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9일 화요일

[메모] 권력, 그리고 들뢰즈 인용문 한 구절


권력: 자기 뜻대로 일을 성사시키고, 자기 결정에 따라 상황을 통제하며, 제약에 구애되지 않는 능력.

cf.
노예나 피고에 관련된 무한한 초월성인 ‘권력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은 ‘법’이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고자 하는 것처럼 피라미드 적인 것이 아니라 선분적이고 선형적인 것이며, 높은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작동하는 게 아니라 인접성에 의해 작동한다.
출처: https://twitter.com/gdeleuze_bot/status/648666571146039296

※ 위 들뢰즈 인용문의 전후 맥락으로 어떤 텍스트가 흐르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이 짤막한 인용문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랄까 느낌 같은 것을 어수선하게 적어 본다.
  • 노예제하의 노예나 국가 권력의 처분에 따라 처벌 받는 피고를 예로 들어, 그러한 개인에게 행사되는 권력이 무한하고 초월적인 '권력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인 듯.
  • 권력은 입체적인(혹은 체계적인) 피라미드의 구조를 가진 것처럼 느껴지고, 법이 그러한 위계적인 입체(혹은 체계)의 모습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권력은 그러한 위계적 입체(혹은 체계)가 아니라 선분적이고 선형적이다. 높은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작동하지 않으며 인접성에 의해 작동한다.

cf.
  • 어쩌면 이러한 언급이, 권력의 전복은 위계적 피라미드의 체계적인 전복에서 시작되기보다 그 선분과 선형성이 작용하는 인접성의 작용 역학을 구부러뜨리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도 같다.
  • 어쩌면 권력을 작동시키는 시스템과 그 장치들이 상징을 통해 개인에 '내면화'될 때에도 그 개인의 내면화를 직접 유발하는 인접성의 역학이 실재한다는 뜻 같다. 
  • 예를 들어, 직접 실업을 경험함으로써 형성되는 어떤 내면화라든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하는 현상을 보면서 형성되는 내면화가 결코 높은 곳에서 상징을 통해 아무런 매개 없이 초월적으로 형성되는 게 아니라, 개인이 피부로 느끼는 직접적인 사태를 통해 형성된다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쉽게 다가오지 않는 '선분적', '선형적', '인접성'이라는 표현이 지시하는 것이 그러한 의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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