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일 토요일

부록 4. 언제 일어날지 모를 인수합병 이야기



어느 날 어떤 영상이 떠올랐다. 공상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악몽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작지만 기술 수준이 높은 회사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 작은 회사의 주가매출액비율(PSR)이 경이로울 정도로 높은 것이다. 주가가 매출액의 10 배 수준에서 거래된다. 그런 기업은 아마도 컨버전트 테크놀로지Convergent Technology일 것이다. 또 디지털 스위치Digital Switch나 인티컴Intecom도 그런 기업일 것이다. 이런 회사들의 본사에는 성공하려고 안달하는 최고경영자가 앉아있다.

이름하여 “미스터 빅Mr. Big.” 그는 착실하게 그의 길을 밟아왔다. 여러 해 동안 공부해서 경영대학과 공과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다음에는 “첨단유령회사Integrated Bogus Makers(IBM)”에서 악착 같이 일하며 높은 지위까지 승진했다. 또 제국과도 같은 그 회사가 펼치는 세계무대에서 온갖 일들을 경험했다. 마침내 그는 자기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온갖 첨단 이미지를 합성해서 회사 이름을 “디지콤 콘스위치트로닉스Digicom Conswitchtronics”라고 지었다. 이 회사는 미래의 인공지능 네트워크에 올려놓고 쓰게 될 항체 복제를 연구하는 유전자공학자들에게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공급한다. 시장규모는 아주 작지만, “첨단기술”지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래 가장 유망한 사업이라고 한다.

이 회사의 매출은 작년에 5,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주식시장이 “첨단기술”지를 읽었는지, 이 주식의 시가총액을 6억 달러나 쳐줬다(즉 PSR은 12 배가 넘는다). 장부상으로 “미스터 빅”은 큰 자산을 거머쥐게 됐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주식을 많이 팔 수가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랬다가는 “사장이 자사 주식을 보유할 생각이 없다면, 누가 그 주식을 보유하겠는가?”라는 말이 나돌며, 당장에 주가가 주저앉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디지콤이 거대한 회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그가 기다려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는 세상을 갖고 싶고, 지금 당장 갖고 싶다.

예전에 “사업”을 논하던 경영대학원 시절에, 그는 “미스터 미디엄Mr. Medium”과 절친한 친구였다. 미디엄은 아직 첨단유령회사에 다니고 있다. 사실 미스터 미디엄은 그곳에서 최고의 문제해결사였다. 어떤 사업본부와 문제가 생길 때 미스터 미디엄을 보내면, 그는 “아이비엠IBM”이라는 네 음절이 떨어지기 전에 문제를 말끔하게 처리해놓을 정도였다. 미스터 빅은 항상 미스터 미디엄을 아주 높게 평가했었다. 사실 그는 미디엄을 디지콤으로 채용하고 싶어한다. 그는 세상을 갖고 싶고 지금 당장 갖고 싶은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미스터 빅에게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계획을 수립하고 “번개작전Operation Blitz”이라는 암호명을 붙였다. 그는 미디엄을 불러서 부사장직을 제의하고, 덤으로 미디엄 사이즈의 책상이 넘칠 정도로 많은 옵션도 주겠다고 한다. 미디엄이 수락하자, 빅은 번개작전에 돌입했다. 미스터 빅은 서해안의 소규모 자산운용사를 고용해서, 다음과 같은 조건에 맞는 모든 상장 제조회사들 찾아달라고 했다. 즉,

# 매출액이 5,000만 달러에서 1억 5,000만 달러 사이의 규모일 것.
# 주가매출액비율(PSR)이 0.0에서 0.15 사이일 것.
# 지배지분이 여러 집단의 주주들에게 흩어져있지 않을 것.

이 회사 목록을 손에 든 미스터 빅은 10개 회사를 표적으로 정했다.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회사들이 하나같이 개 같은 회사처럼 보였다. 모두가 적자를 내는 회사들이었고, 부채도 상당히 많았다. 미스터 빅은 이들 10 군데를 합치면 어울리는 한 묶음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기업 목록을 회사 법률고문 “미스터 클린Mr. Clean”에게 건네주며, 그 기업들을 사고 싶다고 했다. 모조리 100 퍼센트 지분을 인수하고 싶다고 했다. 미스터 클린은 “좋습니다”라고 답한다. 클린은 어느 회사를 먼저 사고 싶은지, 인수 자금은 어떻게 조달할 생각인지를 물었다. (미스터 빅은 늘 미스터 클린이 좀 마음에 걸렸었다.) 빅은 또박또박 위엄 있게 그 회사들을 전부 7 일 후에 한꺼번에 주식교환 방식으로 사고 싶다고 말한다.

미스터 클린은 돌연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미스터 빅은 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다른 법률고문을 채용한다. 그리고 화요일에 행동에 들어간다. 오전 9시에 디지콤은 10개 회사를 주식공개매입으로 인수한다고 발표한다. 동시에 이 회사들은 신설 사업본부의 핵이 될 것이며, 신임 부사장 미스터 미디엄이 경영을 맡는다는 내용도 발표됐다(미스터 미디엄은 첨단유령회사에서 바로 전에 사임했다).

이 10개 회사의 매출을 합치면 10억 달러가 됐다. 이들 주식의 시가총액 합계는 1억 달러다. 디지콤은 인수할 주식의 가치를 50 퍼센트 올려서 1억 5,000만 달러에 제시하고, 이 금액에 해당하는 디지콤의 신주를 발행해서 지불하겠다고 제의한다. 이 10개 회사의 주주들은 행여나 이 지긋지긋한 회사 주식을 털어버릴 날이 올까 생각도 못하던 차에 환호했다. 이 회사들의 경영자들은 호응하지 않았겠지만, 기존 주주들은 인수제의를 환영했다.

하룻밤 새 미스터 빅은 10억 달러나 되는 제국의 최고경영자가 됐다. 그날 밤 공교롭게도 증권거래위원회의 감독위원이 심장마비를 일으킨 뒤 아무도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미스터 빅은 바라던 대로 그의 오랜 친구 미스터 미디엄을 채용했다. 미스터 미디엄은 “잠에 취한 개들”을 대청소하는 출동명령을 받았다. 미스터 빅은 디지콤 주식의 25 퍼센트도 안 되는 지분만 내어주고 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 그는 “썩 괜찮은 수란 말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디지콤은 순식간에 매출 규모 10억 5,000만 달러의 회사가 됐고, 시가총액은 7억 5,000만 달러가 됐다. PSR도 다른 10억 달러 대 기업들처럼 0.75가 됐다. 미스터 빅은 아주 흡족하다.

미스터 미디엄은 2년 뒤에 그가 맡은 사업본부를 말끔하게 청소했다. 이때부터 이 본부는 매년 5 퍼센트의 순이익을 디지콤에게 벌어줬다. 이전에 디지콤의 매출액보다도 큰 금액이다. 또 디지콤은 계속 PSR을 0.75로 유지했다. 모두가 더 나아졌고 피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디지콤이 애초에 만들기로 했던 “항체”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6년 후에 회사명은 디지콤 콘스위치트로닉스에서 “디씨 인더스트리즈DC Industries”로 바뀌었다. 수십 년이 흐른 뒤에 미스터 빅은 성장을 향한 그의 창업 정신으로 그가 어떻게 DC를 경영해 왔는지를 은퇴기념 만찬에서 연설한다. 만찬은 지나갔고 모든 사람들은 편안한 말년을 맞는다. 그들은 주식의 배당금으로 행복하게 살게 된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보는가? 극적인 요소만 조금 다를 뿐, 유사한 사례들이 수십 년 동안 되풀이됐다. 1960년대에 유행했던 기업집단 형성은 돼지귀를 많이 모아서 큰 비단지갑을 만들려는 거대한 시도였다. 주식시장의 쓰레기 처리장에 나뒹구는 그러한 돼지귀들 가운데는 집어갈 사람을 기다리는 미래의 노다지들이 있다. 인수합병의 예술가들이 이들을 집어가기도 한다. 또 이들이 내다버릴 만한 개는 아니라고 금융계가 봐주는 주가상승 시기에 새 주인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됐든, 현명한 매수자들은 주가매출액비율이 낮은 주식들이 기회가 넘치는 비옥한 들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켄 피셔Kenneth L. Fisher, 부록 4, 《슈퍼 스톡스Super Stocks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