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피싱의 경제학: 인간 약점을 파고드는 시장 경제의 은밀한 조작과 속임수 (조지 애컬로프, 로버트 실러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2016)
원저: Phishng for Phools: The Economics of Manipulation and Deception (2015)
※ 발췌:
서문: 자유시장, 그 양날의 칼에 대하여
"문제는 경제다, 이 바보야!" 1992년 빌 클린턴 대선 후보 선거본부의 제임스 카빌 참모가 한 말이다. 조지 H. W.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에 경기 후퇴가 시작되었고, 카빌은 여기서 비롯된 여러 경제 문제를 빌미 삼아 부시 대통령을 정면으로 맞받아칠 생각이었다. 흠. 우리는 조금은 다르게 더 넓은 관점에서 카빌의 말을 해석했다. 우리는 경제 문제 대부분은 경제 체제 본연의 특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경제학 이론의 가정처럼 사업가가 순전히 이기적이고 자기 잇속만 차린다면 우리의 자유시장체제는 조작과 기만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악당이 많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법을 지키면서 양심껏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경쟁의 압력에 의해서, 기업가들이 자유시장에서 기만과 조작을 사용해 우리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더 비싸게 사게 하고, 목적의식도 없는 일을 하게 하고, 왜 우리 인생이 엉망진창이 되었나하고 의아해하게 한다.
우리 두 저자는 자유시장체제 숭배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썼지만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더 나은 길을 찾도록 도와주고픈 희망을 품고 있다. 경제 체제에는 온갖 속임수가 난무하는 만큼 우리는 그 속임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존엄과 일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 자유시장체제를 헤쳐나가야 하여, 우리 주변의 일들이 아무리 엉망이더라도 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의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 펼쳐질지 모르는 수많은 속임수에 대비해 만반의 경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소비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우리는 같은 경영자의 비웃음에 침울해하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하고 마는 덫에 빠지는 경영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우리는 기업 규제를 잘해도 공치사조차 듣지 못하는 정부 공무원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우리는 진정성을 지키려 노력하는 자원봉사자, 독지가, 오피니언 리더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일할 날이 창창하고 어떻게 해야 일에서 개인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용감하게 발을 디뎌 맞서 싸우지 않으면 조작과 기만을 시장체제 안에 굳혀 버리는 경제적 힘을 뜻하는 피싱 균형phishing equilibrium에 대한 연구의 수혜자는 이들 모두다. 또한 우리에게는 경제적 이득과는 상관없이 개인적 진정성에서 우러나와 경제의 기만을 견딜만한 수준으로 낮춘 영웅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영웅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려줄 것이다.
자유시장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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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가
189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쁜 슬롯머신과 좋은 슬롯머신의 역사는 시장 경제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 시각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우리는 마음 깊숙이에서는 자유시장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자유시장은 평화와 자유의 산물이며 두려움에 떨며 살지 않아도 되는 안정의 시대에 꽃을 피운다. 하지만 ( ... ) 이윤 추구 동기는 ( ... ) 돈을 뺏어가면서 중독적으로 바퀴를 도리게 하는 슬롯머신이라는 기계도 만들어낸다. 이 책의 대부분은 좋은 슬롯머신보다는 나쁜 슬롯머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 ... ... ) 시작하기에 앞서 시장이 우리 모두에게 무슨 이득을 주는지 먼저 생각해보자.
이를 위해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레이디스 홈 저너> 1900년 12월 호에는 존 엘프레스 왓킨스 2세라는 민간 토목기사가 재미삼아 10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기사가 실렸다. 존은 '수도꼭지에서 뜨겁고 차가운 공기가' 나올 것이며, 고속선으로 '영국에 단 이틀이면 도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 ... )
왓킨스는 자신의 예측이 '터무니없고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고 적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윤 창출이 보장되는 한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생산한다는 동기incentive(유인이나 동인이라고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심리적 장치로서의 의미로 동기라고 번역했음을 밝힌다─옮긴이)를 부여한 자유시장은 그의 예측을 실현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자유시장은 인간이 원하는 이런 풍요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유시장은 우리의 판단을 조종하고 왜곡하는 기업에 아주 딱 맞는 경제적 균형도 만든다. 이런 회사들이 이용하는 사업관행은, 비유하자면 정상 균형 상태를 이루는 인체에 둥지를 트는 암세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슬롯머신이 단적인 예다. 규제 대상이 되고 불법이 되기 전의 슬롯머신이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어디에나 놓여 모른 척 지나치기 힘들었던 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우리에게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는 한, 그리고 이런 약점을 들쑤시고 이용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한, 시장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할 기회를 꽉 움켜쥔다. 시장은 우리를 세밀히 관찰하고 이용한다. 자유시장은 '바보를 노리는 피싱phishing for phools'을 행한다.
피싱과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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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바보phool는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에는 피싱에 걸려든 사람을 뜻한다. 바보에는 '심리 바보psychological phool'와 '정보 바보information phool' 두 종류가 있고, 심리 바보는 다시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 번째 형태의 심리 바보는 감정이 상식의 지시를 무시한다. 두 번째 심리 바보는 착시와 비슷한 인지 편향에 휩싸여 현실을 잘못 해석하고는 그렇게 잘못된 해석을 고스란히 믿으며 행동한다. 몰리는 인지적 바보가 아니라 첫 번째 심리 바보인 감정적 바보였다. 그녀는 슬롯머신에 중독된 자신의 상황을 놀랍도록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다.
정보 바보는 자신을 호도할 목적으로 고의로 조작된 정보에 따라 행동한다. 좋은 예가 엔론 주주들이다. ( ... ... )
( ... ... ) 우리가 생각하는 근본적 문제는 비양심적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경쟁시장의 압력이다. 경쟁시장은 진짜 필요가 있는 혁신적 신제품을 만든 기업 영웅에게 의욕과 보상을 주는 일을 아주 잘한다. 하지만 규제가 없는 자유시장은 고객의 심리나 정보 취약성을 착취하지 않으려는 양심적인 기업가에게는 좀체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 양심적으로 행동하려는 경영자는 결국 경쟁 압박으로 인해 도덕성이 떨어지는 다른 경영자에게 밀려난다. 시민사회와 사회규범이 이런 피싱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기는 하지만, 시장 균형이라는 결과 속에서 피싱의 기회가 계속 존재하는 한 제아무리 도덕심이 투철한 경영자가 있는 기업이라고 결국에는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피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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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자유시장과 조작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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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 균형의 최적에 대한 주장
당연한 말이지만 경제학의 핵심 교리야말로 아마도 가장 놀라운 결과일 것이다. 1776년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 자유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개개인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의 이익을 촉진한다고 썼다.
스미스의 주장을 정확히 이해하기까지는 한 세기가 조금 넘게 걸렸다. 오늘날 경제학 개론서에 흔히 등장하는 완전경쟁시장의 균형은 '파레토 최적(누군가에게 손해가 가지 않는 이상 다른 누군가에게 이득이 내는[되는] 자원 배분의 변화를 만들어내기가 불가능한 상태.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트의 이름을 따왔으며, 파레토 효율이라고도 불린다─옮긴이)을 이룬 상태이다. 이 말은 균형 상태에 도달한 경제에서는 모두를 위한 경제적 복지의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개입을 하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대학원에서는 자유시장의 최적 상태를 입증하기 위한 우아한 수학 공식을 가르친다. 하나의 개념이 드높은 과학적 성취로 한 단계 올라가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도 자유시장의 균형을 깰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를 인정하기는 한다. [... 외부 효과.... 잘못된 소득 분배...] 따라서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요소를 제외하고는 오직 바보만이 자유시장의 움직임에 개입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 ... ... )
완전한 자유시장이 실재한다면, 선택의 자유만이 아니라 피싱의 자유도 실재한다. 애덤 스미스의 말마따나 균형 상태가 최적의 상태라는 것은 여전히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균형은 우리의 진짜 기호로 최적을 이룬 균형이 아니라, 어깨에 올라탄 원숭이의 기호로 최적을 이룬 균형이다. 그리고 원숭이의 기호로 최적 상태에 이른 균형은 원숭이는 물론이고 우리에게도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 ... ... ) [행동경제학자들은] 어깨에 올라탄 원숭이가 미치는 영향을 무대 중앙에 올렸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한, 희한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애덤 스미스의 근본 개념인 보이지 않는 손과 결부해서 해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 둘은 단순하게라도 보이지 않는 손의 맥락에서 이 원숭이의 영향력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든 자기이익에 충실한 타인이 어깨에 올라탄 원숭이의 기호를 충족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에 우리는 경제학을 아주 조금 비틀 것이다(이를 위해 우리가 실제로 원하는 것의 최적과 어깨에 올라탄 원숭이가 원하는 것의 최적의 차이에 주목한다). 하지만 약간이나마 경제학을 비트는 것이 우리의 삶에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 이 작은 비틀기는 사람들에게 '선택의 자유'( ... ... )를 주기만 하고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왜 심각한 경제 문제를 야기하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심리학과 어깨에 올라탄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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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5일 목요일
발췌메모: 애컬로프, 실러// 피싱의 경제학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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