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베이커 *)
1990년대 말 전대미문의 주식시장 상승세가 미국 경제를 불붙게 하더니,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은 전대미문의 주택가격 상승세가 최근 경제회복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식거품과 다를 바 없이 주택거품도 결국 터질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 거품이 터질 때가 되면, 경제는 깊은 경기후퇴의 늪으로 빠져들 것이고, 주택가격이 떨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수천만의 주택 소유자들은 심각한 난국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주택가격 상승
주택시장의 기본은 확고하다. 즉 품질 차이를 조정한 주택가격은 보통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을 따라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8년 동안 [그림 34.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택가격은 불변가격(즉 물가상승률을 공제한 실질가격)으로도 50 퍼센트 가까이 상승했다. 이런 상승세가 모든 지역에서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주택가격은 불변가격으로 봤을 때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남부와 중서부 지역 대부분이 특히 그렇다). 반면, 거품지역(서해안, 워싱턴 DC 북쪽의 동해안, 플로리다)의 가격 상승세는 불변가격으로도 80 퍼센트에 육박했다.
주택거품은 경제에 직접적인 활력으로 작용한다. 주택의 건설과 증개축이 늘고 주택 판매량이 늘기 때문이다. 또 주택거품은 소비를 자극하고 지탱해주는 효과가 있어서 간접적으로도 경제의 활력으로 작용한다. 그동안의 주택가격 상승세는 주택가격이 정상적인 상승경로를 따랐을 때에 비해 5조 달러 이상의 부동산 가치를 새로 만들어냈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유발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대한 전통적인 추정치는 100분의 5로, 주택가격이 100이 올랐다면 연간 5만큼의 돈이 소비지출로 나온다는 것이다. 주택거품으로 5조 달러의 부가 새로 생겼으니, 그 5 퍼센트인 2,500 달러(GDP 대비 비율로 2 퍼센트)의 연간 소비지출이 거품이 없었을 때보다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림 34.1] 주택 매매가와 임대료 추이(물가상승 조정) (그림 생략)
자료: 노동통계국(BLS), 경제분석국(BEA), 연방주택기획감독청(OFHEO) 주*)
주: *) 이 통계에서 임대료 지수는 1953년부터 1982년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들어가는 임대료 지수를 취했고, 1982년부터는 주택 소유자 관점의 임대수입 지수(임차인에게 제공되는 편의시설 비용이 제외된다)를 활용했다. 주택 매매가 지수는 1975년까지 노동통계국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주택가격지수home price index를 활용했고, 1975년부터 1982년까지는 소비자물가지수와 OFHEO 주택가격지수House Price Index(HPI)의 변동률을 활용했고, 1982년부터는 HPI를 활용했다. 모든 수치에서 물가상승분을 공제할 때는 GDP 디플레이터GDP deflator를 활용했다.
펀더멘털에 따른 것인가, 아니면 투기적 거품인가?
주택가격이 급등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왜 가격이 올랐냐는 것이다. 펀더멘털에 따른 상승인가, 아니면 투기적 거품에 따른 상승인가?
펀더멘털을 점검해보면, 이 문제에 대한 의혹은 금세 풀릴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소득이나 인구가 특별나게 빨리 성장한 현상은 없었다. 1997년 이래 일인당 실질소득 수준은 연 2 퍼센트의 준수한 속도로 성장했지만, 주택가격이 급등하지도 않았던 1953년~1973년 기간의 연 2.8 퍼센트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평균 가계소득(중앙값)은 2000년 이래 하락하고 있는 상태다.
인구 추이를 봐도 주택 수요가 급증할 만한 요인은 없었다. 가구의 숫자는 1995년에서 2004년 사이에 연평균 140만 가구씩 증가했다. 이것은 베이비붐 세대가 처음으로 가정을 꾸리던 시기인 1970년대에 연평균 280만 가구씩 늘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낮은 속도다. 주2) 연령층 분포도 주택수요의 급증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베이비붐 세대의 주택수요가 정점에 달했다가 떨어지는 기간에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 (중략) .... 펀더멘털이 주택가격 급등의 요인이 아님을 말해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임대료가 그에 버금갈 정도로 상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택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초기에는 임대료가 전반적인 물가상승률보다 좀 더 빠르게 상승했지만(그림 34.1을 보라), 마지막 수 년 동안에는 물가상승률 밑으로 떨어졌다. 주택수요와 주택공급의 펀더멘털에 의해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경우라면, 매매시장이나 임대시장 모두에서 큰 폭의 가격 상승이 나타나야 한다. 매매시장에서만 이례적인 가격 상승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 가격 상승이 펀더멘털이 아니라 투기적 수요에 따른 것임을 뒷받침한다.
거품은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주택가격이 투기적 거품이라면, 결국 가격은 주택의 사용가치를 반영하는 정상 수준으로 돌아갈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신규 주택 착공이 역사상 최고치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이러한 공급 속도는 주택가격이 최고치 근방에서 유지되는 동안에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초과공급을 투기자들이 흡수해주고 있고, 임대시장에서는 기록적인 공실률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결국 초과공급이 매매가를 짓누르게 될 때가 되면, 투기적 수요는 종적을 감추게 될 것이다. (주택의 초과공급이 매매가에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때 나타나는 부분적인 현상은 임대 물량으로 나온 주택이 매매시장의 매물로 나오는 것이다.)
아무 가치도 없던 인터넷 회사들의 주식 공급이 결국 수요를 압도해버렸던 것처럼, 주택 공급도 결국 주택가격에 충분한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고, 거품 가격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얼마나 빨리 일어나느냐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에 달려 있다. 아직은 이 금리 수준이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시작될 조정 과정이 달가운 모습일 리 없다. 주택 건설은 GDP의 6 퍼센트를 웃도는 큰 경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경기후퇴기에는 건설 경기가 갑자기 뚝 떨어진다. 일례로, 1970년대 중반에 건설업은 40 퍼센트 가량이 줄었고, 1980년대 초에는 약 30 퍼센트가 줄었다. 지난 5년 동안 건설 물량이 폭증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깊은 하락폭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주택가격이 조정되면서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 소비지출도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만약 5조 달러로 뻥튀기된 거품 재산이 전부 사라지게 되면, 이 마이너스 ‘부의 효과’로 인한 소비 감소폭은 연 2,5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GDP의 2 퍼센트에 해당하는 소비 규모다.
주택거품 붕괴가 빚을 또 하나의 결과는 채무 불이행이 연쇄적으로 급증해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주택 소유자들의 채무-순자산 비율은 거의 역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이 수치만으로도 경악할 일이다. 최근 주택가격의 급등으로 인해 주택 소유자들의 순자산이 그만큼 높게 평가된 상태인 데도, 채무가 그보다 더 빨리 늘어난 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주택가격이 오르자, 값이 오른 이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이야기다. 또 주택을 매입한 신규 매수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여벌의 새 주택을 매수하는 데 나서고 있다. 정상적인 수준보다 훨씬 적은 선불금만으로도(즉 주택담보대출을 끼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택가격이 하락 방향으로 돌아서면, 주택 소유자들 다수의 주택담보대출 채무가 그들의 주택가치보다 커지게 된다. 이때가 되면 이들의 채무 불이행이 급증할 것은 뻔하다. 주택 소유자들의 채무 불이행이 늘면, 이들의 채무를 거대한 규모로 보유하고 있는 금융기관들도 위험진다. ..... (중략) .....
거품은 빨리 터뜨리는 것이 미루는 것보다 낫다
주택거품의 붕괴를 막을 수 없고 이로 인해 경제와 금융시스템이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기 때문에, 미리 선제적인 타격으로 거품을 터뜨리는 게 옳다. 정부는 시장 붕괴를 막을 수 없다. 거품을 그대로 끌고 가면 거품은 갈수록 불어나서, 나중에 닥칠 붕괴는 더욱 처참해질 것이다. 정부는 거품이 이 정도로 불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 단계를 넘어선 지금, 최선책은 거품이 더 커지기 전에 터뜨리는 일이다. 그냥 놓아두면 더 큰 재앙을 부르는 일이 된다.
거품을 터뜨리는 가장 쉽고도 좋은 방법은 (거품이 터질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FRB)와 재무부 고위 당국자들이 기초 자료를 취합해서 장기 추세를 이탈한 현 주택가격의 부적합성을 국민들에게 설명하면, 당연히 이러한 경고는 대중매체를 타고 널리 보도될 것이다. 주택매수에 나설 개인들이 이런 정보를 듣게 되면, 이들에게 주택 물량을 떠넘기는 전국의 영업 인력도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택 매수자들 대부분이 이런 경제논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공직자들이 미래 주택가격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사실은 집을 사야겠다는 이들의 열망을 식혀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과연 이런 경고가 금융거품을 터뜨릴 수 있을 것인지는 미지수다(아직 시도된 적이 없다). 하지만 말하는 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거품을 공격할 첫 번째 무기로 정보의 위력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 경고가 실패한다면, FRB가 동원할 두 번째 무기가 있다. 바로 금리 인상이다. 낮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데 기름을 부어준 연료다. 만약 담보대출금리가 좀 더 정상에 가까운 수준(예컨대, 7~8 퍼센트)으로 돌아가면, 주택가격이 급락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의도적으로 수 조 달러 대로 불어난 재산을 파괴하는 일은 고약한 정책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고약한 일을 해야 할 상황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주택가격 급등이 마냥 지속될 수 없는 일이라면, 문제는 가격이 ^떨어지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언제^ 떨어지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재산을 파괴하는 게 아니다. 환상을 파괴하는 것일 뿐이다.
가격 하락을 빨리 겪는 게 뒤늦게 겪는 것보다 경제에도 더 나은 일이고, 수천만의 주택 소유자들에게도 더 나은 일이다. 거품이 오래 가면 갈수록, 거품은 자꾸만 불어난다. 또 거품이 불어날수록, 결국에는 다른 경제 부문으로 되돌아가야 할 자원이 주택건설과 매수에 더 많이 쏠리게 된다. 또한 거품이 유지되는 시간만큼, 거품이 끌어들인 채무도 불어나고, 그로 인한 채무 불이행도 불어나게 된다. 또 거품이 유지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택가격 붕괴에 뒤따를 경기후퇴도 더욱 혹독해지기 쉽다.
거품이 유지되는 시간이 한 달 한 달 지날 때마다, 거품 붕괴로 타격을 입을 주택 소유자들도 늘어난다. 15년 전에 주택을 샀던 사람이 주택가격이 세 배로 올랐다가 고점에서 40 퍼센트 하락하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면 최고가에 팔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겠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품이 한껏 불어난 고가에 주택을 매수하는 가정은 주택가격이 33 퍼센트 정도만 하락해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매년 8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설 주택이나 기존 주택을 매수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거품 가격에 매수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수천만의 베이붐 세대가 은퇴 연령에 다가서고 있다. 이들은 소유 중인 주택의 가격이 지금의 가격을 유지하거나 심지어 오르지 않겠냐는 가정 하에 은퇴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택가격을 믿는 만큼, 현금 저축은 적게 하게 된다. 주택거품(또 이전에 있었던 주식거품)을 믿고 있다가 은퇴연령에 들어서면, 이 사람들 모두가 혹독한 처지에 내몰릴 것이다. 이 문제 또한 거품이 한 달 한 달 지날 때마다 점점 심각해진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는 거품 문제를 떠맡아야 한다
FRB는 거품은 왔다가 지나가는 현상일 뿐, 그들이 맡아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견해를 취해왔다. 이런 견해는 금융거품이 불어났다가 꺼질 때 미치는 어마어마한 영향을 생각하면 정당화되기 곤란한 입장이다. 지난 20년 동안 FRB는 물가상승률 조절을 주된 관심사로 다루어왔지만, 물가상승률의 소소한 오르내림에 비하면 금융거품은 실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금융거품을 무시하는 입장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주된 관심사로 삼았던 FRB의 예전 입장과도 합치되지 않는다. 1987년 주식가격 붕괴 때 FRB가 유동성 공급에 적극 나섰던 일이나, 보다 최근에는 헤지펀드인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의 붕괴 위기 때 FRB가 수습에 나섰던 명분은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는 것이었다.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FRB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금융거품이 경제를 장악하려고 할 때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주택거품의 붕괴와 그로 인한 엄청난 피해를 겪고 나서야, 국가의 정책 결정자들이 이 문제를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 *) 딘 베이커Dean Baker는 경제정책연구센터Center for Economic and Policy Research(CEPR)에서 공동 이사를 맡고 있다. 베이커 박사는 그의 평소 견해대로 워싱턴 DC 도심의 본인 소유 아파트를 2004년 5월에 매도했다.
다음 글에서 일부를 발췌함. "The Menace of an Unchecked Housing Bubble," in Joseph E. Stiglitz, Aaron S. Edlin, J. Bradford DeLong eds., 《경제학자들의 목소리The Economists' Voice》. 한국어판 3장 (원서 3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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