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Mirror Tool_Replicant and Robot
거울 앞에 서면 몸이며 옷이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한다. 거울 도구(mirror-tool)는 내가 고안한 용어인데, 이렇게 거울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도록 도와주는 장치를 말한다. 복제품(replicant)과 로봇(robot), 두 종류의 거울 도구가 있다.
현대적인 옷을 입은 복제품은 복제인간을 그린 영화『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에 나온다. 아이라 레빈(Ira Levin)의 소설『스텝포드 시의 부인들(Stepford Wives)』에서 묘사된 완벽한 여성들 또한 복제품들이다. 이런 공상의 세계를 떠나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심장의 생리적 기능을 인위적으로 유지해주는 심박조절기는 복제품으로 기능하는 기계다. 이렇게 고안된 장치들은 모두 우리를 똑같이 흉내 냄으로써 거울로 비추듯 우리를 복제한다.
반면 로봇은 인간을 확장시켜주는 기계다. 즉 우리보다 더 강하고, 더 빨리 일하며, 인체와 달리 지치는 일이 없다. 인간을 확장시킨 기계가 로봇이지만, 이런 기계의 기능을 이해할 때는 우리 자신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아이팟(iPod)을 예로 들면, 이 조그만 기계는 기억을 담당하는 로봇을 탑재하고 있다. 3만 5000분이 넘는 음악을 저장할 수 있어서 바흐(J. S. Bach)의 전 작품 분량에 육박하며, 인간 두뇌의 최대 기억용량을 초과한다. .... (중략) .... 하지만 이렇게 기억용량이 거대해도, 기껏해야 인간이 들을 수 있는 한도 내의 노래나 웬만한 길이의 음악만을 저장하고 출력하는 데 쓰인다. 아이팟 사용자들은 어느 순간에도 그 최대 기억용량을 사용하지 못한다.
.... (중략) ....
브라만테의 템피에토 |
크기와 규모는 “확장되는 방식”을 가늠하는 두 가지 척도다. 건축물 가운데는 아주 커다란 건물도 인간에게 친숙한 규모로 느껴지는 게 있는가 하면, 작은 크기의 구조물 중에도 아주 크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역사가 조프리 스콧(Geoffrey Scott)이 볼 때, 장대한 바로크 양식의 교회들은 규모가 친숙한 느낌을 주는데, 벽의 곡면과 장식이 인체가 움직이는 동작을 모방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르네상스기 조각가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가 지은 템피에토(Tempietto)는 성당 안뜰에 세워놓은 조각품 크기지만, 이 건축품의 모델이었던 판테온(Pantheon) 신전만큼 크고 확장된 느낌을 준다.[주5] 이와 같은 크기와 규모 사이의 차이는 기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신장 투석기는 덩치 큰 기계이지만 인간의 신장을 복제한 것인 반면, 천체물리학자 마틴 리즈가 구상하는 미래 공포물 가운데 대기권을 전부 먹어치우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로봇은 초소형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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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정교한 복제품들은 상냥한 장난감 같은 기계였다.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은 가톨릭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했던 기계 발명가였는데, 그가 만든 특이한 자동인형이 1738년 파리의 어느 상점에 전시되었다. ‘플루트연주자(Flute Player)’로 명명된 그 물건은 키가 실제 인물과 비슷한 168 센티미터의 인형으로 플루트를 연주하는 기계였다. 사람들에게는 악기가 플루트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왜냐하면 건반을 때리는 것만으로 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16-18세기의 건반 악기로 피아노의 전신)는 기계적 장치로 소리내기가 훨씬 쉬웠지만, 손가락 동작에다 호흡 동작까지 동시에 맞추어줘야 하는 플루트는 기계적 조작이 훨씬 어려웠기 때문이다. 곧이어 보캉송이 새로 만든 ‘똥 싸는 오리(Shitting Duck)’는 곡식을 집어먹고 곧바로 항문으로 배설하는 자동기계였다. 똥 싸는 오리는 흥미로운 물건이었지만 한 가지 속임수가 드러났다(이 기계 오리가 실제로 곡식을 소화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배설용 곡물이 기계 내부에 따로 있었다). 하지만 플루트 연주자는 진짜였다.[주6]
보캉송은 플루트연주자를 작동시키기 위해 파이프 세 개를 통해 로봇 가슴 부위를 관통하는 아홉 개의 복잡한 풀무 장치를 로봇 아랫부분에 설치했는데, 이것이 바람을 불어넣는 기능을 했다. 또 혀를 작동시키는 동력 전달 물림장치와 입술을 안팎으로 움직이게 하는 물림장치가 기계 내부에 설치돼있었다. 이 기계가 전체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볼테르(Voltaire)는 보캉송을 두고 “근대의 프로메테우스”라고 불러서 그 경이로운 감흥을 표현했다.
그러나 보캉송의 플루트연주자는 인간을 뛰어넘는 성능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복제품에 불과했다. 사람보다 빨리 연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음악가로서는 한참 모자란 자동기계여서 단순한 강약의 대조만을 구사하는 데 그쳤다. .... (중략) .... 이 기계는 모방 수단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해 보캉송의 작업장을 찾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도대체 파이프 세 개로 묶어놓은 아홉 개 풀무 장치가 어떻게 사람의 호흡을 따라할 수 있을까?
불행한 일로 이어졌지만, 바로 이 복제품이 로봇을 낳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는 과학에 조예가 깊지 않았지만, 보캉손의 재능을 흥밋거리 장난감을 만드는 것보다 더 좋은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곧이어 1741년 이 발명가에게 프랑스의 견직물 제조 일을 맡겼다. 18세기 초 (특히 리옹에서 많이 생산되던) 프랑스의 견직물은 품질이 균일하지 못했다. 제작 도구도 보잘것없었고, 임금도 변변치 못해 근로자들은 걸핏하면 파업을 일으켰다. 보캉송은 조예가 깊은 복제품 지식을 발휘해서 인간이 간여할 일이 없는 로봇을 제작할 방법을 궁리했다.
그는 ‘플루트연주자’를 제작할 때 익혔던 호흡 동작의 긴장을 조절하는 지식을 직조(織造, weaving) 기계에 활용했다. 직물을 촘촘하게 짜려면 짜들어갈 씨실과 날실을 팽팽하게 유지해야 했는데, 이 기계는 그 긴장 정도(즉 장력)를 미세하고 정확하게 계측했다. 이를 기초로 정확한 직조 밀도를 유지하면서 실을 물고 왕복하는 북(shuttle)의 기계적인 동작을 작동시켰다. 이 작업은 그 이전 수작업 방식에서는 근로자들이 ‘감(感)’과 눈썰미로 처리했던 일이다. 나아가 그의 직조 기계는 씨실과 날실을 짤 때 장력을 똑같이 유지할 수 있는 유색 견사의 올 개수를 더 늘려서, 사람이 두 손으로 잡아당겨 처리했던 예전 방식 때보다 훨씬 많은 올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리옹에서 이런 기계에 투자하는 비용이 마침내 노동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저렴해졌고, 기계 작업의 질까지 좋아졌다. 다른 곳들도 속속 리옹의 뒤를 따랐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 있는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한 게이비 우드(Gaby Wood)는 플루트연주자가 “인간의 오락을 위해 고안”된 것인 반면, 보캉송이 리옹에서 만든 직조 기계는 “인간이 필요 없음을 인간에게 보여줄 의도”였다고 지적한다.[주7] 1740~1750년대 리옹의 직조공들은 보캉송이 거리를 나다닐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그를 볼 때마다 공격했다. 보캉송은 기술혁신에 몰입해서 이들의 핏대를 더욱 치솟게 했다. 이제는 꽃과 새 등 오밀조밀한 무늬까지 소화해내는 기계를 개발해냈던 것이다. 이 복잡한 직조 기계는 당나귀를 동력으로 활용했다.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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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Chapter 3. Machines,"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장인 The Craft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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