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1일 일요일

정신의 삶 1 -- 사유 (한나 아렌트/홍원표 옮김/2004년 2월)

자료: http://www.prunsoop.co.kr/nebok/booklis_sub.asp?b_code=jc012&b_part=j&gotopage=2



책소개
20세기 서구를 대표하는 여성 철학자이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연인으로도 잘 알려진 한나 아렌트의 마지막 저작인 《정신의 삶》 3부작 중 첫 번째 권 《사유》가 출간되었다. 
과거의 어떠한 전통이나 학파에도 구속되지 않고 비판적이고도 자유로운 연구활동을 해온 아렌트의 독자성이 빛을 발하는 저작이다. 
이미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 작업, 행위로 구성되는 활동적 삶의 역사를 기술했던 아렌트는 이번 3부작을 통해 단순한 이념의 역사가 아닌 인간 본연의 문제인 내면의 의식 흐름, 즉 사유, 의지, 판단으로 대표되는 정신의 삶을 추적함으로써 정치철학과의 연계성을 완성시켰다. 
소크라테스를 모델로 한 제1권 《사유》에서는 사유활동이 어떠한 방식으로 현상세계에 드러나며, 결국 현상세계의 일부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무사유’가 정치적 악행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이해시키고 있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 ‘정치활동’‘정신활동’이라는 상이한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기’ 방식으로 구성하고 상호 연계시킴으로써, 서구의 기존 정치철학에서 전통을 해체하고 새롭게 조명하여 어두운 시대의 실재를 밝혀내는 데 기여한 아렌트의 학문적 성과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모색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소개
한나 아렌트 
1906년 하노버에서 출생하여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다. 
1924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였으나 192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옮겨 야스퍼스에게 수학하였으며 1928년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나치체제의 등장으로 1933년 이후 프랑스와 미국에서 18년간 무국적자로 생활하였다. 
《전체주의의 기원들》을 출간한 1951년 학계로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이때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이후 정치철학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저서들을 출간함으로써 ‘진정한’ 정치, 정치의 고유성을 밝히는 데 헌신하고, 만년에는 ‘정신의 삶’을 연구하는 데 전념하였다. 
1975년 12월 ‘정신의 삶’ 3부작 중 마지막 저서를 구상하던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
주요 저작으로는 《전체주의의 기원들》《인간의 조건》《예루살렘의 아이히만》《혁명론》《과거와 미래 사이》《어두운 시대의 사람들》《폭력에 대한 성찰》《공화국의 위기》《정신의 삶: 사유/의지》《칸트 정치철학 강의》 등이 있다. 
미디어리뷰
악행을 부르는 생각없는 삶, 왜 그렇게 살까 
당신은 과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일이나 충실히 하면서 편안히 살아가는 삶은 엄청난 악행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20세기의 위대한 정치사상가인 한나 아렌트가 1960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아이히만은 히틀러 치하의 2인자인 힘러의 오른팔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유대인 학살의 임무를 “가장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수행했던 사람이다. 
당시 법정에 선 아이히만에게서 사람들이 보려 했던 것은 야수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가장이요, 자상한 남편이요, 충실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월급을 받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오히려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충격적인 아이히만의 모습에 아렌트는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이 아렌트로 하여금 『정신의 삶1-사유』를 쓰게 했다. 아이히만의 문제점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도무지 생각을 하지 않는 ‘무사유’라고 아렌트는 지적한다. 무사유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깃들 수 있는 악이다. 이를 아렌트는 평범한 악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검토가 없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렌트는 이 말이, “생각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뜻이라고 설명한다. 생각은 사물을 식별하는 인지작용이나, 문제를 푸는 계산능력과는 전혀 다른 정신적 기능이다. 생각 또는 사유 “자신과의 대화”이며,바람처럼 다가와 고착된 사고와 관습과 행위의 기준을 근본으로부터 흔들고 다시금 반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사유는 모든 ‘독단’에 큰 위협이 된다고 아렌트는 말한다. 사유는 물려 내려온 권위와 관습의 힘을 근원적으로 반성하게 하며, 그 속에서 유지할 가치가 있는 것을 가려내고 무가치한 것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사유하는 것과 살아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사유에는 삶이 동반된다” “삶 가운데 발생하는 일들의 의미는 생각 속에서 언어로 제공”되며, “정의와 행복과 미덕은 사유를 근거로 수립”된다. 
또한 아렌트는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은 생각이 없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악을 저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악행을 하느니 당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악행이 초래하는 내적 모순”을 견딜 수 없어 한다는 뜻이라고 아렌트는 설명한다. 그런데 생각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사유는 우리를 궁극적인 허무와 냉소로 인도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처럼 지식인이 흔히 빠지는 냉소와 허무에 빠지지 않았다. 
요즈음 우리의 탄핵 정국을 바라보면 아렌트의 말이 새록새록 새겨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렌트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집착하는 고착된 독단적 질서가 무사유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독단과 기존의 가치체계에 무비판적으로 몰입했던 사람들은 사유가 불러일으키는 생동감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가치를 대체할 새로운 독단을 요구하기 쉽다고도 지적했다. 우리는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이 쉽게 독재에 협력했고, 또 독재에 협력했던 사람들이 불합리한 전통의 수구적 집착에 쉽게 몰입하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수구와 독재에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의 근저에는 사유의 작용이 있다. “사유는 모든 독단을 위협한다.” 그런데 사유는 스스로 독단을 제시하지 않으며, 파괴된 독단의 대안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렌트는 “생각한다는 것은, 생활 속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는 매순간 새롭게 마음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위기의 순간에 우리는 늘 새롭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 또 판단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의견을 부단히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공동 행위를 통해 자신을 분명히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 아렌트의 정치사상의 요체이다. 서로 다른 계층, 직업, 성향의 사람들이 공유된 판단을 근거로 정치적 행위를 수행할 때,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적 삶의 필수 조건임을 발견하게 된다. 
사적 이익에 몰두하는 집단 행위는 정치가 아니다. 오히려, 솟구치는 비탄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동 행위, 이를테면 세종로를 메운 사람들과 함께함을 통해 즐거움으로 변화됨을 느끼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의 힘이라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이다. 이런 공동 행위는 소통가능한 정치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며, 바른 정치적 판단은 사유에 바탕을 둔다. 정치적 힘, 참된 정치권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어려운 아렌트의 문장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박수받을 만한 수고가 스민 아렌트의 『정신의 삶 1-사유』는 사유가 가진 이러한 정치적 의미를 우리에게 일러주는 책이다. 

-한겨레신문 책과사람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2004년 3월 2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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