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이름은 Marcus Vitruvius Pol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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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세기에 활동한 로마의 건축가.
기술자이기도 했던 그는 로마의 여러 건축가를 위해 유명한 논문 〈건축 십서(十書) De architectura〉를 썼다.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저작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어느 황제를 위해 건물을 지었는지 전혀 밝히지 않았지만 아마도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건물을 지었고 BC 27년 이후에 〈건축 십서〉를 구상한 것 같다. 자신을 나이 든 사람으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 율리우스 카이사르 치하에서도 활동한 듯하며 자신이 파눔(지금의 파노)에 지은 한 바실리카에 관해 쓰고 있다.
헤르모게네스 같은 유명한 그리스 건축가들의 이론적 저서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건축 십서〉는 건축의 거의 모든 측면을 기술하고 있지만, 주로 그리스 건축을 다루고 있으므로 그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왜냐하면 얼마 뒤 로마 건축은 로마의 세계제국 선포라는 새로운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단호하게 그리스 건축을 탈피했기 때문이다. 〈건축 십서〉는 모두 10권이며 도시계획과 건축일반론, 건축재료, 신전건축과 그리스 오더의 사용법, 극장·목욕탕 등 공공건물, 개인건물, 바닥과 회반죽 장식, 물의 이용, 시계·측량법·천문학, 토목도구 및 군사용 도구를 나누어 다루고 있다.
본질상 헬레니즘적 견해를 지니고 있던 그는 신전과 공공건물 설계에서 고전적 전통을 보존하고자 했고 건축론의 각권 서문에 그 시대 건축에 관해 비관적인 견해를 자주 나타냈다. 플리니우스 스스로는 밝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연사 Natural History〉에서 설명한 로마의 건축기법과 벽화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들은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을 빌린 것이다. 후세에 칭송받기를 공공연히 바라던 비트루비우스의 소망은 실현되었다. 그의 저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부흥, 바로크 시대 건축의 고전적 측면, 그리고 신고전주의 시대를 통틀어 고전건축에 관한 최고의 권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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