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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9일 목요일

수작업의 미덕

자료: http://jhkwon.egloos.com/2272021


참 재미 있게 읽었던 글이다. 철학이라는 두 글자만 없을 뿐, 목공 작업과 디자인에 대한 철학이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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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에서 나는 보급병으로 발령받았지만 정작 자대에서는 주로 작업병으로 활동했다. 나는 방공포에서 근무했는데, 우리 포대에 비해 근무 조건이 열악했던 이웃포대에서는 자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군대내에서의 자살문제가 한참 사회적이슈가 됐을 때 난 포대장의 호출을 받았다. 이등병 자살 방지를 위한 화장실 및 휴게실 보수 개선 작업을 진행하라는 이유였다. '아니 전 시각디자인을 전공인데 왠 화장실...'이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지만 특박3일, 작업면제, 무엇보다 포대장직속 열외병으로 일할 수 있다는 조건에 '네 알겠습니다'를 외쳐버렸다. 하긴 내가 하기 싫다고 안할 수 있는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화장실은 이등병들이 자살 장소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장소라고쳐도, 휴게실 개선작업이라니? (내가 알기로는 우리포대에 사병을 위한 휴게실은 없었다.) 알고보니 군대에서의 거의 모든 명령이 그렇듯, 말이 좋아 개선작업이지 없던 휴게실을 만들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전형적인 한국 디자인대학의 교육을 받아온 내가, 군대에서도 보급병으로 일하던 내가 휴게실을 만들 능력따위는 없었다. 까라면 까라는 정신으로, 개인적으로 이 정신을 별로 안좋아 하지만, 일단 목공병들이 일하는 작업실로 찾아갔다. 난생 처음보는 공구들, 낯선 작업실 분위기 그리고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사병들이 어색한 눈빛으로 날 반겼다.

한번도 나무를 작업의 소재로 사용해 보지 않았던 내가 처음으로 나무를 자를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전기톱에서 나오는 소름끼칠 정도로 큰 소음, 얼굴로 날라오는 톱밥들,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던 거대한 전기톱날. 모든것이 낯설었지만, 나는 내가 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든다는것이 신기했다. 그 경험은 대학시절 컴퓨터 앞에앉아 기호같은 이미지들과 씨름하면서 느꼈던 답답함과는 달랐다. 나는 내 손이 가는대로 형태가 만들어지는 나무가 좋았다. 내 손에 반응하는 나무의 반응은 솔직했지만, 결코 단순하지는 않았다. 내가 가하는 힘과 의도하는 방향에 따라 나무는 잘려지고 눌리고 휘었다. 나무는 깍이고 쓸리면서 수치로 계산 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을 보여줬다. 나는 비록 같은 설계도에 따라 만들어지는 작업물이라 하더라도, 만드는 사람의 특성에 따라 그것이 다른 형태를 지니게 된다는(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그 경험들은 너무나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 작업들이 내가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좋은 책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균형감과 형태감이 필요했고, 너무 장식적인 책상은 기능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기능과 장식 사이의 균형감은 타이포그래피를 배우며 고민했던 것들이었다.  

활자에 대한 이해없이 좋은 타이포그래피를 만들 수 없는 것 처럼, 나무라는 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는 깨끗한 나무를 자를 수 없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재료를 이해 한다는 것이 단지 객관적인 정보를 습득하는것 이상의 것임을 알았다. 그것은 좀더 주관적인 이해와 경험을 통한 판단을 포함했다. 나무를 이해하는 과정은 그 나무의 객관적인 수치를 외우는 것 뿐만 아니라, 각각의 나무가 갖는 수치로 설명될 수 없는 느낌을 이해하는 과정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느낌은 나무를 직접 잘라보고 손으로 느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감정과 경험에 기반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제대후 돌아간 대학에서 디자인에는 정답이 있고, 수작업은 예술가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교수의 수업(대량생산이 될 수 없으면 디자인이 아니라는)을 들으며 나는 절망했다. 학교의 수업에서 손으로 만드는 작업과, 질감의 느낌을 이야기 하는 것은 구시대의 것으로 여겨졌고, 학생들은 과제를 위해 컴퓨터에만 매달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무를 사용해 뭘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받아 들여질 리 없었다. 디자인은 이성적인 계산으로 제단되어 있었고 그 냉정한 곳에 설명하기 힘든 '감정적인 어떤것'이 끼어들어갈 틈은 없어 보였다. 팔리지 않는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는 믿음과 소비자와의 소통이라는 이름아래 이루어지는 소비자욕구조사는 학생들을 창작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아닌 판매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으로 키워내고 있었다. 그 노골적인 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이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교의 기본정신이 되어 버린 것이 무서웠다. 

하지만 나는 타입을 직접 세팅하고, 프레스기를 이용해 그것을 찍어보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직접 제작하며, 내 작업이 배치될 공간을 내 손으로 직접 깎고 잘라 만드는 일은 단지 학생으로서 겪을 만한 경험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작업의 재료를 수치가 아닌 개인의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손과 눈으로 체험한 그 감정은 비슷 비슷한 결과물들 속에서 내 작업을 구분지어주는 그 어떤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나는 이런 의문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모든 디자인이 대량으로 생산되야 하는 걸까? 손으로 만들어진- 작은 집단, 혹은 개인을 위한 이미지와 작업들은 디자인이 아니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손으로 만들어지는 작업물들은 대량으로 생산될 수 없다. 그 작업들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순간 수작업이 지니는 미덕은 사라진다. 나는 모든 디자인에 디자이너 각자의 개성이 꼭 반영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혹은 그 어떤것)에 소비자 혹은 클라이언트의 의도만 반영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모든 디자이너가 수천 수만개의 대량생산을 염두해두고 작업 할 필요는 없다. 디자이너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클라이언트와 소비자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실용적이기만 한 디자인에, 수작업은 디자이너의 색깔을 더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을것이다. 

디자인 읽기

군대에서 작업한 화장실, 휴게실 2003년
지금 보니까 너무 어설프지만 참 즐겁게 만들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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