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0일 금요일

[다시 읽기] 불필요한 너울로 변한 상품의 낭비가 소비자본주의를 지탱해주는 본질이다


※ 클라이브 해밀턴의 《성장숭배》 (2011) 중 
3장 "개인의 정체성", 4절 "과소비' 에서 발췌

[ ... 전략 ... ] 지금까지 우리는 소비하는 이유가 더 이상 인간의 욕구 충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현대 사회에서 소비의 목적은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예전에는 소비지출의 성격이 부의 과시를 통해 지위를 획득하려는 행동이었는데, 이제는 일정한 제품이나 브랜드를 동원해 자아를 만들어내려는 행동으로 바뀌었다. 제품이 그 본래의 쓸모는 도외시된 채 라이프스타일의 장식품으로 변해버린 것은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과정과도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제품이 라이프스타일을 꾸미는 장신구처럼 쓰이려면, 제품 자체의 본래적 기능 외에 추가되는 사양이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추가되는 비용이 제품 가치에 더해져야 한다. 이렇게 추가되는 비용으로는 제품을 차별화하는 데 드는 비용도 있고, 제품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만들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도 있다. 지금은 모든 소비재에 거의 예외 없이 부가되는 고급스러움과 모양새를 강조하는 사양들이 가격을 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식료품, 주거, 의류, 교육, 오락 등 그 쓸모에 맞게 웬만한 사양의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야 할 비용의 몇 배에 달하는 수준까지 제품 가격이 부풀려진다. 2천 달러에 팔리는 손목시계, 700달러짜리 선글라스, 200달러나 하는 운동화와 셔츠들, 고도의 공학이 동원된 각종 장치에다 고급스럽게 치장된 5만 달러를 넘는 승용차들, 생활에 필요한 면적의 두 배나 되는 주택들……. 이 모든 것들은 필요 이상으로 구색을 갖춘 것들인 데다, 어떤 경우에는 소비자가 알 수도 없는 사양들까지 갖추어진 채 팔리는 상품들도 있다. [ ... 중략 ... ]

  이러한 가치 부풀리기는 시스템의 재생산에서 아주 본질적인 과정이다. 왜냐하면 수십 년 동안 경제성장을 지속해서 높아진 소득을 지출할 곳이 있어야 하고, 또 지출해야만 경제성장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구상에서 앞서가는 나라들을 보면 세련된 수준의 욕구까지도 웬만한 것은 다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도,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수수께끼만 같다. 즉 사람들은 계속해서 돈을 써야하고, 돈을 더 많이 쓰도록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오늘날 소비지출 총계 중에서 재화와 서비스의 취득이 목적이 아니라, ‘지출하는 행위 자체’가 오락거리에 해당하는 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일과 가족에 권태를 느끼는 어느 의사는 오락거리가 잠시라도 끊어질세라 항상 뭔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나선다. 종종 개조와 수리가 필요한 별장을 새로 구입한다든가, 바닷가에 또 다른 주택을 장만한다든가, 교외에서 여가를 즐기기 위한 농장을 마련한다든가, ‘직업개발’을 위해 해외연수를 떠나기도 한다. 또 경주마의 지분을 매입하기도 하고 가끔씩 자신이 사는 집을 확장하는 공사를 벌이기도 한다. 이러한 행태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과잉소비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부를 갖가지 형태로 벌여놓는 일에 몰입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 생활의 바로 밑에 도사리고 있는 공허함을 대면하기 두려워하며 무의미한 삶의 본질을 애써 회피하려는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들은 자산의 형태를 이리저리 바꾸는 일을 재미 삼아 즐길 뿐이다.

[ ... 중략 ... ]

  낭비는 현대 소비자본주의를 유지해주는 본질이다. 중요한 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낭비라는 점이다. 버려지는 포장재의 낭비도 아니고, 상품기획 차원의 ‘의도적인 구식화’로 인한 낭비도 아니다. 그것은 구입한 상품의 물리적 속성이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생기는 낭비다. 소비되는 대상은 상품과 결부된 모양새와 태도, 취향, 이미지여서 상품 그 자체는 불필요한 너울이다. 불필요한 너울을 다 걷어낸 상품의 본질은 아무런 실체도 없이 그 상징만이 구매자에게 투영되는 보이지 않는 상품이다. 물리적인 제품이나 서비스, 즉 상품의 실체는 이 상징을 전시하고 구매자에게 운반하는 데 필요한 너울일 뿐이다. 플래티넘 신용카드는 그러한 너울이 최소한으로 축소되고 상징성이 극도로 부각된 형태의 상품이다. 하지만 그 밖의 상품은 대부분 너울일 뿐이어서 막대한 규모의 쓰레기로 폐기되며, 그 대가는 자연환경이 치르고 있다. 따라서 소비자본주의가 연출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아와 자연파괴는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로 이 점이 정치권과 경제계에서 말하는 소위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 환경주의자들이 말하는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이 갈라질 수밖에 없는 깊은 심연이다. 자연보호는 우리가 자연환경을 활용하는 방식을 대대적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아의 근본적인 변혁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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