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번역이란 일이 좁은 창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 싫은 세상의 구석구석을 가려줄 수 있는 작은 창이라면 그걸로 만족하고 뒷뜰로 이어진 작은 산을 더 많이 즐기며 살자는 바람이기도 했다. 작은 창이지만, 그곳으로도 세상의 웬만한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 작은 창으로 전직 종합병원 의사 같은 사람이 보였다.
종합병원에서 꽤 많은 환자들의 건강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했다고 한다. 당연히 의과대학도 나왔고 유학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그 후 종합병원에서 의학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거나 환자들을 사기 치는 모습에 상처도 받고 회의를 느꼈다며, 지금은 의학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의학에 관한 강연도 한다.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의사들을 많이 비판하는데, 의학에 관한 토론은 별로 즐기지 않는 모습니다. 또 실제로도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일은 하고 있지 않다.
환자의 병을 고치고 있지 않다면, 그는 의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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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아니면서 의사라고 나서는 모습은 그리 탓할 만한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아빠가 아니면서 아빠라고 나서는 것이나 아빠이면서 아빠로 나서지 못하는 것 역시 그리 조화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그는 항상 아빠이면서 아빠로 나설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사람의 정체성이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음..."을 읊조리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나 스스로 누구라고 나서는데(혹은 누구라는 정체성이나 페르조나를 "입고" 다니는데), 사실 나는 그런 나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말 자체의 모순을 넘어 존재 차원에서 큰 모순이자 삶의 현안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웬만한 논쟁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는 특효약은 항상 있었다. 대놓고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도 없는 관계나 상황에서 가끔 써먹으면 서로의 자존심이나 착각을 지켜주는 약효가 있는 어법이다.
- 정도 차이다.
- 사람에 따라 다르다.
누구나 "이런" 세상을 살면서 착각을 많이 하기 마련이다. 착각이 웬만해서 주변과의 불협화음이나 내 자아와의 불협화음이 그리 크지 않을 때는 "세상사의 통계적 실수"로 처리될 때도 있다. 그러다가 착각이 심각해지면, "정신착란"이나 "이중인격"으로 취급되면서 당사자의 주변 상황이 급반전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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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적 실수"이냐, "정신착란" 혹은 "이중인격"이냐는 무언가의 "진단"은 인생사에서 아주 의미 심장할 경우가 있다. 부부 사이나 친구 사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이렇더라도 그 약효 좋은 말장난은 여전히 약국에서 잘 팔릴 수 있다.
- "그렇게 볼 게 아니라 정도 차이의 문제이지!"...... 정도 차이다.
- "꼭 그런 게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 .........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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