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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한석원
- 그 하나는 전쟁이 가져온 경제적 피폐였다. 생사를 건 제국주의 전쟁으로 서유럽 경제는 황폐화되어 있었다.
- 다른 하나는 노동자 계급의 봉기였다. 냉전이 시작될 때까지 서유럽은 혁명의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 영국에 맑스주의를 전파하는 데 앞장 섰던 존 스트래취는 실업과 공황이 과거의 것이라고 했으며,
- 앤서니 크로스랜드는 계급투쟁이 과거의 것이라고 했다.
- 갈등의 여지가 없는 결속력에 초점을 맞춘 탈코트 파슨스의 아카데믹한 사회분석 모델이 급진적 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으며,
- 훗날 ‘포스트모던’ 담론의 화두를 차지하게 될 다니엘 벨의 탈산업사회론도 이 시기에 정초되었다.
- 마르쿠제에게 선진국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혁명적이지 않았으며,
- 폴 바란과 폴 스위지는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에 위협적인 것은 제3세계의 문제일 뿐이라고 하였다. 라이트 밀은 변화의 가능한 주체는 노동자가 아닌 학생과 지식인이라고 하였으며,
- 앙드레 고르는 가까운 장래에 노동대중을 혁명적 대중파업으로 몰아넣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Harman, 1988a: 1~12)
- ‘현실 사회주의’는 여전히 맑스주의의 것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따라서 먼저 맑스주의 계급정치학과 전혀 닮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 있었다. 대안이 문제였다. 맑스주의 계급정치학의 끝자락마저 버려야 할 마당에, 누구를 득표기반으로 삼는다고 말해야 재집권할 수 있을 것인가.
- 1968년에 반스탈린주의적 맑스주의자로 활약했던 ‘68세대’인 리오따르는 장 들뢰즈, 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등과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을 포스트 구조주의 철학으로 전유해내는 한편,
- 다니엘 벨이 개진한 ‘탈산업사회론’을 끌어 들이면서 ‘포스트모던’을 주창한 바 있었다.
- 프레드릭 제임슨은 “탈산업주의라고 잘못 불리우고 있는, 차라리 다국적 자본주의라고 보는 것이 나은, 새롭게 탈중심화된 전지구적 그물망”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과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작업과의 관계가 완전히 은폐된”, 그리하여 “절대적 종류의 역사적 단절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 스코트 래쉬와 존 어리는 “현재 서구 사회는 조직화된 자본주의에서 탈조직화된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더욱 더 파편화, 다원화된” 문화생활로 특징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 그리고 영국의 신수정주의자들은 프랑스 조절학파의 논의를 빌어, “포스트포드주의라고 불리우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변종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생산이 아닌 소비에 의해 주도되는 “새로운 시대로의 이행”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캘리니코스, 1994: 183~213)
- 첫째, 세계화와 국가의 역할 변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 둘째, 맑스주의와 같은 ‘초담론(metadiscourse)’이 통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이야기였다.
- 셋째, 노동자 계급의 쇠퇴 및 맑스주의적 계급 구분의 부정합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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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계급타협주의’도 없었고, 넘어야 할 ‘좌파’도 없는 남한사회에서 ‘제3의 길’이 유행되는 것은 삼류 코메디만도 못한 일이다. ‘제3의 길’의 남한사회적 적용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가령, 고질적인 좌우 이념대립, 지역 대결의 유습, 노사간의 갈등과 반목, 세대나 남녀간의 불신 등을 극복하는데 ‘제3의 길’이 풍부한 상상력을 제고해 줄 것이라고 말한다. 한상진․박찬욱(1998). pp. 19~22 그러나 그 전제로 논의되는 산업평화는 요원하며, 그들이 말하는 제3부문의 전문가와 시민집단의 리더쉽이 정치권력의 유혹 앞에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 오늘날 남한사회의 현실이다. 생각건대, ‘제3의 길’이 남한사회에서 유행되고 정치권력자들에게조차 운위되는 것은 그것이 간직하고 있는 ‘긍정적’ 요소들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제3의 길’의 ‘적극적 복지’ 개념이 ‘생산적 복지’ 개념으로 채용되어, 노동자 계급을 공격하는 구실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나무는 언제나 푸르다. 이데올로기의 소멸을 주장하는 것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와 우파의 명확한 경계가 사라졌다는 ‘포스트모던’의 시대에도 기든스는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자본주의를 대신할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남은 논쟁은 얼마만큼,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규제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기든스, 1998: 85~86) 기든스의 ‘제3의 길’ 프로그램은 바로 이러한 목적에 헌신한다. (...)
기든스는 다른 책에서 이렇게 쓰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서 평등성의 증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성공적인 아시아 국가들은 평등성을 창출하기 위해 서구식 복지국가 기제에 의존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빈곤층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다.”(기든스, 1997: 105) 기든스가 주목한 아시아 국가들에는 남한도 포함되어 있었다. (...)
그러나 기든스의 세계적 민주주의론은 민족국가와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간과하는 데서 비롯된 공상일 뿐이다. 민족국가와 민족국가들간의 체계는 자본주의의 산물이었다. 기든스가 말한 분명한 ‘국경’은 자본주의의 맹아들의 형성 및 발전 과정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었으며, 중세의 교권에 대한 근대의 속권의 투쟁, 그리고 뒤이은 속권들간의 전쟁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성장하였다. 요컨대, 민족국가와 자본주의는 심장을 같이 하는 샴 쌍둥이로 태어나 성장해왔으며, 어느 한 쪽의 죽음이 다른 한 쪽의 죽음도 부를 운명 공동체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온존하는 한, 국가가 다시 국경보다는 변경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든스의 지적은 올바르지 않다. 민족국가들간의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 또한 상존한다. 기든스가 발견한 세계화로 긴밀해진 민족들간의 유대는 자본주의적 이해관계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다. 실제로, 현실은 ‘저명한’ 사회학자인 기든스에게 신국제주의, 즉 인권으로 위장한 새로운 제국주의의 상처를 안겨주고 있다. (...)
‘제3의 길’은 중도좌파 정당들의 변명의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옹색할 뿐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아무런 대안적 전망도 갖고 있지 않으며”(노대명, 1999: 271), 다만 생활의 정치학으로부터의 실마리로 후퇴한다. (...) 이제 서유럽 중도좌파 정당들에게 좌파와 닮은 것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위해 맑스주의 계급정치학의 끝자락마저 벗어 던졌다. 그들은 우파들과 더불어 자본주의를 지켜내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진정한 좌파에게 더할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서유럽 중도좌파 정당은 더 이상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열기를 달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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