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 28일 화요일

시장의 탄생(시장과 국가 관련 인용)



제약업계는 마켓플레이스의 법칙에 반응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제약업체들이 시장의 법칙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제약업계는 시장의 법칙을 능동적으로 바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시장 설계에 관한 한 스스로에게 발언권이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 자본에서 제약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미국 정부에 막강한 로비력까지 행사한다. (...)

제약업계의 막대한 로비 비용은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엿볼 수 있는 얽히고설킨 관계를 대변한다. 제약 시장이 진정한 자유시장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국가가 없다면 지적재산권도 존재할 수 없다. 지적재산권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데 복잡한 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존 마켓플레이스를 유지하는 데 정부는 필수적이다. 제약 마켓플레이스 개선 시도에서도 정부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제약업계에 혁신을 도입할 때 시장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자유방임주의의 논거일 수는 없다. 시장은 필수불가결한 해결책의 일부다. 유일한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정부는 두 방식으로 시장에 연루된다. 자금 공급 및 시장 설계가 바로 그것이다.

... John McMillan, 『시장의 탄생』,
3장 “돈 없는 자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정말 신물 난다”
62~63쪽


  • 갖가지 사회 관계를 걷어내고 남은 추상적인 시장 개념에 갇혀서 보면 시장은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도 필요 없는 것 같고, 경제 외적인 문화적 요소도 시장에는 불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추상적인 시장이란 것이 국가의 개입과 통제 없이는 단 한 번도 '시장 답게'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을 상기시키는 구절로 해석할 수 있다.

  • 밑줄 그은 부분은 용어와 개념을 다시 검토해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제약업계는 시장의 법칙에 반응하지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은 아니다. 제약업계는 시장의 법칙을 능동적으로 바꿔 나아가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또한 시장 설계에 대해서 자신에게 발언권이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 자본에서 제약업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다. 미국 정부에 막강한 로비력까지 행사한다...

    제약업계의 막대한 로비 비용을 보면 국가와 시장이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제약 시장이 진정한 자유시장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지적재산권은 국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지적재산권을 규정하고 강제하는 데 복잡한 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존 시장을 유지하는 데 정부는 필수적인 존재다. 제약 시장을 개선하려는 시도에서도 정부는 꼭 필요한 존재다. 제약업계에 혁신을 도입하려면 시장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 말이 자유방임주의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시장은 필수불가결한 해결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는 두 가지 방식으로 시장과 관계를 맺는다. 자금 공급과 시장 설계가 바로 그것이다.

질병 발생과 확산을 예방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행위도 권장하며 재앙까지 처리하는 공중보건이야말로 경제학계에서 말하는 이른바 ‘공익’이다. 공중보건은 다른 공익과 달리 공급을 시장에만 맡길 수 없다. (...)

과학에 대한 기초 지식도 공익이다. 기초 지식 발견자에게 그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함께 귀속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시장은 과학에 대한 기초 연구를 거의 이끌어내지 못한다. 각국 정부가 과학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00년 미국 정부가 국립보건연구원(NIH) 등 연방 기관들을 통해 보건 연구에 쏟아 부은 돈만 180억 달러다. 대학, 재단, 자선단체도 1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미 제약업계의 225억 달러보다 많은 규모다. 제약업체들이 새로 취득하는 주요 특허 대부분은 정부가 지원한 연구에서 비롯된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에 따르면 생의학 관련 특허에서 순수하게 업계로부터 비롯된 것은 겨우 17퍼센트다. 항레트로바이러스 에이즈 치료제의 효험을 입증한 연구 중 상당수가 NIH 등 공공 기관에서 진행된 것들이다. (주14) 제약 연구의 생산성은 공공 기금에 달려 있는 셈이다.

... 같은 책, 같은 장, 63~64쪽.


일부 개발도상국는 의약품 시장을 일방적으로 재설계했다. 지적재산권 관련법을 나름대로 정한 것이다.

인도는 식품과 의약품의 특허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제조업체는 미국이나 유럽의 특허 의약품을 복제해 팔 수 있었다. 이런 카피 의약품은 제조 비용만 감당하면 되는 데다 특허권 보호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값을 낮출 수 있었다. 2000년 인도 제약업계는 특허권이 인정되는 선진국들과 달리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할 수 있었다. 항균제 플루코나졸이 독점과 경쟁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플루코나졸은 인도에서 특허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결과 몇몇 업체가 플루코나졸을 판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특허가 인정돼 한 업체만 팔 수 있었다. 인도에서는 한 정당 가격이 25센트, 미국에서는 10달러였다.(주17)

브라질의 경우 특허권과 무관하게 제조된 항레트로바이러스성 에이즈 치료제 덕에 많은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었다. 특허 아래 가격이 결정됐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997년 브라질 정부는 자국 제약업체들에 라이선스도 받지 않은 특허 에이즈 치료제 복제품 생산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브라질 정부는 카피 의약품을 구입해 환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브라질에서 항레트로바이러스성 에이즈 치료제 칵테일 가격은 미국보다 4분의 3이나 저렴하다. 가격이 6분의 1에 불과한 것도 있다. 그 덕에 브라질은 에이즈 사망자가 대폭 줄면서 개도국 가운데 희귀한 성공 사례로 주목받게 됐다. 당시 브라질의 페르난두 엔리케 카로도수 대통령은 이를 “정치적, 도덕적 문제”로 규정한 뒤 “시장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주18)

199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강제 라이선스로 필수 의약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특허권 전유로 복제 의약품을 제조 혹은 수입하고 특허권 소유자에게 로열티만 지급하는 방식이다. 제약업체가 라이선스 비용을 줄이자는 게 목적이다. 그럴 경우 가격을 50-90퍼센트 낮춰 널리 보급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에서다. 남아공에 이어 태국도 의약품 특허권 우회 법안을 통과시켰다.

개도국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특허권과 무관하게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강제 라이선스는 공중보건 문제에 긴급 사태가 발생할 경우 용인될 수 있다. 미국 정부도 반독점 차원에서 특허권 강제 라이선스를 공포한다. 독점 종식이라는 이름 아래 기술 공유를 명령하는 것이다.

다국적 제약업체의 생각은 개도국들과 다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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