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5일 일요일

[자료: 글로벌 금융위기와 금융산업의 구조재편 中] 은행의 기원


지은이: 金 和 鎭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대학원 부교수)
출처: 『서울대학교 法學』 제51권 제3호 2010년 9월


※ 발췌: 

1. 은행의 기원

가. 상업은행과 이자

통상 ‘은행’(bank)이라고 할 때 상업은행(commercial bank)을 말한다. 은행법 제2조
제1항 1호는 “은행업”이라 함은 예금의 수입, 유가증권 기타 채무증서의 발행에
의하여 불특정다수인으로부터 채무를 부담함으로써 조달한 자금을 대출하는 것을
업으로 행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고, 3호는 “상업금융업무”라 함은 대부분 요구불
예금의 수입에 의하여 조달한 자금을 1년 이내의 기한으로 대출하거나 금융위원
회가 예금총액을 고려하여 정하는 최고대출한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1년 이상 3년 이내의 기한으로 대출하는 업무를 말한다고 한다. 즉, 상업은행업의
핵심적 구성요소는 ① 불특정다수인으로부터 예금(deposit)의 형식으로 금전을 수취,
② 금전의 이체(transfer)를 집행, ③ 대출의 집행 등 3가지이다.61)

14세기 메디치은행을62) 포함한 이탈리아의 은행들이 현대적 의미에서의 최초의
은행들이었다. 그 후 머천트뱅크가 생기고 상업은행업에서 오늘날 투자은행들이
하는 업무가 분가해 나오면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구별이 생겼다. 은행은 위와
같은 상업은행업무를 포함하여 금융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시장에서의 필요에 따라
추가하면서 발달해 왔다. 한 금융기관이 상업은행업무와 투자은행업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을 유니버설뱅크라고 특별한 것처럼 부르지만 사실은 은행의 원래 모습이 유니버설뱅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도이치은행, 스위스의 UBS 등 유럽의
대형 은행들이 이런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 채택한 것이 아니라, 원래의 은행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상업은행업은 이자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지구상의 모든 경제활동뿐 아니라
인류 생활의 모든 면을 지배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 금리다.63) 금리가 0%라면 아
마도 다른 인센티브가 있지 않는 한 누구도 남에게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을 것
이다. 즉, 자신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경제력을 보유한 주체에서 경제력이 부족한
주체에게로 돈의 흐름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가 원칙적으
로 이자를 금지했다.64) 15세기 무렵까지만 해도 이자의 징수는 교회법에 의하면
신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자를 받는 행동을 범죄로
규정했고 이에는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도 동의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
는 자는 교회에서 파문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세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회에서
파문을 당한다는 것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의미였으므로 현대인이 느끼는 것과는
천양지차가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고 가장 엄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상거래와 금융의 필요성은 그 때라 해서 없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교회
가 금지하는 이자를 사용하지는 않되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내는데 골몰했다. 투자은행을 포함한 현대의 금융기관들이 구사하는 다양한 금융
상품인 국채, 리포(Repo), 주택담보부증권 등등은 사실 그 기원을 교회의 이자징
수금지 회피수단에서 찾을 수 있다.65) 상업은행의 존재 근거가 되는 이자를 대체
할 방법을 찾아 현대의 투자은행이 구사하는 첨단 금융기법들의 기원이 생성된
것은 역설적이다.

어음의 할인(discount)은 미래의 금전가치를 현재의 가치로 환산하는 기법이다.
이는 사실상 이자를 징수하는 것과 같지만 이자의 징수는 아니므로 널리 활용되
었다. 즉, 100원을 빌려주면서 1년 후에 110원을 받는 행동은 사악한 행동으로서
금지되지만, 1년 후에 110원을 받기로 하는 문서를 오늘 100원에 판매하는 행동은
교회의 금지목록에 없다. 이는 오늘 날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Treasury Bill)의 기원
이다. 또, 한 달 후에 101원에 되사기로 약속하면서 오늘 어떤 물건을 100원에 판다면 그 결과는 한 달에 1%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돈을 빌리는 것과 같지만 이
또한 이자는 아닌 것이다. 같은 가격에 물건을 되사기로 약속할 수도 있다. 소 열
마리를 팔고 1년 후에 같은 가격에 되사기로 하되 그 사이에 출생한 송아지는 매
수인의 소유로 한다. 이 방법은 오늘날 투자은행들이 사용하는 리포(Repo)거래의
기원이다. 리포시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단기자금 시장이며 리포거래가 없다면
현대의 투자은행은 존재할 수 없다.66)

나. 머천트뱅크67)

현대적 형태의 투자은행은 미국 경제의 산물이다.68) 미국에서 본격적인 투자은
행이 출현한 것은 남북전쟁(1861-1865) 이후 대규모 산업화가 진행되면서였다. 이
투자은행의 전 단계가 유럽의 머천트뱅크다. 물품의 교역과 연계되어서 발생한 금
융을 머천트-뱅킹(merchant banking)이라고 부르며 ‘Merchant Banker’는 ‘Merchant
and Banker’에서 유래한다. 상인이 거래상대방에게 현금이 아닌 어음을 받는 순간
그 상인은 머천트-뱅커가 되는 셈이다. 물품의 거래와 관련된 신용을 창출했기 때
문이다. 이렇게 금융을 필요로 하는 상인들이 많을수록 금융을 그 자체 사업으로 하는 상인이 생겨난다.

이렇게 근대적 의미에서의 머천트뱅크는 무역금융에서 출발했으며 로스차일드와
베어링을 가장 오래된 머천트뱅크라고 부른다. 베어링(Barings Bank)은 1762년에
설립되었다. 베어링은 그 뿌리를 네덜란드에 두었으나 영국은행이다. 19세기 초엽에
베어링은 이미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은행으로서의 지위를 보유했다. 다른 금융자
본들과 마찬가지로 베어링도 혁명과 전쟁이라는 역사의 격동기에 급성장 했으며
특히 영국정부에 금융을 제공하면서 일약 최고 은행의 자리에 올랐다. 베어링의
유일한 경쟁자는 프랑크푸르트에 뿌리를 둔 로스차일드뿐이었다. 베어링은 프랑스
가 루이지애나 주를 미국에 매각하는 거래도 중개하였다. 1820년 이후에 유럽 금
융의 주도권이 로스차일드로 넘어가면서 베어링은 다소 조용해졌으나 최고 금융
가문의 지위를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 2차 대전 중에도 영국정부는 전비를 조달하
기 위해 베어링의 도움을 받았다. 전쟁 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성장으로 베어링의
중요성은 감소했으나 명성있는 은행 종가집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
어링은 1995년에 싱가폴 지점 직원이 선물거래에서 투기로 14억불을 잃으면서 단
1 파운드에 네덜란드의 ING에 인수되어 ING Barings가 되었다가 2001년에 250년
의 역사를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69) ING가 베어링을 회사 이름에서 떼내기로 결
정한 것은 베어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 득이 아니라 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한다.

로스차일드는 베어링의 경쟁자로 출발했다가 19세기 초에 유럽 금융시장을 장
악한 머천트-뱅크다.70) 로스차일드도 베어링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격동기에 왕실과
정부에 금융을 제공하면서 성장하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로스차일드가 이렇다
할 뉴스거리를 만들어 내거나 거대 금융기관으로서의 활동을 보인 바는 없다. 로
스차일드가 현대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 손이라고 느낄만한 활동은 없으나 이 가
문은 19세기 유럽의 금융시장에서 지존이었고 그 파워로 미국의 산업을 건설하였
다. 그 과정에서 현대적 의미의 투자은행이 탄생하였다. 즉, 투자은행들은 로스차
일드의 자금을 신흥 미국의 산업 발전으로 연결해 준 중개인들이었던 것이다. 로
스차일드의 이름은 아직도 유럽의 중형 투자은행의 브랜드에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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