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우주망원경--1990년 4월 23일
초저녁이 지나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어둑한 밤하늘이 깔릴 때였다. TV 카메라맨이 내 다리에 굵직한 케이블을 매달고 있다. 방금 허블우주망원경을 우주왕복선 탑재공간에 실은 모습을 뒤로 하고 돌아온 참이다. 우주왕복선 탑재공간이 열리더니 큼직한 개폐문이 어둠 속에서 뿌연 빛을 반사했다. 그 사이로 반짝거리는 허블망원경이 들어가 탑재됐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광경이었다. 15년 동안 17억 달러가 들어갔고 수천 명이 이 일에 매달렸다. 이제 때가 온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이렇게 만든 허블을 우주공간으로 쏘아 올리게 된다.
나는 그날 테드 코펠Ted Koppel이 진행하는 전국 TV 뉴스 “나이트라인”에 초대 손님으로 출연했다. TV를 별로 보지 않고 사는 탓에 한 번도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없었다. 현장 프로듀서는 뉴스가 시작되기 전에 나더러 30분이 넘도록 정면의 눈부신 빛을 바라보라고 주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늦은 밤에 피로에 지친 많은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봤을 것이다. 나처럼 근심과 불안한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방송사 사람들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정중하고 손쉬운 질문만 할 거라고 했다. 겪어보니 정중하지도 않고 쉬운 질문도 아니었다. NASA가 쏟아 붓는 돈을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쓰는 게 낫지 않으냐는 약방의 감초 격 질문이 모두 지나가자, 제일 묵직한 질문이 날아왔다. “제대로 작동할까요?” 나는 우리 팀에 대한 신뢰를 강력히 표명하고 철저한 검증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서 나는 확고부동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잘 작동할 겁니다.”
사실은 나도 미심쩍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확고하게 답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 문제가 생겨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나는 허블 팀원들에게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또 그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했다. 그들은 그 수장인 나의 지지를 받을 만한 일을 했다. 그뿐 아니라 이 망원경을 발사해 작동시켜 보는 것 말고 다른 대안도 없었다. 제대로 잘 작동하면 다행이지만, 아닐지도 모른다. 바로 그 순간이 왔던 것이다.
나는 서너 시간만 눈을 붙이고 나서 다시 케네디우주센터로 돌아왔다. 발사관제실의 마지막 카운트다운을 보기 위해서였다. 8 킬로미터 밖에서 우주왕복선을 쳐다보고 있는 동안, 발사 지휘자의 목소리가 헤드폰으로 들려왔다. NASA 천체물리학본부장으로서 발사현장에 나가 있는 내 역할은 발사과정과 그 후 망원경의 임무배치 과정에서 큰 문제가 생길 경우에 조치 사항을 신속하게 권고하는 것이었다. 아무 착오 없이 발사가 끝났고, 망원경은 자기 궤도에 올라갔다. 그리고 전원을 넣은 뒤 지상기지와 교신하는 임무도 잘 끝났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됐다. 모든 일이 NASA에서 하는 말로 “액면대로” 실행됐다(항공우주업계와 엔지니어링에서는 “액면nominal”이란 말을 “계획과 설계대로 완료”했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그런데 허블망원경은 잘 작동할 것인가?
허블우주망원경이 대기권 밖의 궤도에서 관측하는 장점을 살리려면, 망원경의 몸통이 우주의 일정 지점을 조준한 채 0.007 초각arc-seconds의 안정성을 유지해야만 했다. 이렇게 흔들림 없이 정확한 방향을 유지하는 일은 워싱턴에서 레이저로 뉴욕을 조준할 때 25센트 동전 크기의 표적을 맞추는 것과 마찬가지다.
1980년 말 백악관은 소련과 우주과학 협력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소련 측 참가자들과 첫 번째 작업그룹을 조직하고 내가 공동의장을 맡았다. 내가 허블망원경의 조준장치 사양을 차트에 올리자, 소련 측 참가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가 소련 측 공동의장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번역문제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나는 더 캐물었다. “그러지 말고, 설명해주세요.” 그의 대답이 나왔다. “차트를 보니 조준 안정성이 0.007 초각이라고 나와 있군요. 우리들 생각에는 0.007 초각이 아니라 7 초각이 맞을 거로 보여서 말입니다.” 우리가 만들고 있던 망원경은 실제로 조준 안정성을 1 초각의 1000분의 7 초각으로 잡고 있었는데, 이 점을 그들에게 납득시키느라 상당 시간이 흘렀다. 소련의 과학자들은 우주실험에서 높은 성과를 달성해왔지만, 이 정도의 정밀성을 어떻게 실현할지 잘 납득하지 못했다.
0.07 초각만 달성해도 조준 안정성이 높은 기술로 인정된다. 하지만 허블의 조준 안정성이 0.07 초각이라고 하면 어떤 결과가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허블은 완전히 실패작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허블의 관측 이미지가 최상의 지상 망원경으로 얻은 것보다 나을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날에는 17억 달러라는 납세자들의 돈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격이다! 허블프로젝트를 공식적으로 추진하기 전에 우리가 이러한 성능에 도달할 수 있을지 확신할 방법은 없었다.
허블은 괜찮아, 일본에나 다녀오자
우리는 세계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허블의 조리개 뚜껑을 열고 별빛을 당겼다. 우리 컴퓨터 화면에 우주에 산개한 흐릿한 별빛이 올라왔을 때 나는 안도의 긴 숨을 내쉬었다. “작동한다!” 우리들 모두 소리를 질렀다. 내 엔지니어들은 나 보고 흐릿한 화면 상태는 걱정하지 말라며, 일부러 초점을 약간 느슨히 풀어놓은 채로 망원경을 쏘아 올렸다고 말해줬다.
허블의 상태가 괜찮아 보여서 나는 일본의 동료들을 보러 가기로 했다. 출발하기 직전에 직속상관 렌 피스크를 만났다. 그는 내가 없는 사이에 나 대신 해줘야 할 일이 없는지 물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렌, 우리는 방금 역사상 가장 웅장하다고 해야 할 프로젝트에 성공했습니다. 보나마나 백악관에서 우리 모두에게 메달을 주겠다고 할 테지요. 해주실 일이 있다면 제 메달은 댄 퀘일Dan Quayle 말고 조지 부시에게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는 껄껄 웃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은 순전히 오만에 지나지 않았다. 신은 오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게 됐다.
일본 친구들은 내가 외국인들이 들르지 않는 여관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한적한 여관에 묵으며 일주일 동안 본부와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일본을 떠나 세인트루이스 공항으로 날아오는 도중, 그 사이 본부 사정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졌다.
“기대 밖의 사태를 의식적으로 기대하자”--허블 초기의 표어
나는 세인트루이스 공항 대합실로 걸어 나와, 워싱턴으로 갈아 탈 항공편을 기다렸다. 일본에서 사케를 마실 때처럼 약간 멍한 느낌은 있었지만 활기찬 상태였다. 회사 사정을 알아보려고 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전화를 받자마자, “최근 피스크 박사와 얘기해보셨나요?”라고 말했다. 나는 “없다”고 했다.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당장 연결할 테니 통화해보세요.” 나는 무슨 대단한 일이 있기에 그러는지 의아했다. 아, 백악관 로즈가든Rose Garden에서 메달 수여식이 열리는 게 틀림없어. 잠시 후 피스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찰리, 자네 지금 어디에 있나?” 내가 그날 저녁 워싱턴에 도착한다고 하니까, 그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며 말을 이었다.
“자네, 구면수차(球面收差)spherical aberration라고 들어봤나?” 이걸 왜 물어보는지 궁금해 하면서 대답했다. “그건 아마추어들에게서 흔한 오류입니다. 종종 표면이 말끔하지 못한 거울을 만들거든요. 구면수차가 있는 망원경은 쓸모가 없습니다.”
렌이 내 말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쏴 올린 허블이 구면수차가 있는 반사경을 달고 있다면 뭐라고 해야 하겠나?” 생각가는 대로 대답하다 보니 이런 말을 하게 됐다. “짜증이 좀 나신 것 아닙니까? 제가 일본에서 즐기고 있는 사이 워싱턴 관료들을 상대하느라 피곤하셨나 봅니다. 너무 험한 농담이시네요.”
렌은 계속 그 이야기를 하는데, 내 귀에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로만 들렸다. 마침내 렌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달리 나왔다. “좋네. 전화 끊지 말고 수화기를 내려놓게. 가서 아무 일간지 하나 집어 들고 다시 전화기로 돌아오게.” 나는 《세인트루이스포스트디스패치St. Louis Post-Dispatch》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그는 나더러 일면 머리기사를 전화에 대고 읽어보라고 했다.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국가적 재앙, 발사된 허블망원경에 반사경 결함 드러나.” “자, 그 사태를 뭐라고 해야 하겠나?” 렌이 물었다. 나는 “정말 솜씨가 대단들 하십니다. 이곳에다 어떻게 가짜 신문들을 심어 놓으셨을까요?”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나는 이 날의 일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사태라고 불렀다.
워싱턴으로 돌아와 보니 현실이 내 머리를 강타했다. 사소하고 뻔한 오류 하나가 수천 명이 공들여 일한 결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그 후 몇 달 동안 내가 지휘하던 허블 프로젝트팀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의회 청문회는 아주 잔혹했다. 그 무렵은 저축대부조합의 파산과 부정사건이 막 고개를 들고 있을 때였다. 의원들은 이 금융위기 해명에 출동하기보다 NASA 임원들을 두들겨 패는 장면에 얼굴도장을 찍고 싶어 했다. 청문회 중에 의원이 내게 물었다. “펠러린 박사, 이전 임무들에 비해 허블의 가장 뛰어난 진보가 자외선 측정이라고 말했습니까?” “예, 맞습니다.” 나는 그가 곧이어 반사경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확인했느냐는 질문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반사경은 한 분자 크기의 기름만 묻더라도 자외선을 전혀 못 잡는 까막눈 신세나 마찬가지였다. 프로젝트 도중에 우리는 항상 반사경의 오염을 염려했었다.
그런데 의원은 나를 죄인 보듯이 노려보면서 전혀 다른 질문으로 나왔다. “의장님, 지금 증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외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자외선 복사를 전기신호로 전환하는 감지장치를 쓴다는 설명을 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다 좀 더 나은 생각이 떠올라 이렇게 말했다. “X선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필름으로는 X선의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의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증인의 지금 발언은 들을 가치가 없습니다. 방금 의원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증언기록을 마감하세요.”
일 주차 증언이 끝나고 한 친구가 나를 음악회에 초대했다. 장소는 워싱턴 근교 울프트랩파크Wolf Trap Park라는 야외공원이었다. 훌륭한 식사에다 포도주를 걸치고 하늘도 아름다워서였는지 세상이 다시 정상적인 곳으로 느껴졌다. 주디 콜린스Judy Collins가 무대로 걸어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마이크 앞으로 가더니, 이런 말을 꺼냈다. “여러분, 정말 다행이네요. 허블우주망원경을 만든 멍청이들이 이 음향시스템을 만들지는 않았나 봅니다. 이 무대엔 보조 마이크라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내 기분은 정말 엉망진창이 됐다. 대중문화에게까지 우리가 저지른 실패가 스며들고 있었다.
늦은 밤의 TV 뉴스는 애써 외면했지만, 허블의 파장은 점점 번져가고 있었다. 영화 《총알 탄 사나이 2 1/2Naked Gun 2 1/2》에는 한 주점을 찍은 장면이 나오는데, 몇 가지 회화작품을 배경으로 잡았다. 카메라 초점이 천천히 움직이며 이 그림들을 보여줬다. 힌덴부르크Hindenburg 비행선 폭발 장면을 거쳐 타이타닉 침몰 장면을 보여주더니, 아티스트가 그린 우주궤도 상의 허블우주망원경 개념도를 보여줬다. 이 마지막 그림은 내 사무실에 걸려있는 것과 같은 그림이었다.
NASA 사람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한 자부심에 모욕적인 상처가 나게 되자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블의 비행시스템을 맡았던 더그 브룸Doug Broome은 이 사고를 자신의 잘못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갑자기 암이 발병해 몇 달 뒤에 죽었다. 훌륭한 사람이었다. 매우 드문 포상인 우수리더십메달을 두 번이나 수상했었다. 아폴로 우주선 작업 때 한 번 받았었고, 그 다음이 허블우주망원경이었다(반사경 결함이 밝혀지기 전이었다).
렌 피스크는 챌리저호 폭발사고 때 교훈을 하나 얻었다. 우리가 모르는 결함을 다른 사람이 찾아내기 전에 우리 스스로 결함점검위원회를 조직해 찾아내는 것이었다. 렌은 발 빠르게 지명도 높은 류 앨런Lew Allen(제트추진연구소Jet Propulsion Laboratory 소장)에게 전문가들을 규합해 결함원인을 찾아내는 일을 맡겼다. 렌은 또 결함점검위원회에서 NASA을 대표하는 창구로 나를 지명했다. 왜냐하면 이번 일에서 정치권이 가장 지목하기 좋은 사람이 나이기도 했고, 망원경 시스템의 기술적 사항도 잘 알고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천체물리학본부를 1982년에 맡았고, 문제의 협력업체는 반사경을 1977년에 제작했다. 그러니 나는 이 결함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혹시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결함점검위원회가 원인을 찾았다
결함점검위원회가 여러 번 소집됐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점검위원이 계산 작업을 통해서, 반사경의 모양을 잡는 영점 보정계null corrector를 맞출 때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오차(센티미터 단위)가 결함의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찾아냈다. 영점 보정계는 아직도 협력업체 공장의 보세 장치장에 있었다. 점검위원회 사람들은 영점 보정계의 상태를 다시 측정해 오차 내역을 확인했다. 나는 결함원인이 규명됐으니 잘됐다고 여기고, 이제 내 본부를 지휘하는 정규 업무에 복귀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류는 조사를 계속 추진했다. 그는 수많은 검사 과정에서 반사경 결함의 단서가 충분히 드러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왜 이 명백한 단서를 뛰어난 기술 인력이 잡아내지 못했던 것인지 이상하기만 했다. 그는 협력업체 작업자들이 작업일정에 쫓기고 예산을 맞추어야 하는 압박감 때문에 쉴 새 없이 앞으로만 나갔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 다음, 류는 그러면 NASA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어째서 이러한 결함을 감지하지 못한 것인지 궁금해 했다. 얼마 후 점검위원회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협력업체가 문제가 드러난 검사결과를 NASA에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정황의 추적이 여기에까지 이르니 점검위원회는 “왜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반사경 결함은 리더십 실패가 원인이었다
결함점검위원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리더십 실패가 17억 달러짜리 망원경의 반사경 결함을 유발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류는 보고서에서 NASA가 협력업체를 혹독하게 관리하는 탓에 협력업체 사람들은 기술적 문제가 있어도 적당히 넘어갈 수만 있으면 보고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그들이 너무 두들겨 맞아서 진이 빠졌다는 이야기다. 나로서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 무렵에는 NASA, 의회, 행정부에서 아무도 허블을 입에 올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허블을 수리하자는 말은 더더욱 꺼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지나간 일이 되기만을 바랐다. 나는 운명적으로 허블 정비임무를 조직할 동기도 충분하고 힘도 있는 유일한 위치에 서 있게 됐다.
나는 반사경 결함이 드러났을 때 예산을 빼서 결함의 정확한 상태를 연구하도록 했다. 여기서 실마리를 찾게 됐다. 영점 보정계를 잡을 때 오차가 났다는 것은 처방은 어긋났지만 그 어긋난 처방에 따라 정확히 제작된 반사경이 우리 손에 있음을 뜻했다. 온 세계의 과학자들이 반사경 표면에서 잘못 굴절하는 광선의 교정 방안을 신속하게 내놓았다. 나는 우리 본부의 예산 담당자와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본부 업무 가운데 일정을 미루고 취소시켜서 정비임무 조직에 당장 필요한 6천만 달러를 마련하는 데 두세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NASA에서 총명하고 최고 기량을 자랑하는 인재들에게 허블 교정을 추진할 테니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그들 모두 동참해주었다. 허블을 우주공간에서 교정하는 임무는 이렇게 시작됐다.
여러분들 대부분은 나처럼 온 세상이 지켜보는 앞에서 트라우마를 입을 정도의 실패를 겪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누구나 주시하는 일이고 또 엄격한 관리가 따라붙는 거대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무심코 지나치는 사람 사이의 작은 문제로 말미암아 재앙이 생기게 된다는 점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기술직 업무팀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와 같은 사회적 결함이 챌린저호 폭발사고나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사고에서 항공기 충돌사고에 이르는 수많은 재앙의 근본원인이다. (생략...)
이제 팀 성과를 좌우하는 지배적 동인을 살펴보자. 인간역학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 출처: 다음 자료의 일부를 발췌. Charles J. Pellerin, 《나사, 그들만의 방식How NASA Builds T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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