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채 근거 없는 이야기가 진실로 돌변하는 경우가 참 많다. 무슨 음모이론처럼 고의적으로 없는 사실을 만드는 데 누군가가 성공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근거 없는 뜬소문이 떠다니다가 없던 일이 사실이 되기도 한다. 그 뜬소문이 입에만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신문과 자료상에 버젓이 실리고, 또 다른 매체를 타고 마구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 사례의 하나로 바로 "검은 월요일(Black Monday)"로 불리는 1987년 10월 19일의 미국 주식시장 붕괴에 얽힌 뒷이야기가 있다. 즉 스탠더드앤드푸어스 500(S&P 500) 지수선물이 거래되는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선물시장과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현물 주식시장을 연계시키는 지수 차익거래(index arbitrage)가 주가폭락을 초래했거나 부추겼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아마도 작년 여름에서 가을 경부터였던 것 같다.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와 함께 우리 주식시장이 흔들릴 때부터 여러 전문가들과 전문기자들의 기사 내용에 이 지수 차익거래를 유발하는 프로그램 매매가 1987년 검은 월요일 시장붕괴를 초래했다는 내용이 많이 실렸다. 그 논리는 이렇다.
(1) 주가 하락을 예상한 선물거래자들이 매도 포지션을 취하면서 S&P 500 지수선물의 시세가 떨어진다.(2) 지수선물이 현물 주식시장의 주가지수보다 낮아져서, 지수선물을 매수함과 동시에 현물 주식을 매도하는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NYSE에 쏟아져서 주가가 떨어진다.(3) NYSE의 추가적인 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지수선물이 다시 매도 바람에 휩싸인다.(4) 위 (1)과 (2)의 과정이 연쇄적으로 벌어지며 패닉을 악화시킨다.
그러나 이 내용은 논리로서는 맞지만, 1987년의 그 날은 이 논리대로 일이 전개되지 않았다. 그날 검은 월요일 당일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지수 차익거래로 매수된 지수선물 계약은 20,000 계약이었고, 이것을 현물 주식으로 환산하면 5천만 주에 해당됐다고 한다. 즉 월요일 당일 NYSE의 기록적인 거래량이었던 6억 500만 주 가운데 S&P 지수선물과 연계된 차익거래로 NYSE에서 매도된 주식은 그날 거래량의 10%에도 미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NYSE와 월 스트리트 증권가의 온갖 비난과는 달리, 월요일 NYSE의 총거래량 중에 90% 이상은 CME에서의 선물거래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통계는 나중에 진행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SEC)의 조사 결과와도 일치했다고 한다. (자료: 리오 멜라메드, 《영원한 트레이더》, 굿모닝북스, 2007년 8월, 김홍식 옮김).
위에 밝힌 출처의 책을 옮긴 필자가 당시 CME 회장이었던 책의 지은이를 두둔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일지는 몰라도, 그 통계만큼은 조작된 것으로 볼 수 없는 명백한 증거라고 본다. 위 통계마저 조작된 것이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사실 1987년 그 시절의 주식시장과 선물시장은 검은 월요일 당일처럼 대량의 거래를 지금과 같은 프로그램 매매로 소화할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못했다. 다음에 지은이 리오 멜라메드의 지적을 인용한다.
지수 차익거래는 바로 이 양 쪽(주식시장과 선물시장)의 거래가 진행돼야 가동될 수 있는 것이다. 지수 차익거래를 실행하려면, 다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현물시장의 주가지수를 알아야 하고,
둘째로, 매도 물량을 받아줄 현물시장의 매수자가 있어야 한다.
월요일에는 이 둘 다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분명했다. 지수 차익거래는 기능 장애로 작동될 수 없었다. ... 10월 19일 월요일 아침에 NYSE 개장 시점의 주문 불균형은 워낙 크게 벌어져서 그 전문중개업자들(specialist)은 S&P 지수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력 종목들 다수에서 시장을 조성할 수 없었다. 사실, 개장신호가 울리고 한 시간이 지났지만, IBM과 시어스(Sears), 엑손(Exxon)을 비롯한 다우지수 종목들 중 3분의 1 이상에서 거래가 체결되지 않아 시가도 형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제정신인 차익거래자라면 이런 상황에서 차익거래를 시도할 리가 없다. 그날 하루 종일 NYSE에서는 총 187개 종목의 거래 개시가 지연됐고, 7개 종목이 거래가 정지됐으며, 그 중 3개 종목은 거래정지 후 영영 거래가 재개되지 못했다. 10월 20일 화요일 오전의 대부분도 같은 상황이었다: 92개 종목이 거래 개시가 지연됐고; 175개 종목에 거래정지가 발생했다; 그 중 10개 종목은 거래가 재개되지 못했다. NYSE의 전문중개업자들은 월요일부터 대량 매도주문의 과부하를 짊어지고 비틀거리며 쓰러진 것이다. 브래디 위원회(Brady Commission)의 조엘 코헨(Joel Cohen) 법률고문은 “월요일부터 시장조성 능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 말고도 차익거래자들은 NYSE의 소량 시장가주문의 신속한 주문체결을 위한 전자주문시스템인 DOT(Designated Order Turnaround) 시스템—소량 시장가주문의 신속한 주문체결을 위해 장내 브로커를 거치지 않고 전문중개업자에게 직접 전달시키는 NYSE의 전자주문시스템—을 이용해 거래를 진행했다. 코헨의 최종적 보고서에는 “DOT 시스템은 넘치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시스템이 정지됐다. 주문은 적체됐고 주문 실행이 불안정해서 차익거래자들은 주문이 체결될 시점과 체결 가격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10월 20일 화요일에 NYSE는 지수 차익거래 용도의 DOT 시스템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같은 책)
이 내용을 본다면, 1987년 10월의 블랙먼데이와 그 다음날의 주가폭락에 지수 차익거래나 이를 이용하는 포트폴리오 보험이 미친 영향은 극히 미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그 무렵 지수 차익거래자들이 고작해야 DOT라는 시스템으로 주문을 냈다면, 지금처럼 자동화된 시스템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 시절 이야기를 사실과 다르게 서브프라임 위기에다 마구잡이로 붙여 대면서, 안 그래도 불안한 시장상황을 더 불길하게 비치게 만드는 일에 신문과 자칭 전문가들이 나서는 것일까? 그것도 이구동성으로 말이다. 그 분들 중에 그게 뭐 대수냐고 응답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1987년에 주가는 폭락했고, 지수 차익거래가 작동을 했든 안 했든, ‘만약 작동했다면, 하락 방향으로 시장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독자들이 오늘날의 시장을 이해하기 좋도록, 없는 사실을 꾸며대서 보충 설명’했기로서니 뭐가 문제냐라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일 문제일까?
가령, 20년 전에 수많은 사상자를 낸 대지진이 일어났다고 치자. 또 그 대지진 직전에 어느 숲의 나무에서 놀던 원숭이 수백 마리가 호수에 뛰어들어 떼죽음을 당한 현상이 있었다고 치자. 그런데 지금 그 숲의 원숭이들 수백 마리가 ‘다시’ 호수에 뛰어들었다고 ‘책임 있는’ 언론과 ‘제대로 알고 있다’는 원숭이 전문가들이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어댔는데, 알고 보니 그런 원숭이들은 ‘원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런 언론과 원숭이 전문가들은 사회에 무슨 기능을 보태주고 있는 것일까? 바로 사회혼란을 가중시키는 기능이다. 한편, 강세장 마지막 판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 똑같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시장이 끝도 없이 올라갈 것처럼 분위기를 뛰우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래서 이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시장에서의 군중행동과 심리는 바로 신문지상과 시장 언저리의 자칭 전문가들로부터 시작된다.
월스트리트의 전설 같은 이야기에 따르면, 조지프 케네디(Joseph P. Kennedy)와 버나드 바루크(Bernard Baruch)가 월스트리트의 만년 구두닦이를 자임한 패트릭 볼로냐(Patrick Bologna)가 전해주는 ‘따끈한 재료’를 듣고, 오히려 역발상으로 1929년 주가 대폭락 직전에 주식을 전부 팔아치웠다고 한다. 구두닦이가 시장이 더 가네 마네, 어느 종목이 좋네 마네 할 정도면 이미 맛이 갈 대로 간 시장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구두닦이는 월스트리트의 소문(이를테면 언론) 기능을 담당했다고 한다.
1929년의 구두닦이와 요즈음의 언론과 시장 전문가들을 대비해 보는 일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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