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미국 뉴딜 경제정책의 공과", 양동휴 저
" ... 1932년 7월 2일 저녁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미국시민에게 뉴딜을 공약하고 당원들과 자기자신에 맹세한 유명한 연설(“I pledge you, I pledge myself to a new deal for the Americanpeople.") 이후 거의 70년이 흘렀고 루즈벨트 사후 55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간의 뉴딜 연구성과의 백미를 모아 교과서적으로 편집한 최근 전문가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뉴딜정책의 근원, 형태, 효과, 유산에 관한 질문들은 지속적으로 미국사의 최대관심사로 남아 있다. 사실 1981년 로날드 레건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미국정치사의 한 시기가 종말을 고했다고 지적되기도한다. “근본사상과 공공정책, 정치적 연대 등에서 지배적 질서로서의 뉴딜은, 그 유령이 아직혼란스러운 정치체제 주변에서 방황하고 있을지라도, 죽었다.” “역사적 시체해부” 밖에 중요한일이 없다.
자유주의와 국가의 역할을 둘러싼 여러 이데올로기 논쟁은 냉전체제의 붕괴에 따라 급속도로 시장경제중심의 세계화-미국화 대체로 편향되고 있다.3) 뉴딜이 “죽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뉴딜역사에 대한 연구가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 최근 몇 년 전부터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브라질, 러시아를 휩쓴 경제위기로부터 탈피하려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미국역사의 뉴딜과 흡사한 정책시도가 있음을 볼 때 “시체해부”이건 아니건 뉴딜, 특히 뉴딜의 경제정책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
뉴딜이 무엇인지 학자마다 나름대로의 정의를 갖고 있다. 이 글에서는 뉴딜을 1930년대 초 대공황하에서 경기회복과 사회적 재분배에 목표를 두고 금융, 산업, 농업, 임금결정에 정부가직접 개입하는 여러조치들이라고 하자. 대개는 1933년 3월 루즈벨트 대통령 취임 후 2차 세계대전 발발기까지 기간 동안 대공황의 혼란에 대처한 일련의 조치를 뜻하는 “한번도 명확하게 정의된 적이 없는 표어”라고 기록된다. 실험적이고 심지어는 “기회적”이고 일관성과 논리를 결여한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역사적 안목”이었다는 것이다.
... " (본문 중에서)
2008년 4월 17일 목요일
1930년대 미국 뉴딜 경제정책의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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