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물리학과 첨단기술 2007년 9월, http://www.kps.or.kr/storage/webzine_uploadfiles/851_article.pdf
정 복 근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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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림굿 과정을 통해 강신무(降神巫)가 된 무당마다 각자의 귀신이 그들의 몸에 “실려” 있어 영매자(靈媒者)로서의 구실을 맡는다고 합니다. 무당이 작도 위에서 춤을 추며 굿을 할 때에도 무당 자신이 춤추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그들의 귀신이 춤을 추기에 그러한 춤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무속을 연구하는 어느 교수님은 무당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몸에도 각자 의 귀신이 실려 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에서는 말합니다.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자신을
인간으로 육화(肉化)시키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나 우리는 그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당신은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가신 후 당신 자신이신 성령을 보내시어 그래도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같은 한 분의 하느님이시나 “낳으시는 분”과 “나시는 분”과 “발(發)하시는 분”과 같이 그들의 “관계”로 구별됩니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의 신비입니다.
물리학에 몸담고 있는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오직 물질만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물질이 없거나 그와 무관한 시간과 공간을 일반상대론에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물질이 구체화(具體化)된 것을 입자라 부릅니다. 우리는 입자를 통해 물질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입자를 통해 자연현상을 설명합니다. 소리나 색깔이나 힘들을 입자로 설명합니다. 입자들이 모여 원자를 이루고 원자들이 모여 만물을 이룬다고 봅니다. 마음이나 생명마저도 우리는 원자의 행동으
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무속이나 종교나 물리학은 나름대로의 언어와 방법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그러한 이해에 바탕을 둔 지식이나 지혜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통해 보는 세상은 무속이나 종교를 통해 보는 세상과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겉보기와는 달리 그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유사성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입자들만으로 설명하고자 할 때 언제나 만족스러운 게 아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두 개의 슬릿을 향해 전자들을 입사시켜도 빛을 입사시킬 때처럼 간섭무늬를 얻습니다. 빛은 전자파이므로 그 결과를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전자의 경우에는 전자 자체가 쪼개지지 않는 입자이므로 간섭무늬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전자에 “실려”(associated with) 있는 파동함수 Ψ을 도입합니다. Ψ 는 빛처럼 나뉘어져 두 슬릿을 동시에 통과할 뿐만 아니라 스크린에 간섭무늬를 만듭니다. Ψ 는 작도 위에서 춤추는 귀신과 같이 입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셈입니다. Ψ 을 통해 세상을 보는 이론이 양자론이고 그러한 Ψ 을 통해 본 우주는 유기적(有機的)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무속의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과 닮은 데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양자론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나의 입자가 여러 개의 입자로 붕괴하는데 Ψ는 단일 입자만을 기술하므로 그러한 붕괴현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가 고안한 이론이 상대론적 양자장론입니다. 여기에서는 Ψ 자체가 연산자입니다. Ψ 는 입자 소멸연산자 a 와 그의 반입자생성연산자 b†의 일차결합으로 주어지는 양자장입니다. 주어진 상태의 입자 수는 연산자 a†a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산자가 연산할 대상으로 진공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입자와 반입자는 진공으로부터 생성되고 또한 진공으로 소멸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창조되고 또한 아무 것도 없는 데로 소멸되기에 진공은 온전히 비어 있으면서도 온전히 충만한 존재입니다. 그러하기에 연산자 a†, a, a†a (b†, b, b†b)는 힌두(Hindu)신화에 나오는 창조의 신, 파괴의 신, 보존의 신과 닮아 보입니다.
이러한 유사성의 외연을 좀 더 잘 살펴보면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물질은 기독신앙에서 이야기하는 성부와, 물질이 구체화된 입자는 육화된 성자와, 양자장 Ψ 는 성령과 많이 닮아 보입니다. Ψ는 입자와 같은 물질을 표상하지만 순수한 수학적인 실체이므로 물질의 자리에 수학적인 존재만 남습니다. 마음과 물질의 문제가 마음과 수학의 문제로 바뀝니다. 결국 물리학은 순수 유물론도 아니고 순수 유심론도 아닙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래도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또 하나의 신비입니다. 물리학 역시 나름대로 또 하나의 신화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bkch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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