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30일 수요일

1986년 12월, 기업공개의 기로에 서서




(전략)... 어느 누구도 회사가 물려준 가치를 한목에 챙길 권리가 없다는 게 와인버그의 뿌리 깊은 신념이었다. 골드만삭스는 그때 자본금 10억 달러에다 일류 투자은행으로 확보해놓은 무형자산 가치(뛰어난 평판, 사업 노하우 및 조직, 고객관계)까지 고려해 회사가치를 30억 달러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시점의 회사 가치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백 년이 넘도록 기여해 누적된 결과다. 그럼에도 기업을 공개하면 20억 달러든 30억 달러든 이 유산의 경제적 가치 전체가 최초공모발행을 실시할 시점의 파트너들에게 귀속되게 된다. 1997년 와인버그는 1986년 파트너총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똑같습니다. 이 일(기업공개)에는 이만저만한 문제가 걸려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 그 일을 벌일 작정이라면 127년 동안 닦아온 가치를 일개 파트너 집단이 챙기는 일을 벌이겠다는 겁니다. 그 127년 세월의 가치를 그들이 2 배수니 3 배수니 해서 챙긴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벌일 때 현직 파트너로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가치를 가져갈 자격은 우리 중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우리는 파트너들을 장부가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니 나갈 때도 장부가대로 나가야합니다.”

그동안 주요 경쟁회사들이 하나같이 기업을 공개하거나 더 큰 상장기업으로 합병됨에 따라, 골드만삭스도 기업을 공개해야 한다는 압력이 계속 커지고 있었다. 파트너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회사의 주인인 합자회사가 기업을 공개하려면 그 주인들이 모두 모여 최초공모발행initial public offering 문제를 표결로 결정해야 한다. 1986년 12월 당시 경영위원회는 이렇게 하자는 권고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상태였다. ...(중략)... 그동안 경영위원들끼리는 문을 걸어 닫고 기업공개 문제를 논의하다가 접어두기를 여러 번 되풀이했지만, 회사 차원에서는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한 적은 없었다. 1960년대 말 시드니 와인버그가 잠시 기업공개를 검토하다가 바로 밑의 수석 참모 격인 거스 레비Gus Levy더러 파트너들의 의견을 알아보도록 한 적은 있었다. 이때가 기업공개를 검토했다가 물리기로 했던 첫 사례였다. 1971년에는 상장기업으로 가자고 결정이 났지만 새 명함을 인쇄하기 일보직전에 생각을 바꾸고 합자회사를 유지하기로 했다.

1986년 12월 6일 경영위원회는 지난 117 년 동안 이어온 회사 역사를 일거에 끊고 상장기업으로 회사의 틀을 바꾸자는 생각으로 선회했다. 상장기업이 되면, 파트너들은 더 이상 회사의 주인이 아니게 되고, 외부의 영향에 간섭받지 않고 회사를 경영하던 장구한 전통도 끝나게 된다. 회사 자본의 큰 비중을 일반 주주들이 소유할 것이고,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가 회사정책과 현안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물론 회사는 더 커질 것이고 파트너들은 더 부자가 되겠지만, 피고용자 입장이 될 것이다. 그 무렵 경영위원회는 신규사업으로 진출하는 사업 확장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자본이 더 많이 필요했지만, 합자회사라는 회사형식은 각 파트너가 개인 돈을 출자해 만든 조합이나 마찬가지여서 자본조달이 상장회사처럼 탄력적이지 못했다. 기존 파트너들이 개인 돈을 더 출자하거나 출자금을 내놓을 새 파트너를 영입하면 얼마든지 자본금을 늘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상장회사 주주들은 주식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고 싶으면 주식시장에 내다 팔면 된다. 그러면 주식시장에서 그 주식을 사서 넘겨받는 사람이 새 주주가 된다. 주주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주가야 오르내릴 수 있지만, 회사가 그 주식을 발행할 때 납입된 현금(즉 자본금)은 회사에 그대로 남는다. 그러나 합자회사의 경우에는 주주이자 경영자인 파트너 한 사람이 출자금을 회수하기(즉 퇴사하기)로 작정하면, 회사는 그가 출자한 자본금을 고스란히 현금으로 내주어야 한다. 상장기업은 주식시장이 존재하는 한 주식은 주식대로 거래되면서 납입 자본금은 영구적으로 회사에 남는다(물론 자본잠식이 없다는 전제다). 하지만 합자회사와 같은 비상장기업의 납입 자본금은 이처럼 영구적이지 못하다. 당시 기업공개 문제를 꺼낸 경영위원회는 이와 같이 영구적인 성격의 자본금을 새로 확보해야만 신규사업 진출이 가능하다고 봤던 것이다. ...(중략)... 골드만삭스의 자본금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했다. 언제라도 나이 많은 파트너들 중에 이제 은퇴하겠다는 사람이 상당 수 나올 수 있었고, 이들이 회사를 떠나면 그동안 큰 금액으로 축적된 출자지분도 회수해갔다. 당연히 회사 자본금에 큰 축이 나니 회사가 휘청거릴 만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예컨대 1994년처럼 회사 실적이 안 좋을 때 생기면 치명적인 사태로 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회사에 출자할 외부 투자자를 상장회사의 일반주주와 같은 형태로 모집한다면, 회사의 자본기반을 강화할 수 있고 위험은 폭넓은 주주 층으로 분산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드먼과 루빈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논지였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상사로 모시는 존 와인버그는 생각이 달랐다.

와인버그가 골드만삭스와 인연을 맺은 세월은 1986년에 이르러 그 자신과 부친과 아들 또 형제와 조카를 포함해 79 년이나 됐다. 회사를 애지중지하는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와인버그가 합자회사를 중히 여기는 마음은 열렬했고, 합자회사를 통한 파트너들의 결속이 회사가 성공할 수 있는 밑거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경영위원회가 통일된 입장을 표방하고는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공개하자는 경영위원들의 발표를 들으면서도 과연 와인버그의 생각도 그러한 것인지 미심쩍어했다. 골드만삭스는 그때 매우 실적이 좋았던 해를 마감한 직후였다. 1980년대 초에 골드만삭스는 자기자본이익률return on equity(ROE)이 계속 오르며 경이적인 수준인 80 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사실 많은 파트너들이 그 정도로 높은 이익률은 들어본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더 유지될 수도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저 바깥세상에서는 주식시장이 두둥실 떠오르고 있었고 신규 공모주들은 잘 팔려나가고 있었다. 만약 기업공개를 안 할 게 아니라 할 것이라면 제때에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1986년에는 언론에도 (나중에 정확히 맞아떨어진) 비관적인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또 시장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오르내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월스트리트가 지금 아찔한 고공에 올라서 있으며, 조만간 내리막길이 닥칠 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경영위원들은 한결같이 기업공개를 주장했고, 사실 와인버그는 경영위원들의 뜻을 수용해 기업공개 문제를 파트너총회에 붙이는 데 동의했던 것이다. ...(중략)...

총회 자리에 있었던 한 파트너에 따르면, 발표된 숫자들이 업무상 속어로 “다리병신 숫자들”이었다고 한다. 청중석에서도 여러 도표들의 앞뒤를 맞추어보고는 총계가 맞지 않는 숫자들과 여기저기서 앞뒤가 어긋나는 흔적을 찾아내기도 했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제시된 가운데 골드만삭스가 합자회사로 머물 경우 파트너 출자금(회사 자본금)이 어떤 추이로 성장해갈지 분석한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그 분석에 쓰인 전제들 다수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고, 주식평가와 공모발행 업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투자은행 쪽 파트너들은 갖가지 가치산정의 근거를 따지고 들었다. 상장기업으로 전환하면 회사이익이 이런 모습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발표됐다. 단박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왔다. 사람들로 먹고사는 우리 같은 회사에선 그 자산들(즉 사람들) 모두가 매일 밤 승강기를 타고 회사 문밖으로 나가는데, 회사의 틀 자체가 바뀌고 나면 도대체 뭐가 남아있을 거라고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그 순간 회의실이 웃음판으로 돌변했다. 한편 최초공모발행 때 각자 받을 몫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느라 계산기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훨씬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선 딱 부러지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골드만삭스의 회사가치는 얼마나 될 것인가? 기업공개 때 주식을 매수해 새 주주가 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 것인가? 기업공개 때 주식매각에서 생기는 파트너들의 처분이익은 어떤 일정에 따라 지급될 것인가? 이렇게 원칙적인 문제부터 구체적인 문제까지 희미한 구석이 많았던 탓에 청중석의 파트너들은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에는 한바탕 후끈한 논쟁이 벌어졌다. 상장회사와 달리 합자회사에서는 공식적인 조직구조보다는 친밀한 인간관계가 우선적인 만큼 언제나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간다. 하지만 논쟁 때 터져 나왔던 파트너들의 감정은 와인버그조차 놀랄 정도였다. 파트너들은 대부분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회사 자체도 말 그대로 형제애로 뭉친 친목단체처럼 작고 친밀한 공동체였다. 그래서 누구나 비판을 받을 수 있었고, 직위가 좀 높은 파트너들이 최고경영진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날 파트너들이 경험한 것은 그야말로 격의 없고 솔직한 대화였다. 언성도 올라가고 고함치는 소리도 들렸다. ...(중략)... 근속기간이 아주 오래된 고참 파트너들은 기업공개로 돈벼락을 맞을 사람들이지만, 그 중 여럿이 같은 동료 급인 경영위원들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 중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오래 발언했다. 그들은 파트너들이 꾸려가는 합자회사란 것을 얼마나 중히 여기고 있으며 그들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말했다. 합자회사는 가족과 같은 의미여서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존재라고 했고, 골드만삭스에 파트너로 참여한다는 것은 신앙과도 같은 약속이라고 주장했다. 파트너들은 1869년부터 면면히 이어가는 위대한 전통과 유산의 지킴이들이다. 우리가 지켜가는 이 유산은 다음 세대의 것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현 파트너들에게 그 유산을 팔아치울 수 있는 권한을 누가 주었다는 말인가? ... (중략)...


※ 다음 자료에서 일부를 발췌: 리사 엔드리치Lisa Endlich, "1986: The Road Less Traveled,"《Goldman Sachs: The Culture of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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