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중국식당에서 자장보다는 짬뽕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먼저 주문한 사람이 모두 자장이라면 “난 짬뽕~”이라고 말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동조conformity라고 한다. 동조란 남들이 행동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유행)이 아니며, 혼자 있을 때 행동하는 방법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여 자발적으로 신념이나 행동이 변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쉐리프는 세 명의 실험 참가자들에게 캄캄한 암실에서 정면에 보이는 작은 불빛이 얼마나 움직이는지를 보고하라고 하였다. 첫 번째 참가자는 불빛이 평균 7인치, 두 번째 참가자는 평균 2인치, 세 번째 참자가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첫날에는 불빛의 이동 거리를 실험자에게만 보고하게 하였고, 세 명의 피험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하였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 다음날 실험자는 다시 세 명을 불러서 불빛의 이동거리에 대하여 함께 토론하게 하였고 다시 실험을 실시하였다.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한 결과 첫 번째 참가자는 4인치, 두 번째 참가자는 3인치, 세 번째 참가자는 1.8인치라고 보고하였다. 참가자들은 토론을 하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조금씩 수정했음을 알 수 있다.
세 번째 날 역시 토론과 실험을 하게 하였더니 세 참가자의 차이가 더 줄어들었고, 마지막 날인 네 번째 날에는 세 사람이 모두 불빛은 2인치 움직였다고 일치된 보고를 하였다.
여러 참가자들을 함께 토론하게 하였을 때, 불빛의 이동에 대한 집단의 규범이 형성되었다. 이것은 불확실하고 애매한 상황에서 타인의 판단을 준거로 삼는다는 것과 현실에 대한 우리의 관점은 우리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하지만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이 평가해야 하는 자극은 애매한 자극이었고,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판단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존해야만 했었다. 만약 확실한 자극, 그러니까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자극을 제시해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7명의 실험참가자들이 네모난 탁자에 둘러 앉아서, 연구자가 앞에서 보여주는 자극판을 보고 있다. 자극 판에는 두 개의 카드가 있었는데, 왼쪽 카드에는 기준선(standard line)이 그려져 있었고, 오른쪽 카드에는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세 개의 비교선(comparison lines)이 그려져 있었다.
이 실험은 왼쪽의 기준선이 오른쪽에 있는 세 개의 비교선 중 어느 것과 동일한 크기인지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세 개의 비교선의 차이가 확실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너무 쉬운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지 않은 사람도 누구나 맞출 수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기준선은 비교선 중에서 맨 오른쪽(C)과 같은 크기가 아닌가!
연구자는 자신의 왼쪽에 있는 사람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맞춰보라고 하였다. 첫 번째 사람은 연구자가 보여주는 자극판을 뚫어지게 보더니, 약간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기준선과 같은 크기는 비교선 중에서 맨 왼쪽(A)이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그 옆에 참가자였다. 이 사람도 한참을 쳐다보더니 역시 맨 왼쪽(A)이 기준선과 똑같은 크기라고 하였다. 이렇게 7명 중에서 6명이 모두 기준선은 맨 왼쪽(A)과 같다고 하였다!
이 실험에서 진짜 실험 참가자는 마지막에 대답을 해야 하는 7번째 사람이고, 나머지 6명은 연구자로부터 협조요청을 받은 실험협조자들이었다. 결국 이 실험은 마지막 사람의 반응이 어떠한지를 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자, 다시 돌아가서 마지막 사람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이 실험을 여러 번 실시했더니 37%의 사람들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고, 다른 사람의 틀린 반응을 따라갔다!
쉐리프의 실험에서는 애매모호한 자극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반응을 결정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애쉬의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정확한 자극, 그래서 답이 명확한 경우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자신의 반응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동조 현상이 나타나는가?
동조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하나는 규범적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적 요인이다. 규범적 요인이라는 것은 집단으로부터의 따돌림(이탈)을 방지하려는 동기로, 사회적 비난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함이다. 우리는 어떤 집단의 전체 의견이 자신의 것과 맞지 않더라도 그냥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바로 애쉬의 실험에서는 이런 요인 때문에 동조를 한 것이다. 전체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 틀린 답이지만 따라가는 것이다.
정보적 요인이라는 것은 애매한 상황에서 행동을 결정하기 해서인데, 집단에 신뢰감이 있고 자기 판단에 자신감이 약할 때,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쉐리프의 실험에서는 이런 요인 때문에 동조가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애매한 상황에서 결정을 해야 할 때,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참고로 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인들의 행동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가끔 신문을 들여다보면, 공범으로 아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중에는 ‘친구들’과 함께 있다가, ‘친구들’이 하는 행동에 그저 함께 했을 뿐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 경우에 이 사람의 말을 핑계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쉐리프와 애쉬의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람의 말은 진심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논하여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이 때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가? 물론 집단의 결정을 따르는 것도 집단에서 살아남는 유용한 방법일 수 있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눈총을 받더라도 “난 짬뽕!”이라고 외치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누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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