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3일 화요일

私法上 團體에 관한 一般論: 團體法論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중심으로

자료: 최병조 교수(서울대 법대),  http://jus.snu.ac.kr/~romanist/choe/53.html



※ 메모: 


..... 근대 이후의 법에 있어서는 개체적 인간에게 근원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모든 법적 사고는 개인의 권리와 의무, 개인들간의 법률관계로 환원된 개체적 생활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서구법 전통상 두드러지는 이러한 個人主義(Personalismus)는 인간의 자연적·사회적 존재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단체(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해서 평생을 고립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단체소속원으로서 살아간다. 개인은 언제나 단체속의 개인이다.....

이 글은 원래 현행법상 私法的 단체의 유형으로 알려진 社團과 財團에 관한 일반이론을 서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올 여름 심포지움에서의 구술발표문의 성격과 지면관계상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단체법이라는 난제 앞에서 필자의 능력과 안목의 부족, 자료정리의 미비로 인하여 대단히 어설픈, 그마저도 社團에 한정된, 글이 되고 말았다. 讀者諸賢의 양해를 구한다.....

II. 法人論의 역사적 변천(學說史)

―특히 非法人社團을 중심으로― 

....로마국가의 단체성은 그 法人格性과 더불어 일찍이 始原的으로 명백한 형태로 인지하고 인정했던 로마인들이었지만, 私法的 단체의 경우에는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였다. 자발적 結社에 기한 고전기의 단체법은 로마후기로 오면서 전혀 유형을 달리하는 강제적 단체법으로 변화한다. 후기에 단체법을 주도한 이념은 국가의 필수적 需用에 충당하기 위한 용역과 물자의 확보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히 중요한 세 직업단체가 아프리카와 이집트에서 곡물을 수송해 오는 海運業者(CTh. 13.5), 製빵業者(CTh. 14.3) 및 精肉業者(CTh. 14.4) 단체였다.

社團體를 지칭하는 용어로는 corpus, collegium, universitas 등이 사용되었는데, 원래 자유설립 (내지는 法秩序의 무관심 내지 放任에 의한 자유의 여지)이 인정되었다. 그러나 공화정 말기에 정치적 혼란의 한 원인으로 여겨져 금압의 대상으로 되면서 이러한 정책방향은 이후 서양의 단체법을 貫流하는 기조로 작용하였다. 그 사료적 근거였던 帝政初의 법률(lex Iulia de collegiis)은 원칙적 금지를 전제한 상태에서 금지를 풀어주는 형태의 원로원의 認可를 규정했는데, 후에는 황제의 인가로 대체되었다(D.3.4.1.pr). 이후 不許단체의 금지가 법의 원칙적인 모습이 되었다(collegium illicitum)(D.47.22). 


로마인들의 단체법의 발전과정상의 한 특징은 Caesar의 개혁조치로 말미암아 원래 公的 단체인 res publica의 일부였던 地方市(municipia)의 법적 지위가 市民體(corpus civitatis)로 轉化되면서 公的 성격을 일부 온존한 私的 단체가 되었고, 이로 인해 규율상의 복잡성을 띠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정이 現傳하는 사료의 이해를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든 난점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로마인들은 개별성원들(singuli)과 구별되는 단체를 法人格 개념이 결여되었던 결과 一同全員, 즉 成員 總員(universi)이라 표현하였고, 總員의 의사결정 및 행위를 위한 대표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기본적 인식하에 개별적인 법률문제들을 당시의 주어진 법리의 틀 내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단체현상과 관련하여 오늘날 제기되는 제반문제는 대부분 인식되었고 논의되었다. 다만 그에 대한 해답만큼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자면 경우에 따라서는 통일성을 결여했거나 일관되지 못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불충분한 것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노정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로마 團體法論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세 이후의 착종된 단체현상을 이론적으로 整序하는 데에 로마적 관념들이 동원되어 수행했던 역사적 功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 * 譯語例: universitas 단체; collegium 社團體; corpus 結社體 


중세의 團體法論은 로마법에서 받아들인 universitas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나, 이것은 아직 단순한 취합개념에 불과했고, 엄밀한 의미에서 법기술적 개념은 아니었다. 어쨌든 universitas personarum(社團體)와 universitas bonorum(財團體)를 구별했던 중세의 법학은 universitas를 全一體("corpus unum"), 槪念體·無形象體(nomen intellectuale et res incorporabilis), 人格體("persona") 등으로 표현함으로써 단체, 특히 法人格을 갖춘 단체의 구조적 특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단체는 중세사회에 있어서 公生活의 중요기능의 담당자로서 언제나 삶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고, 법적 논의 역시 이에 비례하여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전반적으로 로마법의 전통적 유산을 수용하는 데에 그쳤던 시민법학자들과 달리, 특히 12세기의 교회법학자들은 로마법, 기독교, 게르만법의 요소들을 조화시킨 위에 새로운 체계를 발전시켰는데, 이러한 이론적 窮究는 교황혁명 후의 법적 분쟁의 해결을 위한 실천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었음이 주목된다. 교회법학자들의 團體法論은 단체 성원의 의사결정과정에의 참여를 강조함으로써 이후 교회 및 세속의 지배자에 대한 권력제약이론으로 발전하였음도 특기할만한 사항이다......

多神敎 사회였던 로마도 그리스도교의 國敎化와 더불어 법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완전한 私權能力이 正統 신앙고백과 연계되게 된 것이다(C.1.5.1). 그리하여 유태인은 그리스도교도와 혼인하는 것이 금지되었음은 물론(C.1.9.6), 기독교도인 노예를 보유하는 것도 금지되었으며(C.1.10.1), 또한 모든 高位公職에서 배제되었다. 또 異端者(haeretici C.1.7)와 背敎者(apostatae C.1.7)에게는 유언능력 및 유언취득능력이 부인되었다. 그리고 異敎徒(pagani)의 예배행위는 사형 및 몰수형으로 금압되었다(C.1.11). 종교와 종파문제로 전쟁을 茶飯事로 했던 서양의 역사에서 이러한 강력한 제재조치들이 완화되거나 해제된 것은 근세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스도교 종파간의 "同權"이 승인된 것이 Westfalen 종교和約(1648)에서였고, 유태인이 해방된 것은 1869. 7. 3일자 제국법률에 의해서였으며, 유태인과 그리스도교인 사이의 혼인금지가 해제된 것은 1875. 2. 6일자 제국법률에 의해서였다.

나. 교회재산법

이런 상황에서 후기로마법의 종교단체법은 그리스도교 교회를 유일한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다. 그리스도교 교회(ecclesia) 자체를 "신비스러운 그리스도의 몸"(corpus Christi mysticum)(1 Cor. 12 : 27)으로 이해했던 교리적 바탕 위에서, 교회는 콘스탄티누스 이래 독자적 재산능력의 주체로 승인되었고, 각종 특권적 대우를 받았다. 교회재산의 보호와 우대는 취득상의 우대, 면세특권, 시효상 특권, 양도금지 등에 미치는 광범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는 원칙적으로 근대까지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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