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http://book.interpark.com/blog/xaxx/1782004
책이 던지는 갖가지 메시지를 몇 가지 횡단면으로 끊어보고 그 의미들을 재구성하는 주체적 독서가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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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연주는 쉽지 않다. 짧은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의 한 옥타브를 넘겨 닿지 않고, 기타 지판을 짚는 손가락 끝의 피부는 벗겨지기 시작했다. 플루트는 아무리 불어도 청명한 소리를 내지 않고, 바이올린을 켤 땐 어디에 손가락을 놓아야 정확한 음을 내는지 모르겠다. 반복되는 연습뿐이다. 때론 왜 이런 지겨운 일을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게다가 실력은 연습 시간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아무리 손가락을 놀려도 막히는 대목이 있게 마련이다. 악기를 팽개치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 순간, 빛이 보인다. 악보를 보는 눈, 연주를 지시하는 두뇌, 실행하는 손이 하나가 된다. CD로만 듣던 대가들의 연주가 내 손끝에서 나온다. 음악과 몸과 마음이 어울려 삶의 다음 단계로 올라간다. 황홀한 순간이다.
런던 정경대 사회학과 교수이자 한국에도 소개된 <불평등 사회의 인간존중>, <뉴캐피털리즘>의 저자인 리처드 세넷은 신작 <장인>에서 인간 노동의 의미를 돌아본다. 그리스의 도공, 로마의 벽돌공, 의사, 연주자, 리눅스 프로그래머를 모두 ‘장인’(craftsman)의 범주로 묶어 ‘생각하는 손’을 이야기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핵폭탄 투하와 냉전을 지켜봤다. 그리고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보통 자기가 무얼 하는지 모르며, 인간이 만든 물건으로 구축된 문화는 항상 화를 자초할 위험을 품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의 핵개발을 주도한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 ‘죽음의 수용소’를 기획한 나치 관료 아돌프 아이히만은 모두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한 장인이었지만 노력의 결과는 인류에 대한 해악이었다. 아렌트는 ‘아니말 라보란스’와 ‘호모 파베르’를 구분했다. 전자는 세상과 차단된 채 일하는 동물이며, 후자는 공동의 삶을 만들며 자신의 노동을 스스로 판단하는 존재다. 전자가 ‘어떻게’만 묻는다면, 후자는 ‘왜’까지 염두에 둔다. 아렌트는 호모 파베르에 희망을 걸었다.
세넷은 자신의 스승인 아렌트가 틀렸다고 한다. 질 좋은 천이나 잘 만든 요리 자체에서 선(善)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아니말 라보란스가 호모 파베르를 안내한다는 것, 사람들은 자신이 만드는 물건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세넷의 주장이다.
아렌트가 장인을 천대한 첫번째 사람은 아니다. 근대 이후의 장인들은 줄곧 속병을 앓아왔다. 근대 사회는 일하는 사람을 독려하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짜냈다. 하나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라는 도덕적 명령, 다른 하나는 경쟁이다. 전자의 방안을 실행한 것은 공산주의 사회인데, 잘 알려져있다시피 생산성이 심각하게 저하됐고 사회 시스템 자체가 실패로 돌아갔다. 경쟁을 독려한 건 자본주의 사회다. 한정된 재화로 최대의 결과물을 내라고 독려하는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일 자체를 잘하기 위해 일에 매진하는’ 장인은 설 곳을 잃었다.
<장인>에서 가장 논쟁적이며 흥미로운 주장은 “모든 기능은 (아주 추상적인 기능까지도) 물리적인 몸동작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세넷은 이마누엘 칸트가 200년 전 ‘지나가는 말’로 한 “손은 마음에 이르는 창문”이란 경구에 용기를 얻는다. 일정한 틀에 갇힌 이미지만 전달하는 눈에 비해, 촉감은 무제한적 정보를 실어 나르는 것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손가락의 촉감이 선제적인 탐색 행위를 시도할 수 있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중세의 금세공인은 ‘금속성 흙’을 손가락으로 굴려보고 눌러보면서 순금 같지 않아 보이는 구석이 있는지 살펴보고 판단했다. 감각이 입수한 국부적 증거로 금의 속성을 추론한 것이다. 손을 많이 쓰는 사람에게 생기는 굳은살도 마찬가지다. 굳은살이 박여 피부가 두꺼워지면 감각이 둔화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굳은살은 손에 퍼진 신경 말단을 보호함으로써 탐색 행위를 돕는다. 어떤 개념을 ‘파악한다’는 단어는 잡을 파(把)와 쥘 악(握)의 한자로 구성됐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 ‘안다’는 것이다.
이념적으로 따진다면 세넷의 입장은 계몽주의, 실용주의, 민주주의로 요약된다. 인간의 능력을 믿는 계몽주의 정신은 우리 모두 훌륭한 장인이 될 수 있다는 논의로 연결된다. 구체적인 경험에서 철학의 의미를 찾는 실용주의는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따라 갈린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런 논의들은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인민 모두에게 있다는 민주주의로 귀결된다.
세넷은 <장인>을 시작으로 하는 ‘물질문화 삼부작’을 구상 중이다. 두번째 책에선 의례(ritual)를 장인의 실기로 본 뒤, 의례가 종교와 전쟁을 어떻게 이끄는지 알아볼 예정이다. 세번째 책은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에 관련돼있다. 3부작이 완간되면 더욱 구체적인 성과가 나타나겠지만, 이미 확실해진 사실은 <장인>이 역작이며 한동안 지식사회에서 회자될 화두를 던진 책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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