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2일 화요일

ADHD와 현대사회

- 주의가 쉽게 흐트러지고 직면한 과제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증상,
- 다른 사람이 바로 면전에서 하는 말도 귀담아듣지 못하는 증상,
-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증상,
- 단 몇 분 동안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증상,
- 신체적으로 아주 위험한 행동인데도 아무 생각 없이 몸을 맡길 정도의 주의력 상실 증상.

작년에 어느 출판사 사장님을 애먹이면서 번역하던 책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을 번역하면서 나도 놀랐다. 내가 상당 정도 이상으로 만취해서 보이는 증상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이다. 또 작년 어느 명절연휴 어느 지하철 역에서 철로로 떨어질 듯 흐느적 거리는 그리 늙지도 않으신 어느 어르신을 붙잡으며 호통쳤을 때가 기억나게 하는 구절이다. 그때 그 어르신께 호통쳤지만 웃음만 지으셨다.

다음은 이어지는 구절의 발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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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동 유형들은 미국정신의학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주의력결핍 장애(attention deficit disorder, ADD)"―혹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 장애(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ADHD)"'로도 불림―로 특징짓고 있는 증상들이다. 미국에서 주의력결핍 장애(ADD) 진단의 빈도는 1990년대에 극적으로 늘어났다. ...


ADD는 늘어나는 빈도뿐만 아니라 그 처방에서도 현대사회의 이면을 많이 드러내준다. 즉 이 질환에 대한 현대사회의 대응은 약물치료로 진행됐다. 그 약물로 처방된 것은 코카인 종류의 물질에서 추출된 강력한 자극제인 리탈린(Ritalin)이었다. 이 약의 처방은 1990년~1999년에 미국에서 700% 증가했고, 4~5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이 약을 주기적으로 복용하고 있다. ... 리탈린은 ADD의 일부 증상들이 표출되지 못하도록 억제하지만, "리탈린 리바운드(Ritalin rebound)"라고 불리는 부작용으로 체중 감소, 불면증, 얼굴의 틱(tick) 증상, '비애감' 등을 유발한다. ...


『리탈린 열풍(Running on Ritalin)』이라는 저서를 낸 의사인 로렌스 딜러(Lawrence Diller)는 리탈린의 남용을 폭로하고, ADD 진단의 빈발과 리탈린 처방의 폭발적 증가를 사회적 변화에서 찾고 있다. 교실과 육아시설은 지금 사회경제적 압박을 동시에 느끼는 곳이 됐다. 1970년대에는 어린 아동을 둔 엄마들 가운데 30%만이 집 밖에서 일했다. 이제는 그 숫자가 70%를 웃돌고 부모 양쪽 모두 더 열심히 일하며 살아야 하지만, 일자리의 안정성은 오히려 떨어진 경우가 많다. 딜러는 단지 산만할 뿐이고 학교생활을 지루해 하는 아이들이나 공상을 즐기고 집안에서 스스로 해야 할 일에 게으를 뿐인 정상적인 아이들이 과민한 부모들에 의해 병원으로 인도되고 있으며, 뇌의 신경화학 물질에 장애가 있다는 의사들의 의욕적인 진단과 함께 강력한 약물 처방에 내맡겨진다고 주장한다. ... 리탈린이라는 약물은 스포츠계에서 불법으로 취급되는 경기력 향상 약물로 판정됐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은 예전에는 조니의 행동에 문제가 있으면 조니의 엄마에 문제 가 있다고 했으나, 이제는 조니의 뇌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생계가 걸린 일자리에 전력투구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보살핌을 베풀 시간이 거의 없다. 예전에는 성인이 되기까지 신체적, 정서적 성숙을 향해 성장하는 것으로 족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부모들의 집착과 추상적인 욕망의 표현수단으로 변해가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 ADD라는 '전염병'은 아이들이라는 거울을 통해 가족구조의 변화, 곁에 없는 부모,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문화를 말해주고 있다. ADD가 확산되고 악화될수록 그 거울은 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또 그 어느 때보다도 부유해진 경제가 뇌의 생화학에 투자할 자원은 있어도, 그 이상으로 교육에 쓸 자원은 없다는 사실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의료계를 좌지우지하는 제약회사들의 본질과 그 맞은편에는 규범에서 일탈하는 아이들을 순간적 인 치료에 맡기려는 부모들의 욕구도 드러내주고 있다. ADD의 열풍과 리탈린은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지만, 사회는 이 증상에 고유한 병리에는 대처하지 않고 행동의 문제를 일으킨 원인은 신경학적 질환이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몰고 가면 누구의 책임이라고 비난할 대상이 사라지고 만다. 부모나 교육 시스템, 가족구조에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기대나 근로 유형의 변화, 부의 추구에 있는 것도 아니게 된다. 사회와 정책의 문제로부터 저 멀리에 있는 신경물질상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출처: Clive Hamilton, Growth Fet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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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미국의 헬시네이션닷컴(HealthiNation.com)이란 곳에서 공익광고인지 이런 증상에 대한 비데오 링크가 눈에 띄어 붙여본다. 나중에 한 번 봐야겠다(ADHD 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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