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5일 토요일

발췌: 페르낭 브로델

자료: 김응종 저, 《페르낭 브로델》
※ 발췌식 메모와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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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머리말에서 브로델은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경제 현실에 대한 베르너 좀바르트나 요제프 쿨리셔 같은 경제사가들 혹은 경제학자들의 전통적인 도식들이 자기가 관찰한 경제 현실과 잘 맞지 않아서 무척 당황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산업화 이전 시기 유럽의 발전은 시장, 기업, 자본주의적 투자라는 ‘합리성’이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최종적으로 산업혁명으로 만개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역사 그렇게 투명한가? 브로델은 단순한 ‘진화론’에 반대하면서 경제를 ‘물질문명ㅡ 시장ㅡ자본주의’의 삼층 구조로 관찰한다.
실제로 19세기 이전[의] 관찰 가능한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물론 우리는 그 진화 과정을 추적해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진화 과정이란 하나라기보다는 차라리 서로 대립되고 어깨를 겨루며 심지어 서로 상반되기까지 하는 여러 개의 진화 과정들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경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과 같다. 그중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묘사하기 좋아하는 것은 시장경제다. 그것은 농업 활동, 소점, 수공업 작업장, 상점, 증권거래소, 은행, 정기 시장, 그리고 물론 시장에 연결된 생산과 교환 메커니즘들을 뜻한다.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명료한 심지어 ‘투명한’ 현실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움직여 나가고 또 그렇기 때문에 파악하기 쉬운 과정들을에 대해서 먼저 연구하기 시작했다. 즉 경제학은 처음부터 다른 것들을 사상한 채, 이런 특권적인 분야만 골라서 보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불투명한 영역, 흔히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기본 활동의 영역이다. 지표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폭넓은 영역을 나는, 더 알맞은 이름이 없어서 ‘물질생활(la vie matérielle)’ 혹은 ‘물질문명(la civilisation matérielle)’이라고 명명했다. 확실히 이 표현은 너무 모호하다. 그러나 현재를 보는 시각이 일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것처럼 과거를 보는 나의 시각이 공유된다면 언젠가는 이 하부 경제를, 즉 경제 활동이 덜 형식적이며 자급자족적이거나 아주 좁은 범위 내에서 재화와 용역을 물물교환하는 또 다른 절반을 가리키는 데 더 적절한 명칭을 발견하게 되리라.

또 다른 한편으로, 시장이라는 광범한 층의 밑이 아니라 그 위로 활동적인 사회적 위계가 높이 발달해 있다. 이러한 위계 조직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교환 과정을 왜곡시키며 기존 질서를 교란시킨다. 원하든, 아니며 의식적으로 원하지 않든 간에 그것은 비정상과 ‘소란스러움’을 만들어내며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18세기 암스테르담 상인이나 16세기의 제노바 상인은 이처럼 상층에 자리 잡고서 원거리로부터 유럽 경제나 세계 경제의 전 분야를 뒤흔들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 특권적인 주인공 집단은 일반이이 알지 못하는 유통과 계산을 수행했다. 예를 들면 환업무는 원거리 무역과 신용 수간의 복잡한 운용과 연결되어 있어서 기껏해야 일부 특권적인 사람에게만 개방된 정교한 기술이었다. 시장경제의 투명성 위에 위치하면서 그 시장경제에 대해서 일종의 상방 한계를 이루는 이 두 번째의 불투명한 영역은 나에게는 특히 다름아닌 자본주의의 영역이었다. 시장경제 없이 자본주의는 생각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 자리 잡고 그곳에서 번영한다.
이 삼분법적 도식의 특징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대립적으로 구분한 것이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추구하지만 자본주의는 독점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에서 나오지만 시장경제를 교란시키는 반(反) 시장경제이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시장경제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삼분법적 구조로부터 곧바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시장경제와 자본부의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가? (...)

... 같은 책, 1부 "증언들" / "브로델 사학의 탄생" 32-34쪽


ㅡ《역사학 논고Ecrits sur l'histoire》(1969): 브로델의 주요 논문 모음.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 가운데 1958년 《아날》에 실린 논문인 〈 역사와 사회과학: 장기지속〉은 브로델 사학의 핵심 개념인 ‘장기지속’을 다룬다.  《지중해》에서 구현한 역사에 대한 그 자신의 부연 설명.

‘사건사’, ‘콩종튀르사(史)’ 이 두 종류의 역사 서술 너머에는 세기 단위의 ‘장기지속적인’ 역사가 있다. ... 브로델은 장기지속적인 ‘구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좋건 나쁘건 이 낱말은 장기지속의 문제들을 지배한다. 사회적인 것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쓰는 구조라는 말은 현실과 사회 집단들 사이에 맺어진 어느 정도 고정적인 관계들의 조직, 일관성을 뜻한다. 우리 역사학자에게 구조란 조립이요 건축물을 뜻하면서도 무엇보다 시간이 쉽사리 마모시키지 못하며 아주 느리게 운반하는 하나의 현실[실재(實在): 이 독자의 추정 독해] 가리킨다. 어떤 구조들은 오랫동안 살면서 무수히 많은 세대의 고정적인 요소가 된다. 그러한 구조들은 역사의 길을 막아 역사의 흐름을 방해하고 그럼으로써 지배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구조들은 빨리 소멸된다. 그러나 모든 구조는 받침대이자 동시에 장애물이다. 장애물로서의 구조는 인간과 인간의 경험이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이룬다. 예컨대 지리적 틀이라든가 생물학적 현실, 생산성의 한계, 심지어 여러 가지 정신적 제약(心性의 틀 또한 장기지속적인 감옥이다) 등을 깨뜨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보라.
[... 인용문의 첫 문장 이후부터 다음과 같이 읽어본다.] 
구조라고 하면, 사회 현상을 관찰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실재와 여러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무언가의 조직이나 체계 혹은 상당히 견고하게 굳어진 일련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가들이 보기에도 구조란 무언가의 결합이고 건축물과 같은 모습이겠지만, 그보다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마모되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는 무언가의 실재를 뜻한다. 그와 같은 구조들 중에는 오랜 시간 존속해서 세대가 수도 없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구조가 있다. 그러한 구조들은 역사에 멍에를 씌우며 역사의 흐름을 옥죄고 흘러갈 방향을 결정한다. 그러한 구조들보다 쉽게 사라지는 구조들도 있다. 어쨌거나 그러한 구조는 모두가 디딤돌로 작용하기도 하고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장애물로 작용할 때는 인간으로서 애써 봐도 좀처럼 넘어설 수 없는 한계와도 같다(수학적으로 말하면 일정한 조건의 무수한 선분들을 외곽에서 바싹 감싸는 포락선 같은 것이다). 지형적으로 결정된 틀이라든가 여러 가지 생물학적 조건, 혹은 생산성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얼마나 어려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나아가 이런저런 정신적인 한계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심성의 틀 역시 장기 지속하는 감옥이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히드라 이야기》, 브로델(김홍식 옮김, 갈라파고스 2012) 중 「해제: 브로델이 들려주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히드라 이야기」에서 발췌.
[브로델의 원문]
(...) Par structure, les observateurs du social entendent une organisation, une cohérence, des rapports assez fixes entre réalités et masses sociales. Pour nous, hitoriens, une structure est sans doute assemblage, architecture, mais plus encore une réalité que le temps use mal et véhicule très longuement. Certaines structures, à vivre longtemps, devinennent des éléments stables d’une infinité de générations: elles encombrent l’histoire, en gênant, donc en commandent l’écoulement. D’autres sont plus promptes à s’effriter. Mais toutes sont à la fois soutiens et obstacles. Obstacles, elles se marquent comme des limites (des enveloppes, au sens mathématique) dont l’homme et ses experiences ne peuvent guère s’affranchir. Songez à la difficulté de briser certains cadres géographiques, certaines réalités biologiques, certaines limites de la productivité, voire telles ou telles containtes sprituelles : les cadres mentaux, aussi, sont prisons de longue durée.
Fernand Braudel(1958), “Histoire et sciences sociales: La longue durée”, Annales: Économies, Sociétés, Civilisations. 13e année, N. 4. 731쪽.


(...)

(...) 요컨대 월러스틴은 브로델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대립적인 층으로 구분하고 시장경제의 정신을 경쟁으로, 자본주의의 정신을 독점으로 파악한 것을 의미 있게 보는 것이다. 독점을 추구하는 자본가들은 통념과는 달리 전문화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독점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시키는데, 이러한 독점이 무너지면 다른 분야로 진출하여 또다시 이익의 극대화를 도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본가들은 선택하며 변신한다. 자본가들은 자유롭다. 자본가들이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선택의 자유다. (...)

이어서 월러스틴은 브로델의 자본주의 개념에 담겨 있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
둘째, “그것은 계몽주의의 진보 이론에 대한 은근한 비판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브로델은 자유주의자들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진보 이론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용해온 기본적 논거의 밑동을 베어버렸다는 것이다. (...) 하지만 브로겔은 단선적 진행 과정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월러스틴의 표현을 빌리면, 독점 세력들(자본주의)과 해방 세력들(시장경제와 물질생활) 사이의 긴장 관계에 주목한다.

(...) 브로델 역시 월러스틴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나, 이러한 불평등 체제가 사라질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브로델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면서 시장경제에 희망을 두었다. 그러나 월러스틴이 지적하듯이,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요 경쟁 자체를 거부하는 푸자드주의를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브로델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의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사회주의는 반(反) 시장이라는 점에서 자본주의와 다르지 않았다.

(...) 알랭 카이에《브로델 읽기》(1988)에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구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 브로델이 “시장의 지배”를 과장하고 있다는 것.
  • 브로델은 유럽에서 일찍이 12세기부터,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구분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 그러나 알랭 카이에는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은의 비율, 그리고 아메리카와의 교역이나 북유럽의 곡물 유입량 등이 매우 적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브로델의 “시장의 지배”를 비판한다. [즉] 교역은 기근이 발생할 때만 이루어진 예외적인 사업이지 규칙적인 시장의 “넘실거리는 큰 파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 알랭 카이에는, 브로델이 상인을 세계경제사의 주역으로 설정함으로써 수공업자와 농민들과 같이 시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사람들을 홀대하고 말았다고 비판한다. 자본주의가 생산이 아니라 교역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점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 (...) 그러나 미셸 모리노는 1840년까지도 동양과 서양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별로 차이가 없었다는 폴 베록의 수치는 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 이어지는 (유럽의) 내재적 발전이 하나의 신화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서양[에서] 산업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값싼 농산물의 공급이어었으며, 그것은 농업혁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식민지에서 값싼 농산물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
... 같은 책, 1부 "증언들" / "타자의 시각"


■ (...) 그러니 ‘인간의 지중해’를 살펴보아야 한다. 브로델은 “교통로는 모든 잘 짜인 역사의 하부구조”[잘 짜인 역사를 보면 전부 교통로가 그 하부구조를 이룬다: 이 독자의 추정 독해]라며 교통로와 도시를 주목한다. 교통로와 도시는 결국 하나다. 지중해의 도시는 교통로를 만들어내며 교통로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16세기에 세계의 어느 지역도 지중해 세계만큼 강력한 도시망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파리와 런던은 겨우 근대의 문턱에 접어들었을 뿐이다. 네덜란드와 남부 독일의 도시들, 즉 한자동맹의 도시들 모두 활기를 띠기는 했으나 지중해 도시들처럼 촘촘하고 복잡한 총체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이곳은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밀라노, 바르셀로나, 세비야, 알제, 나폴리, 콘스탄티노플, 카이로 등 대도시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나폴리, 콘스탄티노플(인구 70만 명으로 파리의 두 배, 베네치아의 네 배였다), 카이로는 인구 과잉이었다. 또 중요한 것은 수많은 작은 도시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

[ 장기간 (거의) 변함없이 지속되는 역사의 구조는 감옥이고 인간은 그 안에 갇힌 수인이다. 하지만..] 도로와 도시는 지중해의 인간적 질서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지배한다.” 농업은 대단치 않은 경우라도 도시로 귀착되며 도시의 지시를 받는다. 도시는 농업 성공의 원인이 된다. 도시 때문에 사람들의 삶은 자연적인 조건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욱 급해진다. 도시 덕분에 교역 활동은 여타 활동보다 우월해진다. 지중해의 모든 역사, 모든 문명은 도시가 만들어낸 것이다. 농촌은 자연환경의 절대적 영향을 받지만 도시는 그렇지 않다. 자연의 장기지속적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문명은 시작된다. 도시의 존재는 그 자체로 지중해 세계가 자연환경의 구조적 지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

... 같은 책, 2부 "거대한 역사", 1장 "지중해 세계의 쇠퇴", 77-78쪽


《지중해》의 2부 “집단의 운명과 전반적인 움직임”에 관하여.

브로델의 콩종튀르:
1부에서 우리가 다룬 주제는 공간에서부터 출발하여 반복하는 것, 완만한 것, 영속적인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었다.(중략) 이와 같은 장기지속을 넘어서 우리의 두 번째 책은 더욱 개별화된 리듬을 지닌 역사, 즉 집단, 집단의 운명, 전반적인 움직임의 역사를 포착하고자 한다. 여기서 모든 것은 인간으로부터, 인간들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모리스 알박스의 표현을 빌리면, 더 이상 ‘사물’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 사물을 가지고 인간이 만든 것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이 두 번째 책은 모순적인 논제에 답하고 있다. 사회구조, 즉 마모가 완만한 메커니즘[cf. 마모되더라도 그 진행이 완만한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그 메커니즘의 변동에도 관심을 가진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이 책은 우리의 전문 용어로 ‘구조’와 ‘콩종튀르’라 이름 붙인 것, 즉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는 것, 느린 것과 빠른 것을 뒤섞는다. 이 두 가지 현실은, 경제학자들이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실은 구조와 국면으로 구별하는 것은 경제학자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변화하는 것과 영속적인 것의 끝없는 혼합물인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 결합되어 있다.
(...) 브로델이 콩종튀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국면’이라는 일반적 의미 외에도 경제학에서 사용해왔던 의미가 들어 있다. 콩종튀르는 변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변하되 주기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 변화는 예측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콩종튀르라는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제반 활동, 특히 경제 활동들은 나름대로의 주기를 가지고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순환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주기에 따라 여러 개의 경제적인 움직임이 있다. 즉, 가장 장기적인 움직임이 세기적 추세, 콘드라티에프의 50년 주기와 같은 장기적 콩종튀르, 10년 내 주기, 계절적 움직임...

(1) 세기적 추세.

16세기 지중해 세계에서 경제생활의 세기적 상승은 1470년경에 시작되어 1590-1600년의 기록적인 고물가 시기에 중단되거나 완만해지는데 [대략] 1650년까지 지속된다. 이러한 장기적 상승은 기본적으로 곡물 가격의 변동에서부터 확인된다. ‘장기 16세기’ 동안의 가격 상승은 물질생활과 이것에 의존하고 있는 모든 것의 상승에 이바지했다. 이러한 기저의 활력은 16세기 말에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역류는 뒤늦게 1650년경에 가서야 찾아온다. (...) 지중해 세계는 1571년의 레판토 해전이나 1588년의 스페인 무적함대의 괴멸과 관계없이 17세기 중엽까지는 대체로 번성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사건’의 힘이 무력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세기적 상승이 1470년경에 시작했다는 것은 그것이 아메리카로부터의 은의 유입과 관계없이 시작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아메디카가 아니라 유럽이 모터였다는 것이다.

1450년부터 1650년까지 200년 동안은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었다. 원인이건 결과이건 하여튼 대규모 인구 증가가 있었다. ‘인구 증감’이라는 요소는 브로델의 설명 체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세기적 상승 추세가 전반적인 생활 수준의 [향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18세기 말까지 경제적 상승은 언제나 대중의 희생 속에서, 다시 말해 ‘사회적 학살’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 시기까지는 나누어 먹을 빵의 크기에 아무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빵의 크기가 커진 것은 산업혁명 이후였다. 이런 의미에서 산업혁명의 역사적 역할을 인정할 수 있다. (...)

(2) 장기적 콩종튀르: (...)

.... 같은 책, 2부 "거대한 역사", 1장 "지중해 세계의 쇠퇴", 82-83쪽

■ (...) 구조적으로 전쟁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접점에서 일어났다. 지야드와 십자군은 경제적인 경기 불순에 의해 고집스럽게 촉진되었다. 반대로 기독교들 사이의 내전이건 이슬람교도들 사이의 내전이건 모두 상승하는 파도에 의해 지탱되었으며, 그것의 하강은 매번[상승 파도가 반전할 때마다: 이 독자의 추정 독해] 규칙적으로 내전을 정지시켰다. (... 이러한 일치를 보면) 상승 국면에서는 내적인 전쟁이, 하강 국면에서는 이교도들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 반유태 운동은 외적 전쟁에 해당된다. 기독교 세계는 역류의 시기[역류는 하강을 의미하는 듯]에 유태인들을 학살했다. (...)

(...) 1480년에서 1509년 사이의 르네상스는 주기상의 후퇴기에 일어났다. 스페이의 황금시대, 그리고 유럽에서나 이스탄불에서의 17세기의 섬광은 첫 번째 세기적 반전 이후에 퍼져나갔다. [이런 현상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브로델에 의하면, 경제적 둔화는 많은 돈을 부자들의 수중에 그냥 쌓아두는데[경제가 둔화되기 시작하면 부자들이 자기 수중에 많은 돈을 쌓아 두게 되는데: 이 독자의 추정 독해], 이 투자되지 못한 자본을 낭비하는 것이 황금시대이다. 문명의 사치스러움은 경제적 실패의 신호라는 것이다.

... 같은 책, 같은 부, 같은 장, 85-87쪽

■ 근대국가는 귀족들의 적인 동시에 보호자요 동업자였다. 부르주아지는 상업적인 위험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관직과 공채, 봉토 등을 매입하고, 귀족적인 삶의 위세와 안락함 등의 유혹에 굴복했다. 그들은 왕에게 봉사하고 땅의 안전한 가치를 추구했다. 부르주아들은 귀족으로 편입되었다. 귀족은 그들의 태양이었다. 귀족의 작위는 살 수 있었다 16세기에 현금을 받고 귀족 작위를 팔지 않는 국가는 없었다. 부르주아들이 자발적으로 투항한 것이니 귀족들은 제3신분과 싸울 필요가 없었다. 제3신분들은 그들에게로 왔고 그들을 위해 가난해졌다. 소위 말하는 “부르주아지의 배신”이다. (...)

그러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는 이러한 설명을 취소한다. ‘부르주아지의 배신’이라고 표혆ㅆ던 것은 지나친 말이었다. 사실 부르주아지가 철저하게 배신하는[배신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장벽[장애물? 저항?]에 대항하여 스스로 변화하는[변화했던] 것이다. 부르주아들은 더 많은 이익을 좇아 민첩하게 변신한 것이다. 결국 16세기 귀족과 부르주아지는 건재했다. 성장의 부담을 짊어진 사람들은 서민들이었다. 소요와 폭동, 반란이 빈발했고, 부랑자들과 유랑민이 증가했다. “사회적 양극화”가 진행된 것이다.

... 같은 부, 같은 장, 95-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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