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7일 목요일

막스 베버 한 소절: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자료: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제2부의 제1장 세속내적 금욕의 종교적 기반들(혹은 현세적 금욕주의의 종교적 토대) 마지막 부분에서

1.

이러한 금욕은 더 이상 "의무 이상의 행위"가 아니라 구원의 확신을 얻으려는 자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행위였다. 자연 상태의 생활과는 달리, 성인들의 종교적인 생활은 이미 세속 밖의 수도원에서가 아니라 세속이나 그 제도 안에서 영위되게 되었다. 이처럼 내세를 지향하면서도 세속의 내부에서 행해지는 생활의 합리화야말로 바로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이 갖는 직업관년의 귀결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세속을 떠나 고독 속으로 도피한 기독교의 금욕은 수도원 내부에서 교회를 통해 비난을 가하면서 이미 세속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이 금욕은 세속적 일상 생활이 갖는 자연적으로 자발적인 성격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이제 이것은 수도원의 문을 뒤로 하고 시정(市井)의 생활에 진출하였다. 그리하여 이 금욕은 바로 세속적 일상 생활 속에 그 방식을 침투시켜, 세속에 의해서도 세속을 위해서도 아닌, 세속 내에서의 합리적 생활로 개조하려고 시도했다. 앞으로 우리는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를 규명해보고자 한다.

출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고려원, 1996년

2.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이러한 금욕적 생활방식은 자신의 전존재를 신의 뜻에 맞추어 합리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이 금욕은 더 이상 과외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요구되는 행위였다. "자연적" 생활과 구별되고 종교적으로 요구된 성도의 특별한 생활은 --이 점이 결정적인 것이다--더 이상 세속 밖의 수도원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그 질서 아에서 행해졌다. 내세를 바라보면서 세상 안에서 생활방식을 합리화한 것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직업사상이 낳은 결과였다.

처음에는 세속을 벗어나 고독으로 도피했던 기독교의 금욕주의는 세속을 단념한 상태에서도 이미 수도원에서 나와 세계를 기독교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그 금욕주의는 대체적으로 세속적 일상생활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 성격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금욕주즤는 닫아버린 수도원의 문을 뒤로 하고 삶의 시장에 걸어 나와 현세적 일상생활에 자신의 방법을 침투시키기 시작했고, 일상생활을 세속 안에서--그러나 세속에 의해서나 세속을 위해서는 아니었다--합리적 생활로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이하의 서술은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지적하려는 것이다. 

출처: 같은 제목의 책, 문예출판사,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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