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일 화요일

포트폴리오 구축

투자관리가 기본적으로 기술이냐 과학이냐는 오랜 동안 전문 펀드매니저들 간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즐겨 회자되던 토론거리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투자관리의 행태를 보면 과학이 아닌 게 분명하니 기술 아니겠냐는 논증이 대화 중간에 나오는 순간, 모두들 웃으면서 더 할 말을 잃고 마는 게 전형적인 토론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타고난 투자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개별 종목이나 종목군을 선정하는 일이란 것이 섬세하고 직관적이며 복잡한데다 보통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는 점에서 기술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실 이 분야에서는 기술의 대가들이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필립 피셔Philip Fisher와 존 네프John Neff, 피터 린치Peter Lynch, 존 템플턴John Templeton,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워렌 버핏Waren Buffet, 하워드 쇼Howard Schow, 로 프라이스Rowe Price가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처럼 재능이 비상한 투자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못 보거나 나중에야 감지하는 기회를 보고 잡아냄으로써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높인다. 이들과 같은 걸출한 위인들에게는 종목 선정의 기술이 있다.

그렇지만 포트폴리오 관리는 대다수 펀드매니저들에게는 기술도 아닐뿐더러 과학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분명하게 설정된 목표를 향해 신뢰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아주 특수한 공학engineering 차원의 문제다. 이 문제는 정책상의 제약도 뒤따르고, 끊임없이 출몰하는 불완전하고 잘못된 정보와 더불어 현저한 불확실성과 확률이 지배하는 세계 속에서 해결돼야 한다. 게다가 이 모든 요인들은 정확하지 않은 인간의 해석을 거쳐 인식될 수밖에 없다.

포트폴리오 관리 시스템이 전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활용 가능한 자료의 확충과 현대적인 포트폴리오 이론들의 발전에 힘입어 펀드매니저들과 세련된 고객들은 여러 가지 도구와 분석의 틀을 얻기 시작했다. 즉 투자라는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이해하고 정의하는 데 이러한 도구와 분석틀을 활용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투자 포트폴리오의 관리라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가정일 것이다. 다만, 합리적으로 조절하고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성과를 목표로 투자 문제를 관리한다는 데 만족해야 할 것이다.)

떠안을 시장위험 수준을 세심하게 설정했을 때 효율적인 포트폴리오는 기대 수익률을 극대화한다.

9장에서 설명했듯이, 포트폴리오 관리에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도전은 저점 매수와 고점 매도로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예측 가능한 수익률 증대를 목적으로 적합한 시장 위험을 계획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공학의 커다란 가르침은, 해법을 찾는 열쇠가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했다면 현실 문제의 정확한 해법을 찾는 길로 이미 들어선 것이다. 투자 행위에서 어느 문제가 당신의 현실적인 문제인가? 앞으로 10년, 20년, 혹은 30년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 방법인가, 아니면 향후 10주, 20주, 혹은 30주를 대상으로 하는 투자 방법인가? 당신의 현실적인 문제가 장기적인 투자라면, 과연 당신의 해법도 장기적인 것인가?

효과적인 포트폴리오 관리의 뚜렷한 특징은 의도하지 않는 개별 종목 및 종목군 관련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고 또한 의도하는 시장위험을 계획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기발한 종목 선정을 통해 가치를 불릴 수는 있지만, 개별 증권을 선정하는 주식투자와 채권투자는 훌륭한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 활용되는 구성요소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좋은 구성요소도 있고 나쁜 구성요소도 있겠지만,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개별 증권들이 가치가 있으려면, 펀드매니저가 수익을 증대하거나 위험을 축소함으로써 전체 포트폴리오를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포트폴리오 관리는 투자공학이다.

포트폴리오 관리를 공학적인 개념으로 볼 때 효율적인 포트폴리오 설계의 조건은 두 가지다. 하나는 회피 가능하고 의도하지 않는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획적으로 선정한 시장 위험을 전제로 기대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효율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 위험 수준이 같은 다른 포트폴리오보다 기대수익은 더 크며, 기대수익이 같은 다른 포트폴리오보다 위험은 더 작다.
그러한 효율적 포트폴리오가 특정 투자자에게 적합한 위험 수준에서 구축되고 나면, 개별 종목이나 종목군 차원의 위험 감수는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다만 그런 위험이 추가적 수익을 얻기 위한 특수한 기회와 직결된 것이어서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경우는 이와 별개의 문제가 된다.

시장위험이 약간 높아졌을 때 투자하거나 “가격 변동이 민감한” 종목들에 투자한다고 해서 포트폴리오 내의 시장 위험과 수익이 증폭되는 크기는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아주 장기간 보유할 경우에 얻게 되는 이득은 값질 수 있다. 전반적인 시장평균의 위험보다 20% 더 큰 시장 위험에 맞추어진 포트폴리오는 타당성이 있다. 그보다 훨씬 큰 시장 위험은 잘 분산된 포트폴리오로 설계하기 어렵다. (양호한 분산도 달성하면서 그 정도로 큰 시장 위험을 제공하는 다양하고도 수많은 주식은 한마디로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위험을 20% 초과하는 위험 수준에서 구축된 임의의 포트폴리오에 기대할 수 있는 시장평균 이상의 “추가” 수익률은 아주 장기적인 평균으로 봤을 때 연 1.4 퍼센트 포인트가 될 것이다.[주1] 시장평균 수익률을 1.4 퍼센트 포인트 웃도는 수익률이 시시해 보인다면, 지속적인 기간을 설정해 봤을 때 그만한 추가 수익률을 달성한 대형 기관투자자는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중략...)


장기투자의 위대한 성공비결은 중대한 손실을 회피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 행위를 능동적이고 과감하며 공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주식투자든 채권투자든 똑같이 기본적으로는 방어적인 프로세스라는 게 현실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 장기투자에 숨겨진 위대한 성공의 비결은 중대한 손실을 피하는 것이다. 장구한 투자의 역사에서 가장 슬픈 장은 너무 무리해서 애쓰거나 탐욕에 굴복하는 바람에 중대한 손실을 자초한 투자자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레버리지는 자기 파멸의 도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투자자들은 장기 전략을 결정할 때 극대화maximization최적화optimization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현명한 투자자가 될 것이다. 밀랍 날개로 하늘을 너무 높이 날다가 태양열에 밀랍이 녹는 바람에 추락한 그리스신화의 이카로스Icarus는 극대화 추종자였다. 그리고 “자기 함정에 스스로 빠져” 파멸한 역사상의 “재산가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도 극대화 추종자들이었다.

수백 년 전 범선으로 상거래가 이루어지던 시절에 보험과 위험기금계좌가 발명된 이래로, 펀드매니저의 기본적인 책임은 고객의 현명한 결정과 명시적인 목적을 계획적으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위험을 조절하고 관리하는 일, 그리고 예기치 않은 사태를 제한하고 방지하는 일이다.

[주1]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7%(무위험 수익률을 초과하는 주식 수익률) × 1.2 = 8.4%. 8.4%-7% = 1.4%. 추가 수익률은 1.4 퍼센트 포인트.


출처: 다음 자료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 "Chapter 9, Building Portfolios", Charles D. Ellis, Winning the Loser's Game, 4th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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