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1일 수요일

[발췌: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오스트리아 학파

출처: 장하준 (2014).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김희정 옮김 (부키, 2014).
자료: 구글도서


※ 발췌 (excerpts): 제4장 백화제방: 경제학을 '하는' 방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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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학파

한 문장 요약:
모든 것을 충분히 아는 사람은 없으므로, 아무한테도 간섭하면 안 된다.

오렌지만 과일인 것은 아니다: 자유시장 경제학의 여러 가지 형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모두 자유시장 경제학자는 아니다. 그리고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모두 신고전주의 경제학자인 것도 아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은 대부분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보다 자유시장을 훨씬 더 열렬히 지지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카를 멩거에 의해 19세기 말에 시작되었고, 루트비히 폰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에 의해 그 영향력이 오스트리아 너머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중앙계획 경제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 마르크스 경제학자들과 벌인 이른바 '계산 논쟁(Calculation Debate)' 때문에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주]14 1944년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을 통해 개인의 근본적인 자유를 잃게 만드는 정부 개입의 위험성을 열정적으로 경고해 대중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오스트리아학파는 (주류인) 신고전주의 학파의 자유시장 분파와 같은 자유방임적 진영에 속하며, 그들과 비슷하지만 좀 더 극단적인 정책을 추천하곤 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학파는 방법론 면에서는 신고전주의 학파와 많이 다르다. 이 두 학파의 동맹은 경제학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복잡성과 제한된 합리성: 자유시장에 대한 오스트리아학파의 변론
오스트리아학파는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달리 개인을 합리적 원자로 보지 않는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인간의 합리성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적 규범을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자발적,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선택 범위를 제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이에크는 "관습과 전통은 본능과 이성 사이에 놓여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덕적 규범을 존중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기당할 확률을 계산하기보다는 가능한 시장 거래의 비용과 이득을 계산하는 데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또 세상이 고도로 복잡하고 불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이 학파의 추종자들이 계산 논쟁에서 지적한 대로, 아무도, 심지어 누구에게 무슨 정보라도 요구할 수 있는 전능한 사회주의 국가의 중앙계획 기구조차도 복잡한 경제 체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없다. 오직 경쟁이 허용된 시장에서 일어나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를 통해서만,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세상의 변화에 반응해 수많은 경제 주체가 만드는 다영하고 변화무쌍한 계획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학파는 신고전주의에서 주장하듯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모든 것을 다 알아서가 아니라(혹은 적어도 필요한 것은 다 알아낼 수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하고 본질적으로 '알래야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에 너무도 많기 때문에 자유시장이 가장 좋은 경제 체제라고 주장한다.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이런 식의 변호는, 인간이 엄청나게 합리적이라는 가정과 세상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에 기초한 신고전주의의 변호 방식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자생적 질서 vs 구축된 질서: 오스트리아학파의 한계
의도적으로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맡기는 것이 더 낫다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은 100퍼센트 옳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의도적으로 '구축된 질서'로 가득 차 있다. 유한책임회사, 중앙은행, 지적재산권법 등 19세기 말까지 존재하지 않다가 뒤늦게 도입된 제도들이 그 예이다. 서로 다른 자본주의 경제마다 다른 다양한 제도와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경제 실적 또한 많은 부분이 자생적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구축된 질서의 결과이다.[주]15
  더욱이 시장 그 자체도 (자생적이라기보다는) 구축된 질서이다. 시장은 특정 행위는 금지하고, 어떤 것들은 억제하고, 또 어떤 것들은 장려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든 규칙과 규제 등에 의해 기초한다. 의도적인 정치적 결정에 따라 시장의 경계가 여러 번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 점이 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것은 오스트리아학파가 인정하기 않거나, 더 나아가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사실이다. 노예, 아동 노동, 일부 향정신성 의약품 등 한때는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교환했던 것들을 이제는 시장에서 거래할 수가 없다. 이와 동시에 이전에는 시장에서 팔 수 없었는데 정치적 결정 덕분에 지금은 판매하는 것들도 있다. 공동체가 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사고팔 수 없었던 영국의 공동 녹지 커먼스(Commons)는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인클로저enclosure를 통해 사유지가 되었고, 탄소 배출권 시장은 1990년대 들어서야 만들어졌다.[주]16 시장을 자생적으로 생긴 질서라고 부름으로써 오스트리아학파는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 해석했다.
  정부 개입에 관한 입장도 너무 극단적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특히 사유 재산을 보호하는 것 이외의 어떤 정부 개인도 사회주의를 향한 '미끄러운 내리막길slippery slope'의 단초가 된다고 보았는데, 이는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에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시각은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없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증명되지 않았다. 각 나라마다, 그리고 한 나라 안에서도 시장과 정부가 결합하는 수준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같은 미국 내에서도 초콜릿은 초등 교육보다 훨씬 더 시장 중심적인 방법으로 소비자에게 도달한다. 한국은 의료 공급을 영국보다 훨씬 더 시장 원리에 의존하지만, 상수도와 철도는 그 반대이다. '미끄러운 내리막길'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이런 다양성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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