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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5일 토요일

편집 단상: '바람'과 '하면서'


▷ 사전 찾아보기:

바람 (3)【의존명사】

1. [‘-는/ㄴ 바람에’의 꼴로 쓰이어] 어떤 일이 일어남으로 해서.
  • 모두 배 멀미를 하는 바람에 밤새 누워 보지도 못했어요.
  • 숙이는 시어머니가 떠미는 바람에 방으로 들어갔다.
2. 으레 갖추어야 할 것을 제대로 갖추지 아니한 차림.
  • 장골 두 사람은 썼던 패랭이를 벗어 불태우고 맨상투 바람이 되었다.
.... 연세한국어사전


▷ 어떤 예문:
(1) 그가 1956년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이 총서를 이어가는 쉽지 않은 일을 내가 맡아야 했다.

* * *

위 예문 (1)에서 ‘는 바람에’라는 꼴이 이상해 보였는지, 아니면 ‘바람’이라는 낱말 자체가 이상해 보였는지 다음과 같이 수정해 편집하는 걸 본 적이 있다. 
(2) 그가 1956년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이 총서를 이어가는 쉽지 않은 일을 내가 맡아야 했다.

편집에 임하는 분들은 특별한 이유를 자기 나름대로 정의하지 않고 문장이나 어구를 수정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대체로 자신의 ‘어감’에 의존하는 판단으로 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다시 읽어보면 문맥에 끼어드는 수많은 요수 중 이전과는 다른 참조점을 기준 삼아 글의 이미지를 달리 떠올릴 때마다 달라지는 게 어감이다(혹은 문장감 혹은 문맥감이라고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언어라는 게 혼자 쓰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니 여러 사람의 검증을 거쳐야 하고 또 그래서 수정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객관성을 찾아가자’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라도 왜 그리 수정하려고 하는 것인지 편집에 임하는 자는 그 나름의 이유를 정의해야 한다. 

그러면 과연 이 수정문에서 어미 ‘─면서’를 활용한 것이 적절한 것인지, 이 어미의 용법을 확인해 본 적이 있다. 
CF. ─면서【어미】   연결 어미.
Ⅰ. 두 가지 이상의 동작이나 상태를 아울러 나타냄.
  1.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에 쓰이어] 앞절과 뒷절의 동작이 동시에 일어남을 나타냄: 그는 항상 텔레비전을 보면서 식사한다.
  2.
  _ㄱ. [형용사에 쓰이어]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이나 상태를 아울러 나타냄: 그녀는 부드러우면서 의연하다.
  _ㄴ. [‘이다’의 어간 뒤에 쓰이어] 두 가지 이상의 자격을 동시에 겸함을 나타냄: 자연은 인간의 어머니이면서 삶의 고향이다.
  3. 어떤 동작이나 상태가 지속되면서 또 다른 동작이나 상태가 아울러 나타남을 뜻함: 유 감독은 노총각으로 있으면서 많은 여배우와 결혼한다는 가십을 만들었었다. / 그녀는 고등 학교 선생 노릇을 하면서 시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4. 앞절의 동작이나 상태가 비롯됨으로써 뒷절의 동작이나 상태가 아울러 나타남을 뜻함: 거래가 늘면서 중고차 값도 15∼20퍼센트 정도씩 올랐다. / 날씨가 풀리면서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Ⅱ. [앞˙뒷절에 대립되는 내용이 쓰이어]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이나 동작, 상태가 맞서 있음을 나타냄: 그는 아직 기지도 못 하면서 뛰려고 하는 아이와 같았다. / 유미는 나를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
Ⅲ. [뒷절이 생략된 채로, 종결 어미처럼 쓰이어] 편지 등의 맺음말로 자주 쓰임: 그럼 내내 건강하고 기쁘게 지내길 빌면서 안녕.
.... 연세한국어사전

의존명사 ‘바람’을 풀이하는 첫 항목에서 보듯 ‘는 바람에’를 쓰면 ‘때문에’라는 의미를 강하게 품는다. 앞의 것을 원인으로 해서 뒤의 것이 일어났다는 인과관계를 명확히 전달한다. 아울러 ‘때문에’를 쓸 때와는 다른 ‘어감’을 섞어 넣는 묘미도 부분적으로 발생한다. 

반면 어미 ‘─면서’는 그 뜻풀이에서 보듯 매우 다의적이다. ‘─는 바람에’ 꼴과 가장 근사한 용법은 ‘─면서’의 Ⅰ의 4번,  ‘앞절의 동작이나 상태가 비롯됨으로써 뒷절의 동작이나 상태가 아울러 나타남을 뜻함’이다. 

위 (1)과 (2)를 읽을 때 어느 것을 쓰더라도 대략적으로 같은 뜻으로 읽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어미 ‘─면서’를 씀으로 말미암아 (1)에서 좁혀놓은 인과관계의 의미를 넓게 퍼뜨리게 됐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어떤 텍스트에서 의미를 좁혀서 전달하려는 내용을 넓게 확산시키는 편집은 좋지 않다고 본다. 물론 위 예문 (1)의 경우는 어떤 사람이 사망하는 사태를 원인으로 지칭했으니, (2)와 같이 수정하더라도 어미 ‘─면서’의 용법 중 Ⅰ의 1, 2, 3이나 Ⅱ의 용법으로 쓰인 것은 아니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사람이 죽는 일과 총서를 이어가는 일이 계속 동시에 진행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수정안을 받아들였지만, 언제라도 그가 이 글을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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