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일 월요일

[자료] 역사적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 세계체계분석을 중심으로 (2001)

원출처: 경제와 사회 (2001년 가을호)
지은이: 백승욱 (한신대학교 국제학부)

※ 페르낭 브로델을 이해하고(혹은 응용하려는) 국내 견해들을 참고하기 위해 스크랩해둔다. 개인적 공부를 위해 부가 표기를 해가며 읽는다. 중괄호 {} 안은 이 독자의 메모다. 본래 텍스트를 보실 분은 꼭대기 자료 링크를 보시거나 원출처 잡지를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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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자본주의는 급격한 변동을 겪고 있다. 국내적으로 한국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끝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의 시대를 겪고 있으며, 20세기를 주도해왔고 1990년대의 새로운 황금기를 겪은 미국자본주의에도 여러 가지 위기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Brenner, 2000; 전창환, 2000).

냉전의 종료 이후의 변화를 놓고 한편에서는 이를 자유주의에 대한 적대세력이 소멸하고 자유주의의 영원한 승리가 도래한 ‘역사의 종언’이라고 선언하는 이가 있는가하면(Fukuyama, 1992), 다른 한편에서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현 상황은 역사적 자본주의가 ‘처음이자 유일하게 진정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며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임을 선언하는 이도 있다(Wallerstein, 2001: 50). 전지구화로 이야기되는 현재의 여러 특징에 대해서도 이는 비로소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처음 등장한 추세라고 주장하는 주류적인 견해에 반발해, 전지구화란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이는 이미 19세기말 더 큰 범위에서 진행된 사건들이 헤게모니 국가의 위기 속에서 다시 반복되어 나타나는 역사적 ‘기시’(旣視)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이견(Wallerstein, 2001: 272; Arrighi, 1999a: 242)1)이 존재한다.

우리가 현시기의 변화의 특징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변화를 좀 더 긴 역사적 좌표 속에 놓고 파악해볼 필요가 있으며, 어떤 것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특징들이고 어떤 것들이 역사의 반복인지를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를 장기 16세기 이래의 긴 역사 속에서 일정한 순환을 거치며 자기변신해 온 역사로 파악하려 한다. 그럴 때 자본주의는 하나의 이념형적 모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할 역사적 현상이 되며, 현재의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위기의 성격 또한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규명될 수 있다.

이 글은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해온 대표적인 접근인 세계체계분석의 시각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의 핵심적 특징들을 파악한 후 이것이 현시기 세계자본주의의 변화에 던지는 함의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하는데, 먼저 세계체계적 관점에서 제시하는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입장이 형성되는 과정을 브로델과 세계체계분석의 입장을 통해 살펴본 후, 이런 관점에서 20세기 미국 헤게모니 하의 세계체계의 변천과정을 검토해 보려고 한다.


2. 역사적 자본주의 I : 페르낭 브로델

페르낭 브로델은 세계체계분석의 이론가는 아니지만 그가 제시하는 다중적 시간대와 자본주의를 보는 삼층도식이라는 모델이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관점에서 근대세계체계를 분석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기 때문에 논의의 출발점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1) 다중적 시간대와 ‘모델’

브로델은 자본주의를 카멜레온과 같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신하며, 자본주의를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그것과 다른 특성들이 나타나면서 스스로에 대한 규정으로부터 계속 벗어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인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Braudel et al., 1987: 178).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규정할 수 없는 것인가? 이와 관련해 브로델은 역사 속에서 나타난 자본주의를 ‘모델’이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려 한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델이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는 추상적 구성물임에 비해, 브로델이 말하는 역사학의 모델은 시간지속과 공간적 범위 내에서 규정되는 역사적인 것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브로델이 말하는 다중적 시간대 {multiple temporality,..}라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브로델은 역사학자를 포함한 사회과학자들의 논의 속에 네가지 상이한 시간대가 등장한다고 이야기한다. 가장 짧은 것부터 나열하면[:]
  • 사건들의 시간인 단기, 
  • 두 번째로 중기이자 순환적 시간대인 콩종크튀르(conjoncture), 
  • 세 번째로 구조의 시간인 장기지속(longue durée), 
  •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실상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장기지속(très longue durée)이 있다. 
브로델은 사회과학자들이 이중에서 첫 번째와 네 번째에만 매몰되어 있었다고 보며, 그것이 사회과학의 위기를 발생시킨 중요한 원인중 하나라고 주장한다(Braudel, 1972).{1958년 아날에 발표한 논문 "역사와 사회과학: 장기지속"의 논지}

사건의 시간인 단기는 정치사가들이 주목하는 시간대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하나의 사건을 항상 다른 사건에 의해 설명하는 끝없는 인과의 고리에 빠져든다는 점이다. 사건은 늘 다른 사건을 통해 설명될 뿐이다. 여기서는 ‘더 중요한 사건’과 ‘덜 중요한 사건’만이 구분되며, 더 중요한 사건은 보통 눈에 더 띄는 사건,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건, 더 많은 기록을 남긴 사건 등이 된다. 각각의 사건들은 그 단기적 성격 때문에 사실상 시간의 지속 속에 있지 않으며, 다른 사건을 촉발시킨 후 그 시간의 지속은 중단된다.

이와 다른 한 극에는 초장기지속의 시간대가 있는데, 이는 레비스트로스의 시간대이고,  달리 말하자면 영구한 시간(eternal time)으로, 사실상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는 심층구조의 시간대이다. 시간대의 변화를 넘어서는 불변의 교통의 구조를 찾아내려는 레비스트로스의 노력에서 보이듯 사회수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런 분석의 시간대는 사실상 분석으로부터 역사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브로델은 이 두극을 배제하고 중기의 콩종크튀르와 장기의 장기지속을 사회과학의 유용한 시간대로 본다. 콩종크튀르는 주기적 변화를 보이는 시간으로, 인구변동, 물가변동 등 비교적 오랜 시간대를 가지고 상승과 하강의 순환을 그리는 시간대이다. 그런데 콩종크튀르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건의 시간대와 결합해 사건들의 연쇄로서 콩종크튀르의 형성을 설명하는 길과, 콩종크튀르를 그보다 더 긴 장기지속과 결합해 설명하는 두가지 길이 있을 수 있다. 브로델이 선택한 것은 이중 두 번째 길이다.2)

장기지속은 사실 모호한 말이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통해 지속되는 어떤 것이 있다는 것 이상을 말해주지 않는다.{cf. 구조를 발견하기 위한 출발점/시험대로서의 시간} 브로델에게서 장기지속은 기후나 지리처럼 자연적인 것들의 집합이기도 하고(《지중해》), 자본주의 자체가 장기지속으로 설정되기도 한다(《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모델’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통 브로델 역사이론의 중요한 두가지 핵심을 전체사와 문제사로 규정한다.
  • 전체사란 인간의 역사를 정치/경제/사회 등으로 하위분할 할 수 없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전체로서 서술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며,{cf. 전체사란 역사의 개념이 아니라 역사 기술에 대한 방법론적 요청이라고 보는 시각. CHENG-CHUNG LAI}
  • 문제사란 역사서술을 사건들의 내러티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의 질문이나 문제설정에 따라 구성되는 것으로 보는 관점으로, 브로델이 루시앙 페브르로부터 계승한 견해이다(Rojas, 1992: 189-95). 
역사서술을 이처럼 문제사로 규정하는데 있어 중요한 틀이 앞서 말한 브로델의 ‘모델’이다. 모델은 근본적으로 시간의 지속과 관련된다. 어떤 모델이 기록하는 실재가 지속되는 기간이 장기지속이며, 그 모델은 그 장기지속의 시간만큼만 가치를 지닌다. 모델에 따라서 장기지속의 기간이 달라지며, 장기지속에 따라 구성되는 모델도 달라진다. 따라서 특정 모델은 그것이 담고있는 장기지속의 시간을 넘어서는 실재를 설명할 수 없다. 브로델이 말하듯이 모델은 마치 배와 같으며, 시간의 물결을 견디지 못하고 장기지속의 시간을 넘어서면 이 배는 난파한다(Braudel, 1972: 32).

모델은 핵심적으로 장기지속을 통해 구성되지만, 첫째로 이런 장기지속은 콩종크튀르라는 중기적 시간대와 결합되지 않고서는 생명력을 얻을 수 없으며, 두 번째로 이러한 장기지속이라는 시간대는 반드시 그것이 작동하는 공간적 범위를 갖게 된다. 브로델이 설명하려는 자본주의와 관련하여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콩종크튀르를 통해 자기변신해가는 장기지속이며, 그것의 공간적 범위는 ‘세계-경제’이다.

(2) 삼층도식과 자본주의

이런 자본주의라는 모델을 통해 브로델이 설명하려는 시간과 공간은 13세기 이후 유럽의 ‘세계경제’이다.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한 브로델의 모델은 그의 ‘삼층도식’을 통해 좀 더 정교해진다. 삼층도식이란 경제적 현실을 세층위로 나눈 것이다.[:]
  • 맨 아래 층에는 불투명한 일상생활의 영역이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 속에 직접 포섭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의 영향 하에서 그 폭과 깊이가 달라지는 ‘물질문명’이다. 
  • 그 위에 있는 두 번째 층은 그 아래층에 비해 투명한 현실이자 교환의 영역인 시장경제이다. 이것이 투명한 이유는 여기서는 독점이 발생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장경제가 아직 자본주의는 아니다. 
  • 자본주의는 이 두 번째 층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상부구조이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와 달리 독점의 영역이고, 시장경제가 국지적 성격을 갖는데 비해 그 성격상 다국적이다. 자본주의는 남들이 모르는 지식과 기술을 독점하여 번성하며, 이 독점은 정치적 지원 없이 성립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 자리잡고 그 위에서 번성하지만, 이 시장경제의 교환과정을 왜곡시키고 그 질서를 교란시킨다. 흔히 자본주의의 성과로 돌리는 기술의 진보조차 대부분 시장경제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것을 자본주의가 이윤획득을 위해 차용한 것에 불과하다(Braudel, 1997a: 12-15; 1997b: 12-13, 323, 527; 1997c: 82, 864-65).
이 삼층의 경제라는 토픽이 말해주는 바는 자본주의란 경쟁에 기반한 시장경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반명제로서 독점이며, 바로 이 독점을 향한 대자본들 사이의 경쟁이 자본주의의 특이한 역사를 만들어 내는 기본적인 동력이라는 것이다. 그 함의를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자.
  1. 첫 번째로, 자본주의는 세계경제이다. 그것은 대자본가에 의한 원거리 무역의 독점에서부터 발생하였으며, 새로운 독점을 찾아 장소와 영역을 교체해가고 지리적으로 팽창하는 경향을 갖는다.
  2. 두 번째로, 경쟁하는 자본가들 모두가 독점을 확보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독점을 향한 경쟁은 승자와 패자를 낳고, 이는 자본가들 내에서도 계서제를 형성하게 된다. 이런 격차는 자본의 규모에 따라서도 나타나게 되며, 또한 지리적 집중이라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세계경제로서의 자본주의는 항상 다국적인 대자본이 집중되는 하나 또는 두개의 집중점을 낳는데, 이것이 바로 세계도시가 된다. 이태리 북부도시에서 안트워프, 암스테르담, 런던, 뉴욕으로 이전되는 세계도시의 역사가 바로 이런 독점과 독점의 중심지의 변천을 보여주며, 다시 말해 세계경제는 집중화의 경향을 지닌다는 것이다.
  3. 세 번째로 이런 독점의 형성과 집중은 정치적 지원없이는 불가능하다. 독점을 향한 경쟁은 정치와 경제의 융합의 경향을 낳는다. 세계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대자본들 사이의 독점을 향한 경쟁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 국가의 자본에게 유리한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지원의 유무에 따라 처해있는 조건에서 큰 차이를 낳게되고, 국가의 유리하고 효율적인 지원을 얻는 자본이 이 게임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대외적으로 뿐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잠재적 경쟁자들을 배제하고 독점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조건을 갖추치 못한다면, 세계경제로서의 자본주의는 유지되지 못하고 시장경제의 영역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논의할 때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다.3)
  4. 네 번째로 자본주의의 본질은 끊임없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독점을 향한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자본주의의 고유한 영역이란 없고,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은 그 탁월한 변신성에 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전문화가 아니라 다양화와 변신성이기 때문에, 상업자본주의에서 산업자본주의로 그 다음에 금융자본주의로, 또는 경쟁자본주의에서 독점자본주의로 단계를 거치며 발전해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더 높은 이윤의 영역이 변화함에 따라 고이윤의 중심은 생산과 유통과 금융의 영역 사이를 수시로 옮겨다니게 된다. 생산만을 특권화하여 자본주의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가 생산의 영역에 집중하게 된 것은 다른 부분에 비해 생산의 영역에서 더 높은 이윤창출이 가능해진 특정한 시기에 한정되며, 그 상황이 바뀌면 다국적 독점으로 규정된 자본주의는 재빨리 자신의 활동무대를 옮겨간다.4) 이 때문에 자본주의의 ‘역사’가 발생한다.

3. 역사적 자본주의 II: 세계체계 분석

세계체계 분석은 위에서 살펴본 브로델의 자본주의관을 상당히 수용하면서 출발하고 있다.5) 그뿐 아니라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계》와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특히 제 3권)는 상호작용 속에서 집필된다.6) 세계체계 분석은 브로델의 자본주의관을 수용하는 동시에 개별 민족국가가 아니라 단일 세계체계를 분석단위로 삼는다는 전제 위에서 역사적 필연으로서의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서의 자본주의, 정치와 분리된 영역으로서의 자본주의관을 비판하면서 출발한다.

자본주의의 출현은 역사적 필연이 아니었으며, 정치와 경제의 융합으로서 독점을 향한 경쟁으로서의 자본주의의 역사는 하나의 유형으로 귀결되지 않는 독특한 역사를 만들어 냈고, 그 역사는 축적의 중심의 변화와 그 속에서 위기의 발생과 극복, 그리고 그 지리적 외연의 팽창을 낳게되었다.

(1) 자본주의 필연성 신화의 극복

세계체계분석은 자본주의의 등장을 유럽 문명의 선진성과 진보라는 근거를 통해 설명하는 ‘유럽의 기적’론을 비판하면서 유럽에서의 자본주의의 등장을 역사적 우연이라는 맥락 속에서 설명한다. 사실 많은 논자들이 자본주의의 등장을 영국의 산업혁명을 통해 설명하며, 이 산업혁명은 다시 그에 앞서는 농업혁명(농민층분해)을 기원으로 삼아 설명되고, 이는 다시 그에 앞서는 봉건제의 위기로 설명되는 일련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변화를 촉발시킨 원인을 기술적 조건에서 찾건, 계급투쟁에서 찾건, 정신사적 조건에서 찾건간에 왜 다른 나라가 아니라 영국이었는가라는 식으로 제기되는 이런 문제제기는 왜 비슷한 조건들이 프랑스에서도 발견되는데 왜 프랑스는 아니었는가(Wallerstein, 1999a, 1999c), 그리고 영국보다 먼저 그런 조건들을 갖추고 있던 이탈리아는 왜 아니었는가(Aymar, 1982)라는 질문에 대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를 유럽 내의 개별국가가 아니라 유럽 전체로 확대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어떤 요소들을 뽑아서 유럽에 그런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출현할 수 있었다는 논지는 항상 그보다 앞선 시기 또는 다른 지역에 그런 요소들이 출현했다는 반증에 부딪히기 때문에, 왜 바로 그 시점에 바로 그곳에서 자본주의가 출현했는가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변이 되기 어렵다.

이에 대한 세계체계 분석의 답을 살펴보자. 월러스틴은 사실 원형적 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16세기 이전에 세계 도처에서 발견된다고 보고, 그런 것들이 심지어 국지적인 형태로 세계경제라는 모습을 띠고 있기까지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전의 이런 세계경제는 늘 세계제국 하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하였거나, 하나의 제국이 붕괴된 후 새로운 역사적 체계가 등장하기 이전에 일부 지역에 단기간 존재하였을 뿐 장기지속의 구조로 정착된 예가 없었다고 본다. 그러한 세계경제가 하나의 체계로 확대되는 것을 제어하는 내적 장치가 늘 체계의 수준에서 작동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장기 16세기에 유럽에서 이런 제어장치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자본주의가 자기발로 서게되었다. 즉 자본주의는 16세기 유럽에서 역사상 최초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문밖에서 틈을 엿보고 있던 자본주의가 이 공백기를 비집고 들어와 하나의 역사적 체계로 자리잡게 된 것이고, 그렇게 된 이유는 자본주의를 형성하는 힘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제어하는 힘이 현격하게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Wallerstein, 1992).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정착된 것은 필연적이라기 보다는 네가지의 콩종크튀르적 요소가 누적적으로 작용하면서 특이한 정세가 형성되어 자본주의적 세력을 제어할 수 없게된 공백이 발생하였고, 이 틈새에서 자본주의가 세계체계로서 공고화 된 것이라는 것이 월러스틴의 논지이다. 이 네가지 요소란 영주의 붕괴, 국가의 붕괴, 교회의 붕괴, 몽골의 붕괴를 말한다.

그런데 이상의 요소들중 처음 세 요소는 자본주의적 세력이 힘을 늘려갈 수 있는 우호적인 조건일 뿐 그 이상이 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 이전까지의 사회에서 이처럼 위기가 발생하고 지대에 기반한 재분배적 체계 내에서 생활하는 지배계급의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늘 새롭게 팽창하는 제국적 세력이 구체제를 정복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제국의 형성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당시에 문제가 되는 것은 유럽으로 팽창해오던 몽골제국의 갑작스런 붕괴였다.7)

이런 외부세력의 공백기를 이용해 유럽 내에서 이미 원거리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해 온 대자본가들은 그 세력권을 유럽전역으로 확장하였고, 이는 절망적 위기에 직면하여 그들의 적인 성장하는 부농을 분쇄하려는 영주들의 의도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많은 영주들은 새롭게 확대되는 축적의 기회를 이용해 사실상 자본가로 변신할 수 있었고, 분산적인 국가들을 자본축적을 위해 새롭게 조직해 이용할 수 있었다.8) 어떤 국가도 이런 시도를 누를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못했고, 한세기쯤 지난 후에는 외부의 어떤 세력도 이렇게 등장한 유럽세계경제를 굴복시킬 수 없게 되었다.

(2) 산업혁명이라는 신화

이렇게 등장한 자본주의의 작동과 관련해 다음으로 등장하는 신화는 (유일한) 산업혁명이라는 논지이다. 통상적인 주장은 19세기에 영국에서 면직물과 철강․석탄 산업에서 연이은 산업혁명을 통해 비약적 산업화가 일어나 영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농업에서의 혁명을 통해 형성된 근대적 프롤레타리아가 이를 위한 자유로운 노동력을 공급하였고, 이후 이런 과정 각 나라로 파급되어 한 나라씩 자본주의가 성립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우선 19세기의 영국 현실과도 다소 괴리가 있다고 보이는데, 홉스바움의 논의를 통해 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홉스바움은 영국의 산업혁명을 논하면서 우선 19세기에 성장의 가속화가 있었고, 이는 질적으로 새로운 것으로 역사상 최초의 것이었다고 산업혁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출발한다(Hobsbawm, 1984: 31-33). 그러나 이런 주장에 바로 뒤이어, 1780-1840년 시기는 단지 산업자본주의의 초창기였다고 다소 물러서는데, 맨체스터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기계화한 공장 생산은 19세기 후반기에 처음으로 나타났을 뿐이기 때문이다(66-67). 산업 혁명을 주도했다고 하는 방직 매뉴팩추어는 나폴레옹 전쟁 후까지도 조금도 기계화하지 않았고, 기술 수준은 상당히 단순했으며(54), 공장 노동자는 소수였을 뿐이다(54). 여기서 반자동화나 자동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나타났다(62). 그렇기 때문에 면직 산업은 철강산업 같은 중자본재 산업을 자극할 능력이 없었고, 면직 산업의 발달 이후 50년 정도 기간 동안 철강의 산업혁명은 없었다(65). 이런 문제는 농업혁명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우선 산업혁명은 토지에 대단히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하지만(91), 1750-1830년 생산성 증가가 기술 혁신에 의한 것은 아니고, 1830년대 말 이전에 산업혁명은 농업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99). 또 엔클로저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볼 때 농민이 토지에서 몰려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주장한다(94).

이런 난점 때문에 존스 같은 학자는 18세기의 직조기술과 중세시기의 기술상에 큰 차이가 없고, 증기기관은 사실 제조업 외부에 주로 이용되었고, 제조업의 동력은 전통적인 방식을 사용하였으며, 철의 이용에 비약적 증가가 없었고, 제조업의 전반적인 상황에서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음을 들어 산업혁명이 비약적 단절이라는 주장에 의문을 표시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빠른 경제성장과 17세기에 농촌으로 이전된 공업이 18세기 들어 다시 도시로 이전됨에 따라 나타난 현상들이 과도하게 강조된 것이 아닌가하는 주장을 편다(Jones, 1988: ch.1).9)

월러스틴 또한 18세기초 서유럽의 주요공업인 모직물에 왜 산업혁명이 없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목재가 풍부한 프랑스와 비교해 볼 때 영국에서 석탄산업이 발전한 것은 목재의 부족 때문이었고, 이런 점에서 영국보다 프랑스가 비용상의 우위를 점할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 전체는 아니더라도 북부 프랑스 지역에서 면직물 산업의 발전은 영국에 뒤지지 않았다는 점, 실제 산업혁명이라고 부를만한 기술상의 혁신은 1550-1750년과 1850년 이후에 일어났다는 점 등을 들어 영국에서 발생한 ‘유일한 산업혁명’(the Industrial Revolution)론을 부정한다(Wallerstein, 1999c: 43-56).

이런 주장은 19세기에 영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기술적, 조직적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에 영국에서 잇따른 기술적 혁신이 발생하여 이 때문에 영국이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그보다는 당시 세계경제에서 왜 집단적으로 그런 변화가 발생하였고 왜 특정국가로 높은 이윤을 낳는 경제행위가 집중되게 되었는지 분석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Wallerstein, 1999c: 56; 1994: 67-68). 산업혁명이 영국을 헤게모니 국가로 만들었다기보다는 헤게모니 국가인 영국이 하나의 산업혁명을 통해 어떻게 세계적 지배를 공고하게 만들 수 있었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아리기는 19세기의 영국을 우위에 올려놓은 것은 산업혁명이라기보다 차라리 산업주의로부터 해외 상업과 영토 팽창으로 중점을 전환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Arrighi, 1994: 209-10). 즉 영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드는 전지구적 상업망이 형성된 것이 영국 헤게모니의 기초로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이전 네덜란드 헤게모니 시기의 세계적 상업망과 구분되는 것은 아리기가 ‘생산비용의 내부화’라고 부르는 메커니즘이 형성된 것인데, 다시 말해 비유럽지역으로 확장되는 제국주의적 팽창전략에 따라 세계전역을 저가의 원료 공급지로 포섭하고, 이에 따라 본국에서는 생산활동을 자본의 통제에 종속시켜 낮은 생산비용으로 상품을 만들어 이런 외부의 원료 공급지에 판매하는 상업망이 형성된 것이다(Arrighi, 1994: 177). 산업혁명은 이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고, 그 때문에 영국 국내의 산업들간의 긴밀한 연관성 없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10)

이처럼 영국이 일단 전지구적인 식민지망을 형성한 이후 1840년대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향 속에서 철강과 석탄 산업에 투자되기 시작한 과잉자본은 유럽 대륙과 식민지의 철도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출로를 뚫고 나가 영국 헤게모니의 공고화에 기여하게 된다(Arrighi, 1994: ch.3).11)

(3) 헤게모니 교체의 역사

이상의 논의에서 이미 근대세계체계로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한 국가 내에서 형성된 요소들로서 설명될 수 없고 세계체계적 맥락 속에서 논의되어야 하며, 또한 각 시기 자본주의가 보이는 형태들의 차이는 헤게모니의 교체 속에서 설명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고 하겠다.

앞서 설명했듯이 독점을 향한 대자본들 사이의 경쟁은 그 후원자로서 각 개별국가들로 이루어진 국가간체계 내에서의 국가들간의 경쟁을 촉발한다. 장기 16세기에 유럽에서 세계경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자리잡은 후 국가들 사이의 관계는 어느 국가도 절대 우위에 있을 수 없는 국가간체계 속에서 성립되었고, 독점적 우위를 향한 자본간의 경쟁의 결과 특정 국가가 일정한 시기동안 상대적으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헤게모니 국가로 등장하였지만, 이 국가는 세계를 단일의 제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나아가지는 못했고, 다른 경합국들의 추적에 직면해 헤게모니의 쇠퇴과정에 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세계체계를 형성한 이후 세 번의 헤게모니 국가가 등장하였는데, 첫 번째는 네덜란드 헤게모니{암스테르담-브로델}로 그 정점은 1625-72년이었고, 두 번째는 영국헤게모니로 그 정점은 1815-73년, 세 번째는 미국 헤게모니로 그 정점은 1945-67년이었다(Wallerstein, 1983: 256).12)

월러스틴은 헤게모니를 헤게모니국의 기업이 농업 및 산업생산/상업/금융에서 모두 더 효율적인 경우라고 보아 각 부문에서의 효율성을 기준으로 정의하고 있는 반면(Wallerstein, 1983: 255), 그람시의 용어법을 따르는 아리기는 헤게모니를 모든 갈등적 쟁점을 보편적 수준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도덕적․지적 능력이라고 규정하고, 세계적 차원에서 이런 헤게모니를 형성시키는 물적인 토대를 새로운 축적체제로 보고 있다(Arrighi: 1994: 28).

헤게모니의 규정이 상이하기 때문에 월러스틴과 아리기 사이에는 헤게모니 사이의 이행의 동학을 보는 관점에도 차이점이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헤게모니의 교체를 상대적 효율성의 문제로 보는 월러스틴은 헤게모니국의 기술적 우위가 외부의 모방에 의해 줄어들고 헤게모니 국가의 국내의 임금의 상승으로 임금압박이 발생하며, 헤게모니 국가의 체계유지 비용이 증대하면서 전반적인 효율성이 줄어들고,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이것이 세계전쟁으로 귀결되면서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출현한다고 본다. 이에 비해 아리기는 월러스틴의 논지가 헤게모니 이행을 ‘외생적’으로 설명한다고 보는데, 아리기는 헤게모니국의 과잉축적의 결과 새로운 국가간 경합과 기업간 경쟁이 촉발되고, 국내외적 차원에서 사회적 갈등이 늘어나며, 세계적 권력구도가 새로운 형세로 재편됨에 따라 체계의 카오스13)가 발생하는 동시에 새로운 잠재적 헤게모니 지역으로 체계의 능력이 집중되고, 그 결과 새로운 축적체제와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어 체계가 새롭게 재구성된다고 본다(Arrighi et al. 1999: 24-30).14)

아리기는 여기서 더 나아가 헤게모니 교체의 동학을 정교화하기 위해 헤게모니의 상승국면과 하강국면을 나누어 전반기를 새로운 축적체제의 성장과 이윤율의 상승을 나타내는 ‘물질적 팽창’ 국면으로 보고, 후반기를 과잉축적에 따라 기존의 축적체제의 한계가 노정되면서 이윤율이 하락하는 ‘금융적 팽창’의 국면으로 본다. 헤게모니는 금융적 팽창 국면에 들어서면서 징후적 위기를 보이기 시작하며, 이와 더불어 새로운 잠재적 헤게모니의 물질적 팽창을 위한 새로운 축적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15) 이런 징후적 위기는 경합국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존의 세계질서가 붕괴되는 체계의 카오스에 들어서면서 ‘최종적 위기’에 돌입하게 된다.

세 번의 헤게모니의 특징은 아래 <표 1>에 제시되어 있으며, 이중 영국헤게모니로부터 미국 헤게모니로의 이행과정의 동학을 아리기 등의 논의에 따라 그려본 것이 <그림 1>이다.16)


4. 20세기의 자본주의

(1) 미국헤게모니의 형성

앞의 <그림 1>에서 보듯이 미국헤게모니는 전지구적 상업망을 갖춘 식민지 팽창에 기반한 영국적 제국주의 체제의 위기 속에서 등장하였다. 그것은 ‘거래비용의 내부화’라는 장점을 지닌 법인기업이라는 새로운 기업조직형식을 토대로 발전하여 1차대전을 거치면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된다. 미국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축적체제를 형성시킨 경제적 기반은 규모와 범위의 경제에 기초한 법인자본주의망(또는 경영자자본주의)이었다(Chandler, 1990; Arrighi, 1994; Dume´nil and Le´vy. 1999). 법인자본주의망은 대륙적 크기를 지닌 민족국가의 특성과 반독점법과 같은 정부의 제도적 지원에 힘입어 형성되었으며, 전장으로부터 분리된 지정학적 요소도 크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런 우위는 아직 헤게모니적인 것은 아니었고, 1차대전 후 미국은 전후의 국제경제질서를 주도할 능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은 스무트-할리 관세 법안에서 보이듯 오히려 보호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었다(Arrighi, 1999a: 230).

1930년대에 미국은 미국 헤게모니의 두 번째 토대라고 할 수 있는 고도금융에 대한 통제에 성공하게 되는데, 로즈벨트가 주도한 뉴딜연합이 그 사회적 토대를 형성하였다. 대공황의 원인을 고도금융의 투기적 행위 때문이라고 본 로즈벨트는 모건가로 대표되는 고도금융을 고립시키기 위해 모건가를 배제한 은행가/모겐소를 중심으로 한 재무성 관료/조직된 노동자/산업자본가 연합을 형성하여 뉴딜을 시행하였다(Helleiner, 1994:27-30). 뉴딜의 핵심은 고도금융을 정부 통제 하에 종속시켜 국가의 경제정책을 통해 국내 경제를 관리하며 중간계급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법인자본주의와 고도금융에 대한 뉴딜적 통제라는 토대를 가진 미국자본주의가 2차대전 승전 후 가장 앞서있던 자본주의국가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했다. 첫째는 19세기 영국 헤게모니와 달리 법인기업에 기반한 미국자본주의는 성격상 전지구적이지 않았다. 전지구적인 식민지 건설을 통해 값싼 원료를 공급하고 영국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을 판매할 전지구적 망을 건설해야하는 영국의 축적체제가 성격상 전지구적으로 팽창할 수밖에 없었음에 비해, 미국의 경우는 하나의 대륙이라 할 수 있는 국내적 시장을 갖추고 있고, 수직적 통합을 통해 원료의 조달에서 판매까지 통일시킨데다 부족한 원료가 있더라도 라틴아메리카라는 배후지에 법인기업의 자회사를 설치하여 조달할 수 있는 상태여서, 전후 세계경제를 복구하기 위한 전지구적 팽창이 기업 차원에서 신속하게 주도되기 어려운 상태였다. 두 번째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1931년 영국의 금본위제 폐기 이후 무너진 국제 금융질서를 복구하되, 투기적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통제하는 체계를 만들어내어 체계의 카오스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 내야할 필요가 있었다. 이 모두 미국 정부가 주도하고 세계적 동의를 얻어내야 하는 일이었다.

자유무역 체제를 건립하되 투기적 자본의 활동을 제한하겠다는 새로운 금융질서의 확립을 위한 노력은 브레튼우즈 체제로 귀결되었다. 초국가적인 제도에 힘을 실으려는 영국의 케인즈와 각국의 권한을 인정한 후에 국가들간의 협의체로서 상위의 기구를 두자는 미국의 화이트의 견해 사이에 대립이 있긴 했지만 양국 사이에는 국제자본 흐름을 통제하고, 새롭게 만들어진 국제기구에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자는데 대해서 합의가 이루어졌다(Panic, 1995). 그러나 자본통제에 대해 은행가들의 반대가 심했고, 의회 또한 이들의 영향 하에 있었으며, 뉴딜세력중 일부의 이탈 조짐도 보였고,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면서 화이트는 반대세력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국제 금융질서는 국가들 상위의 기구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지배적인 경제에 의해 관리되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다(Helleiner, 1994: 39-44; Panic, 1995: 47). 이처럼 초안에서 많이 벗어나긴 했지만 브레튼 우즈 체제는 고도금융에 대한 사적규제를 공적규제로 대치함으로써 고도금융에 대한 정부의 우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Arrighi, 1999a: 234).

브레튼우즈 체제의 발족 직후에 반대 세력들의 힘은 줄어들지 않았고, 브레튼우즈를 만들어 낸 미국 국내의 세력관계에도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처럼 불안한 브레튼우즈 체제가 자리를 잡게된 것은 냉전의 덕이었다. 자본도피의 급증으로 1947년 유럽이 직면한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자본도피를 막고 안정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마셜플랜이 브레튼우즈를 통해 설립된 두 국제기구(IMF와 IBRD)에 대한 반감을 지닌 미국 국내세력을 무마하는 대안으로 등장했다. 마셜플랜은 협력적 자본통제나 환율통제, 변동 환율제 모두를 적절한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는 미국의 국내세력들을 무마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Helleiner, 1994: 50-63). 냉전이라는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다면 미국 의회가 받아들일 수 있던 유일한 해외 부흥안은 사적 해외투자 뿐이었다(Arrighi, 1999a: 234). 냉전은 로즈벨트의 단일세계주의를 트루만의 ‘두 세계주의’로 전환함으로써 얄타회담에서 동의를 얻어낸 서반구에 대한 전후 부흥의 토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로써 미국은 전후의 세계를 자신의 이미지에 비추어 조성해내는 헤게모니 국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한편 하나의 세계주의에 기초한 전지구적 뉴딜을 대체한 ‘두 세계주의’는 새로운 국가간체계를 만들어냈다. 이 새로운 국가간체계는 영국헤게모니와는 상이한 축적체제에 기반해 있었는데, 전지구적 상업망에 기초해 영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어낸 식민지체제와 달리 법인자본주의의 초국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미국의 새로운 축적체제는 식민지체제가 아니라 초국적기업이라는 형태의 법인자본주의망의 확장을 통해 거래비용을 내부화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에, 식민지의 획득과 유지에 필요한 정치적 비용을 줄이면서 세계를 미국의 축적체제에 종속시킬 수 있는 국가간체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식민지를 토대로 한 전지구적 상업망 대신 초민족적 기업의 소비주의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과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조건 하에서 반공 권위주의를 지원한 것이 새로운 국가간체계 형성의 기반이 되었다(Taylor, 1995: 80-81). 이런 미국 헤게모니의 새로운 성격은 국가간체계상에서 보자면 유엔이 창설되었지만 총회가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에 그 힘이 집중되었다는 양면성에서 드러났다. 새로 독립하여 국가간체계의 일원으로 세계경제에 편입한 나라들에게는 민족경제적 발전의 길이라는 새로운 모델이 중요해지고, 이에 따라 ‘발전주의의 신화’가 20세기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기초를 형성하였지만, 반면에 ‘종속’이라는 새로운 쟁점이 등장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중성을 반영한다.

(2) 미국헤게모니의 위기와 금융적 팽창

실제 집행과정에서 원안이 상당히 변형된 브레튼우즈 체제는 고도금융을 통제한다는 핵심 목표는 관철시켰지만, 금-달러본위제에 입각하여 지배적 경제인 미국의 정책에 따라 전후 금융질서를 수립하게 됨에 따라 이 기반이 되는 달러의 안정성이 깨어지면 국제 금융질서 또한 붕괴할 우려가 있는 취약함을 안고서 출발하였다. 영국을 배경으로 금융자유화의 시도를 펴나가는 고도금융세력은 1960년대 팽창한 유로시장에서 부활을 위한 공간을 찾아냈고, 또 한편 1947년 하이에크를 중심으로 결성된 몽페를랭 협회는 이들을 위한 신보수주의적 경제이념을 확산시키고 있었다(Helleiner, 1994: 66). 출발부터 브레튼우즈체제에는 많은 균열의 요소가 담겨 있었다. 

균열은 1967-73년 시기 미국 경제의 이윤율이 하락하여 미국헤게모니가 물질적 팽창에서 금융적 팽창으로 넘어가는 조짐이 나타나면서 분명해졌다. 앞의 <그림 1>에 비추어 이러한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의 양태를 살펴보면 네가지 측면이 관찰됨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세계경제 내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던 절대적 우위가 손상되면서 나타나는 경쟁의 격화와 미국의 지위의 하락이다. 두 번째는, 과잉축적의 위기가 나타나면서 세계의 과잉자본이 미국으로 집중되면서 금융적 팽창이 가속화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국가간체계상의 변화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사회적 갈등의 고조이다.

첫째로 미국경제의 지위의 하락은 달러의 위기로 나타났다. 미국 경제에 과잉축적의 위기가 나타나면서 유동화폐가 증가하여 환율과 이자율의 변동폭이 커졌으며, 오일가격 상승에 따라 그 경향은 더욱 심화하였다. 이윤율이 하락하고 금융시장이 팽창하자 자본의 수익성은 더욱 감소하였고, 자본은 거의 무상재 수준으로까지 전환되었다(Arrighi, 1999a: 237-38). 미국은 1971년 금창구를 폐쇄하였고, 1974년에는 자본에 대한 통제도 폐지하였으며(Gowan, 1999: 19-22), 이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는 종결되었다. 미국은 금-달러 본위제를 폐기하고 순수 달러 본위제로 전환하였으며, 미국은 1970년대 초 경제위기를 미국이 지닌 화폐발권의 특권을 발휘하여 극복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특권은 곧이어 사적달러와 공적달러의 공급이 증가하자 국제수지 적자국들이 줄어들고 은행간의 대출경쟁에 따른 은행의 부실화를 낳아 1978년경이 되면 세계화폐로서 미국의 달러의 신뢰성의 위기가 발생하게 된다(Helleiner, 1994: 240).

두 번째로 이런 1970년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과거의 역사에서도 나타나듯이 ‘경이적 시기’인 벨에포크 하에서 금융적 팽창을 낳는다. 이전의 벨에포크의 시기처럼 미국경제는 국가의 지원 하에 금융적 팽창을 주도하게 된다. 전지구화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와 달리 이런 금융적 팽창 하에서 국가의 힘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그 강조점이 변화할 뿐인데, 국가는 이른바 ‘탈규제’라는 명목하에 과거 축적체제의 핵심적 제도들을 변화시키는데 주도적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17)
볼커 플랜과 더불어 시작된 1980년대 미국경제는 사적 고도금융에 대한 공적 통제라는 뉴딜과 브레튼우즈 체제의 원칙을 포기하고, 정부가 사적고도금융에 대한 경쟁자에서 가장 믿음직한 지지자로 전환되는 계기였고, 이는 이후 탈규제의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에 따른 변화를 살펴보면, 첫째로, 케인즈주의를 폐기하고 고도금융의 이해관계를 수용한 계기가 된 볼커 혁명은 강한 달러를 회복하기 위해 이자율을 인상하고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세계의 과잉자본을 미국으로 집중시켰다. 두번째로, 미국의 법인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켜온 핵심적 틀인 반독점법의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기업간의 인수․합병을 위한 우호적 조건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주식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증대시켜 단기적 투자의 붐을 형성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세번째로는 전지구적인 자본의 자유이동과 금융자본 투자에 대한 안정적 회수를 확보하기 위한 국제적 틀의 마련이 시도되어, 그 전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서 사실상 미국 정부의 주도권 하에 가려 실질적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IMF/IBRD/GATT 기구를 재활성화하되, 이것이 사실상 뉴딜적 자유주의의 프로젝트를 폐기하는 추동자로 작용하였다.

미국으로 집중된 자본은 미국 내의 과잉자본과 맞물려 거대한 금융적 팽창을 일으켰다. 뮤추얼펀드가 등장하고, 상이한 금융 영역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형태의 증권과  헷지펀드가 등장한 것 등이 이런 금융화 국면의 특징을 이루고 있다(Gowan, 1999: 54).18)

그런데 세 번째 국가간체계의 변화와 관련하여 1980년대 벨에포크의 금융적 팽창의 국면은 미국이 세계체계 내에서 지닌 독특성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적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특이하게 나타난다. 이는 자본이 쇠퇴하는 헤게모니 국가로 재집중되고, 이것이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금융적 팽창의 국면이 발생하면 새로운 투자처를 향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의 경향과 헤게모니 국가의 영토적 토대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여, 헤게모니 국가의 금융화한 자본이 오히려 새로운 헤게모니 경합국의 성장의 토대를 형성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네덜란드와 영국 헤게모니의 쇠퇴기의 역사적 경험이 그러하였다. 이에 비해 1979년 볼커 플랜에서 시작하여 레이건하의 제 2의 냉전과 클린턴의 ‘신경제’에 이르는 과정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중심성에 기초해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우위를 앞세워 세계 여타의 지역의 희생을 대가로 전지구적 자본을 미국으로 집중시키는 형태로 나타났다.

레이건은 미국으로 재집중되는 자본력에 힘입어 대대적인 마지막 ‘군사적 케인즈주의’의 시도인 제 2차 냉전을 벌여 어느 국가도 미국의 군사력을 따라 잡을 시도를 벌일 수 없을 만큼 군사력 수준을 벌여놓았고, 그 결과 냉전 하에 국가간체계를 지탱해 온 다른 한 기둥인 소련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한 세기 전의 벨에포크 시기의 영국의 과잉자본은 새로운 헤게모니를 두고 경쟁하는 유럽의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에 비해, 1980년대 벨에포크 시기의 과잉자본은 헤게모니 국가에 전지구적 군사역량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이는 향후 체계의 위기가 발생하는 형태가 과거와 달라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Arrighi, 1999a: 243-45).

1990년대 들어 군사적 케인즈주의에 기반한 자본의 전지구적 집중 방식은 폐기되었지만, 월가를 중심으로한 신자유주의 하에서 세계의 자본은 여전히 미국으로, 특히 미국의 증권시장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반대 측면은 미국으로 자본이 과잉집중되면서 새로운 축적의 중심지의 후보지역들이 계속적인 위기를 겪는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새로운 축적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동아시아 지역을 희생시켰는데, 1980년대초 미국 재무성 채권에 거액을 투자한 일본 자본은 그 후 플라자 협약으로 엔화가 폭등하면서 엄청난 손해를 보았고, 채권의 회수에 어려움을 겪게되어 일본의 장기불황을 낳게되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 헤게모니 하에서 새롭게 부상한 경쟁자인 일본이나 독일 모두 미국의 시장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특성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이 되면 일본과 유럽의 경기침체가 세계경제의 우려를 낳게되고, 미국은 여기에 월가의 요구도 반영하여 1995년에는 ‘역 플라자협약’이라고 부르는 방향으로 전환하여 달러를 평가절상하였지만, 이런 강한 달러 정책은 일본의 장기불황을 개선하기 보다는 일본 등 해외 국가의 자본을 다시 미국으로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점차 미국의 금융화의 거품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이른바 미국의 ‘신경제’는 첫째,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이윤율이 다시 상승시키는 측면이 있지만(Dumenil, 1999), 둘째로, 기업들이 신규투자보다는 은행차입으로 자사 주식을 매입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현상이 나타나며, 셋째, 가계신용이 팽창해 은행저축보다 가계차입이 커지는 과소비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넷째, 1995년 이후 이윤율의 상승속도에 비해 기업의 주식평가 가치가 훨씬 빠르게 증가해 양자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으며, 넷째, 정보과학기술 등의 새로운 투자부문의 성장은 이런 과열된 주식시장의 팽창과 긴밀한 연관 하에 있기 때문에 위기의 해결이기보다는 위기의 지연으로 작동하고 있다(Brenner, 2000; 전창환, 2000; 이병천, 2001)19).

미국헤게모니 위기의 네 번째 측면인 사회적 갈등의 증폭을 살펴보면, 금융화국면 하에서 뉴딜적 자유주의를 포기한 신자유주의가 주도함에 따라 사회적 양극화와 국가간 양극화는 점차 증가하게된다. 중심부 지대에서 미국의 우위 하에 유동자본을 놓고 벌어지는 경합이 격화되면서, 남반부의 국가들은 더 이상 냉전하의 전지구적 뉴딜의 상대적 보호를 박탈당하고 사실상 배제된 지역으로 전락하여 민족경제적 통합력을 상실하고 끊임없는 내전의 굴레로 떨어지게 되었다(Chossudovsky, 1998; Wallerstein, et. al., 1999: 192-215). 민족국가는 반주변이나 주변부 국가들에서는 더 이상 ‘발전주의’ 이데올로기를 지탱할 수 없는 취약한 구조로 드러났고, 중심부 국가들 내에서는 끊임없는 배제의 선을 양성하는 위기의 구조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점차 지구적인 자유주의의 위기로 증폭될 전망이 크다.


5. 맺음말

역사적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역사를 검토한 후 우리 앞에 놓여있는 쟁점중 하나는 미국의 헤게모니 이후 세계질서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헤게모니의 형성을 통해 자본주의의 새로운 축적의 순환이 재생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떤 국가간체계와 축적체제 하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가능할 것인가, 그렇지 아니면 구조적 위기가 계속 심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20세기 세계경제에서 미국 자본주의가 차지한 절대적 우위 때문에 현재의 이행 과정은 매우 특이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와 금융력의 절대적 우위에 입각해 미국은 외형적으로 변영의 시기에 들어서 있고 새로운 생산영역의 개발도 선도하고 있지만, 반면 유럽이나 동아시아 등의 다른 경쟁지역이 이를 대체해 새로운 축적체제나 새로운 국가간체계의 형성을 주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현재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금융적 팽창은 세계경제 전체의 불안정성을 높일 뿐 아니라 그 중심인 미국 경제의 불안정성도 높이고 있다. 세계가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고, 세계의 자본이 미국에 투자되어 있는 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심각한 위기가 발생한다면 그 파장은 20세기초 영국이 여타 세계에 미치는 영향과 같은 것이 될 수는 없다.20) 

미국 경제의 미래의 불투명성은 동아시아의 미래도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하나의 지역으로서 동아시아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생산의 중심지이자 투자처로 남아있음은 분명하지만 이전처럼 단일의 헤게모니 국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헤게모니로 부상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하겠다.21)

국가간체계의 문제로 나아가 보면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미국이 군사적으로 절대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현재의 헤게모니 이행 국면에서 미국에 대한 경쟁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는 이전의 체계의 카오스에서와는 달리 누가 미국의 동맹자가 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고, 당분간 중심부국가 사이의 대립은 가시적이지 않을 듯하다. 그보다 큰 문제는 20세기에 민족국가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국가들이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하에서 쇠락의 조짐을 보이면서 이들을 지탱해온 발전주의 신화의 근본적인 결함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고, 이는 큰 틀에서 보면 현재의 국가간체계를 지탱해 온 자유주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냉전이 종결되고 신자유주의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편에서 미국의 글로벌 뉴딜의 정당화 근거가 사라졌고, 빠른 속도의 자립적 공업화의 길을 통해 반주변부로 상승하였던 사회주의적 길이라는 대안도 사라졌다. 이는 국가 역량의 양극화를 낳고 있고, 주변부로부터, 그리고 중심부 국가 내부로부터 민족국가의 사회적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폴라니는 영국 중심의 ‘백년 평화’가 무너진 후 생겨난 19세기적 자유주의의 위기 하에서 1920년대에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양자가 잇달아 무기력을 드러내고 파시즘이 나타나게 되는 사회적 맥락을 보여주었다(Polanyi, 1957). 이 위기 속에서 파시즘, 뉴딜, 사회주의라는 세가지 대안적 길이 등장하였던 것이 20세기 초의 정치적 상황이었다. 이에 비해 20세기 말 이후 자유주의 위기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세가지 대안적 길 중 뉴딜과 사회주의라는 두 가지 길을 몰락시키면서 출발하였다. 1920년대와 마찬가지로 21세기 초에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는 번갈아가면서 위기 관리의 무능력을 노정하고 있다. 그럼 우리 앞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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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

1) 관점은 상이하지만 Hirst and Thompson(1999)도 이런 주장을 펴고 있다.

2) 무엇을 콩종크튀르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관점을 지닌 논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브로델은 50년 주기의 콘드라티에프 순환을 콩종크튀르로 보며 그보다 더 긴 시간대를 가지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변화하는 로지스틱스를 장기추세로 파악한다(Bruadel, 1997: 90-102). 월러스틴은 이를 수용하되, 로지스틱스의 변화를 헤게모니의 주기로 파악하고, 이것과 장기추세를 구분한다(Wallerstein, 1984). 이에 비해 아리기는 콘드라티에프나 로지스틱스에는 그 동학을 설명하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보아 거부하고, 대신 헤게모니의 변화를 중심에 놓고서 이에 따라 나타나는 축적의 체계적 순환을 강조한다(Arrighi, 1994: 7).

3) 그렇다고 해서 기능의 면에서 국가와 자본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해외무역의 성장과정에서 군사적 기능이 분리되어 전문화함에 따라 자본에 어떤 이득이 발생하는지를 ‘보호지대’(protection rent)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것으로 Lane(1979)을 참고하라.

4) 이는 특히 자본축적의 중심지가 변화하는 시기에 나타나는 ‘금융상의 만개’ 하에서 두드러지는데, 브로델은 이런 금융상의 만개를 번성기가 아니라 완숙기, 즉 가을의 표시로 본다(Braudel, 1997c: 342).

5) 월러스틴은 삼층도식에 기초한 독점으로서의 자본주의라는 브로델의 테제를 명시적으로 수용하고 있다(Wallerstein, 1994: 264-83). 양자의 밀접한 관계는 《아날》의 부제와 페르낭브로델 센터의 정식명칭이 사실상 일치하는데서도 발견된다.

6) Braudel(1997c) 제 1장과 이매뉴얼 월러스틴․백낙청 대담, 「21세기의 시련과 역사의 선택」, 이매뉴얼 월러스틴, 《유토피스틱스》, 창작과비평사, 1999 수록, 149-151쪽을 참고하라.

7) 아부-루고드는 이런 몽골의 붕괴를 서구의 등장에 앞선 ‘동양의 몰락’이라고 지칭한다. 그렇지만 월러스틴이 16세기 근대세계체계 이전의 유럽을 세계제국의 해체 이후 분산적이고 폐쇄적으로 존재하는 경제이고, 하나의 세계체계를 형성하지 못한 기독교 문명이라고 보는 반면(Wallerstein, 1999a: 37), 아부-루고드는 13세기에도 세계체계가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2천년의 역사를 단일한 세계체계의 내적 변동으로 보는 프랑크(Frank, 1998)와 달리, 아부-루고드는 13세기의 세계체계에는 네가지중심이 있었고, 그 사이에 하나의 중심적 헤게모니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조직구조가 16세기 이후 등장한 유럽 중심의 근대세계체계나 그 이후 나타날 새로운 세계체계와 근본적인 단절이 있다고 본다(Abu-Lughod, 1989; 1990). 월러스틴 은 자본주의 세계체계라는 단절점을 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프랑크를 비판하고 있다Wallerstein(1999d).

8) 이런 점에서 월러스틴은 반동적 귀족계급대 진보적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과 이를 정식화한 부르주아혁명이라는 도식이 신화일 따름이라고 주장한다(Wallerstein, 1994: 77-79).

9) 카메론도 기계화, 동력, 철강 모두에서 19세기라는 단절점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Cameron, 1982)

10) 영국이 헤게모니 국가가 되는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한 또 다른 요소는 인도의 식민지화였다.

11) 이런 점에서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기 이전에 새로운 축적체제로서 법인자본주의 형태라는 조직혁명이 수행되고 그 이후 냉전을 통해 전지구적 세계경제 네트워크가 형성된 20세기초 미국과 비교해 19세기초 영국의 경우는 오히려 그 반대의 수순을 밟았다고 할 수 있다.

12) 테렌즈 홉킨즈는 이 세 헤게모니를 근대세계체계의 등장, 지배, 쇠퇴라는 세 계기로 파악한다(Hopkins, 1990). 아리기는 세 번의 헤게모니 순환에 추가해 네덜란드에 앞서는 제노바의 체계적 축적순환을 덧붙이기도 한다(Arrighi, 1994).

13) ‘체계의 카오스’라는 용어를 놓고 아리기와 월러스틴은 견해가 갈라진다. 아리기는 이를 헤게모니의 붕괴의 시기에 사용하기 때문에 여러번의 체계의 카오스가 있고 이는 새로운 체계의 재생으로 극복되는 것으로 보는 반면(Arrighi, 1994; Arrighi et al. 1999), 월러스틴은 이를 근대세계체계의 장기적 추세에 따른 구조적 위기에 따라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단 한번만 발생하며 체계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극복될 수 없는 것으로 본다(Wallerstein et. al, 1999: 279). 피터 테일러도 아리기와 같은 용법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Taylor, 1996).

14) 축적체제와 국가간체계는 헤게모니 형성의 두 축인데, 이 때문에 아리기는 세계경제의 진화를 나타내는 축적의 체계적 순환의 변화의 계보학과 헤게모니 변화의 계보학을 분리하여 연구하되 이를 동시에 결합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Arrighi, 1994: 84).

15) 아리기는 ‘축적체제’라는 용어를 조절이론에서 빌려왔지만 조절이론과는 상이한 방식으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 축적체제는 헤게모니 주도하의 세계경제 전체의 재구성 방식을 지칭하며, 또한 포드주의/포스트포드주의라는 구분과 달리 물질적 팽창 이후 금융적 팽창의 시기를 새로운 축적체제의 등장이 아니라 헤게모니적 국가가 주도하는 축적체제의 위기로 파악한다.

16) 더 자세한 내용은 Arrighi(1994), Arrighi et al.(1999), Wallerstein(1999a; 1999b; 1999c), Taylor(1995) 등을 참고하라.

17) 여기서 살펴보았듯이 이런 금융적 팽창의 국면에서 국가의 중요성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국가가 주도적으로 이 국면을 주도하게 된다(Arrighi, 1999: 242). 미국, 일본, 독일 세 국가를 놓고 볼 때도 초국적 기업의 성장을 위한 국가의 기술개발 지원과 정보 및 통제의 집중이라는 점에서 1980년대 이후의 초국적 자본은 그다지 초국적이지 않았다(Dormus et al., 1998; Hirst and Thompson, 1999). 초국적 자본의 해외 팽창은 주로 시장 확보를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국가의 역량이라는 점에서 소수의 중심부 국가와 그 나머지 국가들 사이에서 민족국가가 경제정책을 통해 민족국가 단위의 발전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에서 극단적인 양극화가 나타나, (반)주변부 국가들의 국가로서의 무능력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18) 챈들러는 일본과 유럽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함에 따라 경영자자본주의라는 특징을 지닌 미국의 법인 자본주의에 196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특징들이 나타난다고 본다. 여기에는 기존의 수직적 통합과 연계가 없기 때문에 경쟁우위를 보장하지 않는 부문에 진출하는 것, 새로운 사업부문에 대한 지식 부족 때문에 최고 경영자와 해당 실무 경영진 사이에 분리가 생겨나는 것, 운영단위가 다각화되는 것, 기업의 판매와 인수가 새로운 사업분야로 등장한 것, 자본 시장에서 포트폴리오 매니져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 ‘기업 통제를 위한 시장’으로서 자본 시장의 중요성이 바뀐 것 등이다(Chandler, 1990: 621-26). 그런 결과 주식시장은 과거 장기적 투자를 보장하는 안정적 자금원 역할을 하던 것에서 단기적 기업가치를 높여 기업의 인수․합병을 촉진하는 매개자로 전환되었다.

19) 이 과정은 자본의 금융적 분파가 생산적 분파의 우위에 선다는 과거에도 나타난 형태를 보일 뿐 아니라, 생산 중심의 초국적 법인자본 자체가 금융자본의 형태로 전화하면서 ‘재벌’적인 형태를 띠는 ‘산업지배적인 금융그룹’의 출현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Chesnais, 1998: 168).

20) 미국경제의 전망에 대해서는 브렌너는 1995년 이후 주식시장의 거품이 점차 커지면서 이윤율의 상승경향에 한계가 나타난다고 보고 있는 반면(Brenner, 2000), 뒤메닐과 레비는 1980년대 이후 새로운 이윤율의 상승을 경영자 자본주의의 제 3국면으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윤소영 교수는 미국 헤게모니의 벨에포크가 경착륙할 경우는 2001/2년 대공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연착륙에 성공할 경우는 2012/13년까지 ‘신경제’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윤소영, 2001a: 66; 2001b: 197-98).

21) 새로운 헤게모니의 가능 국가로서 일본 자본주의를 강조해 온 아리기는 점차 일본 한 나라보다는 중화경제권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으로 강조점을 이동하지만(Arrighi, 1999b), 여전히 동아시아가 새로운 축적의 중심이 될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않고 있다(Arrighi, 2001). 월러스틴은 동아시아가 새로운 상승국면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여러 가지 세계체계의 불안정 요소들 때문에 이것이 과거처럼 안정적인 세계질서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Wallerstein, 2001: 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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