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4일 토요일

false security



현명한 결정 내리기 

당신의 삶의 질은 당신이 내리는 결정의 질에 달려있다. 많은 사람들은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테오도르 루빈(Theodore Rubin) 박사는 연구를 통해 사람들이 자주 선택하는 전형적인 "사이비 결정(pseudo decision)"을 확인해내었다. 아래의 "사이비 결정"들은 사람들이 마음을 정할 수 없을 때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이다. 그 몇 가지 유형을 살펴보자. 

  • 연기(延期) : 연기한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지 기다려 보자." 또는 "좀 더 생각해 보자"라고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을 연기하면 일을 성취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 주저(躊躇): 언제 주저하게 되는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항목이 모두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거나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을 때 주저하게 된다. 
  • 충동(衝動) : 충동적인 결정은 진정한 결정이 아니다. 충동적인 결정은 공포, 걱정, 죄의식, 또는 지루함을 덜어보기 위해 "뭔가를 하려는" 절망적인 시도이다. 충동적인 결정은 언제나 재앙을 부른다. 
  • 일방적 의존: 일방적 의존은 항상 다른 사람이 당신의 결정을 대신하도록 하는 것이 습관화 될 때 생겨난다. 일방적 의존은 너무나도 귀중한 선택의 자유를 포기하고 그 대가로 가짜 안정감(false security)을 얻는 어리석인 행동이다. 
  • 반항: 어떤 사람은 늘 다른 사람들과 정반대 결정을 내림으로써 자신이 겪고 있는 불안정한 현실을 숨기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억지를 부리는 반항자들이다. 자신의 독립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일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먼저 남들이 뭘 하는지 지켜보고 난 다음에야 결정을 내릴 수 있다. 
  • 기회주의 :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동시에 동쪽과 서쪽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말하겠지만 실제로 이런 반응은 형세를 관망하는 미숙함의 표현이다. 진짜 결정을 회피하는 또 다른 방법에 불과하다.  
  • 과거에 대한 향수(鄕愁):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과거에 "∼랬더라면"하는 생각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오늘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어려운 결정을 회피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실존(Christian existence)에서의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인 실존을 육체와 영혼사이의 끝없는 전쟁(semper militia)으로 해석한다.46)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spiritual warfare)을 수행하는 데 반드시 겸손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죄의 잔재(reliquum et reliquie peccatorum), 악한 욕망(inclinationis et motus mali), 분노(ira), 교만(superbia), 탐식(gula), 나태(accidia)의 충동” 등이 잔존하고 있고, 하나님의 징계를 시시로 받아야만 이것들에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47)

루터는 시 71:1의 주석에서 루터의 시편주석에 나타난 두 가지 핵심 단어를 소개한다: “구원하다”(libera), “건져내다”(eripe). 루터는 리베라(libera)를 죄인을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의 칭의사역을 의미하고, 에리페(eripe)는 죄의 잔재를 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주는 하나님의 성화사역을 의미한다.48) 즉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비록 원죄의 죄책(guilt)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기억력은 감퇴되고(infirmas in memoria), 지성적인 면은 어두움에 덮이고(coecitas in intellectu), 의지는 정욕으로 달려가거나 아니면 무질서로 혼란함이(concupiscentia sive inordinatio in voluntate)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49) 

그리스도인의 실존에 남아 있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바로 겸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speciosissimus coram Deo)은 겸손한 척하는 가장된 겸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똥으로, 썩어 문드러진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습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불빛을 받지(lumine sancto) 않고서는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존재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5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끊임없는 회개”(continue ad penitentiam)51)가 그 특징이며, 자신의 거룩하지 못한 모습에 항상 슬퍼하며(displicet) 스스로에게는 저주를 돌리고(maledicit)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이다.52)

그러나 루터는 인간의 참회(pententia)와 고백(confessio)이 구원에 어떠한 공로(meritum)도 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참회란 헛된 영광을 구하여(ad vanam iactantiam)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coram oculis hominum)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속으로”(intus coram Deo) 은밀하게(screto)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53) 루터는 시 43:1에서, “Iudica me Domine”의 의미를 “나에게 진정한 겸손(veram humilitatem)과 육체의 죽음(mortificationem carnis), 그리고 나를 스스로 정죄함(meiipsius damnationem)을 주소서”라고 주석하면서 참된 겸손만이 하나님 앞에 서는 인간의 적절한 태도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54)

이러한 관점에서 루터는 그리스도인이 빠질 수 있는 “거짓된 확신”(false security)에 대하여 경고하며 그리스도인이 칭의를 받았으므로 마치 자기 스스로 의롭고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심령으로 교만한 모습(superbi spiritualiter)이라고 비판한다.55) 즉 칭의는 단회적 사건(a single event)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실전 전 생애를 통하여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루터는 “칭의된 상태”(condito iustorum)란 “의에 주리고 목마른”(iustitiam esuriant et sitiant, 마 5:6) 상태라고 하는 것이다.56)

그러므로 칭의는 “휴식”(a relief)을 의미함이 아니라 겸손한 심령이 깊어지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자비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칭의된 자의 표식(a sign of justification)이기 때문이다. 시 1:6의 주석(scholia)에서는 루터가 “진정한 겸손”을 강조한 본래의 의도, 즉 교회와 영성을 개혁하고자 하는 열망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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