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어떤 응급 사태와 임의 처치


일은 바쁘지만, 어제 발생한 응급 사태를 간단히 기록해 둔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힐 것이기 때문이다.

* * *

저녁 8시 30분쯤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이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너, 지금 도서관에서 나와라. (그리로 갈 테니) 같이 차 타고 병원에 가자."
"병원이요? 저더러 병원에 가라니요?"
"엄마가 응급실에 가야 해."
"어머니가 아프다는 거예요, 지금? ... 네, 알았습니다."
이모님이 어머니를 차에 태워, 인근에 있는 도서관에 들러서 나와 같이 응급실로 가자는 이야기였다. 갑자기 전화가 온 걸 보면 응급한 사태가 분명하니, 대화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될 상황이 분명했다. 바로 전화를 끊고 신속히 짐을 꾸려 대로변으로 나가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차가 도착하자마자, 앞 좌석에 가방을 던져 넣고, 뒷 좌석으로 잽싸게 몸을 실어 옆에 앉아 계신 어머니와 질의응답을 하면서 상태를 점검했다.
저녁 식사를 다 마쳐 갈 무렵, 왼쪽 갈비뼈 밑의 뱃속이 땡기기 시작하더니 통증을 유발하는 (아마도) 경색 증상이 왼쪽 가슴 부위를 거쳐 늑골과 뒷쪽 어깨 사이의 깊은 부분으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 부위가 칼로 찌르듯이 아파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을 수 없고 앞으로 구부정하게 앉아서 통증을 호소하셨다. 
우선 두 갈비뼈 아래쪽 밑선과 목으로부터 내려오는 수직선이 만나는 중완 자리를 눌러봤다. '아프다'고 하셨다. 다시, 그 부위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등쪽의 부위를 눌러봤다. 역시 '아프다'고 하셨다. 엄지와 검지 사이 합곡 자리를 눌러봤더니 역시 '아프다'고 하셨다. 통증이 심하다고 호소하셨지만, '통증이 어떻게 어디서 시작됐느냐?' '여기가 아프냐, 저기가 아프냐?'는 질문에 힘겹지만 듣는 사람이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답할 만큼 자기 판단을 말로 표출할 수 있는 상태였다.

이상의 정보와 그간 어머니를 응급 처치했던 경험을 토대로 이것은 심근 경색이나 그와 비슷한 증상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병원으로 가지 말고, 차 돌려서 집으로 가요. ( ... ... ) "
"집에 가서 해도 괜찮을까?"
"될 것 같습니다. 집에 가서 여기저기 뭉친 데를 풀면 될 것 같아요. 손가락을 따서 피도 빼고, 쑥뜸도 하고..."
"쑥뜸?? 뜨거워서 싫어!"

쑥뜸이 뜨거워서 싫다는 말씀에, 심근 경색이나 그 비슷한 위중한 증상은 아닐 거라고 더욱 확신했다. 자지러지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위기가 몸을 장악하면 '이거 싫고 저거 좋고' 할 겨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 생각나는 대로 응급 처치에 들어갔다. 이모님이 손가락 끝에서 피를 빼는 도구와 소독용 알콜을 찾는 사이, 나는 어머니를 눕혀 놓고,
  1. 명치 부위의 중완, 등쪽의 그 반대편 자리, 늑골 반대편의 어깨 부위 등에 지압을 가하고 주물렀다.
  2. 이어서 열 손가락 끝에서 피를 빼는 전용 도구를 알콜로 세척한 뒤, 피를 뺐다.
  3. 두 손의 합곡을 비롯해 팔뚝 근처와 발바닥, 종아리 등등의 주요 혈자리로 알려진 곳들을 돌아가면서 지압.
  4. 귀 밑에서 목 앞쪽으로 내려오는 무슨 근육이 있다고 들었는데, 수많은 신경 다발이 지나가는 그곳이 경직되면 승모근 등 어깨 부위 근육이 뭉친다는 말을 들어서 그곳도 지압.
  5. 뒤로 눕힌 상태에서 요추 밑단부터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척추선의 중심과 그 좌우를 지압. 뒤로 눕힌 상태 그대로 골반 양 끝을 내 두 손으로 붙잡고 몸을 좌우로 부드럽게 흔들어준다.
  6. 바로 눕힌 상태에서 어머니의 두 무릎을 세우고, 발끝 자리에서 내가 마주보고 앉아 두 무릎을 붙잡고 좌우 10도 정도 각도로 살살 (그러나 약간 탄력이 있게) 좌우로 흔든다.
(※ 주의: 이상 1~6번 조치와 기타 생략된 여타 조치들은 특별할 것이 없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하나하나의 행위를 말로는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또한 어떤 증상에 어떤 효과가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위의 부정확하고 개략적인 묘사를 무슨 치료 요령이라고 여기고 따라하시면 안 된다는 것을 밝힙니다.)

위와 같은 (1)~(3)번 조치를 취하는 데 약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4)~(6)번까지 하는 데 또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그러고 나자, 어머니는 서서히 통증도 가라앉고 숨도 편하게 쉬어진다고 하셨다. 특히 (2)번 손가락 피를 빼면서부터 조금씩 풀린 것 같다고 하셨다. 밤 10시가 좀 넘은 시간에는 같이 TV를 봤다. 어머니가 드라마 내용에 이러쿵 저러쿵 하시는 것 보니 다 나으신 게 분명했다. 저녁을 제대로 드시지 못해 입이 심심하다며 과자도 드셨다. 11시가 넘어서 아까 드신 과자는 잘 소화되었느냐고 여쭈니, 속이 편안하다고 하셨다. 그제서야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가 짐작하는 응급 사태의 전개 과정은 이렇다. 몸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갖 근육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똑바로 서서 허리를 굽히는 동작을 할 때 손끝이 무릎 부위까지밖에 내려오지 않는 사람도 발바닥을 야구공 같은 걸로 10분 정도 풀어주고 나면 다시 허리를 굽힐 때 무릎 아래 먼 곳까지 손끝이 내려올 만큼 허리 쪽 근육들도 풀린다. 그러니까 내 짐작에는 식사 도중에 위장을 붙잡고 있는 어느 부위의 근육 작동에 문제가 생겨서 경직되기 시작했는데, 평소에 어깨와 등 언저리의 요소요소가 굳어 있는 몸(근육과 신경)의 연쇄 고리를 타고 이 경색 증상이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며 왼쪽 어깨를 향해 위쪽으로 확장된 것이다. 그 확장 경로의 근처에 심장도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심장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응급실 행을 선택했던 것이지만, 나는 심장이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심장이 문제는 아닌 상황이더라도, 이와 같은 근육 경색(이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이 확장되면 순식간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호흡에까지 지장이 생기면서 경색되는 부위가 안 풀리고 확장되면 그대로 숨이 넘어가 죽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기공을 가르치는 어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어머니도 통증이 심해질 때 숨을 잘 쉴 수 없다고 하셨다. 숨을 들이쉴 때 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파서 그렇다는 것이다.실제로 아파 보면 어느 부위가 아파도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환자 본인이 분간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는 경색이 확장되면서도 다행히 심장 쪽 근육은 별로 건드리지 않고 비껴간 것 같다.

아무튼 잘되어서 다행이지만, 운이 좋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그냥 돌팔이이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서너 번 했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렇게 기록이라도 남기면서 관찰한 것을 회고하고 다음 번 위기 때는 무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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