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2일 일요일

[발췌: 데이비드 그레이버,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1장, 가치를 논하는 세 가지 방식

출처: 데이비드 그레이버,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교환과 가치, 사회의 재구성 (그린비 2009)

※ 발췌:

1장, 가치를 논하는 세 가지 방식

( ... ... ) 최근의 그 어떤 문헌에서도 체계적인 "가치이론"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대개의 경우 어떤 저자가 "가치"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도대체 어떤 종류의 (가치)이론에ㅡ만약 그런 것이 있기나 하다면 말이지만ㅡ근거하고 있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 역시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애매성이야말로 이 용어를 그처럼 매력적인 것으로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싶은 생각조차 갖게 된다.

   이 장에서는 이런 현재적 상황을 설명해 줄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해보고자 한다. 나는 가치 개념을 둘러싼 이런 애매성이 인류학이 수년간 해결하지 못한 채 고전하고 있는 이론적 난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약 20여 년 전 제기된 중대한 이론적 딜레마가 해결되지 못하고 방관된 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이론이야말로 이 이론적 딜레마의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일반적 공감이 형성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이론이 체계화되지는 못했으며 많은 학자들은 그저 마치 그런 이론이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

   사회이론에서 기존에 "가치"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살펴보면, 가치이론이 이 오랜 딜레마에 대한 해결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학계 내부의 일반적 기대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우리가 논하는 가치라는 단어의 용법은 과거에 크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으로 구분되어 사용되어 왔다.

  1. 사회학적 "가치들": 인간의 삶에서 궁극적으로 옳고, 바람직하며, 타당한 것들을 지시하는 개념.
  2. 경제학적 "가치들": 대상에 대한 욕망의 정도, 특히 그것을 얻기 우해 다른 것을 얼마나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가에 의해 측정되는 욕망의 정도.
  3. 언어학적 "가치": 페르디낭 드 소쉬르[주2]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기인하는 개념. 가장 간단히 정의하자면 "의미상의 차이를 낳는 최소한의 차이"(meaningful difference)로 규정될 수 있음.

   최근의 인류학자들이 "가치"에 관해 말할 때, 특히 20년 전이라면 "가치들"이라는 복수형으로 지칭되었을 것을 "가치"라는 단수형으로 지시할 때, 그들은 적어도 위에서 언급된 모든 것들이 하나의 단어로 불리는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니라는 점을 은연중 암시하는 셈이다. 궁극적으로 위에서 언급된 "가치"의 서로 다른 용법들은 동일한 한 개념의 변형들이다. 그러나 일단 이 사실에 주목하고 나면, 우리는 이것이 실로 쉽게 다룰 수 없는 도전적 개념임을 깨닫게 된다. 예컨대 이는 우리가 한 단어의 "의미"에 대해 말할 때와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말할 때 전적으로 다른 무언가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며 이 두 가지 용법 모두가 동시에 냉장고의 시장가격과도 동일한 어떤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회의론자라면 "과연 세 가지 다른 가치의 용법들이 뭔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공통점"은 너무 추상적이고 애매한 것이라서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동이다"라고 응대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경우라면 바로 이 애매성이라말로 그 개념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개념의 문제가 "애매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된 세 종류의 가치 개념 각각에 대한 인류학적 탐구의 역사를 되돌아본다면 우리는 이 중 하나의 가치 개념에 대해 일관성 있는 이론을 정립하려고 앴던 학자들이 대부분의 경우 가치의 다른 두 용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치명적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터이다.

   이제부터 나는 그런 실패의 역사적 사례들을 하나씩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클럭혼 프로젝트

"가치" 혹은 "가치체계"에 대한 이론은 철학("가치론"이라는 이름으로)이나 사회학(사회학에서 가치란 흔히 "가치-중립적"이라고 할 때의 바로 그 가치를 의미한다) 영역에서 주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생각처럼 인류학자들이 언제나 그 단어를 백안시해 왔던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그 어떤 인류학 책이라도 한 권을 골라 책장을 차분히 넘겨가다 보면 십중팔구 "가치"에 대해 적어도 한두 마디 정도의 일반적 언급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가치 분석을 인류학 이론의 한 분야로 만들려는 시도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경우 그 개념을 정의하려는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반 클라이드 클럭혼(Clyde Kluckhohn)이 일련의 학자들과 함께 하버드 대학에서 출범시킨 인류학 연구 프로젝트는 이런 지적 풍토 내의 중요한 한 예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가치 문제를 인류학의 중심 과제로 제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우리는 클럭혼 프로젝트를 인류학 그 자체를 가치에 대한 비교 연구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혅, 이 프로젝트가 여전히 언급된다면 이는 그 자체의 이론적 중요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 행동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연구해 온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간의 이론적 통합을 시도한 탤컷 파슨스의 <일반행동이론>[주3]에 그것이 미친 영향 때문이 경우가 많다. 심리학자들은 개인의 성격 구조를 탐구하고 사회학자들은 사회적 관계를 연구하며 인류학자들은 개인과 사회 모두가 어떻게 문화에 의해 매개되는지를 조사하는데[,] 이는 많은 경우 가치가 어떻게 상징과 의미를 통해 각인되는지에 대한 연구로 이어진다. 본래 클럭혼의 인류학 연구 주제는 나바호(Navaho)족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뉴멕시코와 림록 두 주에 초점을 맞추어[주4] 이 지역에 거주하는 서로 다른 다섯 부족, 즉 나바호, 주니, 모르몬, 텍산 및 멕시칸-아메리칸 사회 간의 가치에 대한 비교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다. 클럭혼은, 인류학적 관찰 및 분석을 최대한 통제 가능한 것으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이 지역에 대한 연구가 완전히 다른 가치체계를 지닌 다섯 부족의 사람들이 어떻게 동일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 ... )

   가치란 정확히 무엇인가? 클럭혼은 가치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계속해서 정교하게 발전시켜 갔다. 그러나 가치가 사람들이 여러 다른 행위의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무언가에 대한 개념"이라는 사실은 기본적인 전제로서 계속 유지되었다.[주5]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바람직한"이라는 수식어다. 그러나 이때의 "바람직한 것"은 단지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이런저런 모든 욕망들을 수식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다. 이때의 가치는 사람들이 ^마땅히 원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며 그에 따라 무엇이 타당한 욕망이고 무엇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선택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즉 가치는 언제나 삶의 의미를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라 할지라도 최소한 사람들이 삶으로부터 정당하게 희망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개념으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가치를 정의하는 데 있어 보다 어려운 문제는 "다른 행위의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이라는 구절에서 발생했다. 클럭혼은 가치가 단순히 추상적인 삶의 철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질적인 행동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개념들이라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런 영향을 주게 되는지를 규명해야 하 어려움에 직면했던 것이다.

p.32:    ( ... ... ) 클럭혼 프로젝트를 언급하는 많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의 프로젝트 자체에 어떤 내적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 동의를 표시하곤 한다. 그들은 문제가 오히려 올바른 구조이론의 부재에 있었다고 진단한다. 클럭혼은 서로 다른 사회 간의 사유체계를 비교하고자 했지만 각 사회의 사유 방식을 하나의 체계로 정립하기 위한 이론적 모델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언어학 모델을 차용하는 데 점점 더 큰 관심을 가졌지만 ( ... ) 클럭혼에 대하 비평가들은 구조주의 모델이 체계화되어 쏟아지기 시작한 1960년대 말까지 클럭혼과 그 사단의 작업이 계속되었더라면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는 의견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곤 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클럭혼 프로젝트는 아무전 지적 계승자도 만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 이는 물론 인류학자들이 더 이상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몇몇 지역 연구 분야에서는 ( 특히 ... ) 분명 특정한 가치들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대부분의 연구를 "명예"(honor)라는 가치 분석에 할애했던 지중해 지역 대상 인류학을 꼽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에는 "가치" 일반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클럭혼의 지적 전통 아래에서 작업했던 몇몇 다른 학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실이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가장 영향력 있었던 미국의 문화이론가들, 이를테면 클리퍼드 기어츠(Clifford Geertz)와 데이비드 쉬나이더(David Schneider) 같은 이들은 많은 점에서 클럭혼의 지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전개해 갔기 때문이다.

   이는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별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문화적 차이는 단지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세계로부터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니라 세계로부터 무엇으로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클럭혼의 핵심적 주장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는 인류학이 삶의 실질적인 철학에 대한 비교 연구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과학 내에서 클럭혼의 기획과 가장 유사한 예를 찾는다면 막스 버버의 세계 종교 연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종교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그 역시 인간 존재의 의미를 사유하게 해줄 일련의 체계들을 제시하고 개인들의 사회적 행동이 갖는 의미를 분석하고자 시도했기 때문이다. ( ... ) 그러나 현재의 논의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려 했던 최초의 가장 중요한 인류학적 시도가 거의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치에 대한 이런 인류학적 관심은 1960년대에 경제학과 언어학의 두 분야에서 서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다시 전개되기 시작한다.

p. 34:

최대화의 법칙

( ... ... ) 경제학의 전제는 대단히 간단하다. 사회는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개인은 그들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최소한의 희생과 노력으로 최대한 많은 만족으로 얻으려 한다. (이는 흔히 "최소/최대 접근법이라고 불리는데 ... ) 이 전제를 받아들이는 경제학자들은 약간의 문화적 차이 혹은 "간섭"들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한 "사회"라는 것을 대체로 이런 개인적 이익 추구 활동의 결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브로니슬라브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는 단행본 분량으로 나온 최초의 경제인류학 연구인 <서태평양 항해자(Argonauts of the Western Pacific)>에서 1922년에 이미 이런 "최소/최대" 법칙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이런 법칙이 트로브리안드 제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행위들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분명 반박되어야만 하는 또 다른 하나의 개념은 최근 몇몇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원시 경제 인간에 대한 전제이다. ... 이 개념은 원시 경제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합리적 판단에 근거하여 무엇보다도 최소한의 노력으로 그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동기에 의하여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분명한 예만으로도 우리는 이런 가정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잘 입증할 수 있다.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원시 부족민들이 우리에게 이 왜곡된 주장을 반박할 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미 살펴본 바처럼 그들의 노동은 최소한의 노력을 투자하려는 원칙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전적으로 불필요한 노동, 다시 말하자면 공리주의적인 이유에서 요구되는 노동에 투자하기 때문이다.[주9]
말리노프스키는 트로브리안드의 남성들이 그들의 얌(Yam) 밭을 대하는 태도를 예로 든다. 그들은 그들의 밭이 말끔하고 근사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한한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엄격한 "경제적" 의미에서 보자면 이는 전적으로 쓸모없는 노력이다). 밭을 가꾸는 이 모든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노동을 그것에 투자할 수 있는지를 과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작 그런 노동의 결과 산출된 수확물의 절반 가량은 소비자의 부족으로 인해 썩어서 버려지고 만다. 심지어는 얌을 길러낸 사람이 그 얌을 소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밭의 주인이 거둔 거의 대부분의 얌이, 물론 그가 초과노동으로 확보한 잉여생산까지를 모두 포함하여, 밭의 주인이 아니라 이런저런 결혼관계로 맺어진 친척들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이다. 자세한 규칙들을 고려하지 않고 말한다면 수확량의 3/4가량이 일부는 족장에게 보내는 공물로, 또 다른 일부는 여자 형제들의(혹은 어머니의) 남편이나 가족들에게로 보내야 할 곡물로서 소비되었다.[주10]
   다시 말해,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남자들은 그들의 노동을 "경제적으로 투자"라는 대신, 불필요한 작업의 수행에 더 많이 투자했으며 그리고 나서는 정작 그 노동의 결과물을 대부분 여자 형제 쪽 일가로 보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심지어 여기에는 그 어떤 직접적인 상호수혜적 관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정작 그 밭의 주인 자신은 여동생의 가족이 보내는 식량이 아니라 자기 아내의 남자 형제들이 보내는 식량에 의해 부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소/최대 법칙을 반박하는 이런 예들을 끝없이 제시할 수 있으며 실제로 좀더 이른 시기의 인류학들에서 이미 이런 예를 숱하게 소개한 바 있다. ( ... ... )

   요컨대 경제학이 개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과 관련된 학문이라면 인류학은 집단적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최소/최대 모델을 인류학에 결합시키려는 시도들은 언제나 비슷한 종류의 대단히 복잡한 난관에 봉착하곤 했다. 경제인류학의 고전적 사례 연구 중 하나인 프란츠 보애스의 콰키우틀족의 포틀래치에 대한 보고[주12]나 트로브리안드의 쿨라 제도에 대한 말리노프스키의 논문[주13]은 모두 관찰자 자신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원칙 위에서 작동하는 교환체계를 분석한 바 있는데 이런 사회에서 그 사회의 가장 주요한 인물들은 재화를 소유하는 대신 경쟁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재화를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모스는 1925년에 이런 경제체계를 묘사하기 위해 "선물경제"라는 용어를 창안하기도 한 바 있다.

   ( ... ... )

p. 40:

   이런 경제학적 접근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부작용이 수반된다. 이런 식의 경제학적 분석을 위해서는 언제나 전통적인 사회학적 의미에서의 권력, 지위, 도덕적 순결성 등과 같은 일련의 "가치들"을 설정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경제적 가치와 동일한 것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학적 인류학자들이 가치를 논하되 이를 다소 기이한 방식으로 논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이 더 많은 돈과 소유물 혹은 명예 사이에서 무언가를 선택한다고 말하는 것은 명예라는 추상적 가치를 물화시켜 그것을 마치 한 병의 스파게티 소스나 금속 조각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예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처분하거나 소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추상적 태도이자[주15] 오직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관념의 형태이다. ( ... ) 그러므로경제학자들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이미 사회적 관계를 사물로 환원하는 모종의 태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치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주16]은 이런 태도를 모든 것에 확장, 적용시키켜 언급된 사물화 경향을 더욱더 심화시킨다.
[주15] 비슷한 방식으로 권력 역시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추상적 능력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사적 재산의 형태와는 구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 ... ) 경제학자들이 가치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만족의 예상치이다.

결국 대부분의 경제학 이론은 "사회"의 존재를 지워 버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설사 우리가 모든 사회적 관계를 사물로 환원하고 그 결과 경험주의자들의 이상인 개인과 사물로만 구성된 세계의 창조에 성공한다 할지라고 사람들이 왜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보다 더 큰 만족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게 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주로 생리학적 요구[주17]에 의존하고 해왔다. 그러나 왜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초콜릿 치즈 케이크 대신 소금에 절인 자두 음료에서 더 큰 만족으로 느끼고 한 지역에서는 비만으로 간주되는 체형이 또 다른 지역에서는 매력적인 몸매로 간주되는지 등의 질물들에 직면할 때면 경제학자들은 결국 다시 사회 혹은 문화와 같은 개념의 필요성을 마지못해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1960년대 경제학적 인류학에서 첨예하게 대두된 형식론자 대 실재론자(Formalist-Substantivist) 간 논쟁의 핵심적 논제였다.[주18]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논쟁이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생각하며 양자 모두의 이론적 전제가 타당하지 않은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논쟁을 일으킨 근본적 문제 자체는 아무런 해결책을 찾지 못한 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의 논의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

p. 43: "형식주의"와 "실재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창안한 것은 헝가리의 경제학자인 칼 폴라니였다.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은 18-19세기 영국에서 우리가 지금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탄생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책이다. 그 당시 시장은 거의 자연적인 현상( ...)의 직접적 발현이라고 간주되고 있었는데 시장에 대한 이런 이해는 또한 자연스럽게 경제이론이 의지하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냉소적) 전제 역시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근본적 전제는]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언제나 그들이 원하는 것을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계산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내버려구기만 하면 "자유시장"과 같은 공간은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이다[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류 역사의 99%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이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이런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단지 이런저런 국가 혹은 봉건 지배층의 개입과 간섭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힘에 기초한 봉건적 관계는 자유에 기초한 시장의 역학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 ... )[주19]

   폴라니의 저서가 갖는 미덕은 이런 식의 상식적 믿음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를 입증해 냈다는 데에 있다. 사실상 국가와 그것의 압제적 권력기구들이야말로 우리가 "시장"이라고 알고 있는 것, 사유제산과 국가통화, 법률 계약과 신용시장 등에 기초한 바로 그 제도를 탄생시킨 기본적인 동력이다. 이 모든 것들이 오직 정부의 정책에 의해 탄생되고 또 유지되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 시작부터 국가의 창조물이었으며 언제나 그런 것으로서 존재해 왔다. ( ... )

   폴라니는 또한 이런 기구들이 창안되는 시기와 거의 동시에 스미스나 맬서스, 리카도 같은 이론가들이 어떻게 하나같이 인간과 자연 간의 유비에 기초하여 이런 시장의 법칙들이 자연의 보편적 규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폴라니는 이런 법칙들에 대한 연구를 경제적 "형식주의"라고 명명하고 시장에서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형식주의적 입장을 적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탕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회가 이런 식의 시자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그 자신의 내적 논리에 따라 작옹하는 자율적 행위의 장이라는 의미에서의 "경제" 개념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공간에서는 폴라니가 "실재적"이라고 부른 접근 방식을 통해 한 사회가 그 자신에게 음식과 주거 공간 및 다른 물질적 재화들을 공급하는 구체적 과정들을 검토해야만 했는데 [,] 이 과정에서 주지해만 할 것은 이런 재화 공급의 전 과정이 전체로서의 사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결코 정치나 친족관계, 혹은 종교 등과 구별할 수 있는 별도의 행위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실재론적 입장에서 경제학적 인류학 연구를 진행한 학파(대표적 학자로 폴라니의 제자였더 조지 달튼George Dalton을 들 수 있다)는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경험론적인 입장에 서서 그들의 작업을 수행했다. 즉 어떤 가정이나 전제 없이 특정 사회에서 재화들이 분배되는 방식을 관찰하고 그 분배의 원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이런 작업의 결과[,] 그들은 최대화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 일련의 새로운 교환과 분배의 형식들을 발견했고 인류학자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던 선물경제의 예들에 더하여 최대화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또 다른 예로서 이들을 추가했다. 재분배 경제redistributive economies나 중립거래지대ports of trade(서로 다른 지역의 상인들이 미리 결정된 교환 비율에 따라 물품 거래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중립무역지대)[주20] 또 교환 영역[주21] 및 마셜 살린스가 소개한 친교 영역sphere of sociability[주22]에 대한 연구 등이 이런 발견들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 ... ) [그러나] 서로 다른 "사회들"이 저마다 다른 재화 분배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문제의 사회의 구성원이 선물을 주거나 신부대금을 요구하고 자유거래지대에서 상아와 사프란saffron을 교환할 때 자신들의 행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들의 학문적 적대자들은 재빠르게 이런 약점을 발견했으며 그 결과 실재론적 접근은 곧 형식주의자들의 강력한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주23] 형식주의자들은 칼 폴라니가 경제학이 진정 무엇에 대한 학문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그들은 경제학이 "경제제도"라고 불릴 수 있는 어떤 것의 존재나 부재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하는" 인간 행동의 유형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경제적 행동"이란 물론 사람들이 투자를 최소화하고 성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다른 희소 자원 가운데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그들 역시 이런 가설이 인간 본성에 대한 선험적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모든 이론은 ^모종의^ 가정 위에서 작업하지 않을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최종 이론이 갖는 설명 능력의 여부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사회과학의 핵심이 서로 다른 사회체계의 형식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특정한 방식을 행동하게 만드는 동기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사실 실재주의자들에 대한 형식주의자들의 비판은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실재론적 접근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면서 그저 이런저런 분류법을 제시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실재주의자들의 시도는 이후 좀더 큰 이론적 틀 아래 흡수되기도 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경우 뒤르켐Durkheim식 기능주의 사회학의 이런저런 변형으로 귀결되곤 했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사회를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 이해하는 반면 기능주의 사회학자들은 사회를 고유한 행위 능력을 가진 어떤 존재, 심지어 의식적인 목적을 가진 행위자에 가까운 무엇으로 이해하곤 한다. ( ... ) 그들은 경제제도가 전적인 카오스 상태에 빠질 수도 있을 사회의 개인들을 도덕적 관계로 연결시키거나 혹은 적어도 "사회"의 자원을 배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사회"가 도대체 ^어떻게^ 개인들이 그런 제도에 따라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사회 성원들의 행위 동기를 설명하지 않는 이론들에거 우리는 그 어떤 종류의 규칙에 대해서라고 아무 생각 없이 순응하는, 마치 자동인형 같은 인간의 이미지를 만나게 될 뿐이다. 이런 종류의 이런은 그런 사회에서 도대체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아무러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처럼 형식주으자들이라고 해서 이 점에 대해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이라는 상황에서 개인이 취하는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적 도구들을 가지고 작업하면서 이런 개념들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변형해 적용함으로써 때로 특정한 문화에 속한 개인들의 행동을 예측하는 성공하기도 한 바 있다. 그러나 행위자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든 가치의 문제나 전체로서의 사회 형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제공하지 못했다. ( ... )

   ( ... ) 실재주의자들의 경우처럼 전체로서의 사회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던 이들은 사회를 특정한 방식으로 재생산하려는 사람들의 동기를 설명하지 못했으며[,] 형식주의자들처럼 개인들의 욕망에 주목했던 이들은 사람들이 왜 특정한 최대화의 대상을 선택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혹은 그런 선택의 의미를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  학자들은 다른 이론적 관심사로 눈을 돌려 버렸지만, 동일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또다시 등장하고 있다. ( ... ) 오늘날 가장 새롭고 고무적 탈구조주의 이론으로 간주되는 주장들의 상당수는 사실상 그 공상적인 경제 공식의 자리를 그보다 더 공상적인 언어학 공식으로 대체한 거래행위론의 변형들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와 언어적 가치 (p. 49)

언어학자들은 오랫동안 한 단어의 의미를 그것의 "가치"라고 불러 왔다. 상당히 이른 시기의 인류학에서부터 이미 이런 언어학적 "가치"를 다른 종류의 가치와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예 하나로 우리는 "집" 혹은 "치엥"(누에르족의 집)이라는 단어의 "가치"를 논하는 에번스-프리처드Evans-Prichard의 <누에르인(The Nuer)>를 들 수 있다.[주25] 에번스-프리처드에 따르면 누에르 사람에게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집이나 마을, 자신의 땅을 뜻하기도 하고, (외국인에게 말을 하는 경우에는) 누에르족의 영토 전체를 뜻하기도 한다. 또한 이 단어는 특정 사물을 지시할 뿐 아니라 그 대상에 대한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단어는 그 대상에 대한 충성과 신의 그리고 이를 수호하기 위한 정치적 행동의 가능성도 전달한다.] 즉 누에르인에게 집이란 외부인에 대항해 지켜야만 하는 공간 일체를 의미했던 것이다. 이 경우 한 단어의 의미인 가치는 동시에 사회학적 의미에서의 "가치"에 연결된다. 에번스-프리처드는 "가치는 단어 속에 각인되며 이를 통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주26]고 주장한다. 종족 분쟁이 발생했을 때 "집"이라는 개념이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이 단어는 "정치적 가치" 역시 지니게 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가치"가 한 단어의 "의미"로부터 "중요한 무언가"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은 결국 누에르인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고 자신이 속한 공간에 대한 충의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개념이며 이런 점에서 그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어떤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에번스-프리처드의 접근 방식은 대단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어떤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단어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인류학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에번스-프리처드가 아니라 근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창시자인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이론을 참조한다. (p. 50)

p. 51~:

  <일반 언어학 강의(Course in General Linguistics)>에서 소쉬르는 분명 모든 단어는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이 가치는 근본적으로 "부정적negative"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 단어의 의미가 오직 같은 언어 내의 다른 단어들과의 대비를 통해서만 확보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빨간색"이라는 단어를 보자. 주어진 단어가 속한 언어 내의 다른 모든 색깔 이름을 알지 못한다면 "붉은색"이라는 단어의 의미 혹은 그것의 "가치"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붉은색 이외의 색들을 모른다면 "붉은색"의 의미 역시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지역의 언어 중 하나에서 어떤 단어를 "붉은색"으로 번역할 수는 있겠지만, 만약 그 지역 언어에 "갈색"을 의미하는 단어가 없다면 그들이 말하는 "붉은색"과 영어의 "붉은색"은 사실 동일한 색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지역 사람들은 나무 둥치의 빛깔을 묘사하기 위해 "붉다"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영어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붉다"라는 단어를 정의하는 방법은 그것을 푸르지도 않고 노랗지도 않으며 갈색도 아니고 또 이런저런 여타의 색이 아닌 색깔이라고 말하는 것이 될 터이다. 요컨대, 특정 색깔을 지시하는 단어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에 속한 다른 모든 색깔의 가치 역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한 단어의 의미는 그것이 속한 전체 언어 내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이다.[주28] 소쉬르의 이론이 인류학에 미친 영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막대한 것이었다. 그는 모든 의미의 체계가 언어와 동일한 방식으로 조직된다고 주장하면서 언어학 역시 그가 기호학semiology이라고 이름 붙인 상위 학문, 당시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의미의 과학[주29] 아래 속한 하부 항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구조주의는 이런 소쉬르의 제안 위에 시작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주28] 또는 이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모든 언어 각각이 이미 완벽한 색상체계(color spectrum) 위에서 시작되며 언어는 단지 이 전체 체계를 임의로 구분해 각각의 조각마다 이름을 부여한 것에 다름 아니라고 말이다. 이는 종종 실재라는 "파이를 조각내는(slicing the pie)" 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주29] 그러나 이후의 학자들 대부분은 소쉬르가 창안한 세미올로지(semiology)라는 용어 대신 세미오틱스(semiotics)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
{*}  구조주의가 어떤 방법론이나 분석의 관점이 아니라 아예 하나의 학문이라고 말한 것인지...(??)
p. 52~:

  앞서 든 예에서 알 수 있듯이 (1) 소쉬르의 의미 분석은 문법보다는 단어에, 동사보다는 형용사와 명사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으며 아울러 인간의 행위보다는 그 행위의 대상에 더 초점을 맞춘 이론이었다. (2) 소쉬르의 이론에서 출발하여 그의 시대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기호학이란 학문을 발전시킨 이들이 물리적 사물의 의미를 분석[주30]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그러므로 실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 { (1)(2)가 같은 문단의 다음 문장 (3) 및 뒤따르는 문장들과 어떤 관계로 연결되는 것인지??}
[주30] R. Barthes, Systèmes de la mode, Paris: Seuil, 1967 ; J. Baudrillard, La Système des Objets, Paris: Denoël, 1968 ; M. Sahlins, Culture and Practical Reason (어느 해?).
(3) 사물은 그들 사이의 유의미한 구별에 의해 정의된다. 대상의 의미(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속한 더 큰 체계 내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해야 한다. "붉은색"의 의미가 그것이 아닌 다른 모든 색에 의해 부정적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예컨대 외부 아래 입은 터틀넥 셔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한 사람이 착용^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의류의 명칭들을 이해해야 한다. 즉 터틀넥 셔츠를 입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외투 안에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지 ^않았으며^ 티셔츠를 입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역시 아니라는 등등의 사실 모두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 단어가 동일 체계 내의 다른 단어들과 맺고 있는 관계 자체인 것이다. 이는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독립된 부분을 설명할 수 없다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주장이다.  하나의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모종의 총체적 체계를 먼저 파악해야만 한다는 이 주장은 구조주의의 핵심적 전체{로서}[로] 자리 잡는다. 그러므로 구조주의 분석의 핵심은 언제나 (마치 언어에서처럼)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숨겨진 약호, 혹은 상징체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p. 53~: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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