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4일 목요일

용어:// 성경 vs. 성서

※ 이하 발췌:

출처 1: '성서'인가 '성경'인가 (김인보 신부 지음 | 가톨릭뉴스 여기지금, 2011년 11월 23일)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시작되는 연중 마지막 구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지내고 있다. '성서 주간'이 제정된 이유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성경'이 지니는 중요성 때문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성경은 '책' 또는 '거룩하게 기록된 것들'이라는 뜻
그렇다면 '성경'이라는 말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성경'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biblia'에서 유래했다. 이는 '자세하게 기록한 쪽지'를 뜻하는 'biblos'의 복수형으로 '책'을 뜻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라틴어 'Biblia'로 파생되었으며, 그 영향으로 영어권 국가드은 'The Bible'로, 스페인어권에서는 'La Biblia' 그리고 독일어권에서는 'Die Bibel', 프랑스어권에서는 'La Bible'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모두 라틴어의 영향으로 '책'이라는 의미로 쓰인 이름들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영어로는 'The Holy Scripture', 독일어로는 'Die Heilige Schrift', 프랑스어로는 'La Sainte Ecriture'가 있다. 이 역시 라틴어 'Sacra Scripture'에서 유래한 것으로 '거룩하게 기록된 것들'을 뜻한다. 하지만 이 'Scripture'는 '책'의 의미와 더불어 성경의 '구절' 또는 '내용'을 언급할 때 주로 사용한다.
'성경'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할 무렵인 기원전 1500년경에는 오늘날과 같은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얕은 개울에서 주로 자라던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Papyrus) 줄기 껍질을 얇게 벗겨내 서로 엇갈려 겹쳐 놓은 뒤 그늘진 곳에서 말린 후 펴서 기록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파피루스에서 '종이'를 뜻하는 영어 'Paper'가 파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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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다른 이름, '성서'와 '성경'
몇 년 전부터 '성경'이라는 이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듣는다. 아마 그 동안 '성서'라고 불러오다가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2005년에 새번역성경을 출간하면서 '성경'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대한성서공회에서 1977년에 발간한 《공동번역 성서》 그리고 한국 천주교 전례 20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200주년 성서》 등 '성서'라는 명칭을 써 오다가 '성경'이라고 부르기 어색한 탓도 있을 것이다.
우리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과 중국 역시 성경에 대한 명칭이 다르다. 중국에서 ‘성경’(聖經)이라 부르는데, 이는 한자 ‘경’(經)의 의미에서도 드러나듯이, 계율이나 법률적인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에 대해서는 ‘경’(經)을 사용하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서적을 들여온 우리나라에서도 초창기에는 ‘성경’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1801년 신유박해 이전에 이미 <셩경직해광익> 또는 <셩경광익직해>라 불리던 우리말 최초의 성경이 있었고, 1892~1897년경 4복음서의 일부를 번역한 <셩경직해>가 발간되었으며, 1910년에는 불가타본을 번역한 한기근(바오로) 신부의 <사사셩경>이 출판되었다.
일본에서는 ‘성서(聖書)’를 사용한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성경(聖經)은 불경(佛經)을 뜻하기 때문에 혼란을 피할 목적으로 ‘성서’를 사용한 것이다.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불교용어 가운데 ‘성경대’(聖經臺)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불경을 놓고 읽는 독서대(讀書臺)를 뜻하는 것으로 ‘독경대’(讀經臺)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경'인가 '성서'인가
성서(聖書)와 성경(聖經), 그 논란의 중심에는 경전성(經典性)이 자리하고 있다. 개신교 진보 신학자 정강길에 의하면 “경전성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비판적 접근을 강조하는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라는 말을 쓰는 경향”(<미래에서 온 기독교>, 정강길, 에클레시안, 2007)이 있다고 설명한다.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성경’을 사용하게 되면 성경의 규범적 차원이 강화되고, 법(法)적 권위를 드러내는 불가침의 성역으로 성경이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사사로운 해석이 금지되고, 교회 권위에 의한 해석만이 유일한 해석으로 강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개신교의 경우에 ‘축자영감설’ 등 근본주의 교설이 힘을 얻을 수도 있겠다.
한편 ‘성서’란 이름을 쓰면, 정경(Canon)이란 뜻보다는 ‘역사적 산물인 책’의 의미로 쓰일 수 있기에, 독자들의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를 더욱 넓혀준다. ‘성서’는 종교적 권위에 앞서 의미있는 삶을 위한 인생의 참고서로서, <탈무드>처럼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친근한 느낌을 주게 된다. ‘성서’에 절대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성서’를 자유로운 탐구 영역으로 남겨두는 효과가 있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교회의 권위에 기여하고, ‘성서’는 세상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서(聖書)를 쓰든, 성경(聖經)이라는 명칭을 쓰든지 간에, 근본적으로 그 내용과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스도인이 삶의 ‘근본’(經)으로 삼아야 하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또한 계시를 기록(書)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서’와 ‘경’의 논란은 무의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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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주교회의에 제안할 것이 있다. ‘성서’가 ‘성경’으로 바뀐 지 햇수로 6년여 되었다. 하지만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성서주간’ 등 교회용어들은 대부분 ‘성서’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신자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위와 같은 명칭들도 개정하든가, 아니면 ‘성경’을 ‘성서’라는 본래 사용하던 이름으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다.


출처 2: "성경"이 맞습니까? "성서"가 맞습니까? (홍삼열 지음 | 산타클라라 연합감리교회, 2015년 9월 21일)
기독교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앙의 지침으로 삼는 책이 있다. 구약과 신약으로 이루어진 66권의 책이다. 이 책이 어떤 때는 성경(聖經)으로 불리고 어떤 때는 성서(聖書)로 불린다. 어떤 표현이 맞는 것일까?

이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
첫째는 성경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이다. “경”(經)이란 글자는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경전”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기독교 신자는 성서라는 표현 대신에 성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이다.
둘째는 성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맞는다는 입장이 있다. 영어 표현으로 The Bible 혹은 The Holy Scripture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경전의 의미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책(書), 그러나 역사성이 있는 거룩한 책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서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셋째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가 성서와 성경을 별 구분 없이 그리고 큰 문제 없이 지금까지 사용해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이 두 표현 사이에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이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 출판한 <성경전서>인데, 이미 이 이름 안에 “경”과 “서”가 함께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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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람들이 기독교 경전을 지칭하는 표현을 들으면 “성경”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부류와 “성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부류가 좀 다른 것 같다. 매일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일반 신도들은 성경이란 표현을 주로 사용하고, 초대교회의 다양한 문헌들 중에서 선택된 책으로서 기독교 경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성서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역사적으로 검토해 보면, 특히 신약성서의 예를 보면, 사도들이 썼다고 주장은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이 쓴 가짜 글들도 많이 있었다. 초대교회는 그런 글들 중에서 정말 사도들이 쓴 글을 식별해서 일정 숫자를 기독교 경전으로 확정하게 되는데 이것을 경전화(canonization) 과정이라 부른다. 그 덕분에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성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성서”라는 이름보다는 “성경”이란 이름이 교회의 권위 혹은 교회제도와 더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이란 명칭 안에는 하나님 말씀의 법적, 규범적 성격이 강해서 개인의 사사로운 해석이 금지되고 교회가 공식적으로 해석해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반면에 성서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는 성경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덜어진 “완벽한” 책이 아니라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면서, 교회의 공식적인 해석 이전에 어느 정도의 개인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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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 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버드 석학 하비 콕스의 바이블 가이드 (하비콕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2018년)
( ... ... ) 이 책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성서에 대한 '영적' 접근법이라는 관점에서 '성경 공부''성서학'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내 목적은, 비전문가들로 하여금 성서학자들의 때로는 위협적인 연구에서부터 성경 공부에 적용할 수 있는 관점을 얻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동시에 전문학자들 또한 성경 공부 모임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을 제대로 볼 수 있게끔 독려하는 것이다. 내 계획은 성서 속에서 몇몇 책을 골라서 논의하려는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책들이 성서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성경 공부와 성서학을 통합하는 방법에 대해 각 책이 가르쳐줄 수 있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나는 하나님의 실재가 궁극적으로 표현 불가하다고 믿으며 그래서 두말할 것 없이 사람의 성별로 남아낼 수 없다고 믿는다. 따라서 근자에 찬송시와 기도를 번역할 때 성별 중립적인 언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을 지지한다. 그러나 성서 본문의 단어를 인용할 때 '그/그녀'he/she라고 어색하게 쓰는 일을 피하기 위해 나는 원어의 용법을 따르려 한다. 이런 경우는 어색한 것보다 옛것을 선호한 것이다.[주]

[주] 양성(兩性)을 모두 아우르는 현대적 어법을 사용하지 않고 남성을 '기본'으로 보던 고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표현을 그대로 직역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양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인칭 대명사 '그'가 있으므로 저자가 걱정하는 이 문제는 본 번역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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