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일 금요일

성장과 행복

2장 “성장과 행복”의 1~2절 중에서


《포브스Forbes》 선정 100대 갑부에 든 어떤 한 사람은 행복했던 때를 전혀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자아는 창의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일에서 소외된 채, 물질적 소비와 얄팍한 만족을 좇는 허황된 세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만약 GDP를 척도로 한다면,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누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청년층 우울증과 어린이들의 주의력결핍장애 등 정신질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참진보지표Genuine Progress Indicator, GPI를 보면 지금의 경제성장은 미래 세대가 써야 할 부의 창출 여력마저 고갈시키며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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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가 경제성장에 그토록 집착하면서도 경제성장의 증대가 실제로 행복을 향상시키는가 하는 지극히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공적 토론이나 정치적 담론이 거의 없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거론을 회피하는 것은 현 시스템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편안한 일일 것이다. 만약 성장이 행복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선진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경제적·사회적·정치적 구조의 많은 부분이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반인들조차 성장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증거들을 무시하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소득이 늘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지만, 바라던 소득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도 만족하지 못하면 아직 내 재산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다. 이는 희망과 실망이 계속 반복되는 끝없는 순환일 뿐이다.

(... 중략 ...) 

부유한 나라 시민들은 개인적 부가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으로 늘었지만, 한편으로는 유행병처럼 번지는 심리적 장애로 시달리고 있다. 어느 연구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한 미국인들의 우울증 발병이 이전 세대에 비해 열 배나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넘치는 풍요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젊은 세대이겠지만, 오히려 이들이 중증 우울증에 가장 취약하다. 젊은이들이 겪는 문제는 기록적인 10대 자살률과 자기 파괴적인 마약 사용과 같은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 한편 우울증을 개인 차원의 문제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차원의 요인들로 설명하는 방향으로 한 발 다가선 연구들도 나왔다. 이러한 연구는 광범한 사회적 변화들에 주목하여 도시화와 생활거점의 지리적 이동, 가족 구조의 변화, 여성의 역할 변화 등을 배경 요인으로 지적한다. 하지만 우울증의 원인 분석과 그 해결책의 토론 과정을 지켜보면 사회적 고립이라는 요인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대면 접촉의 실종, 가족 구조의 변화, 직장과 일터의 변모, 스포츠와 같은 공동체 활동의 상업화에서 드러나듯, 사회적 유대감이 점점 무너지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관계형성 능력이 악화되는 현상이 정신질환 확산의 핵심 요인이다. 그렇다면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느냐가 문제다.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유대감이 무너지고 고독이 만연하는 것은 어떠한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인가?

(... 중략 ...) 

ADD라는 장애 질환을 보면, 빈발하는 발생률뿐 아니라 그 처방에서도 현대사회의 이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질환에 맞서 현대사회는 약물치료로 대응했다. 코카인 종류의 물질에서 추출한 강력한 자극제인 리탈린Ritalin이 그 약물이다. 이 약의 처방은 1990~1999년에 미국에서 700% 증가했고, 4~500만 명의 어린이들이 이 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하고 있다. 5학년 남학생 중 20%가 리탈린을 매일 복용하는 학교도 있는데, 아이들이 하루 투여량을 모두 복용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학생 이름을 적은 약병을 교실에 진열해두기까지 해서 오싹한 정신병원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다. 리탈린은 ADD의 일부 증상을 억제하지만, ‘리탈린 리바운드Ritalin rebound’로 불리는 부작용이 있어 체중 감소와 불면증, 틱tick 증상, 비애감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중략 ...)  의사로서 《리탈린 열풍Running on Ritalin》을 저서로 낸 로렌스 딜러Lawrence Diller는 리탈린의 남용을 폭로하고, ADD 진단의 빈발과 리탈린 처방의 폭발적 증가를 사회적 변화와 연결시켜서 설명한다. 교실과 육아시설은 지금 사회경제적 압박에 함께 시달리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1970년대에는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 가운데 30%만이 집 밖에서 일했다. 이제는 그 숫자가 70%를 웃돌고, 부모 양쪽 모두 더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하지만 일자리의 안정성은 오히려 떨어진 경우가 많다. 딜러는 단지 산만할 뿐 학교생활을 지루해하는 아이들 또 집안에서 스스로 해야 할 일에 게으를 뿐인 정상적인 아이들을 과민한 부모들이 병원으로 데려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맞는 의료계가 뇌의 신경화학 물질에 장애가 있다는 의욕적인 진단과 함께 아이들에게 강력한 약물을 처방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 중략 ...) 딜러는 “예전에는 조지의 행동에 문제가 있으면 대개 조지의 모친에 문제가 있다고 하던 미국 정신의학계가 이제는 조지의 뇌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고 지적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생계가 걸린 일자리에 전력투구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보살핌을 베풀 시간이 거의 없다. 예로부터 성인이 되면 이세를 낳아 정서적 보람을 느끼며 살았고 아이들은 그러한 삶의 일부였다. 이제는 아이들이 갈수록 부모들의 집착과 추상적인 욕망의 표현수단으로 변해가고 있다. 결국 아이들은 거추장스러운 짐과 같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ADD라는 ‘전염병’은 아이들이라는 거울을 통해 가족 구조의 변화와 곁에 없는 부모,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문화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ADD가 확산되고 문제가 악화될수록 그 거울은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다. 또 그 어느 때보다도 부유해진 경제가 뇌의 생화학에 투자할 자원은 있어도 그만한 자원을 교육에 쓸 여력은 없다는 것도 말해준다. 그리고 의료계를 좌지우지하는 제약회사들의 본모습과, 그 맞은편에서 규범에서 일탈하는 아이들을 ‘순간적’으로 교정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구도 드러내주고 있다. 열풍과도 같은 ADD의 유행과 리탈린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지만, 사회는 이 증상의 고유한 병리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단지 문제 행동의 원인이 신경학적 질환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몰고 가면 누구의 책임인지 묻기 어려울 뿐 아니라 비난할 대상도 당연히 사라지고 만다. 부모나 교육 시스템, 가족 구조에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기대나 근로 유형의 변화, 부의 추구에 있는 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사회와 정책의 문제로부터 저 멀리에 있는 신경물질상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 생략 ...)

※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클라이브 헤밀턴, 
2장. “성장과 행복” 중 1절(소득이 높으면 더 행복한가?) 과 2절(개인의 행복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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