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가정의학회지 제26권 제11호 별책 2005 (☜ 삭제된 링크)
- 다른 제목의 다른 자료: 의료 커뮤니케이션 교육을 위한 수사학적 기본 지식 (의료 커뮤니케이션, 제1권 제1호, pp. 46-51, 2006)
※ 상기 자료를 공개해주신 가정의학회와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 상기 자료를 공개해주신 <의료커뮤니케이션>과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이영훈 지음. ◇연수강좌◇ 《의사소통: 수사학(Rhetoric)의 소개》
※ 요약: 지난 10여년간의 한국 사회와 의료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오늘날 의료인들에게 사회 및 대중과의 소통의 필요성이 널리 제기되고 있다. 이 점에서 서구에서 오랫동안 의료인들의 필수 자질로 인식되었고 수사학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연구되어온 의사소통 능력의 개발이 한국 의료인들에게도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본고에서는 서구 수사학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더불어 의료인에게 적합한 현대 수사학의 주요 경향인 로저스 수사학을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필자의 소견으로, 의사소통술로서의 수사학에 대한 관심 및 연구는 의료인들과 환자, 대중, 사회로 이어지는 대화 상대방 사이의 오해 및 갈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심 단어: 수사학, 협력 수사학, 의사소통, 의료면담, 설득, 공감적 청취
서 론
현대 사회에서 의사소통(communication)의 중요성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의사소통의 주요 도구인 언어와 그 사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오늘날 서구 의학계에서는 의사소통을 핵심적인 임상기술(clinical skill)로 인정하여 그 교육에 힘쓰고 있다. 반면, 한국 의학 교육에서 의사소통에 대한 관심은 매우 최근 들어서의 일이고 몇몇 개인들의 선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다지 일반화된 상태는 아닌것 같다. 본고는 서구에서 의사소통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학문인 수사학(Rhetoric)의 소개를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수사학의 기원과 그 정의를 살펴보고, 의학과 수사학 사이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며, 오늘날 한국 의료인들에게 필요한 수사학의 기본 개념들을 간략히 설명하기로 한다.
사실, 한국에서 수사학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어문학에서의 수사법 연구나 처세를 위한 화술연구가 오래 전부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의학계에서의 의사소통에 대한 관심만큼 새로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2003년 창립된 한국수사학회와 2005년에 설립된 고려대학교 부설 레토릭연구소를 중심으로 수사학에 관한 활발한 연구와 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수사학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이해를 바탕으로 그 사회적 응용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레토릭연구소에서는 ‘의료레토릭 연구실’을 설치하여 고려대 의학교육학교실과 긴밀한 협조 하에 ‘의료 의사소통술’, ‘환자와의 대화’와 같은 강의의 개발 및 교육에 참여하고 있으며 2005년 11월 17일 한국 의학교육학회와 공동으로 ‘의료 의사소통술’에 관한 합동학술대회를 기획․진행하였다.
인문학도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거론할 때, 그 원인을 학계 내부의 소통 또는 사회와의 소통의 문제에서 찾고자 한다. 한국 의료계가 겪는 사회와의 갈등 또한, 본인의 입장에서 감히 관찰과 진단을 시도해본다면, 소통의 부재 내지 장애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이를 찾고 논의하는 과정에 수사학이 기여할 바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본 론
1. 수사학의 역사적 정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수사학은 “상황에 따라 설득에 필요한 요인들을 이해하는 것”, 즉 ‘설득의 이론theory of persuasion’이다. 서구에서 수사학은 기원전 465년경 당시 그리스령이었던 시칠리아 섬에서 탄생하였다. 시민들의 자유와 말할 권리를 억압하였던 참주들이 몰락하고 몰수되었던 토지들의 원소유권에 대한 분쟁이 발생하면서 말을 통해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 때, 코락스와 그의 제자 티시아스가 나타나 ‘변론술technè rhétorikè’을 가르쳤고, 이후 이 변론술이 그리스 전역으로 전파되어 소피스트 sophist들에 의해 ‘설득을 낳는 기술’로 전수되었다. 특히, 민주정치를 표방했던 그리스에서 ‘변론술’은 자유시민들의 기본 소양으로 인정되어 이후 서구에서는 이른바 자유교양 과목liberal arts의 핵심으로 고등교육의 대상이 되었다.
2. 수사학과 의학의 관계
수사학은 그 탄생지인 그리스에서부터 의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며, 의술과 변론술의 상호보완적 관계는 플라톤의 대표적 저술인 『고르기아스(Gorgias)』에 이미 언급되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Rhetoric)』에서 의학의 기능이 건강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환자를 낳게 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수사학의 역할은 모든 경우에 설득을 가능
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우에 설득에 유용한 수단을 이해하게 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한편, 그리스 시대의 의사는 힙포크라테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웅변가로서의 자질을 필요로 하였다. 그것은 당시 의사들 중 대중을 상대로 한 공의들은 웅변대회를 통해 선발되었고, 공개 시술이 행해져 자신의 진단과 처방을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정당화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 시대의 의사는 ‘의사-수사학자 iatro-sophist’로 불러 마땅하다. 고대 인도에서도 의사의 교육에 논쟁을 통한 토론술이 필수 과목으로 인정된 바 있다.
역사적 인연을 따지지 않더라도, 의학과 수사학은 몇 가지 차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먼저, 두 학문 모두 기술적 측면(의술과 수사술)과 학문적 측면(의학과 수사학)이라는 이원적 특성을 갖는다. 다음으로, 의학과 수사학의 오용 및 남용에 대한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끝으로, 질병의 치료에 해당되는 의학에 대해 수사학도 ‘말을 통한 영혼의 치료 psychagogia’(플라톤) 또는 ‘오해와 그 치료에 관한 연구’(리차즈) 등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치료과학(healing science)’을 표방한다.
3. 수사학의 필요성
의료인에게 수사학의 필요성은 무엇보다 의료 행위(health care)가 비즈니스(business)라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사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전문 의료지식, 친절 및 호의, 리더쉽 등의 조건들을 갖춰야 하며, 이것은 대부분의 경우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만은 진료의 품질보다는 의사소통상의 어려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지난 10여년간의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의료인에게 의사소통술로서의 수사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였다. 변화의 주된 내용은 크게 사회환경의 변화와 의료환경의 변화로 나눠진다.
먼저, 과거 한국 사회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횡적 지표였던 혈연․지연․학연 등의 중요성이 지난 10여년간 한국 사회가 능력중심의 사회로 변화해가면서 많이 약화되었다. 또한, 정치적 민주화의 진행으로 권위와 힘에 기반한 수직적 사회 구조가 대화와 타협을 중요시하는 수평적 구조로 변모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끝으로 이같은 기존 권위의 붕괴로 특징지워지는 사회환경의 변화로 각종 분쟁 및 논쟁들이 봇물 터지듯 제기되고 있다.
의료환경의 변화도 의료인들에게 수사학에 관심을 갖게하는 원인이 된다. 지난해들을 돌아보면, 의료분쟁, 의약분업파동, 병원내의 노사갈등 등으로 의료인들에 대한 부정적 사회 인식이 확산되어 사회적 설득의 필요성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또한, 대중의 복지 향상과 높아진 건강 의식(well-being)으로 의학의 대중화 내지 통속화가 가속도를 내고 있으며 이에 맞서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설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의학의 인간화 또는 인본주의 의학 정신이 고조되어 의학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이를 위해 교양/인문 교육의 중요성이 설득력을 갖는 상황이다.
위와 같은 요인들 외에도, 오스트리아 출신 동물 심리학자이자 1973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인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 (1903∼1989)는 일반적인 의사소통을[의] 어려움을 의사소통 과정의 6단계를 설명하며 토로한 바 있다.
1단계 : 말했다고 해서 듣는 것은 아니다.2단계 : 들었다고 해서 이해한 것은 아니다.3단계 : 이해했다고 해서 동의한 것은 아니다.4단계 : 동의했다고 해서 기억한 것은 아니다.5단계 : 기억했다고 해서 적용한 것은 아니다.6단계 : 적용했다고 해서 행동이 변한 것은 아니다.
4. 전통 수사학의 소개
전통 수사학에서 배양된 설득의 이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남을 설득하는 데 의존할 수 있는 수단들로는 한편으로 확실성에 기반을 둔 전문 지식 및 과학적 진리, 다른 한편으로 개연성에 근거한 통념․상식․가치관․신념 등을 들 수 있다. 설득을 시도하기에 앞서 우리는 설득 상황의 이해를 말하는 적시성kairos, 설득 대상(피설득자)의 이해에 해당되는 적격성decorum,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찬반의 입장을 모두 경험해봄으로써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 지를 시험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원칙들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같은 설득의 수단과 원칙을 겹합시키면 인성ethos, 이성logos, 감성pathos라는 설득의 삼요소가 만들어지고, 이 삼요소들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공리적 설득, 상대방의 의무감이나 규범의식에 호소하는 규율적 설득, 상대방의 감정에 호소하는 정서적 설득의 세 가지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5. 로저스 수사학의 소개
칼 로저스 Carl Rogers (1902∼1987)는 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중 한 사람으로 생전에 교육․상담․심리치료․군축 및 분쟁해결에 많은 공헌을 한 사람이며 인본주의 심리학 humanistic psychology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오늘날 일반화된 내담자client 중심의 (심리)치료를 본격적으로 제안한 바 있으며, 아일랜드의 신․구교간 갈등, 남아프리카의 흑․백 갈등, 미국 내 의료계와 시민사회 사이의 갈등 해결에 자신의 심리학 이론을 실천적으로 적용하여 큰 성과를 거둠으로써 1987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된 바 있다.
로저스 심리학 이론은 다음의 다섯 가지 핵심어들로 요약된다. 앞서 언급한 내담자 중심 치료(client-centered therapy), 현실화의 경향(actualizing tendancy), 촉진적 태도(facilitative attitudes), 공감적 청취(empathic listening), 동조 반응(reflextion)이 바로 그것들이다. 한편, 로저스는 치료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들로 내담자에 대한 진솔한
태도를 말하는 일체감(congruence), 내담자에 대한 감정이입 능력에 해당하는 공감(empathy), 내담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감을 뜻하는 존중(respect)을 들고 있다.
로저스 심리학은 의사소통상의 장애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오해와 그 치료에 관한 연구를 지향하는 현대 수사학 이론들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로저스에 따르면, 의사소통상의 장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남과 대화할 때 상대방에 대한 주관적 평가(evaluation about)를 하는 습성에서 비롯되며 그에 대한 해결책은 상대방과의 공감적 이해(understanding with)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설득자와 피설득자 사이가 상쟁(I win, you lose)의 관계로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상생(You win and I win too)의 추구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설득자 중심의 이론인 전통 수사학(traditional rhetoric)이 주저하고 중립적인 청중(undecides and neutral audience)을 이성에 입각하여 설득하는데 유리하다면, 로저스의 심리학에서 비롯된 협력 수사학(collaborative rhetoric)은 유보적인 청중(resistant audience)을 감성과 인성에 입각하여 설득하는데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결 론
이상과 같이 의사소통술의 기원으로서의 수사학의 역사, 그 기본 개념, 의료인을 위한 수사학의 필요성, 의료 수사학의 한 가능성으로서의 로저스 이론의 소개를 시도해보았다. 사실, 국내에 아직까지 의료인들을 위한 수사학 저술 또는 역서가 전무한 까닭에 수사학에 대한 보다 상세한 소개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참고문헌에 소개된 수사학 관련 논저들을 읽어보길 권하는 바이다. 또한, 한국수사학회와 고려대 레토릭연구소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그간의 연구성과를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서구에서도 몇 편의 논문들을 제외하곤 수사학과 의학의 학제적 관련성 및 의학수사학의 활용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저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한국의학계가 의료 의사소통술로서의 수사학 연구에 보다 많은 관심을 쏟게된다면 머지 않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연구성과들이 다수 생산될 수 있을 것이며 의료인들간 또는 내담자들과의 대화에서 오해와 갈등의 소지가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대한 높은 기대를 간곡히 표명하며 수사학에 대한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참 고 문 헌
1. 강성용. 「인도 고전문헌에 나타난 수사학적 전통」, 『한국수사학회 월례발표회 자료집: 2004년 8월』.
2. 미셀 푸코. 『임상의학의 탄생』, 홍성민 옮김, 인간사랑, 1993, p. 357.
3. 안덕선. 「의료임상레토릭 시론」, 고려대학교 대학원 불어불문학과 석사학위논문, 2005, p. 70.
4. 양태종. 『수사학이야기』, 동아대학교 출판부, 3판, 2002, p. 257.
5. 올리비에 르불. 『수사학』, 박인철 옮김, 한길사, 1999, p. 194.
6. 자크 주아나. 『히포크라테스』, 소홍관 옮김, 아침이슬, 2004, p. 751.
7. 자마이어스코프․마이클 포드.『치료를 위한 대화Talking with Patients』,
8. 가톨릭임상사목연구소 옮김,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04, p. 296.
9. Laín Entralgo, Pedro. The Therapy of the Word in Classical Antiquity, translated by L.J. Rather and John M. Sharp, New Haven and London : Yale University Press, 1970, xxii-253 p.
10. Maguire P. Communication Skills for Doctors,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p. 134.
11. Pender, Stephen : “Between Medicine and Rhetoric”, in Early Science and Medicine, vol. 10, n. 1, 2005, pp. 36-64.
12. Segal, Judy Z. “Interdisciplinarity and Bibliography in Rhetoric of Health and Medicine”, in Technical Communication Quarterly, vol. 14, n° 3, 2005, pp. 311-318.
13. Silverman Kurz S, J, & Draper J. Teaching and learning communication skills in medicine, UK: Radcliff Medical Press, 1998, p.
14. Teich, Nathaniel (ed.): Rogerian Perspectives. Collaborative Rhetoric for Oral and Written Communication, Northwood, N.J. : Ablex, 1992, xiv-303
15. The Health Care Communication Group: Writing, Speaking, Communication Skills for Health Professionals,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2001, xiii-338
16. 고려대학교 레토릭연구소 : http://www.rhetoric.or.kr
17. 한국수사학회: http://www.rhetorica.org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