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4일 목요일

[용어 메모] Corporatism

■ 자료 1: 코포라티즘(Corporatism): 이익집단간의 합의 도출 체계 [박주희, 연세춘추1999.05.03 ]

※ 발췌:

‘코포라티즘(corporatism)’은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행위와 사회구조를 연결시켜 주는 제도화된 체계’로 이해할 수 있으며 다원주의에 대응되는 모델로 제시된다. ( ... ... )


원래 중세 카톨릭 지배사회의 길드 개념에 연유하는 기능적 단체인 조합(corporation)에 그 구조적 근원을 두고 있는 ‘코포라티즘’은 무솔리니가 이탈리아에서 조합국가(corporate state)[? corporatist state]를 시도함으로써 발전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는 직능집단을 단위로 하여 노동자, 자본가, 전문직업인 등을 각종 직능조합에 가입케하여 국가의 통제하에 둠으로써 파시스트당에 의한 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 ... ... )

‘코포라티즘’은 학자에 따라 그 정의가 다양하기 때문에 개념 규정을 하기는 힘들지만 간단히 말해서 개인들의 다양한 선호와 이해관계를 이익집단별로 정리, 집계해서 하나의 사회적 선택으로 모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국가 코포라티즘과 사회 코포라티즘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는데 
  • 국가 코포라티즘은 국민 전체를 사회집단의 일원으로 재조직하여 국가이익에 부합하도록 강제하는 조직원리를 말하는데 반해서 
  • 사회적 코포라티즘은 이익집단 상호간의, 그리고 이들과 국가간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서 이해를 조정하고 사회경제정책을 형성·집행하는 체제를 말한다.
코포라티즘 체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의 코포라티즘은 사회적 코포라티즘으로 분류된다. 스웨덴은 수출의존적 소국개방경제였기 때문에 소수의 산업부문을 특화시켰다. 이것은 노·사·정간의 사회적 코포라티즘을 발전시키는 배경이 되었다. 대규모 경제에서는 사양산업의 고용감소가 다른 성장산업의 고용증대로 상쇄될 수 있어서 시장이 특정 산업부문의 충격을 흡수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소수 산업부문에 전문화된 소국경제에서는 특정 산업의 충격을 소규모 시장이 흡수하기 힘들다. 따라서 그러한 충격과 구조조정이 심각할수록, 그리고 소수 산업에 전문화된 소국경제일수록 시장조정에만 의존하기 힘들며 국가가 개입된 사회적 코포라티즘의 거시적 조정이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사회적 코포라티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용자 중앙조직, 그리고 노동조합 중앙조직과 국가가 각 구성원들의 선호를 대표하고 이해관계를 정리할 수 있고, 산별노조, 지역노조, 그리고 개별 사용자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을 억제하여 시장의 불확실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국가의 장기 프로그램으로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나타나는 코포라티즘의 형태는 ‘국가의 사회부문에 대한 권위주의적 통치양식’의 의미로서의 국가코포라티즘이다. 즉 우리나라의 코포라티즘은 국가주도적 산업화과정 속에서 경제영역에 대해 국가가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하에 이루어져 왔다. 우리나라는 시장기능에 크게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코포라티즘이 고도로 발달한 상태도 아니다. 중간 정도로 발달한 코포라티즘의 경우 조직부문이 비조직부문에게 경제적 충격의 비용부담을 전가시킴으로써 시장의 자원배분 기능을 오히려 왜곡시키는 역효과를 나타낸다. 우리나라가 좀 더 발전된 형태의 코포라티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협의 관계를 보다 중시하는 사회적 코포라티즘으로의 이행이 필요할 것이다.


자료 2: 코포라티즘(CORPORATISM) [성재민, sunshinenews.co.kr ]

※ 발췌: 

필립 C. 슈미터 등에 의해 발전되어온 코포라티즘은 “공식적으로 조직되고 비경쟁적이며 법적으로 인가되어 강제적인 이익단체가 어떤 특정의 기능적 범주 내에서 이익대표를 독점하는 대가로 국가당국의 감독하에 놓이게 되는 국가와 이익단체 관계의 한 유형”을 의미한다. 
  • 강문구에 따르면, 한배호는 코포라티즘을 조합주의(組合主義)로 번역하였는데, 이는 협동조합운동을 연상케 할 우려가 있고 생디칼리즘과 혼동될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코포라티즘의 유기체적(organic) 성격을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하다는 반론이 있다. 
  • 배영수는 담합주의로 부를 것을 제안했는데, 이는 암묵적으로 코포라티즘을 노동통제를 위한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편견을 안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 이영조는 코포레이션(corporation)은 몸을 가리키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일 뿐 아니라 그 원형은 교회(사회)의 조직을 사람의 지체(肢體)에 비유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이기 때문에 지체주의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 선한승은 합의주의라는 번역어를 제시했다. 
  •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 코포라티즘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내주는 ( ... ... )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요소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익집단들간의 경쟁에서 국가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만 하는가였다. 다원주의 아래에서 국가는 ‘중립적’(neutral)인 존재였으며, 네오마르크시즘에서 국가는 자본가의 이해를 반영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산업사회 안에서 국가가 중립자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또한 국가는 언제나 자본가 계급의 이해만을 반영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국가의 역할이 요구되었으며, 이는 국가와 이익집단간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되었다. 여기서 바로 국가와 이익집단의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서, 또는 후자의 도움을 얻어 정책결정과 실행을 하는 모델인 코포라티즘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 언급된 참고문헌: 강문구, 『한국민주화의 비판적 탐색』(당대, 2003), 23-32쪽; 이내주, <코포라티즘>, 김영한/임지현 편, 『서양의 지적운동 I: 르네상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지식산업사, 1994), 312쪽.

■ 자료 3: 코퍼러티즘(corporatism)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이익집단이 전국적으로 이익대표체계를 조직해 국가이익을 대변하면서, 그 대가로 이익공동체의 요구를 독점적으로 정책과정에 투입하는 이익대표방식.

조합주의라고도 한다. 1970년대 P.C. 슈미터가 국가와 이익집단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모형으로 코퍼러티즘을 적용하면서 부각되었다. 이익대표체계 내의 각 이익집단은 단일적, 강제적, 비경쟁적 성격을 띠며, 제한된 범주 내에서 기능적 전문성을 지닌다. 또한 지도자의 선출과 요구표명에 있어 국가의 통제를 수용하는 대가로 특정 범위 내에서 이익대표권을 독점한다. 코퍼러티즘은 크게 선진 자본국가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조합주의(societal corporatism)와 제3세계에서 주로 나타나는 국가적 조합주의(state corporatism)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다원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주장들을 효과적으로 묶어 국가의 안정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기된 것이라면, 후자는 불안정하고 민주주의가 덜 발달된 사회에서 한 정권이 다양한 계급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다스리기 위해 제시된 모형이다. 한국에서는 1998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수단으로 신자유주의적 코퍼러티즘이라 일컬어지는 노사정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자료 4: 조합주의(組合主義: corporatism) [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 ]

※ 발췌: (이)corporativismo. corporativism이라고도 함. 사회 전체를 국가에 종속되는 '조합'들로 구성하려는 이론.

이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와 고용주들은 정치적 대표기구의 역할을 하고 개인과 제활동을 통제하는 산업별·직업별 조합들로 조직된다. 그러나 실제로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조직된 '조합국가'는 경제집단들의 조정된 이해를 반영하기보다는 독재자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식민지시대 뉴잉글랜드 지방의 조합교회주의와 중상주의에서 조합의 개념이 드러나기는 했으나, 최초의 조합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후에 독일 동부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독일에서 사유재산분배론으로 알려진 이 이론의 주요대변자는 메테르니히 공의 궁전 철학자였던 아담 뮐러였다. 그는 프랑스의 평등주의와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을 공격함으로써 전통적인 제도들을 정당화하려고 했으며, 이 속에서 생산의 조정과 계급이익의 조화를 통해 주권과 신권을 요구할 수 있다는 근대화된 계급국가 개념을 끌어냈다. 이러한 국가의 계급은 대략 봉건적 계급과 일치했으나 사회생활의 구체적 기능을 통제하는 협동조합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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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파시즘의 도래로 조합국가의 이론이 실행에 옮겨질 기회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1919년 밀라노에서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동료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국민당 내 생디칼리스트측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파시스트들은 조합을 각 계급이 광범위하고도 조화롭게 경제적 생산에 참여하게 해주는 유용한 사회조직의 형태로 파악했다. 무솔리니가 조합주의의 원칙을 채택한 것은 중도 좌익과 생디칼리스트 내의 우익을 희생시켜 자신이 주장하는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연합과 조합들을 창설하는 실제적인 작업은 1922년 무솔리니의 로마 행진 뒤 바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기업가들이 노동자와 기업가들의 단일한 조합 신디케이트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이때문에 각각의 주요 생산분야에서 고용주와 고용인들이 각각의 연합 조합을 구성하는 타협안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2개의 조합에서 체결한 협약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과 고용주들을 규제할 수 있었다. 이렇게 조직된 연합체들은 최종적 권한을 지니는 정부의 협동조합부하에 통합되었는데, 이러한 조합국가를 조직하기 위한 헌법이 1926년 4월 3일 공표되었다.

조합주의의 주요 개혁목표였던 혼합 신디케이트의 구성은 1934년에 이루어졌는데,
  • 각 분야의 총 22개 조합은 노동협약의 조정뿐만 아니라 그 분야의 전반적인 이해관계 증진의 책임을 졌다. 
  • 각 조합의 상부에는 고용주와 피고용인들이 동등한 대표권을 갖는 위원회가 있었다. 
  • 이들 조합의 작업을 조정하기 위해 중앙조합위원회가 창설되었으나, 실제로는 정부의 협동조합부와 차이가 없었다
  • 1936년에는 조합위원회가 하원을 대신하여 국가 최고 입법기구로 소집되었다. 이 위원회는 823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 66명은 파시스트 당을 대표했고 나머지는 22개 조합의 고용주와 고용인 연합체의 대표들이었다. 이 기구의 창설은 조합국가의 법적인 구조의 완성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치조합들은 거의 기능을 못했고, 국가위원회도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한 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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