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http://scrc.chonbuk.ac.kr/bbs/data/%EB%A5%98%EC%A0%84%ED%9D%AC.PDF
류 전 희 / 경기대학교 건축학부 (건축사 및 건축이론, 건축교육사)
※ 위 출처의 논문 원문을 보면, 여러 가지 그림과 도해가 들어 있어서 읽기에 더 좋다.
학습하고 미래에 참조할 용도로 내 작업장인 이 블로그에 내용의 일부를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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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최근 연구 경향들
고대세계의 테크네1) 중에서 가장 높은 위계에 속했던 건축(archi-tec-ture)은 출발부터 실무
(praxis)와 이론(theoria)을 같이 병행하여야 한다는 속성을 지니고 출발한다. 이는 과학적 지식과 철학, 사유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근대 이전까지는 삶에 기반을 둔 총체적 지식에 기반했다고 볼 수 있다. 과학과 기술, 건축의 경계가 분명하게 만들어진 것은 18세기 이후 19세기에 이르러서이다. 그에 관한 많은 세부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현재 그 세 분야는 큰 접점이 없이 각기 전문화하며 가고 있다. 건축과 과학, 혹은 과학과 건축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건축적 지식이 무엇인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를 먼저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기술과 건축의 경계를 허무는 연구경향들은 지난 20여 년간 건축사와 과학기술사에서 두 분
야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된 바, 건축사에서 먼저 시작되면서 건설기술사의 측면과 과학적 개념이 건축에 적용된 예 등을 다루는 연구들이 나오게 된다.2) ......
1) 테크네(τεχνη)는 art, craft, skill 등으로 통용되는데 그 어원인 인도유럽어 "tekhn-"는‘나무로 만드는 일’, ‘목수일’ 등을 의미한다. 그리스어 "tekton"과 산스크리트어 "taksan"은 목수, 짓는 자, builder 등을 의미한다. 산스크리트어 "taksati-"는 ‘형태를 만들다, 짓다, 구축하다’의 의미를, 유사어인 라틴어 "texere-"는 ‘직조하다. 구축하다’ 등의 의미이다. 여기에서 공통되는 가장 본질적 행위가 짓는 것이다. 테크네는 무엇인가 고안하고 만들어 내는 솜씨 혹은 모든 가능한 기술, 방법 등을 의미한다. 철학적으로 테크네란 사물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나 정확한 지식(episteme, theoria, logos)를 바탕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능력(ars, praxis)뿐만 아니라 지식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정작 건축과 과학, 기술에 대한 근원적 정의와 철학적 맥락, 그 상호 연관, 즉, 지적계보에
대해 연구한 것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본 연구의 지향점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나. 세부연구의 내용
1. 서론
건축의 영역과 전문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유구한 인간문화 속에서 건축이 담당해 온 역사적 역할에 대한 깊고 총체적 이해없이는 공허하거나 맹목적이기 쉽다. 지식은 인간사의 매순간마다 늘 다른 형태로 인간의 삶에 방향성을 부여해 왔다. 위의 맥락에서 지식은 피상적 정보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생활세계Lebenswelt에서 체화된 의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18세기 말 이전까지 이천년간, 서양사에서 인간들은 지식을 통해 총체적 삶 속에서 인간 행위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었으며, 그것은 과학과 그 시적 함축이 같이 살아있는 지식의 총체 Orbis Doctrines였다.
이러한 상황은 시기적으로는 다르다 할지라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축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건축과 예술의 만드는 작업은 언설의 세계가 아무리 변하여도 역사적으로 그 사회의 체화된 지식을 나타내는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하여 왔다. 서양 건축역사의 영역 내에서 건축적 지식은 나름의 위치를 점하면서 때로는 존중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그 중요성이 약화되기도 하였다. 건축이론은 역사가에게 연구를 위한 원천되기도 하고 건축가에게는 작품에 대한 주석을 달기 위해서 탐구되기도 하며 때로는 지어진 건축물을 기록하는 역할도 맡아 왔다. 건축의 위대한 시대들에 건축적 지식은 언제나 단순한 중간적 존재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즉 건축행위의 단순한 부속물이 아닌 생활세계에다 뿌리를 두고 미적인 기초를 확립하려고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뿐만 아니라 건축의 나아갈 바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본질적이었다.
고대로부터 철학과 과학은 진리를 드러내는 두 개의 세계관이었으며 그 진리란 플라톤의 티마에우스에서 묘사된 수학적 우주론이 뉴턴 이전까지 과학의 틀이 된 것처럼 건축의 이론적 바탕이 되어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Gomez, 1999) 건축가는 이데아를 추구하는 창조자로서 기하학적 세계관을 형상화시키는 것이 철학자들이 플라톤적 우주관의 진리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삶의 기반을 설정하고 제공해 온 ‘짓는 전통’(building tradition)이 단순히 물리적 실체를 구성하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행위 이상으로 각 시대 각 지역의 우주관과 종교관, 자연관, 그 사회의 구조적 특성, 기술수준까지 반영된 총체적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건축이 사회를 선도하던 고대사회, 로마나 고딕시기 등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바, 누가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왜 지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 시대를 이해하고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양에서 건설 혹은 건축의 역사를 통해 건축적 지식은 어떻게 형성되고 전[자]파 되었으며 이는 과학기술적 전통과 어떤 연관 관계를 맺어 왔는가를 살펴봄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2. 로마
로마의 건설자들은 체계화된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이었다. 로마의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업은 로
마제국영역에 포함된 곳곳에 거의 표준화된 유적들을 남기고 있다. 이 당시의 건축의 분야는 현대
에서 통용되고 있는 건축의 개념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시 건축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
분은 제국의 인프라스트럭처(moles necessarie, 필요한 대사업)를 구성하던 하드웨어적 측면인 로
마가도, 교량, 상하수도 시스템, 공공사업, 병영기지 및 신도시의 건설 등과 국방, 치안, 조세, 의
료, 우편 등의 소프트웨어적 인프라를 모두 포괄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업을 시행했던 주체는 로마의 공병화된 군대와 그 지휘관들이었다. 지휘관들은 로마의 귀족과 엘리트 계층이 주로 맡았기 때문에 그들은 유년시절부터 최소한 17세가 될 때까지 그리스적 교양교육(Seven Liberal Arts)을 받았다고 보여진다.
로마 초대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 비트루비우스(M.Vitruvius Polio, BC27)는 건축십서(Ten Books on Architecture)를 통해 당시 건축을 주축으로 당대의 기술전반에 관한 백과사전적 지식과 실무적 내용을 체계화하여 정리하였다. 그가 포괄한 영역은 대지잡기, 건축, 도시계획, 조경, 항구, 축성, 도로, 공성무기개발, 건설재료 및 공법, 해시계, 물시계 제작, 각종 펌프 등 기술전반 뿐만 아니라 법률소송, 음악, 천문학, 의학을 폭넓게 망라하고 있다. 비트루비우스는 건축에 관한 이론과 실무를 정리한 바, 그에 따르면 완벽한 건축가로 공표하기 위해서는 재능 있을 뿐만 아니라 배움에도 능해야 하며 펜에 익숙하며, 기하학을 배우며, 역사를 많이 알고, 철학가들을 따르며, 의학에 대한 지식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며, 배심원의 견해도 알며, 천문학과 천체이론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밝혔다.(Bk.1.1) 이 책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건축에 관한 유일한 저술로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17-18세기까지 서양건축사에서 건축적 지식의 근본이었으며 사고의 원천이 되었다. 그 결과 그가 제시한 건축의 영역과 건축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이론과 실무에 기반한 지식체계 또한 지금까지도 유효한 규범이 되고 있다.5)
AD 1 세기 하드리안 황제는 자신이 훌륭한 건축가였음을 입증하는 건축물을 많이 남겼는데, 가장 뛰어난 사례가 판테온 신전과 로마외곽의 하드리안 빌라가 있다. 이 건축물들은 철저하게 기하학적 원칙에 의거해 계획되었으며 하드리안 황제 자신의 태양 중심 사상과 심취했던 그리스철학을 바탕으로 한 것을 알 수 있다.(그림2,3)
3. 비잔틴 시기
비잔틴 제국의 형성기 동안 로마제국의 영향은 지속되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건축가는 지식계층에 속하며, 직업에 대한 이론적 기반과 실무에서의 기술적 지식을 겸비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AD.320년 기하학자 알렉산드리아의 파푸스는 건축에 관한저술에서 이상적 건축가는 기하학, 산
술, 천문학, 물리, 금속, 시공, 목수,그림 등의 작업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여야 한다고 기술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당대에 볼트와 스트레오토미(돌을 깎는 기술)의 대가로 알려진 바, 역학 'the science of mechanics'에 관한 저술에서 Mechnicus(Mechanikos)가 되고자 하는 이는 사물의 움직임과 힘의 중심, 그 원리를 이해하는 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높은 학식과 지위를 지닌 건축가와 동일하게 사용되었으며 당시 거대한 건축물이나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시의 관점에서 역학적 이해가 바탕된 자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6)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Hagia Sophia,532-537)은 트랄레스 출신 수학자 안테미우스와 밀레투스 출신 건축가 이시도레가 당시로서는 놀라운 과학적 지식과 시공속도로 완성해 낸 건물이다. 이들은 ‘가장 위대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호칭을 받을 만큼 존경받고 높은 지위를 누렸다.
4. 고딕시기
고딕시기의 대성당들은 중세의 지적 르네상스, 스콜라티시즘, 사회적 변동, 기술적 수준이 어우러진 결과물이었다. 기술사의 측면에서 볼 때 중세의 번성기를 주도해 나간 사회적으로 가장 강력한 동인은 대성당의 건립이었다. 성당 건설자들은 당시 11세기 12세기 동안 유럽의 첫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기술, 농업혁명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Gimpel, 1983) 당시 에너지원은 바람, 물을 이용한 풍차, 수차와 7) 말이 대표적이었다 수만 개의 풍차와 수차가 유럽 전역에서 . 사용되었으며 마구의 개선을 통해서도 [통해] 마력을 훨씬 효율적으로 증강시켜 사용하게 된다. 특히 성당건설 현장에서 마력은 자재의 운송 및 거중기를 돌리기 위한 수단 등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그림7-8) 또한 제련기술이 발달하면서 철의 강도가 훨씬 단단해지면서 석재를 가공하고 절단하는 것이 용이해졌다.(그림 9) 이처럼 새로운 기구를 개발하고 만들어 시험하면서 개선을 시켜나가는 작업은 장인 계층과 기술자들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지만 시스테리안 수도원 등은 이러한 기술이 창의적으로 배태되고 생산되는 중심지 역할을 담당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문서들로 볼 때 자연의 힘을 기계화시켜 이용하는 것은 인간 노동의 노력을 상당히 경감시켜 준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들은 기술의 이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중세시대의 진보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엿볼 수 있다.
건축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젊은이는 13-14세에 한 마스터 아래에서 훈련을 시작한 뒤, 7년 정도 이 도제단계 Apprenticeship를 거치고 나면, 3-4년간 스스로 여행하면서 여러 곳을 구경하고 일거리가 있으면 다른 작업장의 경험을 하면서 관찰하는 장색(??)단계 Journeyman를 거쳤다. 어느 정도의 실무경험과 지식을 가지게 되면 자신의 작업장을 열어 여러 분야의 장인들과 공동작업을 할 수 있는 장인()의 단계가 되었다. 이들 중 탁월한 기하학적 지식과 솜씨를 지니면 건축가가 되어 하나의 큰 공사를 총괄하고 운영할 수 있었다. 일단 유명한 마스터들은 휘하에 많은 도제들을 거느리면서 자체적 길드를 형성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을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특정도시의 한 길드에 구애받지 않고 일이 있는[,] 그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나 다니며 활동한 것에 기인한다. 이 길드들이 한 공사장에 정착한 곳을 작업소(Lodge)라고 불렀으며[,] 각각 작업소들은 독립적 자치조직으로 내부적으로 엄격한 위계질서와 자체적 규율과 협약이 엄격하게 존재하였다. 이는 외부에 대해 철저히 배타적이었으며 한 길드의 단원이 되는 것은 그 협약을 준수하며 비밀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였다.(그림 10)
[??]고딕 동안 사용된 기하학의 종류에는 세 가지를 들 수 있으며 그 내용은 고등교육의 중심이 되는 이론(Theoretical)기하학, 일상생활에서 표면이나 부피를 측정하는 기술로 사용된 실용(Practical)기하학, 건축과정에 사용된 구법(Constructive)기하학으로 나눌 수 있다. 구법기하학은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가르쳐지지는 않았으며 학자들의 연구대상도 되지 않고 중세 장인들이 그들의 기술로 작업할 때 사용한 지식을 의미한다. [??] 고딕의 유명한 길드에는 기하학적 작도를 통하여 기준척(module)을 척도삼아 평면부터 단면까지 만들어 내던 방법은 고딕성당을 만들어 낸 비법이었으며 이것은 작업소내에서도 극소수의 건축가와 장인들만 아는 비밀로 지켜졌으며 그것이 당시 건축적 지식의 총체였다고 할 것이다.(그림 12)
이 지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밀라노성당의 건설과 관련하여 이태리인과 알프스 북부인들-프랑스기술자, 독일 건축가 등-을 중심으로 1386년부터 벌어졌던 기하학적 믿음에 관한 논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논쟁에서 표면적 쟁점은 평, 입, 단면의 기본 계획을 밀라노 성당 측에서 추진시킨 이등변삼각형에 근거한 안(Ad Triangulum), 정사각형에 근거한 안(Ad Quadratum)과 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그림13) 그 이면에는 풍부한 성당 축조 경험과 세련된 기하학적 지식을 지닌 북부의 건축가들이 제안하는 정사각형의 안을 자체적으로 확고한 조적기술의 전통을 지닌 밀라노인들이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바만을 받아들인 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환언하면 Sciencia는 건축물이 지녀야 하는 구조적이고 심미적 측면을 전반적으로 통괄하는 어떤 선험적 공식(a priori formulae)을 설계에 적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단순 기하학적, 대수적 공식을 도입하여 건물이 부분과 전체, 부분과 부분을 연결시키는 추상적 관계를설정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며 이때 똑같은 단순함을 지닌 합리적 공식이 두개 있다면 이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기술이 Ars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둘은 창조적 과정에서 필수불가분이며 고딕성당이 지닌 총체적 특성은 기하학적 그리드와 선, 점 등으로 결정된 각 부분이 실제로 지어지면서 이상적 공식과 실제의 경험법칙 사이의 타협의 결과로 어우러져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14) 이런 관점에서 중세건설자들에게 분명히 Theoria(Sciencia)와 Praxis (Ars)간의 균형을 취하는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다고 할 것이다.
5. 르네상스기
르네상스 동안 건축가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하면서 작업소의 중요성이 감소되었으며 고딕 시기의 작업소들이 점차 폐쇄된다. 건축가들이 중세 말 고딕건축을 구축해 내던 방법인 작업소의 비법에 관하여 책을 펴내면서 장인들이 사용한 기하학의 본질과 그것이 그들의 기술에서 어떤 기능을 하였는가를 자세히 보여준다.(그림12) 중세의 전통은 르네상스를 통해 단순한 경험적 비례를 지닌 형태론으로 전수된다. 정방형, 이등변 삼각형, 팔각형 등 르네상스기 동안 즐겨 쓰인 형태들을 통해 건축에서 고대, 중세를 거쳐 지속되어 온 기하학적 형태가 지닌 상징성이 지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15-17)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가 재해석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대는 C. Cesariano, D. Barabaro, Leon
B. Alberti, Francesco di Giorgio, Serlio(그림 15), A. Palladio등 많은 건축가들과 인문학자들이 비트루비우스에 대한 논고 및 주해들을 출판하였다. 이 저술들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십서가 다룬 건축의 영역과 개념들을 14-15세기의 관점과 필요에 의해 재해석, 재규정해 낸 결과물들이며 당대의 건축행위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이들 문헌으로부터 우리는 건축형태로 상징화된 본질적인 것들과 기하학의 관계에 대한 우주론적 의미를 찾아 낼 수 있으며 또한 그 이후로 건축에 대한 철학적, 개념적 기반을 제공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문헌들이 건축, 기술 등 다방면에 걸쳐 저술됨으로써 천재적 르네상스 만능인들이 넘치는 에너지로 만들어 낸 기술의 총체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도시국가들 간에 경쟁적으로 전쟁과 방어를 위해 많은 예술가겸 건축가들이나 엔지니어들을 고용하였다. 이들은 이태리와 프랑스까지 걸쳐 군주들과 교황, 왕들을 위해 활약하면서 상상력 넘치고 시대를 뛰어넘는 생각들을 다양하게 글과 그림으로 문집, 문서들을 통해 남겼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인물들이 죠르지오(Francesco di Giorgio)와 다 빈치(Leonardo da Vinci 등이다. 죠르지오는 시에나를 중심으로 15세기 활동한 건축가겸 엔지니어로 축성, 전쟁용 방어무기, 공격무기, 를 위한 다양한 펌프, 수차, 다양한 기어를 장착한 수레 등의 사례와 사용성과 등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글과 그림으로 풍부하게 남겼다.(그림18-20)
르네상스 후기인 16세기에 이르러서야 건축가 팔라디오가 건축 4서를 저술하면서 최초로 비트루비우스가 규정했던 기술 전반에 걸친 포괄적 영역이 아닌 현재의 건축개념에 근접하는 건축물에 국한하여 본인이 실측한 고대로마의 유적, 투시도, 자신의 설계작품 등을 위주로 저술하였다.
르네상스기를 거치면서 중세적 길드가 개인 아뜨리에화되면서 해체되고, 아카데미와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 점차 소멸해가고, 이카데미가 예술가들의 조직을 대변하게 된다. 이 과정은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며 17-18세기의 프랑스에서 가장 조직적이면서 체계적으로 일어나며 이 시기의 건축과 기술과, 예술과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6. 과학혁명 이후
건축을 과학적 태도로 이해하고 건축의 역사를 건축물의 역사와 동일시하게 된 것은 18세기부터 시작, 19세기를 거쳐 실증적으로 건축개념이 정의되고 건축의 각 분야가 전문화되면서 비롯된 것이다. 불과 두 세기 남짓 동안 과학적 개념이 건축에 적용되면서 건축을 통하여 합리적이고 도구적인 차원에서 기능주의적으로 건축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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