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김우택 (한림대학교 명예교수)
***
(... 전략) 사건의 명칭에도 ‘거품’이라는 단어가 붙여진 ‘남해회사 거품(South Sea Bubble)’의 전말을 살펴보자.
금융위기의 역사책으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찰스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 1910~2003)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Manias, Panics, and Crashes: a History of Financial Crisis)』는 제5판에서 역사상 10대 금융거품 리스트에 ‘튤립마니아(Tulipmania)’에 이어 두 번째로 ‘영국 남해회사 거품’을 꼽고 있다. 미시시피 거품과 함께 1930년대 대공황 이전에 발생한 3대 금융거품 중 하나인 셈이다.1)
영국을 중심으로 쓴 금융위기의 역사에서는 예외 없이 최초의 위기로 불리는 이 거품에 대해 킨들버거는 단순한 사기사건이었다고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존 블런트와 그의 내부자들은 그들이 자신에게 발행한 주식에서 - 그것도 그 주식을 담보로 차입한 자금으로 산 - 이익을 얻고자 했다. 자본이득을 실현하자 부동산 매수에 그 자금을 사용했다. 붕괴 시점에 블런트는 여섯 건의 부동산 매입 계약을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남해회사 주식투자로 2만 파운드에 달하는 엄청난 손실을 본 후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했다는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 1642~1727)의 일화를 인용하면서 1720년 남해회사 주식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소용돌이를 시장의 광기로 몰고 간다.
이 같은 해석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04년에 출판된 『최초의 붕괴: 남해 거품의 교훈』에서 저자 데일 교수도 남해 거품을 2000년의 닷컴 버블과 비교하면서 남해회사에서 존 블런트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일들을 엔론이나 월드콤사에서 케네스 레이(Kenneth Lay)와 버나드 에버스(Bernard Ebbers)가 저지른 회계부정과 사기행각과 같은 부류로 치부했다.
그러나 일개 회사의 주식을 둘러싼 금융사기가 어떻게 역사상 10대 금융 거품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금융사기 이상의 무엇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2)
(.... 전문은 위 자료 링크, KERI 칼럼, 2010년 2월 22일에서 계속)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