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0일 금요일

[기사 발췌] 레드라이닝(redlining)


출처: 경향, "한국판 레드라이닝", 유병선 기자. 2012.08.15


※ 발췌:

미국 시카고는 남서부와 북동부가 확연하게 갈라진 도시입니다. 북동부 호변 쪽으로는 유명 건축가들의 전시회를 방불케 하는 ‘루프’를 비롯해 부자들의 동네입니다. 하지만 남서부의 동네들은 여기가 과연 세상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인가 의심할 정도로 남루합니다. 물론 남서부가 본디 그러했던 건 아닙니다. 1960년대 도시 공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백인 중산층은 교외와 북서부로 이삿짐을 쌌고, 빈자리를 도시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흑인들이 들어섰습니다. 시카코 남부 사우스 사이드의 경우, 1960년대 10년 새 주민 구성이 백인 100%에서 흑인 70%로 급변했습니다. ( ... ... )

시카고만 그런게 아닙니다. 대도시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잘 사는 동네와 못 사는 동네로 갈라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역별 빈부차이를 핑게로 격차를 더 벌려놓은 게 미국의 금융기관이었습니다. 주소에 따라 고객을 차별한 것입니다. 1960년대 말 시카고대학의 사회학자 존 맥나이트(John McKnight)가 그 속을 들여다 봤습니다. 은행마다 도시 지도가 걸려 있는데, 빈곤층이 사는 동네에는 빨간 선이 그어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은행은 동네 주민의 실업률과 주민 평균 소득 등을 고려해 ‘신용 리스크’가 큰 지역을 표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빨간 선이 쳐진 곳의 주민 대부분은 흑인이었다. 빨간 선 안의 거주민은 은행 구경을 하기도 힘들었지만, 은행 문턱을 넘어도 돈 떼일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대출이 거부되기 일쑤였습니다. 설령 대출을 받더러다 빨간 선 밖의 주민들보다 훨씬 많은 수수료와 높은 이자를 물어야 했습니다. 피부색으로 차별하듯 주소에 따라 금융서비스를 차별한 것입니다. 맥나이트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레드라이닝(Redlining)’이라고 했습니다. 은행은 저소득층의 동네를 돈벌이가 안 되는 지역이라며 빨간 선을 그었고, 그 선은 돈이 흐르지 못하게 하는 방벽이 됐습니다. 돈이 돌지 않게 되면서 빈곤층 동네는 점점 생기를 잃고 주민들은 더 가난해져 갔습니다. 빨간 선 긋기 즉 레드라이닝은 금융차별이자, 금융소외로 인한 빈곤의 악순환, 금융 사각지대의 가난의 대물림을 의미했습니다. 레드라이닝은 은행이 만든 거대한 빈곤의 덫이었습니다.

( ... ... ) 미국이야 오랜 인종차별의 역사 때문이라고 치더라도, 우리의 은행은 어떨까요. 국가인권위원회가 14일 우리 은행의 ‘레드라이닝’을 지적했습니다. 금융권에서 비정규직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대출신청이 거부된 사례가 올해만 5건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인권위에 고발된 것만 그러하니 홀로 눈물을 삼킨 이들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습니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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