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SkepticalLeft.com, 자료
***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정신, 이것은 무엇인가.
이론적 설명은 다 집어치우고 단순히 말하면 이것은 '서구 중심 문명의 전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반항운동이라 할 수 있다.
첫째, 포스트 모더니즘(이하 PM)은 이미 우리 사회에 잘 작동되고 있는 합리적 원리, 규칙, 질서, 코드에 강하게 반발한다...
둘째, PM은 규격화된 표준을 몹시 혐오한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상품처럼 똑같은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PM은 차이를 만들어내려 안간힘을 쓴다....
셋째, PM은 타자他者들의 목소리, 그들이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한다. 여기서 타자란 중심에 서지 못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PM은 어떤 틀이나 액자의 바깥으로 나서려 하고 그 바깥에서 안에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위반의 정열로 부딪치려 한다. 여기서 위반이란 단지 규칙을 깬다거나 딴죽을 건다는 끗이 아니라, 틀 안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바깥의 자유를 고수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얼핏보면 PM은 종잡을 수 없이 좌충우돌하는 경박한 시대정신을 옹호하는 사조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오해받기도 쉽다. 소위 들뢰즈의 유목민 이론이 등장했을 때 유럽 폭주족들이 들뢰즈 강연장을 찾아가 열렬히 환호했다는 에피소드에서도 잘 알수 있듯, PM은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오해하기 아주 쉬운 거대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영화 <슈렉>, 그리고 PM
슈렉은 파콰드 영주가 지배하는 성 밖의 늪지대에 사는 괴물이다. 생긴 모습이 기이할 뿐더러 하는 행동거지도 더럽고 메스껍다. 이런 슈렉이 무섭고 더러워 누구도 이 늪지대에 접근하려 들지 않았고 슈렉 역시 고독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별 탈 없이 지낸다. 어느 날 폭군 파콰드의 졸개들을 피해 달아나던 당나귀 덩키가 우연히 슈렉의 보금자리로 피신온다. 한편 이렇게 둘 만이 조용히 살아가는 늪지대에 어느 날 동화속의 주인공들이 들이닥쳐서 시장바닥 같은 북새통을 이루게 된다. 피터 팬, 피노키오, 신데렐라, 백설 공주 등 우리가 그 이름들을 너무도 잘 아는 이 주인공들은 원래 파콰드 성주의 영지에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파콰드가 이제는 이 유명인물들이 지겨워져서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판단하자 모조리 자기 땅에서 몰아내버렸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슈렉의 늪지대로 떠밀려온 것이다.... 통상적으로는 동화라면 으레 그렇듯이 변신의 기회에서 피오나 공주는 반드시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주인공 슈렉과 행복하게 결합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은 이러한 기대를 산산히 깨트린다. 결국 못갱긴 두 주인공이 다시 성이 아니라 늪지대로 돌아가는, 무언가 뒤끝이 찜찜한 장면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그냥 끝내 버린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결말은 고도로 계산된 미학적 효과를 얻고자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숭고하다는 것
칸트(Immanuel Kant)는 대상을 미학적으로 판단하는 데서 아름다움과 추함이라는 기준 외에 숭고(sublime)라는 범주를 끌어들임으로써 미학의 역사에 획기적인 새 장을 열었다. 이것이 저 유명한 그의 세번째 비판서 <판단력 비판>을 이끌어가는 핵심 내용 중 하나다.
- 여기서 '숭고'라는 것은 얼핏 듣기와는 달리 고매하거나 거룩한 성질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은 쉽게 풀자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성을 갖는 정서 상태를 말한다.
- 우선 이것은 오직 다양한 암시만이 가능할 뿐, 눈으로는 느낄 수 없는 무한하고 영원하고 절대적인 어떤 것에 대한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가령 별들이 총총한 깊은 밤 무한한 공간과 영원한 침묵 앞에 갑자기 내몰렸을 때 파스칼이 느꼈으리라 믿어지는 감정을 말한다. <팡세>에서 파스칼은 말한다.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슈렉>에서 슈렉이 언젠가 밤하늘에 떠오른 별과 달을 보다가 문득 덩키에게 "왜 사람들은 보이는 것 너머에 또 보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요컨대 숭고한 것이란 이때 슈렉이 말하는 '또 보아야 할 것' 자체이며, 또 보아야 할 것을 암시해주는 것 자체다.
- 숭고는 또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숭고는, 절망감, 불쾌감, 고통,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들을 통과해 도달하게 되는 안도감, 쾌적함, 총체적 환희의 정서를 말한다. 가령 목숨을 건 암벽타기를 끝낸 알피니스트, 사선을 넘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 거대한 태풍의 눈 한 가운에 들어와 안도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숭고에 닿아있다.
영화는 끝까지 괴물같은 슈렉, 돼지처럼 못생긴 피오나를 백마 탄 왕자나 아름다운 공주로 변신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을 불쾌하고 찝집하고 어딘가 허탈해지는 기분을 들게 한다. 잠깐, 눈을 감고 이 기분이 환기시키는 여운을 조금 길게 가져가보라. 아주 희미하게라도 동화의 바깥의 늪으로 탈출한, 그래서 그 비용을 당당히 치른 두 사람의 외모 너머로 다른 느낌이 솟구치지 않는가. 만일 거기서 희미한 상태로나마 어떤 기분 좋은 안도, 애매한 기쁨이 수반된다면 그 느낌은 숭고에 이어지는 정서라 할 수 있다.이처럼 영화 <슈렉>은 PM적 미학의 핵심 개념인 숭고의 정서를 환기시켜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