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9일 토요일

4부_ 국가인가 개인인가 (전문가의 독재)



역서 《전문가의 독재》 중에서, 4부 도입부


2012년 3월 7일 《뉴욕타임스》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언론인 매트 맥콜리스터의 기사, 「미국이 세계의 의사들을 훔쳐 가고 있다」[주]1를 실었다. 이 기사는 가난한 나라의 의사들이 부유한 나라로 떠나는 것을 한탄했고, 특히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떠나는 경우를 강조했다. 기사는 자기 고국을 뒤로 하고 미국 뉴저지 뉴워크의 대학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쿤즈 데사이Kunj Desai라는 잠비아 출신 의사의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었다. 데사이 박사는 미국에서 더 풍요로운 자리를 얻으려고 자기 나라를 떠난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맥콜리스터는 영국 의학 잡지 《랜시트Lancet》에 실린 한 소론을 긍정적으로 인용했는데, 아프리카의 의료 부문 노동자를 채용해 가는 것은 범죄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었다.[주]2 이 소론은 의사 ‘도둑질’을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의사를 훔쳐가는 사람들을 전범을 기소하는 국제기구인 국제 형사 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했다.

이러한 글에 흐르는 정서를 보면 명목적으로는 완전히 진보적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프리카인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입장이 아니다. 문제의 아프리카 의사들은 사람이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서 사람을 ‘훔치는’ 것은 오로지 그 사람이 그 나라의 재산일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한 범죄가 권리를 침해하다면, 그것은 권리가 그 나라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부자 나라에 사는 개인과 가난한 나라에 사는 개인을 불공평하게 취급하는 이중 잣대가 존재한다. 그런 이중 잣대를 보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드러난다. 부자 나라의 유능한 전문가들은 별다른 허가 없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 가령 언론인 매트 맥콜리스터가 스코틀랜드의 작은 신문사에서 퇴사해 《뉴욕타임스》로 전직하기로 결정했다고 해 보자. 그래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그를 ‘훔쳐갔다’고 주장할 리도 없다. 그의 전직 결정이 자발적인 것이니 맥콜리스터 본인도 전직에 대해 만족할 것이다.

이 일화는 발전 논쟁에서 국가의 특권이냐 아니면 개인의 권리냐 하는 문제를 잘 드러내 주는 출발점이다. 지금까지 국가의 특권이 개인의 권리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발전이란 문제는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거의 나라의 운명만을 주목하는 듯하다. 쉽게 말해, 우리는 잠비아 사람들보다 잠비아를 더 중시하는 것 같다.

4부에서 우리는 나라냐 개인이냐 하는 윤리적이고 실용적인 문제의 논쟁을 두 각도에서 살펴본다. 먼저 9장에서는 나라 간의 이민 문제를 국가와 개인의 관점에서 고려한다. 이어서 10장에서는 발전을 주로 나라 차원에서 분석하는 통상적 접근에 어떠한 함축이 들어 있는지 살펴본다. 물론 국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일까? 커다란 시야의 발전 논의에서 국가를 분석의 단위로 삼는 것을 의문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그로 인한 대가도 무시되고 있다.

이 4부에서 국가주의적 관념과 국가주의자들을 싸잡아 비판하지는 않는다. 국가주의nationalism도 부분적으로 자발적인 운동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정도 긍정적인 성과도 이루었다. 이곳에서 비판하는 것은 ‘국가주의적 강박증’이라고 부를 만한 과도한 국가주의다. 나라의 발전을 주관할 주된 담당자로 나서려는 정부의 입장에서 국가주의적 강박증은 아주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편리할 뿐 아니라 다수의 권위주의적 국가에 힘을 실어 주는 핵심 이데올로기 요소 중 하나가 그것이다. 또한 좀 더 섬세한 맥락에서 보면, 발전 전문가들이 상대할 만한 유일한 사람들이 해당 국가의 정부 대표자들이니 국가주의적 강박증은 발전 전문가들에게도 편리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만으로 국가주의적 강조점을 무조건 배격해서도 안 되겠지만, 정치적으로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 차원으로 분석을 제한하는 것도 용납해서는 안 될 것이다.




9장_ 집인가 감옥인가? 국가와 이민


잠비아 의사의 예에서 보듯, 발전 커뮤니티에서 이민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 은연중에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의 특권이 얼마나 강한지 잘 드러난다. 이 장에서 거론할 이민 문제는 앞서 3장에서 다룬 1920년대 중국에서의 발전 논의를 상기시키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그 시절 테크노크라트적 관점의 초창기 발전관은 중국인에 대한 미국의 이민 제한을 비호했다.


9.1 국가주의의 도덕성


나라에 대한 사랑은 고귀한 것일 때가 많다. 20세기에 여기저기서 새로운 나라들이 생겨났다. 다국적 제국(예를 들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나 오스만 제국)이나 식민주의 제국을 통치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지배에 맞서 단일한 국적이나 민족 혹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해방되고자 분투했던 결과다. 남의 땅을 지배하던 다민족 제국들이 해체됨에 따라 각 민족 집단이 자신의 나라를 가지게 되니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서로 다른 민족이 섞이지 않고 같은 민족 사람들끼리 일하게 되자 공공 서비스의 운영에서 협력하기(가령 공립학교에서 사용할 언어에 대한 합의)가 더 수월해졌다.

그러나 ‘나라 사랑’이라는 관념 자체도 선택을 전제한다. 개인들은 가족이나 지역 혹은 인종·종교·언어에 바탕을 두는 민족 집단 등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소속감이나 충성심 중에서 자신의 나라 사랑을 어디에 둘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그처럼 사람들이 선택하는 각각의 집단은 너무 많아서 각 집단마다 나라를 세우기는 불가능했다.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는 국가라는 단일한 단위로 정의된 충성심만 존재하기를 원했겠지만, 그와 다른 정체성을 선택하는 충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개인들에게 그러한 선택권을 주지 않을 때 국가주의는 권위주의로 변한다. 몇 가지 예에서도 잘 드러나는 사실이다. 20세기의 전쟁과 식민지 해방의 여파로 새로운 나라들이 출현했을 때, 나라의 정체성을 다수파 민족 집단으로 정의하는 국가주의적 지도자들이 출현했다. 신생국 정부가 소수 집단의 언어 사용을 금지하는 등 소수 민족 집단의 정체성을 의도적으로 억압하는가 하면(일례로 터키 지도자들의 쿠르드족 언어 금지), 다수파의 문화와 상충된 믿음을 가진 소수 집단을 박해하기도 했다(일례로 파키스탄은 국가 정체성을 수니파 이슬람교로 정함에 따라 소수파인 시아파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의 권리를 억압했다). 또한 지역이나 종족의 분리주의 운동과 비슷해 보이기만 해도 모조리 혹독하게 탄압했다(일례로 에티오피아 군대는 소말리아에 인접한 남부 지방의 소말리아 소수 집단을 탄압했다).

권위주의적 국가주의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부추긴 탓에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신뢰를 잃었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들의 발전에서 새로 활개 칠 터전을 얻었다. 가난한 나라들의 발전을 후원하는 부유한 나라들은 국가 차원의 발전 노력만을 강조했다(앞서 2부에서 보았듯, 이는 부유한 나라들의 외교 정책상의 필요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가난한 나라들의 국가 당국은 국가적 정체성을 여타 모든 정체성보다 우선시했다. 이 두 가지가 합세함에 따라 발전은 고의적이지는 않더라도 소수자 권리의 억압을 부채질했다. 국가의 집단적 복지를 다른 모든 것보다 중시한다는 미명하에 벌어진 일이다.

가난한 나라들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는 수많은 전쟁 범죄와 권리 침해를 저질렀다. 그 과정에서 투트시Tutsi족, 보스니아 이슬람교도, 쿠르드족, 티베트인, 다르푸르Darfur족과 같은 소수 집단들은 국가주의 다수파에 희생되었다. 메릴랜드 대학의 ‘위태로운 소수 집단Minorities at Risk’ 프로젝트에서 1950년 이래 어느 시기에 ‘위태로운 상태’를 겪었던 소수 집단이 283개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거의 다 부유한 나라에 속하지 않는 집단들이다.[주]3


9.2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이민


지난 수 세기 동안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와 종족 박해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민이었다. 독재자에게 억압당하는 종족 구성원들이 억압이 덜한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러한 예의 하나로 앞에서 뉴욕의 그린 스트리트 구역에 정착한 세이샤스 가족을 보았다. 18세기 포르투갈의 종교 재판은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의 초창기 형태였다. 그 국가주의란 포르투갈이라는 나라를 가톨릭 신앙과 동일시하는 것이었다. 세이샤스 집안을 포함한 포르투갈 유대인들은 포르투갈을 등지고 뉴욕으로 떠남으로써 그들 개인의 권리를 지킬 수 있었다. 즉, 이민은 혹독한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밸브나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그 후 1880년대에도 그린 스트리트는 이민자들의 안전밸브 역할을 했다. 러시아 차르 치하의 박해를 피해 유대인 노동자들이 이 동네로 대거 몰려들었다. 차르 제정은 러시아 사람을 동방 정교회를 믿는 사람으로 정의해 버렸다. 이 박해에서 벗어나려는 유대인들의 탈출을 보고, 1883년 엠마 라자루스Emma Lazarus가 쓴 시가 나중에 자유의 여신상에 새겨졌다. “... 모두 움츠인 채 자유를 숨 쉬고자 갈망하는 그대의 군중들을 내게로 보내라. ... 내가 황금빛 문 곁에서 불을 밝히리라!” 엠마 라자루스도 세이샤스 집안의 후손이었다. 제8장에서 보았듯 1840년대에 조카 벤저민 세이샤스와 같은 그린 스트리트 아래쪽에 살았던 세이샤스 네이선과 사라 세이샤스의 손녀가 그녀다.[주]4 이민의 역사에서 최대의 비극은 1930~40년대에 독일계 유대인들이 역사상 최악의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에서 탈출하려고 할 때 엠마 라자루스의 황금빛 문을 미국이 닫아버렸던 일이다.

1920년대 미국의 이민 제한 조치로 동양인 배제법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3장에서 보았듯 중국인들과 인종 갈등이 유발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발전은 고의적이지는 않더라도 테크노크라트적인 견지에서 미국의 이민 제한을 두둔했다. 심지어 이민 제한의 이유가 감정을 배제한 발전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인종적 적대감일 때에도 발전은 이민을 제한하는 편에 섰다. 이민 제한은 이민 희망자들 고국의 독재자들에게도 이로운 일이었다. 자국민이 이민으로 탈출할 길이 막히니 독재자들이 자기 국민들을 착취하기 더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민자들은 자기 고국의 국가적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기술과 노동을 남의 나라로 가지고 갔다. 그러니 고국에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민을 우려할 만도 하다. 그러나 발전은 이민 희망자 본인들의 복지를 계산에 넣지 않았다. 그 나라 국민들 모두가 잠재적으로 이민 희망자일 수도 있을 터인데, 발전은 이민 희망자들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고려하지 않았다.

발전은 이민자들의 개인 권리에는 등을 돌렸지만, 고국에 남는 사람들의 복지를 염려하는 인도주의와도 합세할 수 있었다. 테크노크라트적 발전의 천재성은 가치관이 거의 정반대인 집단들을 만족시키는 능력을 계속 발휘한다는 점이다. 테크노크라트적 발전은 타민족을 적대시하는 부자 나라 사람들을 대할 때는 이민 제한을 정당화해 줄 뿐 아니라, 바로 그 타민족을 걱정하는 부자 나라의 인도주의자들을 대할 때는 그 타민족 국가의 발전을 선물로 내놓는다.

억압을 피해 자신을 받아주는 탈출구로 떠나가는 이민자들을 볼 때 가장 심금을 울리는 사례가 민족 집단이다. 이 경우의 억압은 민족에 대한 억압이다. 하지만 이민에 대한 논의를 민족 억압에만 국한할 이유는 없다. 정치·경제적 권리의 박탈로 고통 받는 개인들도 억압자를 피해 그들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싶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듯, 압제적 정권에 반대하는 유명한 반체제 인사가 자유 국가로 정치적 망명을 하는 경우가 이러한 사례다. 하지만 탈출구를 왜 유명 인사들에게만 제한해야 하는가? 이민 문제에서도 발전은 자신의 권리를 누릴 곳을 찾아 가려는 개인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다. 단지 일정한 땅 조각들에 국한된 경제적 성과만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민자들은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이동한다. 즉 잠재적 소득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 같은 경제적 이유의 이민을 더 많은 권리를 누리기 위한 이민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권리의 박탈과 경제적 잠재력의 부재는 서로 공생적 관계이고 서로가 서로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 이유만으로 이민 가는 사람을 분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이민 동기를 특별히 안 좋게 봐야할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이민 문제에 대한 부자 나라 사람들의 이중 잣대를 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얼마나 존중하지 않는지 잘 드러난다. 부유한 서방 국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이유로 늘 이동을 한다. 같은 나라의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가기도 하고, 이 산업에서 저 산업으로 가기도 한다. 우리는 장소를 이동하여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할 권리가 우리들 누구에게나 있다는 원칙을 소중히 여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들의 잠재력을 실현하고자 국경을 넘어 이민 오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특별한 적대감을 갖는 것일까?

이러한 이야기의 논점은 세계 모든 지역이 이민을 완전히 개방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나라마다 이민 정책은 수많은 복잡한 요인을 고려해야 하고, 이 책에서 다 다룰 수도 없는 문제다. 여기서 논점은 발전이 영토라는 땅 조각의 경제적 잠재력 극대화만을 중시해 왔으며, 그러한 개념에 갇힌 발전이 개인의 권리에 적대적이었다는 점이다. 발전은 개인들의 이민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적대적이었다. 이러한 적대감은 이민이라는 것이 세계적 발전과 개인적 발전 모두의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가린다.


9.3 빈곤을 줄이는 이민


만일 가난한 어떤 나라의 빈곤 탈출 사례를 모두 통틀어 보니, 그중 82%가 단 하나의 빈곤 퇴치 사업 덕분이었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는가? 발전 커뮤니티의 반응은 아마도 이랬을 것이다. ‘아주 고약한 상황이었나 보다.’

그 나라는 아이티였고, 그 빈곤 퇴치 사업이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것이었다. 마이클 클레멘스와 랜트 프리체트가 그 계산을 해보았다(이 장의 많은 부분이 이들의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두 사람은 하루 소득이 10달러가 넘는 아이티 사람들을 주목했다. 하루 10달러면 통상적으로 국제적 빈곤선으로 취급되는 하루 1~2달러보다 안전하게 높은 수준이다(물론 미국의 빈곤선과 비교하면 3분 1 수준에 불과하다). 두 연구자는 아이티에 남아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떠난 사람들도 모두 통계에 포함시켰다. 그러고 계산해 보았더니, 빈곤선을 넘어선 아이티 사람들 중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은 82%에 달했고, 아이티에 거주하는 사람은 18%에 불과했다.[주]5

물론 계속 아이티에서 살 사람들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은 백번 지당하다. 하지만 발전은 아이티를 떠나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반대편의 극단을 달리는 듯하다. 발전의 사고방식은 사람들이 고국에 머물고 있을 때에만 빈곤 퇴치가 중요하다는 것처럼 보인다. 즉 ‘아이티’라는 이름의 땅에서 이룩한 성취만이 중요하며, 아이티의 개인들이 이룩한 성취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관은 미국의 반(反)이민 정서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반이민 정서를 가진 사람들로서는 분명히 환영할 만한 선물이다.

국가주의적 강박증도 이민이 ^세계적^ 발전에 가져올 긍정적 효과를 우리의 시선에서 가린다. 아이티 사람 하나가 적게 버는 곳에서 훨씬 많이 버는 곳으로 이동하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계 GDP는 그만큼 늘어난다. 국가 차원의 발전만 중시하고 세계 차원의 발전은 중시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9.4 열리지 못하는 유엔 정상회의


세계적 문제를 놓고 유엔 정상회의를 여는 게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다. 전형적인 유엔 정상회의는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즉, 무엇을 문제라고 공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행동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이며 인구며 환경에다 어린이와 노령화에 관한 유엔 정상회의가 열렸다. 또 빈곤 축소를 위한 새천년 발전 목표에 관한 정상회의도 열렸고, 그 밖에 유엔의 이러한 행동 유형에 적합한 많은 주제에 관해서도 정상회의가 열렸다.[주]6

정상회의 현안에 대처하기 위해 국제적 공동 행동을 추진하자는 것은 어느 한 나라 정부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님을 뜻할 것이다. 그런데 유엔 정상회의가 제시한 해결책이 별 성과가 없게 되면 대개 딱 하나의 해결책만 있을 뿐이다. 다시 또 유엔 정상회의를 여는 것이다. 나는 유엔 정상회의를 말만 많지 행동이 없다고 여러 차례 조롱했음을 시인한다.

어떤 국제적 현안이 유엔 정상회의에 오르기 위한 관문은 극히 낮지만, 이민이라는 주제는 좀처럼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만큼 이민이라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는 징후다. 정상회의를 열자는 빈번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이민에 관한 정상회의’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일찍이 1993년에 유엔 총회에서 이민 정상회의를 열자는 제안이 결의되었다. 그 후로 위에서 언급한 다른 주제에 대한 정상회의는 대부분 잘 열리기만 했다. 하지만 이민이라는 주제는 정치적으로 너무 어려웠다. 미국처럼 부유한 나라들에서는 이민이 불편한 토의를 유발할 위험이 있는 듯하다. 미국시민자유연합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은 그 불편한 사안을 미국의 몇 가지 법률이라고 지적하는데, 그 내용인즉 “이민자들에게 법원에 호소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무제한적이고 의무적인 구금을 강요하며, 국적을 이유로 차별하는 법률”이다.[주]7 우리가 제3장에서 다룬 초창기 권위주의적 발전에서 살펴보았듯,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동양인 배제법에 대한 거론을 회피하려고 했던 일과 비슷한 점을 엿볼 수 있다.

13년에 걸친 노력과 협상 끝에 2006년에야 이민에 관한 ‘고위급 회의high-level dialogue’를 열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유엔 정상회의는 이미 거의 전적으로 공허한 것이지만, 고위급 대화는 그보다 더 공허한 장치다. 이처럼 이중으로 공허한 결과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민 문제에 대한 국제적 이목을 조금도 끌지 않으려는 모조의 작업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성공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증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직업적으로 유엔의 발전 노력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또 이민에 대한 관심이 큰 나임에도 불구하고, 2006년 이민에 관한 고위급 대화가 열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 회의가 왜 열리지 않는지 알아보려고 하니 이민 문제 전문가인 마이클 클레멘스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말하면 안 되는 주제를 차단하는 일이 2006년 모종의 타협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 타협은 이민자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부유한 나라들─즉 미국, 호주, 캐나다, 유럽연합─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다. 아마도 이 나라들은 자기 영토에 들어오는 이민 후보자들을 자기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대우는지, 혹은 자기들이 타지역에서 끔찍하게 학대당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피난처를 거부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민자를 받아줄 나라들은 그들 자신의 이민 정책을 결정할 합당한 사유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이민과 발전에 관한 국제적 토론을 검열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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