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3일 월요일

[자료] 신자유주의에 대한 개혁주의적 대안의 문제들

자료: source
지은이: 정성진 _ 경상대학교 교수
출처: 마르크스21


상기 출처의 자료는 정성진 경상대 교수의 다음 영문 논문 을 번역한 것이다.(번역: 이상우 / 교열·감수: 이수현·최일붕). Seongjin Jeong(2009), ‘Korean left debates on alternatives to neoliberalism’, in Alfredo Saad-Filho and Yalman, Galip L eds.(2009), Economic Transitions to Neoliberalism in Middle-Income Countries, London: Routledge

※ 자료를 인터넷에 공개해주신 지은이와 발행진에게 감사드린다. 아래 발췌 메모는 학습과 자료 보관 용도로 여러 가지 표기를 부가해가며 읽기 위함이니, 내용을 참고하실 분은 위 자료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 발췌 메모:

2007년 한국에서는 1987년 민주화 항쟁 20주년, 1997년 경제 위기 10주년을 맞이해 한국 경제의 대안 논의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이것은 1997년 이후 10년 이상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제되면서 저성장과 사회적 양극화 심화의 덫에 빠진 한국 경제가 대안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해 대선에서 우파 CEO인 이명박이 경기 침체상황을 이용해 ‘경제 살리기’ 구호를 내걸고 승리했다. 그러나 우파들은 낡은 박정희식 국가 주도 자본주의로 돌아가거나 한미자유무역협정을 통한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에 기대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듯하다.

이에 비해, 진보진영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을 백가쟁명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은 진보진영의 대안들 중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먼저, 한국 자본주의의 최근 변화를 개괄한다. 다음으로, 현재 한국 진보진영의 논의에서 가장 유력한 주장인 이른바 ‘금융화’ 테제를 검토한다. 나아가, 현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은 낡은 박정희식 국가자본주의 모델과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결합시킨 것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케인스주의적 ‘사회연대전략’과 장하준의 ‘민주적 복지국가 모델’도 검토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적 대안이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하면서 끝맺는다.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 개괄

정성진(1997)에서 주장했듯이, 1960년대 이후 30년 동안 장기 호황을 지탱한 국가 주도 축적체제는 1980년대 후반에 고장나기 시작했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무너졌다. 그 결과 이윤율이 하락했고 1990년대에 오랫동안 경제가 침체했다.
  • ‘기적적인’ 성장을 낳았던 국가 주도 축적체제는 1980년대 말에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1997년 경제 위기는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아니라, 낡은 국가 주도 축적체제의 종말이 찾아왔는데도 새로운 축적체제가 이를 대체하지 못한 데 따른 필연적 결과였다.
  • 물론 한국의 지배 세력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에 따라 경제를 구조조정하려 했지만 새로운 축적체제를 확립하지는 못했다.
  • 실제로, 순고정자본 스톡에 대한 세전稅前 이윤의 비율로 계산한 비농업 기업 부문의 이윤율은 1970~86년에는 대략 12~16퍼센트였는데, 1997년 경제 위기 1년 전인 1996년에는 겨우 5.1퍼센트(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로 하락했다(그림 1을 보라).
그림 1. 1970-2003년 한국 비농업 기업 부문 이윤율 (출처: 정성진, 2007을 업데이트함)
주:
  1. P/Y (이윤몫): 부가가치에 대한 이윤의 비율.
  2. P/K (이윤율): 순고정자본스톡에 대한 이윤의 비율.

국가 주도 축적체제가 시작된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 1961~87년의 전성기,
  • 1987~97년의 과도기,
  •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득세기가 그것이다.
신장섭과 장하준(2003)과 와이스(2003)는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시장 근본주의 최소국가’가 아니라 ‘발전국가’가 계속 작동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김대중 정부가 1997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금융부문 구조조정에 150조 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투입한 것과 같은 케인스주의적 국가 개입에 기댔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2] 그러나 문제는 국가 개입의 수준이 아니라 국가 개입의 성격이다. 한국 정부는 오직 경쟁력 담론이나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 같은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를 경제 주체들에게 강요하고자 경제에 개입했다.
[주2] 신장섭과 장하준(2005: 413)은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은 사실, IMF의 거시경제 정책을 전면 수정한, 즉 적극적인 케인스주의 거시 정책으로 전환한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유종일(2006: 221)도 1997년 위기 이후의 경제 회복기 동안 “정부 부문이 한 구실”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구실은 시장 제도를 확립하고 시장 규율을 강제하는 것이다. 또한 경제 회복도 정부 개입보다는 노동자 착취강화 덕분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나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에서 새로운 신자유주의 축적체제가 견고하게 확립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1997년 위기 이후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대부분 낮은 성장률과 불평등 심화를 낳았고, ‘금융 주도 축적체제’나 ‘지식 기반 경제’ 같은 새로운 축적체제를 확립하지는 못했다.
  • 이른바 민주 정부였던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1997년 위기 이후 10년 동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추진했지만, 안정적 축적체제를 새로 확립하지는 못했다.
이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잃어버린 10년’이나 ‘경제 살리기’ 같은 이명박의 2007년 대선 구호였다. 물론 그 구호들은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고 과장된 것이었지만 말이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새로운 금융 주도 축적체제가 확립됐는가?

한국 진보진영의 대다수는 ‘발전국가론자’든 케인스주의자든 간에 21세기 자본주의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자본주의의 특징을 설명할 때 금융화 테제‘금융 주도 축적체제’로의 전환 테제를 받아들인다. 그들이 보기에 오늘날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은 생산과 금융 간의 모순이다. 투기적 금융자본만이 비난 대상이다. 그들은 산업자본은 진보적이지만 금융자본은 반동적인 기생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장하준을 포함한 케인스주의자들과 발전국가론자들은 산업자본의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 정책의 부활을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금융자본을 규제하는 것만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산업자본을 바탕으로 한 착취적 축적체제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또, 케인스주의적 국가주도론자들은 한국에서 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새로운 금융주도 축적체제가 강화됐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금융화’가 위기를 촉발했을 뿐 아니라 현재 한국 경제의 문제를 낳은 원인이므로 국가 통제를 다시 강화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하는 것과 개혁주의적인 케인스주의 국가 주도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크로티(2002)는 ‘금융화’를 대체로 다음과 같이 규정할 수 있다고 한다.
  •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우위,
  •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보다 주식·채권을 통한 직접금융의 우세와 이와 관련한 ‘주주 자본주의’ 논리의 득세,
  • 비금융 기업의 부채 증가,
  • 비금융 기업의 유형자산 대비 금융자산의 비중 증가,
  • 가계 금융자산의 증권화.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뒷받침할 실증적 증거가 어느 정도 있는 듯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예를 들어,
  • 제조업 부문의 유형자산 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1970년대 약 40퍼센트에서 1980년대에 65퍼센트까지 늘었지만, 1990년대 대부분 동안 그 수준을 유지했고 1997년 이후에는 소폭 하락하기도 했다.
  • 게다가 한국 비금융 기업의 부채 비율이 항상 높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총부채 부담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무거워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가벼워졌다. 실제로 국내총생산 대비 비금융 기업의 총부채 비율은 1998년 194퍼센트에서 2005년 174퍼센트로 줄었다. 제조업 부문만 봐도, 부채비율은 1997년 396.3퍼센트에서 2003년 123.4퍼센트로 감소했다.
  • 반면, 총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은 같은 기간에 20.2퍼센트에서 44.8퍼센트로 갑절 이상 늘었다(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 게다가 한국에서 가계 자산의 증권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지표도 거의 없다. 실제로 한국 가계의 금융자산은 대부분 은행 예금이고, 전체 금융자산에서 은행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42.8퍼센트에서 2005년 58.4퍼센트로 늘었다.
  • 반대로 가계의 전체 금융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5년 17.2퍼센트에서 2005년 5퍼센트로 하락했다.
  • 비금융 기업들이 자금 조달 방법을 은행 융자에서 주식 직접 발행으로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볼 근거도 거의 없다. 직접금융, 특히 주식 발행이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급증했지만, 비금융 기업의 전체 자금 조달에서 직접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38.4퍼센트에 그쳤다. 이는 간접금융 비율 41.6퍼센트보다 낮은 수치다(한국은행, 《자금순환계정》). 비금융 기업의 부채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금융기관 대출이다(2005년 32.2퍼센트). 1997년 위기 이후 [자산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1998년 11.6퍼센트에서 2005년 20.6퍼센트로 커졌지만 말이다.
게다가 금융으로의 유출 비율, 즉 비금융 기업의 영업이익 대비 이자·배당·임대료 합계도 1980년대 이후 (60퍼센트에서)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 비율은 1998년에 138.8퍼센트까지 치솟았지만 곧 떨어져서 2005년에는 37.5퍼센트까지 하락했다. 금리도 1997년 위기 이후 낮게 유지됐다. 한국은행 콜금리는 1998년 초에 28퍼센트까지 치솟은 뒤 꾸준히 하락해 2004년 중반에는 3.5퍼센트까지 낮아졌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이른바 ‘고부채 모델’에서 비금융 기업의 금융 이윤율은 대체로 실물 이윤율보다 낮았다. 지속적인 금융 유출, 특히 이자 상환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금융화’ 테제와는 반대로 실물 부문에서 금융 부문으로 이윤 유출이 한국 경제에서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경향이었다. 요컨대, 케인스주의자들은 과거의 국가 통제 체제를 옹호하려는 의욕이 지나쳐, 예외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을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경향으로 둔갑시키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1997년 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금융화’가 아니라 금융자본의 초국적 흐름에 점점 더 종속됐다. ‘금융화’ 가설을 받아들이는 진보적 경제학자들 다수는 흔히 1990년대 이후 세계 모든 나라에서 ‘금융화’ 가설을 입증할 증거를 찾으려 한다. 그들의 이론은 지금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미국 지배계급의 프로젝트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세계화를 단지 금융의 세계화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체제 중심부의 ‘금융화’가 주변부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재생산될 수는 없다. 제국주의적 세계경제 구조에 필연적인 위계 구조와 양극화 경향 때문이다. 중심부의 ‘금융화’가 가능하려면 일반적으로 주변부가 중심부에 금융적으로 종속돼야 한다. 산업화와 달리 ‘금융화’는 본래 ‘제로섬 게임’이다. 실제로, 한국에서 1997년 위기 이후 금융적 종속이 심화하고 있다는 증거를 다음의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① 상장 주식 시가총액에서 외국인 지분의 급증
② 외국인 직접투자의 급증
③ 가치의 국외 유출 급증

예를 들어, 기술사용료, 외채 이자 지급, 이윤 송금의 합으로 추산한 가치 유출은 1994년까지 40억 달러 수준에 머물다가 2005년 158억 달러까지 증가했다(한국은행, 《국제수지표》).


‘경제 살리기’

(...)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재벌 규제 시늉과 사회 안전망 도입 시늉으로 자신들의 친재벌 성향을 감추려 했다. 반면 이명박은 금산분리·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등의 친재벌 정책을 노골적으로 옹호한다.

이명박의 ‘경제 살리기’ 구호가 재벌의 이익을 위한 이데올로기라는 점만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경제 살리기’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 ‘경제 살리기’가 말이 되려면 한국 경제가 위기나 침체 상황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세계은행(2007)에 따르면 2003~2005년에 한국의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평균 3.9퍼센트로 같은 기간의 OECD 국가 평균인 2.5퍼센트보다 1.4퍼센트포인트 더 높았다.

이명박 정부의 진정한 과제는 이른바 빈사 상태에 빠진 경제 자체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심화하는 세계경제 위기의 심연에서 한국 경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미 이런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명박의 경제 정책에는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그가 축적체제를 혁신할 필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도 말할 나위 없다. 이명박은 전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정책들이 ‘좌파적’이라며 폐기하려 한다. 심지어 낡은 축적체제를 개혁하려던 시도조차 폐기 대상이다. 따라서 이명박에게 남은 선택은 박정희식 국가 주도, 친재벌, 반反노동자, 물량 위주의 축적체제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이명박은 심지어 1997년 위기로 명백히 드러난 사실, 즉 그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박정희식 국가 통제 체제가 이미 오래 전에 끝장났다는 것조차 무시하는 듯하다.

한국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은 이윤율 저하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자본의 과잉 축적이므로, 재벌의 경영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들을 제거해 투자를 늘리려는 이명박의 노력은 오히려 과잉투자를 부채질해 다가올 위기를 더 심각하게 만들 것이다. 이명박이 대운하 건설 같은 친재벌 투자 촉진 정책을 강행한다면, 전례 없는 과잉투자와 결국은 꺼지게 될 엄청난 부동산 거품을 낳을 것이다. 위기가 임박하면 이명박 정부는 다시 ‘경제 살리기’ 구호를 이용해 노동계급에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경제 살리기’ 이데올로기에 또다시 속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착취 강화로 이윤율을 회복하려는 자본의 공세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진보적 축적체제 구축하기

1980년대 이후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진보적 대안들은 크게 3가지 견해로 나눌 수 있다.
  1. 장하준과 대안정책포럼의 일부 경제학자들과 민주노동당 내 자주파NL가 주장하는 ‘민주적 복지국가 모델’.[3]
  2. ‘평등을 수반한 성장’, ‘재벌 체제 해체’, 노동계급 내 소득 재분배, 특히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에게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소득 재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연대전략’. 이는 민주노동당 내 평등파PD 리더 출신자들[현 진보신당 지도부―옮긴이]의 주장이다.
  3. 반자본주의적 사회주의 대안.
(...)

장하준 — 민족적 개혁주의 대안의 한계 (...)

장하준은 신자유주의를 세 가지 대립 구도로 이해한다. 시장 대 국가, 금융자본 대 산업자본, 외국 자본 대 민족 자본. 그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모순, 즉 자본주의의 근본적 적대 관계를 놓치고 있다. 장하준은 신자유주의를 주주 자본주의 논리의 지배와 동일시한다. 장하준은 한국경제의 거의 모든 문제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그는 또한 한국 경제의 성장이 둔화한 주요 원인이 낮은 투자 수준 때문이며, 이렇게 투자가 부진한 이유는 1997년 경제 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 첫째, 장하준의 이론은 신자유주의를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경제 체제로 본다. 그러나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무엇보다 자본가 계급의 새로운 지배 전략으로 봐야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계급 관계의 관점에서, 더 구체적으로 말해 노동계급 착취 강화로 이윤율을 회복하려는 자본의 공세로 이해해야 한다.

장하준은 또, 외부의 압력, 특히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외국 자본의 압력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추동한 핵심 동력이었다며 이를 특권화하는 반면, 국내의 계급 관계는 경시한다. 그는 또한 재벌과 신자유주의 사이의 갈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모순이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재벌과 신자유주의는 일종의 공생 관계다. 아무리 재벌이 한국에서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두고 끊임없이 불평하더라도 공생 관계는 엄연한 사실이다. 사실, 재벌이야말로 한국에서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추동한 핵심 동력이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원은 무엇보다 국내에서 비롯했다. 실제로, 1980년대에 전두환 정부가 재벌의 요청으로 ‘민간주도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아직 비준 절차가 남아 있는 한미FTA를 추진한 주요 주체가 노무현 정부만은 아니었다. 재벌, 특히 삼성도 주요 주체였다. 미국 지배계급과 초국적 금융자본은 이러한 과정을 거들었을 뿐이다. 결국 재벌과 신자유주의의 공생 관계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서 입증됐다. 이명박 정부는 박정희 체제, 특히 재벌 체제를 부활·개조하고 그것을 CEO 출신대통령인 자신의 신자유주의 논리와 결합시키려 한다.

앞서 다뤘듯이, 장하준도 공유하는 금융 주도 축적체제로의 이행 테제는 문제가 많다. 최근 산업자본은 은행 부채를 급격히 줄여 금융에서 더 독립했다. 실제로 가장 큰 재벌 중 일부는 이제 금융자본을 지배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이들은 출자총액제한제뿐 아니라 금산분리도 폐지하는 데 성공했다.

1997년 위기 이후 재벌 체제가 약화됐다는 장하준의 주장과는 반대로, 재벌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외국 자본 유입이라는 이중의 압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경제력을 더 집중시켰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 한국을 ‘삼성공화국’, 심지어 ‘삼성왕국’이라고 부른다. 주주 자본주의라는 신자유주의 논리는 재벌의 자본 축적에 장애물이 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현실은 그 반대였다.

장하준은 심지어 재벌 총수들의 불법적인 경영권 세습도 옹호한다. 외국 자본의 공격에 맞서 민족 자본을 지키고 경제적 효율을 향상시키려면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하준은 민주노동당 내 PD 경향 리더 출신자들의 주요 구호인 재벌 해체론을 반대한다. 재벌이 해체되면 이른바 ‘2차 추격’에 필요한 경제적 효율성이 파괴될 것이라는 점이 그 논거다(신장섭·장하준, 2005: 428). 장하준의 친재벌 태도는 진보적 정책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듯하다.

장하준은 또한 사회 협약, 즉 주요 사회 주체들 간의 사회적 타협이 없다면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한국에서 사회 협약을 체결하려면 정부와 재벌의 ‘대타협[빅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재벌에 경영권 세습을 보장하고 그 대가로 재벌은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사회 협약이 한국에서 스웨덴식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구축할 토대가 될 것이라고 장하준은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본보기 국가를 ‘민주적 복지국가 모델’이라고 부른다. 이 모델은 동아시아 발전국가 모델과 스웨덴식 복지국가 모델을 결합한 것인 듯하다. 그러나 대다수 재벌이 소액주주나 노동조합 같은 주요 이해당사자들의 권리조차 무시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재벌이 이런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에 합당하게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또한, 장하준이 재벌의 경영권 세습을 용인하면서도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노동조합과 지역사회 같은 핵심 이해당사자들이 재벌의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사회 협약을 바탕으로 ‘민주적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장하준의 이상이 실현되려면 재벌 체제의 해체, 특히 재벌 일가의 부당한 경영권 독점이 중단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가 제안하는 정책과 배치된다.

게다가 장하준의 사회 협약 모델은 조직 노동자들을 협약의 핵심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웨덴 모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장하준은 조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이른바 ‘국민’을 사회 협약의 핵심 주체로 생각한다. 그러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세력 중 하나인 조직 노동자들을 포함하지 않는 사회 협약은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실제로 유럽에서 사회 협약과 복지국가, 특히 스웨덴 모델은 역사적으로 1917년 10월 혁명 이후 대중 저항이 전례 없이 분출한 결과였다. 스웨덴의 계급 세력 관계라는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스웨덴 모델을 수입하거나 벤치마킹하려는 시도는 모두 한낱 몽상일 뿐이다.


사회연대전략’ — 케인스주의적 대안의 모순

최근 국제 진보진영의 핵심 구호는 ‘21세기 사회주의’다. 그럼에도 한국 진보진영은 대부분 ‘자본주의 외 대안 부재’론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지금 추구하는 것은 단지 ‘진보적’ 자본주의이거나 ‘덜 해로운’ 자본주의다. NL 경향이 다수파인 민주노동당에서 PD 경향이 최근 분당해 나온 데서 드러나듯이, 이들 내에서 격렬한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도 이른바 ‘시장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모종의 개혁적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공통점이다. 그들은 또한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핵심 원리를 받아들인다.

실제로, 한국 진보진영의 다수가 ‘금리생활자의 안락사’, ‘투자의 사회화’, ‘토빈세’, ‘분배를 통한 성장’, ‘진보적 경쟁력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등의 케인스주의 구호를 수용한다. 그들 중 일부는 케인스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기껏해야 한국이 케인스주의 단계를 건너뛰어 발전국가에서 신자유주의로 곧장 도약했다는 사실을 든다. 1980년대 ‘혁명적’ 담론의 전성기에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한 종류로 괄시받던 케인스주의 경제학이 이제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실현 가능한 진보적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이 사례들은 옛 소련의 몰락이 한국 진보진영에 얼마나 파괴적인 이데올로기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보여 준다.

세부적 수준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한국의 케인스주의자들은 모두 국가의 구실, 시장 규제의 필요성, 경쟁력 논리를 강조한다. 또한 그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찬양하는 ‘경쟁력’이나 ‘성장’이나 ‘효율’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국의 케인스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쟁력 향상의 방법에서만 차이가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임금 삭감, 규제 완화, 시장 자유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반면(이른바 ‘저가도low road 전략’), 케인스주의자들은 노동 숙련도 향상과 기술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이른바 ‘고가도 high road 전략’)를 주장한다. 실제로 ‘좌파 신자유주의자’를 자처한 노무현도 ‘사회적 자본’, ‘사회투자국가’ 등의 케인스주의 미사여구를 자주사용했다. 노무현의 이런 미사여구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와 케인스주의가 실천에서는 수렴한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게 실토한 것이다.

최근 국제 수준에서 유력한 이데올로기 담론은 신자유주의적 시장 근본주의(‘워싱턴 컨센서스’)에서 ‘사회적 자유주의’(노무현이 말한 ‘좌파 신 자유주의’) 또는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로 이동했다. 이것이 진보진영에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국제적으로 지배계급 내에서 유력한 이데올로 기 담론이 신자유주의와 케인스주의의 수렴 쪽으로 바뀐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시장 대 국가 또는 신자유주의 대 케인스주의(또는 ‘반신자유주 의’)라는 이분법의 틀 안에서 전략을 짜는 것은 자멸적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대 반신자유주의(케인스주의)의 작위적 이분법을 고수하는 것은 시 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는 꼴이다. 한국 진보진영이 사회주의적 전망을 발전시키려면 시장(신자유주의) 대 국가(케인스주의 또는 반신자유주의)식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 진보진영, 특히 민주노동당 내 PD 리더 출신자들의 경향이 이명박의 ‘경제 살리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이데올로기에 포 섭돼, 계급 내 재분배를 통한 성장 정책과 ‘사회연대전략’,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다며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이 사용자에게 양보하는 정 책을 포함하는 케인스주의 해결책을 옹호하는 것은 중대한 실수다. 이것은 한국의 사회 양극화를 오히려 심화시키는 방안이다. 1997년 이후 비 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이 가장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핵심은 계급 간 양극화, 즉 전체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 화해 자본의 이윤율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연대전략’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근본적 모순을 외면하고 계급 내 양극화,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모순과 이보다 는 덜 중요하지만 재벌과 중소기업 사이의 모순을 특권화한다. 정규직 조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에서 이득을 본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발견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강화와 사회 양극화 심화에서 이득을 보는 집단은 바로 자본가 계급 전체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양보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고용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노동계급 전체의 총임금이 감 소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회연대전략’의 케인스주의적 기대 효과와는 반대로 자본의 과잉축적이 가속화하고 과소소비 위기가 악화할 것이다.


결론

1961~87년의 한국 장기 호황이 국가 주도 축적체제 덕분에 가능했다면, 1990년대 이후 경제가 침체한 이유는 이 체제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1997년 경제 위기는 국가 주도 축적체제가 고장난 상황에서 신자유주의로 질주한 결과였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국가 주도 체제가 고장난 것에 [지배자들이] 대처하려고 도입했고, 1997년 위기 이후 IMF가 강요한 구조조정 압력과 신자유주의 정부들의 정책이 맞물리며 확고해졌다. 나는 이 글에서 1997년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는 이른바 ‘금융 주도 축적체제’나 ‘지식 기반 경제’ 같은 독자적인 축적체제를 만들어 낼 수 없었 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는 저성장, 사회적 양극화, 초국적 금융자본에 대한 종속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또한 최근 경험은 한국에서 민족주의적 발전국가나 케인스주의적 ‘평등주의’ 축적체제 같은 진보적 축적체제를 건설하려는 시도의 한계와 모순을 보여 준다.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신자유 주의의 덫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한국 진보진영은 먼저 이 샴쌍둥이 개혁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그들이 폐기한 진정한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자본주의 체제 변혁 프로젝트를 혁신해야 한다. 이것이 대선 패배 이후 후퇴하고 있는 진보 운동을 재건하고, 이명 박의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친재벌·반노동·양극화 정책에 도전하고 있는 노동계급의 지지를 끌어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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