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도 모르면서 말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말을 모른다고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가치라는 말을 모를 수는 있어도,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있다.뒤뜰의 작은 밭에 심은 작물이 돋아내는 생명을 가꾸느라 잡초를 뜯고 물을 대주는 이는
생명의 가치를 알고 귀중한 물의 가치도 안다.
가치란 말을 모른다고 해도 그가 귀히 여기는 생명과 물이 그의 삶과 통합돼 있다.
즉 그는 그의 가치를 삶으로 실행하고 있다. 그 인간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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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무슨 생각이 있더라도 그게 생각이 아니라고 한다.
글로 적어 놓은 생각이 진정한(언어의 형태소가 분명하다거나, 달리 말해 개소리가 아닌 인간의 말이란 뜻일 것이다) 생각이란 말이었다.
이게 다 말 장난이다. 생각과 글이 구분된다는 것 자체가 장난이란 뜻이다.
생각은 왔다갔다 하는 것이고 날라다니는 먼지 같은 것인 반면,
글은 그렇지 않고 분명하다고 하면, 이것도 석연치 않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글로 썼다 한들, 그 글을 판단하는 행위가 과연 글이냐는 문제다.
말로 하던, 글로 쓰던, 그 행위를 내가 했다고 주장하는 어느 인간이 없고는 무의미한 말이다.
물론, 발화된 시점이 지나면서 희미해져가는 <소리말>보다는 활자로 남는 <문자말>이 대화와 토론의 대상으로 삼기가 유용하다. 이 차이는 유용성의 차이이지, 의미와 무의미의 차이는 아니다. 의미를 담는 것은 소리말도 아니고 문자말도 아닌, 살아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소리든 글이든 말에 의미가 실리고 가치를 담는 것은 말을 떠나 인간에게서 확인되는 가치란 뜻에서다. 가치는 결코 말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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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자기 일의 가치가 무엇이라고 하면서 어느 일거리 A를 들먹인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다른 일 B를 하면서 그 가치와 배치되는 다른 기준(예컨대 실용적인 돈)에 따라 자신이 귀히 여긴다는 가치를 일거에 내던져 버린다.
그의 말에 따르면, 효율화를 추구한단다. 또 남들보다는 그 가치를 덜 버리는 거라는 말도 한다.
이런 사람은 가치란 말을 알아도 뭐가 가치인지 모른다.
자기가 귀히 여기는 게 뭔지 모를 뿐 아니라, 귀히 여긴다고 말해 놓고 역행하는 행동까지 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말하는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의 말도 모르겠고 행동도 모르겠다.
이럴 때의 의미는 내가 주는 의미밖에 없고,
그걸 챙기는 게 삶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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