고 산업구조 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영국의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 비중이 크게 떨어져 육체 노동자의 규모 자체가 줄어든 데다 노조 가입률도 엄청나게 하락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 처지에서도 중산층의 지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심지어 당의 깃발도 적기에서 붉은 장미로 바꿨다. 이런 과정 속에서 노동당은 계급정당에서 국민정당으로 이행한 것이다. - 16년에 걸친 대처 집권기에 영국 산업구조에서 제조업이 거의 소멸되었다.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대로 떨어졌는데 노동자의 수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그 대신 성장한 것이 바로 방송·음반·광고·금융·보험 등의 서비스 산업이었다. ‘노동’보다는 ‘지식’이 생산하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들이다. 그래서 블레어 역시 예전의 노사 간 타협(코포라티즘)을 다시 살려내려고 시도하기보다 ‘지식’의 생산요소적 성격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른바 지식기반 경제다.
- 블레어는 복지의 개념을 혁신했다. 국가가 개인의 각종 위험(리스크)을 일일이 챙기는 과거의 복지 개념 대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복지를 제안했다. [한국에서는 '사회투자국가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국 노동당은 이를 ‘적극적 복지’라고 한다. 이 개념에 따르면, 국가의 역할은 개인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의 ‘교육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미취학 아동에게 조기 교육을 실시하고 아동보육에 대규모 투자지원을 한다. 아동발달지원계좌(저소득층 아동이 개설한 계좌에 가정과 국가가 같은 금액을 장기 적립해서 이 아동이 성장한 뒤 학자금·창업자금 등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도 있다. 실업자에게 실업수당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과 재훈련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재훈련 프로그램에 불응하는 실업급여 대상자는 급여를 받을 수 없다.
- [아동/청소년 및 실업자에게─국가의 비용부담으로─양질의 교육 및 직업훈련을 적극 제공하는 것 즉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의 특징으로, 영국 노동당/미국민주당의 사고 속에는 전통적으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에 대한 관심이 약했고 실업자에게 실업수당만을 제공하고자 했다. 공기업 민영화로 떼돈을 번 기업으로부터 ‘횡재세’를 징수해 청년실업자 교육 프로그램에 투자한 사례도 있다. 다른 한편 장기 결석아동의 부모에 대해서는 자녀수당의 지급을 중단한다. 노동을 기피하며 복지혜택만 누리는 모럴 해저드를 차단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 영국의 안소니 기든스(블레어/슈뢰더 정부)와 미국의 로버트 라이시(클린턴 정부) 같은 '제3의 길' 이론가들은 케인즈형 유효수요(가령 실업수당) 정책에만 매달려온 전통 영국노동당(독일사민당, 미국민주당) 사상의 '약점'을 비판하면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제3의 길'의 핵심 요소로 부각시키고 케인즈형 복지국가(소득재분배 및 부유층 과세) 개념은 '부차화'시키고자 했다.(한국의 '사회투자국가론'도 이와 동일). 이에 반해 북유럽 사회민주주의는 '교육및 직업훈련'(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케인즈형 복지수요/소득재분배 정책(적극적 소비시장 정책)을 2개의 핵심요소로서 동시에 추구한다.
- 우리나라의 경우 기든스/라이시 류의 사상이─'지식기반경제론', '기술혁신론, 벤처기업론, 주식시장/금융자본 활용론 등과 결합되어─지난 10년간 진보/좌파 지식인들자들 사이에 유행하였고 지금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보적 담론으로서의 복지국가 사상 즉 적극적 복지수요 창출(케인즈형의 유효수요 창출) 및 소득재분배(부유층 과세) 정책에 관한 사상적 관심과 대중적 토론이 매우 '더디게' 발전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 지난 10년 동안 노동당 정부는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한편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증가시켰다. 그래서 실제로 아동빈곤율과 청년실업률이 상당히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세금 징수를 늘리지 않으면서 복지재원을 올리기는 매우 힘들었다. 너무 찔끔찔끔 올려서 충분한 개혁이 불가능했던 것 같다. 더욱이 누진세율이 낮은 데다 금융소득 관련 세율까지 낮게 유지하는 바람에 최상층 소득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커졌다.
자료 5. 유럽시민들, '제3의 길' 사형선고하다! (주섭일, 전중앙일보 파리특파원, 2009년 06월)
- “아마도 1990년대 아시아의 금융위기 이후 문제가 사라진 것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들이 더 강력한 시장의 감독을 실시했어야 했다.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는 과거의 이야기다. 중도좌파 사람들은 과거에 시장이 효율적이고, 저절로 자율규제를 할 수 있다는 낡은 사고방식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10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는 것이다. 오직 중도좌파정부만이 지구온난화, 경제위기, 빈곤문제 등 세계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든 브라운 영 총리)
- 유럽의회선거는 그래서 영국의 신노동당이 전파한 ‘제3의 길’을 심판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유럽 중도좌파의 패배는 실제로 ‘제3의 길’에 포섭된 독일 사민당, 벨기에 사회당, 네덜란드 사민당에 집중되었으며, 원조인 영국 노동당은 보수당과 영국독립당에 이어 제3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집권노동당이 유럽연합에서 탈퇴를 주장하는, 보수당에서 분리독립한 극우파 영국독립당에게 패배한 것은 유권자들이 ‘제3의 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블레어가 1990년대에 새로운 길을 설계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신자유주의 경제경험과 타협했을 뿐이다. 블레어는 진정한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는 당시 좌파의 정치적 문화적 지성적 하자를 카버해 보려고 했을 뿐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마씨모 카씨아리의 진단이다.
- (...) 왜냐하면 진정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대선에서 보았듯 ‘더 많이 일해서 더 많이 돈 벌자’는 드골파 사르코지 대통령의 구호를 믿지 않으면서도 만일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것이 득표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 이것이 최대의 난제다”
- 독일사민당은 21세기 초 블레어의 권유로 “제3의 길”을 받아드려 “혁신중도”를 표방했다. 그 배경에는 중도좌파의 이러한 한계를 잘 인식했기 때문이다. 슈뢰더 당시 총리가 오스카 라퐁텐 사민당수 겸 재무장관을 급진사회주의자로 낙인찍어 제명하면서 “제3의 길”을 선택한 것도 {사회복지국가 실현이라는 현실에서 다른 길이 없기 때문─무슨 말일까?}으로 관측된다. 독일사민당은 프랑스사회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3의 길”을 선택해 친기업적이며 사회복지를 붕괴시키는 2010프로그램을 집행했다. 이것은 중도우파 기민당 정책과 잘 적응해 메르켈총리와 대연정을 가능하게 했다. 바로 유럽선거에서 사민당의 패배원인이 여기에 있다. 베를린자유대학교 닐스 명예교수는 설명한다.
- “독일사민당의 근본적 과오는 2005년 기민당과 안젤라 메르켈과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한 사실에 있다. 사민당은 슈뢰더가 마련한 아젠다 2010의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 중도우파와 공동정부가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 오늘날 사민당은 2010 프로젝트와 될 수 있는 [데로][대로] 거리를 두려고 안간힘을 쓴다. 전통적 중도좌파 유권자들이 이 프로젝트는 사회민주주의와 불일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선거에서 많은 사민당유권자들은 집에서 소일하면서 투표하지 않았다”
- 그러면 블레어의 “제3의 길”을 거부한 프랑스사회당은 왜 패배했는가? ‘제3의 길’이 서구좌파의 주류로 행세할 때 조스팽 총리의 프랑스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이 때문에 고립되었다. 그는 경제에는 자유주의를 일부 수용해 민영화를 했으나, 사회만은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면서 복지사회를 고수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대선에서 패매해 드골파의 우파시대를 열어 주었다. 드골주의자인 사르코지 대통령이 중도좌파의 대안을 채택해 집행했기 때문에 중도우파는 승리할 수 있었다. (...) 우파지도자들의 실용주의 정치가 프랑스 등 중도우파 승리요인이라는 말이다.
- 사르코지는 쿠슈네르 외무장관 등 5명의 사회당 인재들을 각료로 기용했고, 사회당 대선 후보 스트로스 칸을 IMF총재로 발탁했고, 사회주의 석학 자크 아탈리를 경제발전위원장으로 임명하는가 하면 미테랑 전대통령의 문화부장관 자크 랑을 쿠바 특사로 파견했으며, 최근에는 칸 IMF총재를 총리로 기용하려고 했다. 프랑스 중도우파정부는 말이 우파이지 사실상 좌파와 공동정부와 다름이 없다. 그러니 사르코지가 국가개입 등 사회민주주의의 정책을 거침없이 빌려 쓰면서 G20정상회담에서 시장의 규제, 감시, 관리를 핵심으로 한 경제위기 극복대책을 발의해 채택하게 했다. “만일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실용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무슨 말일까?}, 사회민주주의는 유럽과 프랑스의 정치지평선에서 오랫동안 사라질 것이다” 파리정치대학 피투씨 교수의 경고이다.
자료 6. ‘뉴 민주당 플랜’:‘제3의 길’은 대자본의 요구에 알아서 기겠다는 선언일 뿐 (레프트21, 2009년 03월)
- 민주당이 ‘뉴 민주당 플랜’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그 골자는 ‘분배’ 대신 ‘성장’을, 중산층ㆍ서민뿐 아니라 부유층과 특권층까지 끌어안는 것이다. ‘뉴 민주당 비전위원회’ 위원장 김효석은 “분배에만 관심이 많은 것처럼 돼 있는 이미지를 바꾸고 성장을 앞에 내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효석의 말마따나 민주당에게 분배 정책은 “이미지”였을 뿐이다. 단적인 예로, 민주당 집권 10년 동안 빈부격차는 오히려 증대했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7년 고용전망 보고서’를 보면, 1995년부터 10년 동안 한국은 헝가리와 폴란드에 이어 소득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졌다. 또, OECD의 2007년 ‘한국경제 보고서’는 1990년대 중반 9퍼센트였던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이 2000년대 들어 급속하게 높아져 OECD 평균치(10퍼센트대 초반)를 훨씬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 ‘뉴 민주당 플랜’은 이미지일 뿐이었던 분배 간판을 이참에 떼고 “모두를 위한 번영”, 즉 “부자를 적대시하지 않는, 대기업을 적대시하지 않는 방향”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김효석은 이를 두고 “과거 우리 당[민주당]의 이미지와 다르고 한나라당과도 차별화되는 제3의 길”이라고 했다.
- 원래 ‘제3의 길’은 미국의 클린턴 정부, 영국의 토니 블레어(노동당) 정부,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사회민주당) 정부 등이 주창했고, 한때 유럽과 세계 차원에서 중도 좌파의 핵심 의제였다.
- 한국에서는 김대중 정부가 ‘생산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제3의 길’을 추진한 바 있고, 노무현은 ‘좌파 신자유주의’를 자처하며 한미FTA 추진을 정당화했다.(독일 슈뢰더 정부에 큰 영향을 미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제3의 길’을 ‘신자유주의적 좌파’라고 불렀다.) 토니 블레어의 정치적 ‘스승’인 앤서니 기든스―기든스는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을 만난 바 있다―의 설명에 따르면, ‘제3의 길’은 “구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와 신자유주의 둘 다를 뛰어넘는 것이다. ‘뉴 민주당 비전위원회’에 참여한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제3의 길’이란 결국 서구의 구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동시적 극복”이라고 말했다.
- 그러나 ‘제3의 길’을 따른 정부들이 모두 예외 없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구사했다는 사실은, ‘제3의 길’이 실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외피였음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제3의 길’은 “모두를 위한 번영”이 아니라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에 복무했다. 클린턴은 재정적자 축소, 자유무역 등을 요구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월스트리트의 압력에 굴복해 건강보험ㆍ복지 개혁을 팽개쳤고, 블레어는 보수당 정부보다 더 많은 민영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사회 복지가 최대 속죄양이 됐다. ‘제3의 길’식 복지 ‘개혁’(이른바 ‘적극적 복지’, ‘일하는 복지’) 때문에, 1990년대 경제 호황으로 당시에는 그 잔혹성이 상대적으로 덜 표면화됐지만, 지금 미국과 영국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레이건과 대처 시절보다 더 혹독한 시장의 잔혹함에 시달리고 있다.
- 민주당은 ‘제3의 길’이 “진보와 보수의 낡은 이분법”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강남 때리기’, ‘부자 때리기’ 정당” 이미지를 걷어내겠다는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제3의 길’은 결국 집권을 위해 대자본의 요구에 알아서 기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3의 길’은 분배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 또, 민주당이 새삼 강조하는 “성장”은 자본 축적의 다른 말이고, 자본 축적은 다른 한편에서 빈곤의 축적을 낳는다. 이런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의 “성장 만능주의”를 진지하게 거부할 것이라고 기대할 근거는 조금치도 없다.
자료 7. [서평] 제3의 길과 신노동당, 오독과 베끼기를 넘어 (늘 새로운 물결, 2008년 4월)
-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기든스 저, 김연각 역, 인간사랑, 2007.
- 발췌:
(...) 이런 의미는 나에게 한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은 않다. 최근에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부쩍 영국식 제3의 길에 대한 관심이 늘은 것도 사실이다. 새롭게 헤쳐모인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는 직접 영국 사례를 거론하며 제3의 길과 같은 ‘새로운 진보’를 지향한다고 선언해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노무현 정부도 말기에도 제3의 길의 한 식구 격인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었다. 노무현 정부의 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의원은 이 개념을 가지고 ‘대한민국 개조론’이라는 책도 펴냈다.
(...) 유시민 전 장관의 경우도 책에서 무슨 언변을 펼쳤던 간에 의료보호나 국민연금 등 그가 장관 시절 정책은 당면했던 복지 쟁점들에 대한 그의 대책이란 그 혜택을 줄이거나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보면 수사적인 유사점 때문에 자주 동종으로 취급받는 대처리즘에서의 복지와 사회투자국가에서의 복지 개념을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3의 길이 글자 그대로 사회민주주의도 ‘아니고’ 대처가 표방한 신자유주의도 아닌 ‘제 3의’무엇인 것도 아니다. 신노동당은 전후 복지국가를 이룩한 노동당 정부의 사회민주주의의 정신을 부정하지 않고, 부정한 적도 없다. 오히려 핵심은 그 정신을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맞춰 어떻게 실현시킬 것이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신노동당이 극복하고자 하는 구노동당(Old Labour)은 구체적으로 따지면 전후 복지국가를 이룩한 애틀리(Attlee) 정부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그래서 대처에게 정부를 뺏긴 6~70년대의 윌슨(Wilson) 정부와 카라한(Callaghan) 정부이다.
영국식 제3의 길을 마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쯤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표방하는 이른바 ‘개혁세력’이나, 옛 노동당이 추구했던 사회 정의에 대한 배신쯤으로 취급하는 ‘진보’쪽의 해묵은 비판 역시 이 점을 흔히 소홀히 하고 있다. 이 책에도 1장에 서술했지만 지난 신노동당 10년 집권의 성과는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경제는 영국 현대사 사상 최장 안정 성장을 이뤘으면서 대처시절 상당부분 손상되었던 무상의료 등 공공 정책을 복원시켰을 뿐 아니라 대기기간 등 고질적 문제들 까지도 상당 수준으로 해결 해온 것이 사실이다. 아동 70만 명을 포함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빈곤에서 탈출 시킨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이다.
기든스의 이 책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위치하고 있다. 즉 10년간의 신노동당의 성과와 한계를 들여다보면서 10년 전과는 또 다른 변화된 상황과 새로운 쟁점들에 대하여 새로운 혁신의 방향과 구체적 정책 대안들을 새로운 총리가 되는 (그래서 현재 영국 총리인) 또 다른 신노동당의 대표주자인 고든 브라운에게 보내는 고언 형식의 책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기든스가 시의성 있게 가볍게 쓴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 담긴 고민과 논의 깊이는 상당한 무게로 다가온다.
하지만 또 그런 면이 이 책의 약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초점은 철저하게 영국적 상황, 그리고 책이 출판된 그 시점에 매우 충실하게 맞추어져 있다. 다시 말하면 영국 정치 상황과 정책적 쟁점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해할 경우 오독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게다가 이런 이 책의 약점은 번역을 통해 더욱 두각 되기도 한다. 몇몇 구절과 개념들에 대한 오역은 영국 정책에 대한 역자의 이해부족을 드러내기도 한다.
가장 치명적인 번역 상 문제는 영국의 무상의료서비스 체계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건강보험’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NHS는 일반 조세를 기반으로 무상의료제도로 일반의원과 병원뿐 아니라 각종 보건 정책 기구들을 모두 포괄하는 체계이다. 따라서 공적 재원 수단으로 주로 한정되어있으며 보험료 납입에 의해 수급자격이 주어지는 사회보험방식인 우리나라 건강보험과는 개념부터가 전혀 다르다.
또 보건의료 부분에 대한 구절에서 종종 등장하는 재단 병원(foundation hospital 또는 foundation trust)은 NHS에 속한 병원 중 평가가 우수한 병원을 중심으로 그 운영기구(trust)에 사설 병원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율권과 독립적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에 의해 운영되는 NHS에 시장적 요소를 도입하는 대표적 정책으로 노동당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 없이 번역이 되다보니 이런 시장적 성격을 고든 브라운이 약화시켰다(water down)는 말이 ‘예산을 삭감했다’고 전혀 엉뚱하게 바뀌어버린 경우도 있다. 교통정책(transport policy)이라고 하면 무난했을 법한 단어를 ‘수송정책’으로 번역한 것도 대중적 공공서비스로서의 원래 의미가 아닌 무슨 물류정책쯤으로 오해하게 만든다.
그러나 역자의 영국 정책 쟁점에 대한 이해 부족은 정치학 전공자라는 점에서 양해는 조금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와 영국 간 ‘정치’개념 차이를 보여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즉, 이 책 자체는 새로운 수상에게 어떻게 성공적 정치를 해서 노동당이 또 집권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를 조언한 매우 ‘정치적’인 책이지만 내용은 정책적 논의로 빼곡히 차 있다. 이는 기든스가 일부러 정책 정치를 유도하기 위해 그렇게 내용을 채운 게 아니라 이미 영국 정치에서는 정책에서 정치적 승부가 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의회민주주의 산실인 영국 정치가 보여주는 이러한 역동성은 우리 정치에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이 책이 주는 최대의 미덕은 그 역동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적 고민과 제안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의 고민은 물론 비단 영국적 현실에 국한하지 않은, 진보의 혁신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 대안을 고민하는 한국 독자가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공공(public)'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기하고, 보증국가(ensuring state, 본 책에는 ‘확신을 주는 국가’로 번역)의 개념을 제시하는 ‘4장 공공 서비스: 사람을 맨 앞에 두기’와 적극적 복지(Positive Welfare)의 개념을 보여주는 ‘6장 생활양식 바꾸기: 새로운 의제’가 아닌가 싶다.
대처정부는 공공서비스를 대대적으로 민영화 시키거나 시장적 경쟁 요소를 도입한 것은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지만 일정부분은 그동안 무시되었던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국가 독점 복지 모델의 문제점을 집은 것이기도 했다. 즉 그 당시 공공 서비스들은 대단히 관료화되었던 것이 사실이며 시민들의 요구는 종종 무시당하거나 이유 없이 주구장창 기다려야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이에 복지 감축으로 공공 서비스는 줄었어도 서비스 공급과정에 있어 국가의 독점적 지위를 깨뜨림으로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만족도는 높아진 사례들이 있다.
기든스는 이런 점에서 공공영역을 확대하되 공공은 곧 국가(state)라는 편협한 규정을 사고는 벗어나서 무엇이 진정 ‘공공성’인가에 대한 재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이에 맞물린 보증국가라는 개념에서 국가는 공공 서비스 공급에 있어 더 이상 독점적 주체는 아니지만,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방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는 진정 효과적이고 질 높은 공공서비스를 ‘보증하는’책임을 져야하며 그 책임이 구체적인 정책적 수단으로 실현되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적극적 복지 역시 시장 기능 실패에 따른 사후적 개입에서 벗어나 일상적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자존감을 증진시키는 복지가 되어야함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얼핏 보면 개인 책임과 선택권을 강조하는 복지 축소논리와 닮은 듯하다. 하지만 기든스가 제시하는 적극적 복지 개념은 개인의 책임 뿐 아니라 그 책임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적합한 지원에 대한 국가의 책임까지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장애인의 경우 가능한 사회에 참여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국가는 장애인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독립성을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서비스를 제공하여 자율성을 꺾는 방식을 벗어나 한 개인에게 동원되는 공공 재원 통합해 개인 통장처럼 따로 계좌를 만들어 개인이 스스로 독립적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설계할 수 있게 하는 개인 예산제(Individual budget)같은 정책이 적극적 복지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
8. 제3의 길과 지식기반경제 (김호균 지음, 백의 펴냄, 2001년 3월): 자료 속 PDF(5쪽~33쪽)
※ 기타:
1. 영국이 찾은 제3의 길: 사회적 기업 (한겨레, 2004년 1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